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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체 소설은 고등학교 시절 시험의 단골 출제 문제였었다. 그 당시엔 의인화 대상과 주제등을 달달달 외웠는데, 이제서야 전문을 읽어보게된다. 길지도 않고 이렇게 짧은 것들인데.. 암기 할 시간에 읽었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저절로 알게되었을것이다. 이로써 한번 더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에 대해 쯔쯔쯔 혀 한번 차고.. 이렇게 재밌는 우리의 고전을 외면한 내자신에 대해 반성도 해본다.
국순전은 누룩술을 의인화 한것으로 고려시대 정중부의 난으로 재산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피난가 목숨만 겨우 건진 임춘이 지은 소설이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런 억울함 때문에 좋은 소설이 나온듯하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함께 그 시대 술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다. 국순의 할아버지는 모라하여 술의 원료인 누룩을 만드는 보리의 일종이었고, 모의 성은 은이라하여 임금이 열녀문을 내린자이다. 중국 주나라 무왕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 금고를 시켰다는 걸보면 중국도 술로 인해 골치아픈 일이 많아 금주의 법이 있었나보다. 순(국순)은 돈을 모으는 못된 버릇을 가진자였다. 그는 임금과 친해져 예법을 아는 선비는 순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임금은 그를 감싸고 돌고 세금을 많이 걷었다. 아무래도 그시대에 임금이 술독에 빠져 나라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에만 욕심을 낸듯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술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워줄 목적으로 쓰였다는데, 충분히 이해된다. 최초의 가전체로, 인간이 술 때문에 타락하는 모습을 풍자하고, 국정문란과 벼슬아치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있다.
국선생전은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가 지은것으로 국순전과는 다르게 술을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국성은 맑은 술을 의미하고, 그의 자는 중지인데, 중지는 곤드레만드레를 뜻한다. 국성도 순처럼 임금의 총애를 받아 국선생이 된다. 그러나 그의 세아들 혹(독한술), 폭(진한술), 역(쓴술)이 임금의 총애를 받는 아버지만 믿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모영(붓)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탄핵한다. 국선생의 세아들은 비록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그는 늙어서 족한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 물러나 마침내 천수로 세상을 마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정약용 선생님이 아들들에게 술을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는 글이 있었는데, 술을 맛도 느낄줄 모르고 너무 많이 마시지만 않고, 그맛을 제대로 즐길줄안다면 그도 그렇게 나쁜것만은 아닌것 같다.
저생전은 고려 때 승려인 식영암이 최씨 집권 시대에 지은것으로 지팡이를 의인화 한것이다. 고려말 불교 배척을 비판하고, 사회혼란과 부패한 불교사회의 단면을 고발한 글로, 승려와 지도층에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로 쓴것이다. 지팡이인 정시자가 식영암을 만나 사람들이 자신을 부려먹기만 하는 것을 한탄하며 제대로된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는 관료사회 비리를 비웃고 있다.
죽부인전은 고려시대 학자 이곡이 쓴것으로 조선시대 열녀문의 표본이자, 춘향전에 영향을 준것으로 보인다. 죽부인의 죽은 알다시피 대나무를 절개있는 부인에 비유한것으로 여성의 정절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당시 고려는 국운이 기울고, 남녀관계가 문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를 비판하고자 쓴것 같다. 의남이 음란한 노래로 처녀였던 죽부인을 떠보지만 '남녀가 비록 유별하다지만 절개는 하나밖에 없다. 한번 사람에게 절개를 잃게 되면 어찌 다시 세상을 나설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얼마전 신문기사에서 몇몇 청소년들이 첫성관계를 중2때 경험했다고한 충격적인 기사가 떠올라 씁쓸해졌다.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개방된 성문화의 긍정적인면만 강조해야 할것이아니라, 절개의 중요성도 함께 가르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줬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방전은 고려 무신 집정때 임춘이 돈을 의인화 하여 돈때문에 생기는 폐해를 비판한것이다. 고려시대 잠시 동안 화폐를 발행했지만, 돈 많은 지배층에서만 사용되다가 사라진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책에서 알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었던것 같다. 나라 세금을 담당한 그가 돈을 중하게 여기고, 곡식을 천하게 다르고, 근본인 농사를 버리고, 장사 잇속만 따르게하고, 사람을 대함에도 재물 많은 자만 섬기며, 뇌물과 청탁을 버젓이 행한다. 이는 물질만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것이다.
