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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해당했어. 조금 더 살고 싶었는데."
표지의 어딘가 싸늘해보이는 여학생의 모습과 '유리기린'이라는 제목이 인상깊어서 읽게 된 소설이다. '유리 기린', '3월 토끼', '닥스훈트의 우울', '겨울 나라의 펭귄', '어둠의 까마귀',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 '에필로그' 이렇게 총 7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살해당한 '안도 마이코'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제 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으로 추리소설을 기대하며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추리보다는 10대 소녀들의 불안정한 세계를 그린 소설이라고 느꼈다. 해맑아보이지만 사실 불안으로 가득찬 소녀들의 모습을 보며 주변에 의해 쉽게 상처받던 어렸던 시기의 모습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글이었다.
"십 대 때, 산다는 게 아주 힘들었어요. 매일 숨이 턱턱막히고, 살아 있다는 데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고, 돌이켜 생각해 봐도 그 시절은 새하얀 공백이에요. 꼭 스티로폼처럼 하얗고 가볍고 버석버석했던 거예요.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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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귀갓길에 칼을 든 남자를 만납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살려달라고 말하지만, 속으로 내가 왜 이런 부탁을 해야하는지? 억울합니다 소녀는...결심을 하고 도망치기 위해 몸을 비틀고, 남자는 그녀에게 칼을 휘두릅니다.
일러스트인 '노마'는 친구이자 편집장인 '고미야'에게 '유리기린'이란 동화의 그림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투명한 세계에 사는 유리로 만든 기린을 어떻게 색채로 표현하는지 고민하던 도중.. 갑자기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고...딸 '나오코'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나오코'는 자신은 살해당한 '안도 마이코'라고 말을 하죠..
도대체...그녀는 자기랑 같이 있었는데..어떻게? '안도 마이코'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까? 정말 그녀의 유령이 자신의 딸에게 깃든게 아닐까 고민하던 '노마'는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탓임을 알게 됩니다.... 그날 자신의 차가 도랑에 빠져 길을 막고, 오도가도 못하는 '안도 마이코'는 골목길로 들어가게 된것이지요
'안도 마이코'의 장례식장으로 간 '노마'는 그곳에서 자신의 딸 '나오코'와 이름이 같은 미모의 보건교사 '진노 나오코'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진노 나오코'의 말로 통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자신의 딸 '나오코'는 '안도 마이코'가 살해당하기 전날...칼을 든 남자와 마주쳤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은 것이지요...
'유리기린'은 '안도마이코'란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의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되지만.. 그녀의 죽음을 추적하는 수사물은 아닙니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며.. 사람들이 몰랐던 '안도 마이코'란 소녀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여섯편의 연작소설.. 여섯가지 사연들.. 그 가운데는 등장인물들의 상담자인 보건교사인 '진노 나오코'가 있지요..
