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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비극적인 사건이 기억났다. 아직 소녀의 티를 채 벗지도 못한 여성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평생을 살아왔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살고 있는 베트남을 등지고 한국으로 건너온 그녀. 아마도 베트남에 두고 온 가족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두려움에 떨리던 마음을 간신히 다잡았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줌의 재가 되어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한국으로 건너올 때에는 운명이라 생각했던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한국을 떠나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그녀가 담긴 유골함을 소중이 끌어안은 건 긴 세월의 고생이 얼굴에 고스란히 주름으로 내려앉은 깡마른 체구의 어머니였다.
한국에서 제 짝을 찾지 못한 남성이 신붓감을 찾아 중개업체에 적잖은 대금을 치루고 비행기에 오르고, 적게는 열댓 명, 많게는 쉰 명 정도의 동남아 여성이 한국인 남자와 선을 본다. 그렇게 만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짧은 순간에 상대방을 평가하고 입맛에 맞는 여성과 단시간에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부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대충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국제결혼의 모습은 이러하다. 아버지뻘의 남자의 손을 잡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신부들은 한국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혼생활과 더불어 고향과는 다른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들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앞서 언급한 어느 베트남 신부의 비극적인 결혼이 그 일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을 결코 쉽지 않다. 같은 말, 같은 국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이혼을 하네 마네 할 정도로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결혼인데, 하물며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의 결혼은 어떠할까?
고단했을 결혼생활에 비극적 종지부를 찍은 그 베트남 신부가 바람이 불면 산산이 흩어질 재가 되어 다시 고향땅을 밟은 후, 한동안 한국과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들의 딸을, 자신들의 누이를 마치 물건처럼 대우하며 함부로 대했던 불특정의 한국인에 대한 증오가 한국인 전체에 대한 증오로 타올랐다. Ugly Korean...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정말로 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잊고 있지만, 우리도 그들처럼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외국으로 떠났던 과거가 있었다. 지금은 좀 덜한 것 같지만, 종종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지인과 결혼한 동양여인이 영주권을 위해 위장결혼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거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편주문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해외에서 신부를 수입해오는 나이 많은 남자가 나오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미국으로 수입되는 여성은 아시아나 러시아 같은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이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해도 한국도 그런 나라 중 하나였다.
마크 칼레스니코의 <우편주문 신부>는 바로 그런 우리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이라는 선전문구와 사진 한 장만으로 신부를 선택한, 오타쿠적인 취미와 취미의 연장선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39살의 캐나다 남자 ‘몬티’와 그 남자에게 선택되어 캐나다로 건너온 한국 여자 ‘경’. 단지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에 젖어 순종적이며 신비한 동양여성과 결혼을 꿈 꾼 ‘몬티’와 다만 변화를 원해서 국제결혼을 선택한 ‘경’의 결혼생활이 조용하고 순탄할 리 만무했다. 결혼 초기,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조심스러워하던 때에는 좀 덜했지만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 사이에 쌓이는 것은 사랑이나 정이 아닌 반목과 갈등뿐이었다. 멋대로 자기가 정해놓은 이미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고, 그 이미지에 그린 듯이 맞춰지지 않는 상대에게 실망하고 빈정거린다.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혼은 그렇게 무거운 짐으로 상대방의 온몸에 들러붙어 온 마음을 땅으로 끌어내린다. 결국 위태롭게 이어져가던 결혼생활은 서로의 감정이 극에 달해 폭발해버리는 그 시기를 맞이한다.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급기야 육탄전까지 벌인다. 그동안 감춰온 본심을 드러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결국은 언젠가는 터져야 했던 일이었다. 서로에 대해 바닥까지 드러냈을 때,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그 후로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될지를 결정하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 그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았다. <우편주문 신부>에서의 결혼생활은 로맨틱 코미디나 순정만화에서처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넘쳐나지 않았다. 오히려 하드코어 적이었다. 바로 말하자면 현실적이었다고 할까? <우편주문 신부>는 국제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그래픽 노블 이다. 하지만 몇 가지 조건만을 약간 수정한다면, 그냥 결혼에 관한 그래픽 노블 이었다. 그냥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없이 결혼을 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은 국제결혼도 결혼이다. 사랑과 이해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성급히 이루어진 결혼은 갈등과 반목을 낳는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많은 동남아 처녀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농촌지역에 가면 베트남, 스리랑카 같은 친근한 나라 뿐 아니라 발음도 하기 힘든, 전에는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그런 나라에서 시집 온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아마도 그녀들도 경중은 다르지만 <우편주문 신부>의 ‘경’처럼 많은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국제결혼’한 부부라고 따로 떼어놓고 보기 보다는 그냥 이웃의 부부로 봐주는 시선이 필요할 듯하다. 왜 어른들이 그러시지 않는가,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똑같다고. 국제결혼도 결국은 결혼이고, 외국인 신부도 그냥 신부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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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주문으로 신부를 산다는 제목부터 신부를 우편으로 주문한다니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우편주문 신부>는 표지에 나온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주인공이 흡연을 하는 모습이 왠지 시크하다.
