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나만의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 나는 나만의 반론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진실에 접근 시켰을 때, 나는 그것이 결국 올바른 믿음, 즉 정통신앙이라는 것을 발견했다"(p.17) 체스터턴에 대해서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수많은 기독교 서적에 인용되는 글을 쓴 사람. 그러나 국내에 번역된 책이라고는 그의 추리소설 외에는 거의 없다. 그런 와중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거론되는 Heretics 과 Orthodoxy 중에서 후자의 책이 번역되었다. 언젠가는 번역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번역되어 나왔는데도 그리 큰 이슈가 되지 않은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체스터턴이 쓴 문장 하나 하나에서 느껴지는 깨달음은 매우 심오하다. 나는 가끔씩 그의 글을 떠올리면서 약간의 전율을 느끼곤 한다. 놀랍도록 글을 많이 썼던 이 한 명의 그리스도인의 책이 <오소독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다가왔다. 이 책은 저자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견해를 듣기 원하는 이들의 요청에 응하면서 쓰여진 책이다. 그는 단지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쓰기 보다는 자신이 어떤 경로와 사고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어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떠한 계획도 없었다. 단지 삶에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 싶어했고 그런 와중에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런 과정이 나와있는 책이다. "나는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나만의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 진실... 그는 기독교가 자신만의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권하는 것 같다.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목적은 기독교가 믿을만한 것이냐 아니냐를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기독교를 믿게 되었느냐 하는 것에 관한 설명을 시도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한번 정도는 살펴볼만한 책이다. 그런 가운데 어려운 점도 있다. 첫째는 그의 책이 나온지 오래되었기에 당시의 영국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저자가 언급하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는 점이다. 번역자가 친절하게 (주)를 달면서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본문에서 언급되는 인물들은 당시의 영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인물들이겠지만 다른 문화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인물들이고 거리의 지명이나 사건들은 매우 낫설고 다가오지 않는다. 둘째로는 그의 원문 문장도 옛날 단어들이 자주 나오고 다소 해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번역된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은 면이 있어서 가독성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다른 면으로는 저자의 내용 전개가 다소 철학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마 쉽게 전체 내용을 파악하면서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저자의 참신한 문장 하나 하나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로 남을 것이다.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강한 확신... 책을 읽으면서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이름 높았던 저자의 확신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독자인 나도 하나님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정통신앙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정통신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책을 읽은 이에게 남는 것 같다.오소독시> |
| 길버트 체스터턴 이끌리오 천부적인 궤변론자. 탁월한 sophist 의 유쾌한 이야기 만화책처럼 읽기 좋은 책이다. 단, 철학이나 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입문하기를 권한다.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자기가 결국 광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유쾌하게 자기 논지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사람을 제외한다면. 대략 100년쯤 전에 살던 이 자는 전여옥과 유시민을 합친 정도의 내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무신론자 수준으로 살다가 카톨릭에 귀의하면서 왜 자기가 카톨릭 신자가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초강력 이빨의 위력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체스터턴은 당대 유명한 문학과 사회 비평가였다. 또한 지성인으로, 넉넉한 성격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소설고도 유명해서 추리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반지의 제왕의 저자 톨킨이나 순전한 기독교의 저자 c.s 루이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당대의 이빨들인 버틀란트 러셀과 버나드쇼와 맞짱을 뜨고도 가뿐하게 이겼던 것이 체스터턴이다. 이 정도 칭찬이면 체스터턴의 말빨은 가히 상상이 가지 않을까? 글쟁이들이라면 모를까 개인적으로는 크게 남는 건 없는 책이라고 본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브라운 신부 시리즈도 읽어볼 생각이다. 논리적인 자들에게 권할만한 오락거리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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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을 무렵 마음속에 뭔가 뜨거운것이 생기길 원했었다.
내마음속에 믿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뜨거운 믿음이 생길줄알았지만...실제 내마음은
수많은 의심과 조급함에 차갑고 완강하기만했었다.
뭔가 외부적인 자극을 기대하던차에 이책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초반부에 완전히 동조할수없는 비유와 철학사조들의 대거등장에 그만 책을 접고 말았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의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생긴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위해 책꽂이를 바라보다 순간의 마음의 동요에 끌려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작가가 말하는 현대사상을 찾아가고 그 철학사조를 미약하나마 이해하면서 작가가 말하고자하는걸 이해하가고 거기에 동의하면서(내 철학적인 지식의 미비로인해 완전하진않지만...) 작가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리스도교에대한 철학적인 고찰에 감탄하면서 그리스도교신자이기도한 내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고 널려있던 믿음의 확신들과 믿음의 뿌리가된 생각들이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찾아가 하나의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원문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군데군데 약간 지루하고 거북스런 번역(한문장안에 목적조사인''을''이 두세개 사용되었다든가 수식어의 중복등)이 안그래도 부족한 철학지식으로인해 난해하다고 느끼는 내게 더 어려움을 준것같았다.(아무래도 주제넘은 의견인것같지만....--;)
그럼에도 이책은 옮긴이의 말마따나 그리스도교에대한 오해와 편견, 고정관념등을 여러가지 비유와 역설로 명쾌하게 타파하면서 그리스도교에대한 진실을 보여주고있다.
다방면의 철학적인 깊은 이해와 사고를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 신앙의 길로 들어선 작가의 확실하고도 기쁨에찬 고백이 느껴진다.
2년여의 시간동안 내 마음에도 뜨거운 믿음이 자리 잡았지만 이책을 통해 그 자리를 더
탄탄히 할수 있었던것같다. [인상깊은구절] 정통신앙은 우리를 지옥의 가장자리에서 갑자기 뛰어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가서야 그 뜀뛰기가 우리의 건강에 대단히 이로운 육체적 운동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이 위험이 모든 드라마와 소설의 뿌리라는것을 깨닫는다. 신의 은총에 가장 강력한 찬성론은 그 은총이 대가를 바라거나 생색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인가가 없는 부분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에는 인간들의 도약대가 되는 것들이다. |
| 정통신앙이라면 이미 검증이 끝난 것이 아닌가? 서양철학의 19세기는 정통신앙이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낡았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정통신앙과 함께 삶의 기쁨과 의미, 자유와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체스터턴의 질문이 시작된다. 너는 너무 너의 지적 유희에 흥분한 것은 아닌가? 너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라는 것이 임의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동물이고 무의미이고 강자만을 숭배하는 존재라면 인간은 자살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균형과 전인이어야지 단지 theory와 evidences라는 것들은 이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끊임없는 순환의 고리는 아닌가? 그의 시대는 버나드쇼와 스펜서의 시대, 니체와 다윈의 제자들의 시대였다. 그는 인간이 빠진 어이없는 자기학대와 무의미성의 처참함에 대해 따뜻한 유머와 촌철살인의 비유로, 당시 철학의 이성적 결말의 파멸을 지적한다. 니체와 다윈에게 감탄하고 있던 내 입을 틀어막은 책이기도 하다. 나에게 삶의 소중한 근거가 왜 정통신앙일 수 밖에 없는지를 체스터턴은 보여주었다. 자유한가? 즐거운가? 가벼운가? 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항상 기뻐한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 범사에 감사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가 되게 해준 책이다. 또 한편으론 이 책 이후 칼뱅주의에 대한 객관적 독서의 필요성이 숙제로 남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