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의 노래를 작년 겨울 초입에 만났다. 작년 겨울은 내게 참 매서웠다. 따뜻한 고향 집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유배지에 있는 듯 했다. 마음 둘 때 없이 쓸쓸하고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때 칼의 노래를 드디어 들었다. 드디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책때문에 약간 시달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로 부터 추천도 받았고.....나도 상당히 땡겼던게 사실이다.하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었다. 대통령이 추천한 책이니, 무슨 수상작품이니, 선정도서니 하는 수많은 타이틀에 오히려 묘한 거부감이 들고, 1권으로 충분히 묶을 수 있는 분량을 2권으로 나누고 6천원이라는 심리적 저항을 줄일 수 있는 묘한? 가격으로 묶어 독자를 유혹하는 출판사의 상술이 싫었다. 명작이라면 누구나 찾을 텐데, 약간은 의심이 갔다. 소문난 잔치에 갔다 배탈만 안고 오기 싫은 섣부른 내 선입관이 생겼던 이유다. 하지만 칼의 노래 1권을 단숨에 읽고, 난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허둥지둥 서점에 전화를 한 것이다. 지금 사러가니까 제발 문닫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2권을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못할 만큼 날 책속에 몰입시킨것이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장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100원짜리 동전의 표지모델로 활동하시는 관계로 늘 우리들 곁에 계시지만, 성급한 미화와 찬양들이 오히려그 위대함의 무게를 가려버리린 충무공의 순정한 칼과 인간적인 목소리를 .... 그렇다 칼의 노래의 가장 큰 매력은, 독백적인 문체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힘겨운 독백들이 지극히 담담하다는 데, 감동의 진정한 원인이 있는것 같다. 아니 담담함을 넘어선 것이었다. 무정함과 냉혹함 고뇌와 아픔을 다 말하면서 기이하게도 담담함을 지니고 있다니...그리고 그 수많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역설들....그 역설의 빈 공간들을 독자가 채우며 읽도록 작가는 안배해 놓은 것이다. 그런 작가의 안배에서 이런 몰입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또 그런 몰입에서 독자는 그 동안 성웅으로 일방적으로 자리매김되어진 이순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인간 이순신을 직접 만나보게 되는 것이다. 칼의 노래에서 들리는 노래는 전쟁영웅의 목소리, 충신의 목소리, 진정한 무인의 목소리, 갈등하는 약한 자의 목소리, 사랑의 목소리, 이름없이 역사의 뒷그늘에 묻혀진 존재들의 무수하고 고유한 비명들,...그 수많은 목소리들의 합창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숨막히는 합창속에서 무기력한 내 삶과 정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내 나름의 길(道)도 얻을수 있었다. 칼의 노래를 여러 사람에게 권했다. '진정한 건달이 목표'라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친구에게, 합리적 이성이 부러운 수학선생에게, 남자로사는 것이 부담스럽기까지 하다는 어깨 처진 녀석들에게, 남자가 무언지 알고 싶다는 여자에게 ........그들의 각기 다르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반응이 참 재미있었다. 그전부터 김훈의 글들은 상당히 매력있었지만, 이 칼의 노래가 그의 문체 특유의 장점들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인것 같다. 신문기자의 이력때문인지 상당히 날카롭고 정제된 표현,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고민들, 극한까지 하나의 주제에 몰입하는 능력. 많은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2권은 약간은 아쉬운 감이 없지않다. 본질적으로 역사소설이 상상력의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장르이고 자료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결말이 너무 숨가쁘지 않았나 싶다. 막판 체력부진일 수도 있겠고...지나치게 자주 역설과 같은 문장구조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신선하면서 깊은 몰입을 가져오지만 나중에는 언어유희같은 느낌도 없지않았다. 사실 그런 문장은 김훈의 다른 글에서도 접한 바 있기에, 특유의 스타일(문체)로 읽어주어야 겠지만....하여튼 김훈의 개성에 반한 것 만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썼던 김훈의 여행집이나 에세이들도 좋았지만, 이런 능력들을 계속 소설로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제발 이런 사람들은 좀 오래살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