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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같은 내용의 책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구입하여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이렇게 포이에마 서포터즈를 통해 새롭게 출간된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만나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은 답답해져만 갔다.. 책의 내용보다는 부족한 나의 견문으로 인해 생겨난 아쉬움이었다..
물론 기독교의 기본진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배웠고.. 또 그것들을 소화시켜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라..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와 자유주의 신학자인 데이비드 에드워즈의 논쟁은.. 개인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질문과 답변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말 그대로 검은 것은 글자고 하얀 것은 종이인 것만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은..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 탁월한 해답을 제시해도.. 그것마저 인정하려 들지 않고 거부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마치 눅 16장에 기록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가운데.. 세상에 남겨진 형제들에게 지옥의 존재사실을 전해주기 위해 간청하고 있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해 준 율법의 내용만으로도.. 세상에 남겨진 형제들이 구원을 얻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과 동일한 이치라고 생각하게 됐다..
데이비드 에드워즈는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복음주의가 오류를 통해..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을 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스토트의 저서를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견해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질문하고 답변을 청한 것이다..
복음의 능력, 성경의 권위, 십자가의 대속, 그리스도의 기적, 성경과 행위, 종말론과 구원 등 존 스토트의 저술에 등장한 내용을 가지고.. 에드워즈는 촌철살인과도 같은 질문을 하였고.. 이에 대해 존 스토트는 복음주의의 입장에서 성경에 근거한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에드워즈는 존 스토트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사실 한 가지는.. 진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출발이 다르면 끝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서 전개되고 있는 내용들은 조금 더 집중해서 살펴보고 싶다.. 또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이 그저 덮어 놓고 믿는 그런 신앙이 되지 않으려면.. 배움의 현장에서 더욱 더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자신있게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두 신학자의 주장에 새삼 감복하게 되었고 나에게 부족한 점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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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신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신학’이 사회학, 철학과 같은 학문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학문의 정의로 볼 때, 신학은 존재할 수 없다. 우선은 학문적으로 ‘신’을 ‘탐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은 무한자이고 인간은 유한자이다. 유한자가 무한자를 탐구하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유한의 잣대로 무한을 어떻게 잴 수 있고 어떻게 평가하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종교적인 의미에서도 신학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신을 연구의 대상으로 탐구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 어머니를 연구의 대상으로 탐구한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어머니를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연구한다면, 그 어머니는 더 이상 나의 어머니가 아니다. 어머니는 나와 애정과 나누며 감정을 교류하는 인격적 앎의 대상이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를 신학자로 명명하는데 일종의 거부감이 있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신에 대한 분석을 내놓지만 실제로 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그들의 관념과 이성에서 비롯된 만들어진 신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에서 나의 이 생각은 보다 확고해 졌다. 존스토트가 이 책의 말미에서 결론적으로 잘 지적하고 있듯이, 자유주의자는 이성을 최종 권위로 삼고 있다. 데이비드 에드워즈의 모든 논쟁점은 결국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해’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존 스토트의 답변은 자유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은 모두 성경적인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근본주의자들을 비합리적인 광신자로 생각한다(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러하다). 그래서 존 스토트를 향해서도 근본주의자와 유사한 주장이라 생각되는 부분에서 공격하며, 자유주의자의 이성으로도 충분히 합리적일 때에는 칭찬을 한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자유주의자에게는 조금의 답도 주지 못한다. 기독교는 결코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거듭남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 책의 논쟁은 기독교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오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에드워즈의 주장은 아주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그의 이해는 기껏해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철학일 뿐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은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유사품과 진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두 제품을 진열해놓고 세밀하게 차이점을 보여주고 설명할 때 이 둘의 차이를 보다 쉽게 식별할 수 있으며 진품의 진면목과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의 논쟁점은 기독교가 어떤 점에서 세상의 종교나 철학과 괘를 달리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부각시켜주고 있다. 아직 기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미성숙한 성도는 이 책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평신도가 보기에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평소에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보다 깊게 알고 싶어하는 성도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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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영국의 저명한 자유주의 신학자인 데이비드 에드워즈가 복음주의권의 대표주자였던 존 스토트의 저술들을 연구해 한 권의 책을 썼다. 그는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복음주의의 어떤 부분들이 불편하게 여겨지며 어떻게 하면 일치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때로는 온건한 권유로, 또 때로는 날카로운 공격(종종 빈정대기도 하고)으로 대답을 요구한다. 이에 존 스토트는 그 책의 각각의 장에 대해서 복음주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또 자유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한계에 대해서 편지의 형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복음과 성경, 구원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들과 고찰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흥미로운 구성이다. 서로에 대해 기본적으로 존경심을 갖고 있는 저자들이 각각 상대와 다른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진술하고 상대의 의견을 묻는데, 그 깊이가 상당하니 지적인 즐거움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신학 사조의 양 끝인 근본주의나 현대주의자들이 아니라 복음주의와 자유주의에 속한 저자들이기에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면도 있고, 그래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흥미진진하다.
