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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권유란 책 제목을 어디선가 들어본듯해서 골라봤어요. 읽어보니 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서 였어요. 유키치는 일제강점기의 논리를 제공한 사람으로 여겨져서 우리나라에서는 터부시하는 인물인데 책을 읽어보니 굉장히 열정적이고 학구열이 뛰어난 사람이었네요. 그 당시 일본에서 서양의 문물과 서양인에대해 배척할때 오히려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받아들이는 선구자적이 모습을 보이면서 당신 신분제를 벗어나려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어요. 우리나라 급진개혁파들을 지도하고 영향을 줘서 우리나라에게도 변화를 주었지만 그로인해 너무 앞서간 느낌이 있어요.
과거 우리나라역사에서 쇄국정책을 비판적으로 보고 일본의 개방적인 모습이 왜 우리나라에게는 없었나 의문이 들었는데 일본 역시 매우 폐쇄적이고 메이지 유신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었던것에 새로운 모습을 배웠네요
개인적으로 유키치의 태도와 학문에 대한 열정을 좀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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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인쇄 2010년 9월 15일
첫 페이지에는 돈에 들어간 인물화에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모습으로 만화는 시작한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학문을 좋아하는 나카쓰 번의 무사 후쿠자와 햐쿠스케의 차남으로 태어난다. 후쿠자와 유키치 아빠 "너는 어떤 사람이 될까? 하급무사 집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큰 꿈을 꿀 수 있었을 텐데...." 후쿠자와 유키치가 태어나고 2년 후, 아버지는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버린다. 여섯 가족은 고향 나카쓰로 돌아왔다. 어머니 오쥰은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형제들의 오사카 사투리도 좀처럼 고치지 못했다. 오쥰은 이 시대에 드물게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성묘는 빠트리지 않지만 불상에 절하는 일은 한 번도 없다. 아들 후쿠자와 유키치가 불상에 절하지 않는 엄마에게 묻자 "신도 점도 미신도 그냥 믿는다는 게 이상해서 말이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걸 믿는 게 제일 좋아."
형 산노스케 "죽을 때까지 충신. 그것이 무사의 삶의 방식이다!"
외국들의 개국요구 하던 중 중국이 영국에게 패하는 아편전쟁이 일어나면서 네덜란드에서 대포를 준비하고자 하면서 네덜란드어를 하는 사람들을 양성한다. 네덜란드어를 배우던 중 상급무사의 자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돌아가야 하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에도로 가고자 오사카에 있는 형 산노스케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오카타 고안이라는 네덜란드 의사가 있는 적숙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형 산노스케 "오사카 근무도 기한이 다 됐으니까.~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훌륭히 걸어가." 그러나 고향에 돌아간 형이 병으로 죽었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형 대신 번의 주인이 되어 하급무사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만 어머니 오쥰에게 허락을 받고 다시 오사카로 간다.
1858년 데포즈(쓰키지)에 있는 오쿠다이라의 무사 저택에 학원을 연 후쿠자와 유키치 "양이파는 네덜란드 학문을 모르기에 구미를 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어를 하게 되면 어느 나라와도 통하게 되는 것을." '내 네덜란드어 실력으로 세계를 돌고 오겠어.'하고 떠난 곳에서 네덜란드어는 통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글을 쓸 수 있던 상인 "전 세계에서 영어가 표준입니다."
고민하던 후쿠자와 유키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난 대체 지금까지 뭘 해왔던 거지?!' '분통해 해봤자 소용없다! 앞으로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할 것이다. 영어를 모르면 세계로 나갈 수 없다. 영어 습득은 일본인의 임무다.' "실망 따위 하고 있을 수 없다!"
봉건사회에서 살아온 유키치에게 미국은 새로운 가치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유키치는 귀국 후 막부의 외국 관련 일을 맡았다.(서류 번역) 같은 해 나카쓰 번 무사 도키 다로하치의 딸 긴과 결혼하고 유럽 사절단에 참관한다. '세계는 넓구나. 어느 나라나 크고 강하다. 세계는 지금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대로 일본만 늦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양이파 무사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었다. 파견 사절단 귀국 후 유키치는 자택에서 집필에 몰두했다. 4년후 구미의 문화, 사회, 정치, 군정, 경제, 윤리를 소개한<서양사정>을 출판한다. 메이지 5년인 1872년부터 4년간 17편의 <학문의 권유>를 발표한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다. 그것이 인간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책임을 망각한 자유는 방종일뿐입니다. 인간은 자기 독립을 위해 학문이 필요합니다. 그럼 학문이란 무엇인가? 우선 실학을 배우는 것이겠죠. 몸, 지혜, 정욕, 성실함, 의지 이 5가지 요소를 유연하게 다루는 것이야말로 독립과 성공의 비결입니다. 자기 자신의 품격을 얻기 위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확실한 견식을 갖추고 자신의 판단력을 기릅시다. 인간은 현상에 결코 자기만족하지 않고 보다 높은 정신의 계단을 목표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망을 얻읍시다. 자, 여러분. 학문과 함께 전진합시다.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맺습니다."
*작가 설명에 실학을 추구한 일본 근대 문명개화의 선두 주자로 평생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과 어린 나이에 네덜란드 학문을 배우고 미국과 유럽 사절단에 참여 했고 그 경험을 정리한 <서양사정>, <학문의 권유> 등을 출판했다고 하는 걸로 봐선 자전적 소설인듯하다. 해설에 보면 조선의 독립을 지원한 후쿠자와, 메이지 유신의 모델을 강요한 후쿠자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침략하는 데선봉자 역할을 한 후쿠자와 등 여러 가지 후쿠자와론이 있다고 그 평가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고 하는데 일본인에게 영향을 준 만큼 주변국에도 영향을 준것인가보다. 배움이라는 것 하나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것 같다. 톨스토이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종교에 대한 심성에대한 이러하면 안 된다고 열정적 설교를 했다면 유키치는 학문의 권유에서 오직 정진하여 공부하는 학문을 배움으로 인한 염원을 담았다고 해야할까 그 당시 시대상에 필요한 발전이었겠지만 정치권에 참여하지 않고 학자로써의 길만 갔기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것이겠지만 ... 어딘지 정말 사람일까 싶은것은 왜 일까.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했기에 열정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공부만 하다보니 그것에 두각을 나타내게 되어 열정적이 되었던것일까. 일딴 공부시키고 싶은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좋을 것 같다. 부모들이 외치는 설교보다 더 강해서 다 읽기만 한다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듯하다. 다 읽을지가 문제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