청강사자현부전은 고려 고종때 이규보가 거북이를 의인화한것으로 안분지족의 처세와 절개에대해 말하고있다. 현부의 선조는 크고 굉장한 힘을 지녔는데, 자손대로오면서 형체가 작아지고 힘도작아져 점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터가좋고 나쁨을 보아 장소를 가리는 일을 한다.
화왕계는 신라시대 설총이 신문왕에게 충고한 것이다. 화왕은 모란꽃으로 꽃중의 꽃으로 매우 빼어나다. 가인(장미)과 백두옹(할미꽃)은 서로 자기를 등용해 줄것을 바란다. 화왕이 이를 고민하자 장부가 '무릇 임금된 자로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맹자는 불우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고, 풍당은 낭관에 묻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늙었사옵니다.'라고 직언을 한다. 이를 들은 임금은 자신이 잘못했다는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충신이란, 아니 충신뿐아니라 진정한 친구, 가족, 이웃이란 나의 허물들 제대로보고 충고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화왕전은 조선 정조때 이이순이 설총의 화왕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젊어서는 절개를 지키지만 부귀공명에 대한 매력 때문에 늙어서는 절개를 지키기어렵다는 점을 들어 군주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대한 경계를했다.
의승기는 처음엔 이승기인줄 알고 깜짝놀랐다. 숙종때 학자인 임영이 지은것으로, 그는 이황과 이이의 절충적 입장을 취한자로써 의승기를 통해 마음을 올바르게 하면 반드시 이긴다는것을 일깨워주고있다. 천군이 왕에 오르자 태평성대를 노래하며 즐긴다. 그러나 3년만에 천군의 덕은 처음과 같지 않아, 도적의 세력이 커지고 나라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천군은 황야로 도망간다. 그리고 10년이란 긴세월을 그렇게 떠돌다 성성옹이 도적을 물리쳐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남은 도적이 있었고, 그는 도적을 잡는 이에게 권력을 나워준다고 한다. 그리고 맹호연이 나타나 도적을 무찌른다.
여용국전은 조선후기 안정복이 화장도구를 의인화 한것으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치세에 힘쓰면 나라가 태평하지만 안일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말하고 있다. 여용국의 도원청(거울)은 황제의 좌우에서 왕제의 얼굴이 얌전하지 못하면 반드시 말씀드려 경계한다. 그리고 거울 밑으로 열다섯신하가 있는데 연지, 분, 치솔, 세숫대아, 수건, 물수건, 비누, 향료, 곤지, 분첩, 납기름, 족집게, 비녀, 참빗, 빗치개가있다. 그런 신하들로 인해 나라법도나 법령이 잘 시행된다. 나라의 정치가 저절로 잘되는 줄 알고 황제가 생각이 교만해져 편하게 노는데만 정신을 잃는다. 황제가 가끔 세수대야나 참빗을 부르는게 고작이고, 나머지 신하는 일시물러나 소임을 돌보지 않자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진다. 그래서 머리에 이가 들끓고 여기저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참빗을 선봉장으로 하고, 빗치개를 후군으로 하여 군사를 일으켜 이를 물리친다. 참밋은 이를 하나도 생포하지 못하지만 빗치개는 생포한다. 그리고 구리공 소탕을위해 세수대야, 물수건, 비누로 공격해 구리공을 물에 빠트려 죽인다. 곤지, 향로로 하여금 이마, 코, 턱, 양쪽 광대뼈등 오악의 경계를 지키게하고, 분첨으로 하여금 성을 순행하여 지키게한다. 족집게는 아미산을 쳐서 모송을 뽑는다. 호치장군은 칫솔부대로 잇사이를 넘어 잇똥(처음엔 이가 머리에 똥을 싼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치석이나 음식물 찌꺼기인가보다.)의 무리를 공격해 물에 빠뜨려 죽인다. 여용국전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강추!! 강추!! 화장도구들이 등장인물이니, 어려운 낱말도 등장하지 않고, 읽기 쉽다.