답답한 현실을 연기와 함께 날리고 싶은 여인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랄까. 나만의 해석이다.
얼마전 싸늘한 주검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베트남 신부이야기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같은 한국인인 것이 부끄러웠다. 돈을 주고 사오다시피한 신부찾기 의 고전 엄지공주의 행복한 결말이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현실이었다. 그저 씁쓸하고 또 같은 여자 입장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그저 소개업자의 말만 믿고 이 땅에 환영받지 못한 그 여인의 명복을 빌게 만들었던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다.
주인공 경은 카달로그에 상품처럼내지 입양되는 아이처럼 캐나다에 뚝 떨어진다. 그녀를 주문한 몬티는 나이는 서른 아홉이지만 어른애였다.
![]() 철부지라고 하면 귀엽게라도 봐줄만 만하지만 몬티는 어른이다. 장난감을 모으는데 그 수준이 거의 광적인 수집광에다 그것도 모자라 직업도 중고샵을 하면서 취미이자 직업이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인인 아내 경을 자신이 모은 인형을 조종하듯 마음대로 할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녀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나이가 많은 노인분들이다. 처음에 의심하지 않았던 경이 그런 그에게 묻는데 왜 만나는 친구들 모두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냐는 말에 몬티는 경쟁할 이유도 없고 기분좋게 해준다는 변명하지만 사실 그는 어른이 되기 싫은 전형적인 어른애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옆집에서 공회전을 해서 계속 연기를 뿜어내도 그저 참으라고 하는 남편에세 왜 가만히 있느냐는 말에 당당히 맞서지 목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설탕을 넣는 유치한 발상까지 전형적인 소심형 남편의 몬티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몬티에게 갇혀 있던 경은 조금씩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되어가고 , 어느날 가게에 찾아온 이브를 통해 모델제의를 받게 된다. 철공소를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모임에도 나가게 되면서 점점 몬티의 간섭이 싫어지게 되고 어디서 동양여성이 감히 하는 경의 의외의 모습이라며 화를 내기 시작하는 몬티
![]() 그러다, 점점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한국이라는 나라를떠나 낯선 캐나다에서 변화를 꿈꾸는 그녀에게 새로 생긴 친구이자 유일한 의지처였던 이브의 결혼을 알리는 소식을 알려오고 몬티로부터 탈출구를 시도는 물거품이 도니다. 결국 몬티의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감정을 분출하고야 만다. 급기야 몬티의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결국 부부싸움까지 하게 된 두 사람, 영화 장미의 전쟁을 연상시키는 서로 치고 받는 격투같은 싸움을 하게 된다. 격한 육체적인 싸움이 끝났지만 둘은 화해도 아닌 그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변화도 없고 무덤덤한 삶을 살아가데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경의 눈물을 닦는 모습이 애처롭다.
저자가 한국사람이 아니고 캐나다인이다. 의식하고 읽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다지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캐나다인의 눈으로 본 한국여성내지 동양여성을 표현한 만화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만화는 글과는 달리 상상만으로 부족한 생동감이 느껴져 일단 좋다. 하지만 동양인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여전하군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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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나 중국 등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의 여자를 데려와 결혼하는 국제결혼 한다는 뉴스가 더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도 흔하기 때문에 한국도 다민족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흔히 접한다고 해서 이렇게 행해지는 국제결혼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신부를 잔혹하게 살해하거나, 반대로 국적취득 후 아이도 두고 자취를 숨기는 중국인 부인,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부정적인 뉴스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같은 국적, 같은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결혼을 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데,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결혼생활를 영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남자는 여자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여자의 집에 돈과 생활비를 주어야 하고 알선업체에도 수수료를 줘야 한다. 남자는 그 돈의 대가로 여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섹스와 아이를 낳아주고 자신의 부모를 공양해주기를 원하겠지. 그럼 여자는 어떤 결혼생활을 기대할까. 결혼의 대가로 돈을 받았지만 자신의 나라에서 누리지 못한 좀더 윤택한 생활과 자상한 남편과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꿀까?