다만 데이비드 에드워즈의 경우 이미 책을 다 쓴 후 그 내용에 대해 존 스토트가 답변을 하는 식으로 이루어졌기에, 좀 더 생생한 논쟁이나 치고받는 모습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좀 아쉬운 면도 있다. 물론 데이비드 에드워즈가 책을 쓰기 전에 존 스토트의 다양한 저작들을 깊게 섭렵한 후 그에 근거해 자신의 공격을 준비했긴 하지만, 그 공격에 대한 스토트의 답변을 들은 후 재반론이나 재 질문을 던지고, 다시 여기에 스토트가 재 답변을 했더라면 둘 사이의 논의 속에서 느껴지는 빈공간이 좀 더 좁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비슷한 수준의 상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는 공격하는 쪽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먼저 질문을 던지는 쪽이 논의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고, 여기에 기본적인 틀까지 한정지어버리기 때문에, 답변하는 쪽은 언제나 수세에 몰리기 마련이다.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은 존 스토트가 계속 자신과 복음주의 진영을 방어하는 느낌이 강하다. 심정적으로 복음주의에 동조하는 독자들에게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토트는 단지 방어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전장(戰場)을 옮기려는 시도를 한다.(탁월한 논객이다.) 데이비드가 설정한 질문에 머물지 않고, 상대의 질문의 배경 자체에 대한 논의로 문제를 옮겨가고 있다.(여기에 대해서 데이비드가 답변을 했다면 좀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은 생각만큼 양쪽의 차이가 작다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사실이다. 스토트도 후기에서 언급했듯 자유주의자들의 논의의 근본은 이성에 있고, 복음주의자들의 경우는 성경에 있다. 각각의 다른 궁극적인 권위는 다른 세계관을 낳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 문제가 합치되지 않으면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보면 스토트는 선방을 하고 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듯, 논의의 장을 단지 데이비드 에드워즈가 설정한 부분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기원의 문제를 다루려고 했던 부분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에드워즈의 질문은 복음주의자들이 모든 대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깨닫게 해 준다. 또, 자유주의자들 또한 인간과 영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임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신학을 공부하고 있거나 좀 더 깊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꼭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복음주의권에 속해있든, 자유주의자이든(현대주의에 좀 더 치우쳐 있는 사람들이라면 좀 마음에 안 들수도 있겠지만)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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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tials : A Liberal-Evangelical Dialogue 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 존스토트(복음주의) vs. 데이비드에드워즈(자유주의) 내겐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복음주의 진영에 있는 독자로써 과연 어떤 질문과 답이 오고 간 내용일까 시작부터 궁금하기도 어렵기도 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가 최근 1년 중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독서를 했던 책이다. 누구가가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식의 책이 있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처음 접해서 감(?)을 잡는데도 며칠씩이 걸린 것 같다. 추천이의 글에서도 언급됐지만, 출판(1988년)된 지 20년 넘은 이 책이 새롭게 번역되는 지금 이 시점, 한국 독자와 교회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동감을 하게 된다. 그것은 복음주의 논의가 중요한 기로에 처해 있기에, 복음주의 진영의 대표인 존 스토트 목사님의 글이기에, 앞서 말했듯이 흥미로운 대화의 방식 때문이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복음의 능력,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기적, 성경과 행위, 종말론과 구원에 대해 데이비드에드워즈가 존스토트의 책들을 언급하면서 설명을 하고, 그 주제 대해 존 스토트 목사님이 답변하는 식이다. 존스토트 목사님의 글이 훨씬 짧다는 게 아쉽지만, 간결하다. 그리고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스토트 목사님의 심정이 책 전체에 가득하다. 서재 한켠에 자리잡고 있지만 아직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이 책에서도 그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오해(?)할까 염려하시는 글도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도, 목회자도 아닌 독자로써 앞서 말했지만, 한 가지 주제도 아닌 신학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글이기도 하고 신학적인 용어가 간혹 나와서 더욱 읽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지만,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한글자 한글자 읽었다.
새로운 깨달음이나 중요하다고 느낀 글을 밑줄 치다 보니 책이 완전 도배지다. 그리스도의 기적 중에서 존 스토트 목사님의 답변, (P.390)표적들이 그 가르침에 의해 판단되어야지, 그 가르침이 그 표적들에 의해 판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과 행위 부분에서 존 스토트 목사님의 답변, 이 지성은 현대 문화의 양식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며, 그 대신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을 성실히 추구하고, (P.473)나아가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지성입니다. (롬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