오원전은 유본학이 지은것으로 그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양이들을 의인화하여 약삭빠른 인문의 처세를 보여준다. 쥐를 잡아물리쳐 임금이 식읍을 주자 이를 사양한다. 그러나 임금은 이를 듣지않고, 이 일로 말미암아 더욱 교만해진다. 그러다 사냥꾼 노령과 다투가 임금의 총애를 잃고, 수라상 위에 놓은 음식을 춤쳐 먹으려다 들켜 쫓겨나 길에버려진다. 민가에서 구걸을 하거나 그의 주특기인 도둑질로 연명하다 죽는다. P134 '사람이란 처음이 있고 끝이 있음이 진실로 어려운 일이다.'
모두 다 지금 그대로 받아들인다해도 무리가 없을만큼 교훈을 주고있다. 특히 여용국전은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요즘부쩍 뾰루지가올라오는데, 오늘부터 내신하들을 잘 다스려 몸가짐에 신경을 써야겠다. 다음엔 어떤 고전을 읽어야할지 고민된다. |
| 인류를 관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이는 인류가 가꾸어 온 다양한 문화 양상에도 불구하고 그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국가 내에서만 유행했던 독특한 양식의 문학이 존재하는 반면, 어느 국가에서나 쉬이 발견할 수 있는 형식의 문학도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솝 우화의 한국판이랄까. 동물이나 사물 등을 빗대어 인류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쓰여진... 고려 후기, 특히 무신집권기에 크게 융성하였던 가전체 소설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전체 소설은 우리나라만의 특수성도 지니고 있다. 무신집권기의 무너져 버린 사회 질서, 몽고 침입으로 인한 불안 등, 당대는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극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상황에서 문인들은 우회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것이 바로 가전체 소설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임춘의 <국순전>은 이 책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의인화된 사물(술)이 등장하지만 다른 글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술의 위해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후의 글들은, 술, 지팡이, 종이, 거북이 등의 사물, 동물 등이 그 자체를 뛰어넘어 인격성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소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소설에서 나타나는 뛰어난 전개 구조, 사건의 진행을 가능케 하는 갈등의 양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규보의 <국선생전>을 비롯한 많은 글들은 사물을 하나의 인간으로 설정, 그 사물이 보여주는 행동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렇게 그려진 사회는 갓 피어나기 시작한, 유교 정신을 체득한 사대부들이 그린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정절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왕에 대한 충성과 자만치 않는 마음을 강조하는... 그것은 현실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안정적인 질서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다. 이러한 종류의 글은 고려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일찍이 설총에 의해 씌어진 <화왕계>는 가전체의 효시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 영향을 받은 <화왕전> 등의 글은 조선시대에 쓰여진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우화들은 쉽게 읽히고 이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많은 어린이들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구성이 점차적으로 탄탄해지며, 등장하는 사물들 역시 보다 개성을 지니게 되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국문학의 발달 못지 않게 이 글들은 당대 사회상을 엿보는데도 귀중한 자료로써 활용될 수 있다. 비록 화폐가 유통되진 않았던 고려 시대였지만, <공방전>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는 당대 지배계층이 지니고 있었을 화폐 유통에 대한 우려의 심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안정복의 <여용국전>은 조선 후기의 화장구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짧은 이야기들은 그 스토리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에게 요구되는 겸손의 미덕을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용국전>공방전>화왕전>화왕계>국선생전>국순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