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초 편지>로 유명해진 황대권 저자의 특이한 유럽 기행문이다. 저자는 미국 유학 중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 복역 중 1998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국민의 정부 출범 덕분에 석방된 것만은 아니다. 양심수로서 그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국제 펜클럽' 회원들의 석방운동 덕을 많이 보았다. 출옥 후 저자는 노르웨이 앰네스티 행사의 초청장을 받는데, 겸사겸사 유학도 알아볼겸, 수감된 자신에게 격려 편지를 보내주고 구명운동을 해준 유럽의 인권 운동가들을 만나는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은 그 여행 중 저자가 만난 평범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가까운 지인이 당장 고난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별나 보일까봐 블로그에 쓰지는 않았지만 사실 요즘 생각이 많고 잠이 안 온다. 일본과 리비아를 보면서,,, 사람이 평생 전쟁이나 자연재해, 기아 등을 겪지 않고 한 세대가 온전히 평화롭고 순탄하게 살다 이 세상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했다. 나의 부모 세대는 일제의 만행과 6,25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내 세대도 광주에서 태어난 친구들은 학살을 겪은 셈이다. 운 좋게 나는 평탄하게 살아 왔지만 지금도 내 옆에는, 바다 건너에는,,, 얼마나 다른 힘겨운 삶이 존재하는지,,,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무기력하고 사치스런 고민을 한 열흘 했나보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
책에 보면 생면부지의 저자를 십년 넘게 옥바라지하고 구명 운동을 벌여 주신 분이며, 타국의 양심수를 뒷바라지하다가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된 그의 딸을 데려다가 자비로 고교와 대학 진학을 시키고 있는 분 등등 정말 대단하신 분들의 삶이 소개된다. 물론 대단하시다. 하지만 내가 더 감동받은 것은, 이 분들이 사실은 인권 운동을 오래 하시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의 성과에대해 반신반의 하신 분도 있었는데, 저자의 출옥과 유럽 방문으로 시혜자인 이분들이 수혜자인 저자에게서 오히려 힘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작은 습관 같은 실천이 이렇게 지구 저 편의 한 사람을 살리는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에 그분들도 놀라고 기뻐하셨지만, 이 책을 읽는 나 역시 놀라고 기뻤다. 아, 그렇구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게 없더라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더라도 꾸준히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 거구나,,,
여하간, 천재지변은 막을 수 없더라도 인재는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전쟁으로 인한 인재는 물론, 잘못된 정치로 인한 인재 역시 막아야만 한다. 이런 생각을 꾸준한 실천으로 옮기고 생활화한 분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잔잔한 감동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순간, 예스 블로거 친구 몇몇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들은 그저 아렌달이라는 조그만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직업이래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사, 공무원, 주부 정도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시민의식이 높다거나 별난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권이 짓밟히고 있는 나라의 양심수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운 좋게 잘사는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부채의식이 전부이다. 일찍이 맹자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아렌달에 와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인권운동이란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님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누군가 부당하게 그 평등성이 짓밟혔을 때 그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느껴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인권운동이라고 정의하면 너무 단순할까? - 본문 240~241쪽에서
조직 차원의 사업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일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같은 인간으로서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책임의식 같은 것이다. - 본문 330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