[우편주문신부]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때는 국제결혼의 폐해에 대해 다루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편 '몬티'는 아내 '경'을 카달로그를 보고 알선 받았지만 그들의 만남이 국제결혼일뿐, 결혼생활은 일반적인 남녀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몬티'는 동양 여인의 환상에 '경'을 끼워 맞춘다. 이국적이고, 충실하고, 근면하고, 전통적인 신비한 동양의 여자...자신이 모으는 수많은 장난감중에 하나처럼 자신의 아내 '경'도 그런 컬렉션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은 어떤 여자인가, 한국에서의 불우한 성장 환경, 그러니 한국은 잊고 싶다.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결혼을 통해 한국보다 선진국인 '캐나다'로 건너온 것이다. 이런 둘이 결혼생활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경'을 자신의 이쁜 장난감으로만 생각하는 '몬티'는 '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경'은 그런 삶이 싫어서 다른 삶을 꿈꾸기 시작하지만 그것을 남편 '몬티'에게 이해시키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결국 육탄전을 벌이고 '몬티'는 더이상 '경'을 이쁜 인형으로만 다루지 않게 되며, '경'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만다.
흔히 국제결혼은 한국에서 후진국 여성들을 수입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그 반대의 경우를 다루는 책을 보니 흥미롭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는 동양여성의 환상이라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가도 나 또한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오는 여성들을 좋지 못한 선입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무엇인가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다.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게 결혼인거 같아서 아직 미혼인 나는 이 [우편주문신부]가 제법 심각하게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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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주문 신부. 캐나다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와의 이야기라는 책 소개를 보고 읽게 된 책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다문화 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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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데 우편주문을 통해서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던 상대와 두어번 만난 후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린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결혼해 단란하게 잘 사는 다문화 가정들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가 보다. 그런데 이 국제결혼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책이 있다. 마크 칼레스니코가 지은 <우편주문 신부>가 그것이다. 대신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여성이 캐나다 남성과 결혼하여 캐나다로 이주한 후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며 저자 자신이 캐나다 남성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우편주문 신부>에서 캐나다인 몬티 윌러가 한국인 여성을 배우자로 선택한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다.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 소녀들"이라는 광고 문구를 철썩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에게 배우자는 삶의 동반자가 아니라 그가 수집하는 장난감들 가운데 ’살아있는 인형’에 불과했다. 이처럼 그릇된 배우자관을 가진 몬티의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었다.
그런데 몬티만을 믿고 먼 타국으로 시집온 경 또한 몬티와의 결혼생활이 쉽지 않았다. 경의 천성이 우편주문 신부 광고지에 나온 것과는 달랐고, 그녀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서자 둘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몬티는 경에게 자신의 이상적인 아내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경은 그런 몬티의 요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긋나기 시작하는 둘의 관계를 저자는 그리 많지 않은 대사와 간단한 스케치만으로도 잘 표현하고 있다.
표지에서부터 인상적인 그림이 눈길을 끌어 책의 곳곳에 삽화가 등장하겠구나 했는데 의외로 이 책은 ’만화책’, 다시 말해 그래픽 노블이었다. 섬세하지 않아도 표정의 미묘한 변화와 감정까지 저자는 재밌게 그리고 있다. 서로에게 낯선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서로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편주문 신부>는 다문화가정의 관찰기이기도 하고, 신혼부부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불화를 담고 있다. 이런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해결의 실마리를 여기서 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꿈꾸던 배우자는 과연 누구인지, 혹시나 배우자의 허상만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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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결혼도 국제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우리 주변에만 해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신부들이 있다. 자국민인 우리의 입장이 아닌, 외국에서, 외국인의 눈으로 본 동양인 신부는 어떤 느낌일까?
우편주문 신부는 캐나다에 사는 오타쿠 몬티가 한국인 경을 신부로 맞으면서 생기는 일이다. 주문서에 있었던 '근면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고, 귀엽고, 이색적이고, 가정적이고 순진한 소녀들'이란 문구를 보며, 몬티는 경을 주문한다.
하지만, 경은 몬티의 생각보다 더 키가 크고, 영어를 잘 하고, 드센 여자다. 몬티는 경이 감당하기엔 너무 고루한 사회적 오타쿠이다. 자유로운 경을 집안에 두고 순종적이기만을 원하기에 두 사람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어긋난 기대와 모든 부부들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불화의 늪에서 그래도 이들은 부부로 남는다. 마지막 결말이 뒷얘기를 더 남겨둔 것 마냥 아쉽긴 하지만, 괜찮은 책이었다. 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와, 한국인이 생각하는 외국인의 이미지가 둘 다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참, 책은 만화책이다. 북미식 그래픽 노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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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다문화 가정이 많습니다.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사회단체도 많고 그들을 위한 행사도 많더라구요. 항상 다문화가정을 볼때 우리가 우월한 위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동남아의 신부들을 볼때 어리기만 어린 그녀들 생판 외국에 모르는 사람과 애정도 없는 결혼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그들의 심정과 기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먼나라까지 시집왔구나. 당차구나.. 고향이 그립겠구나... 먼나라 왔으니 각오는 단단히 하고 왔을테니 적응 잘하겠지..그정도로만 생각했죠.
이 책에는 우리 나라 여성 경이 나옵니다. 캐나다로 시집을 가죠. 도착한 다음날 결혼식을 올립니다. 생판 모르는 남자랑 결혼합니다.. 당연 애정이 있을리가 없죠. 그러나 남편은 사랑한다고 합니다. 속이 메슥거립니다. 갑갑하네요. 남편의 취미를 이해 못하니 더 갑갑하죠. 장난감과 만화책에 집착하는 남편.. 저도 그런 남편이 이상하게만 느껴집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이런 결혼생활 저 하루도 못할것 같습니다. 애정도 없고 서로에 대한 이해조차도 없고.. 카다로그를 보고 주문하는 우편 주문처럼 그렇게 신부를 고르고 결혼하다니..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갑갑하네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죠..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그러나 속이 답답합니다. 안타깝지만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더 답답합니다. 경이 내재된 욕구를 분출하고 표현하고 무엇을 배우고 할때는 속이 시원했는데..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버립니다. 겁쟁이처럼.. 저 자신 역시 겁쟁이 인것을요.. 혼자인걸 두려워하고 새로운걸 시작하길 두려워합니다. 현실이 불만이고 갑갑하지만 안주하고 머물러 있습니다. 그냥 모든것이 고요하게 흐르기만 바랄뿐입니다. 현실을 그저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할뿐입니다. 읽고나니 답답하긴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습니다. 우리가 동남아 신부 취급을 당하는거..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만 읽어보고 우리나라에 사는 그녀들이 좀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뜨거운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들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먼저 한걸음 다가가고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경처럼 답답해하며 눈물흘리며 사는 사람들이 없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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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칼레스니코 님의 그래픽 노블 <우편주문 신부>입니다..
그래픽노블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작가분은 잘 모르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라이온킹>,
<뮬란>, <아틀란티스>등의 작품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암튼 <우편주문 신부>는 캐나다로 시집을 가게된 한국여성 서경의 이야기입니다..
좋게 말해 시집이지 실상 카탈로그에 실린 한국여성이 캐나다의 노총각에게 선택되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우편주문 신부>란 작품이 2001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한국여성이 속되게 표현해서 팔려가는 여성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뭐라고 할까요?! 참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직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이정도밖에 안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게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우편주문 신부>와는 반대되는 경우..
한국의 많은 남성들이 동남아의 여성들을 선택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이제는 익숙해지기까지도 했기에..
<우편주문 신부>의 기본 구성은 처음엔느 분명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문화가정, 입장 바꿔 들여다본다면?! 이라는 문구가 처음에 눈길을 끌었지만..
사실 <우편주문 신부>은 다문화가정이야기라기 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한 여성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보는게 더 맞는 이야기인거 같습니다..
동양여성이라면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근면하고 셈에 능하다고 생각하는 캐나다인 남편의 편견과 몰이해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 둘 찾아가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한국여성간의 충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그래픽노블입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 두 남녀가 그전에 아무런 만남과 이해없이 바로 시작되는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충돌을 일으킬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어지는데 <우편주문 신부>는 그런 충돌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결혼이라는 것이 국제결혼이든 아니든 두 사람의 남녀가 만나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나라와 문화 등 모든 것을 떠나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져보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