사실..아무정보 없이 책표지와 줄거리만 보고 산책인데..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이분 다른 작품들중에도..제가 찜해놓은 책이 있더라구요^^ 조만간 그책도 읽어보기로...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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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가노 도모코의 <유리기린(원제 ガラスの麒麟 /노블마인/2010년 9월)>은 표지가 참 인상적인 책이다. 연한 자주 빛 색상에 강렬한 붉은 넥타이를 맨 교복을 입은 소녀가 액자 모양의 유리 안에 갇혀 손을 유리에 대고 눈을 감고 서있다. 그 앞으로는 투명한 기린 세 마리가 수풀을 지나가고, 까마귀로 여겨지는 새 세 마리도 그려져 있어 표지만으로도 책 속에 담겨진 이야기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일본판 원서 표지도 봤는데 한국판이 더 좋다^^ - . 그런데 연한 파스텔 풍의 아름답고 몽환적 느낌의 이 표지에 출판사 홍보글 제목이었던 “나 살해당했어. 조금 더 살고 싶었는데…….”라는 글을 연상시켜보니 음산함과 함께 귀기(鬼氣)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조금은 두려운 마음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하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책은 여고생의 살인사건에서 시작하여 최종 범인이 밝혀지기까지 시간대 순서로 구성된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순서의 작품이자 표제작이기도 하며 첫 장면에서 충격적인 죽임을 당하는 안도 마이코가 지은 동화(童話) 제목이기도 한 <유리기린> 편에서는 앞서 말한 주인공의 처참한 죽음과 그녀의 친구이자 살인 사건 전날 똑같은 일을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나오코에게 죽은 안도의 영이 빙의(憑依)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줘 독자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그리고는 안도가 죽은 후 종업식날 무렵의 풍경을 묘사하고(<3월 토끼>), 놀이터의 불특정 대상의 아이를 노린 끔직한 사건이 벌어지고(<닥스훈트의 우울>), 이미 살인범에게 공격을 받은 안도, 나오키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 속 나머지 친구가 죽은 안도의 유령을 보게 되고 이를 노리는 정체불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겨울 나라의 펭귄>). 그리고는 안도의 죽음이 있기 3년 전 방화사건을 저지른 선배에게 죽은 안도가 편지를 보내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를 들려주고(<어둠의 까마귀>), 마지막 작품이자 안도의 또 다른 동화인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에서는 동화를 통해서 범인을 밝혀낸 진노 나오코가 살인범을 찾아가게 되고 마침내 범인이 체포되면서 살인사건은 해결된다. 매 편이 서로 다른 화자(話者)가 이야기를 진행하고 각각마다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마치 독립된 단편소설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안도 마이코와 이 책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양호 선생 진노 나오코가 빠짐없이 등장하여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은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은 없지만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는 사건 -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라는 소개 글이 제격이다 - 하나하나의 이야기 구성이 꽤나 매력적이고 재미가 있어서 중간에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처 읽게 만드는 몰입도가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안도 마이코와 진노 나오코에 대해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우선 아름다운 미모, 부유한 가정, 우수한 성적으로 소위 “엄친딸”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안도 마이코가 사실은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에 괴로워하는 외로운 소녀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저절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의 전개가 꽤나 인상적이었고, 또한 부족한 단서나 이야기만으로 여섯 편 모두의 사건을 해결해내는 진노 나오코의 추리 솜씨는 그녀가 등장하는 또 다른 추리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절로 감탄이 나오게 한다. 다만 작가가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서술 트릭”적 경향을 도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특정 다수를 노린 연쇄살인범의 범행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안도 마이코의 살인 장면, 실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같은 사건을 당한 충격에 의한 정신착란 증상인지 모호한 나오코의 빙의 장면, 마치 연쇄 살인범이 또 다른 살인 대상을 쫓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겨울 나라의 펭귄>,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의 분명치 않은 사건 해결 등 명쾌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은 점은 미스터리 물로써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엄밀히 말하면 추리소설은 외형적 형식일 뿐 성장통을 앓고 있는 십대 소녀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청춘소설로 보는 것이 맞을 수 도 있을 것이다 - 청춘 미스터리로 소개하는 홍보글이 더 적절한 표현일 수 도 있겠다 -.
추리소설과 청춘소설, 두 가지 장르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성취를 보여준 가노 도모코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저절로 관심이 가게 하는 - 검색을 해보니 코지 미스터리물인 <무지개 집의 앨리스>와 <나선계단의 앨리스>가 출간되어 있다 -, 대형서점 추리 코너를 장악하고 있는 수많은 일본 추리작가들 중에서 분명히 주목할 만한 그런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 다만 일본 추리소설 덕분에 읽을 꺼리가 풍성해지는 것은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분명히 기쁘고 즐거운 일인데 우리 작가 작품들도 그들처럼 다양한 소재와 현대적 감각의 소설들이 많아져 각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괜한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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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같이 섬세하고 아슬아슬한 진짜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수식어는 과연 소설 속 소녀들의 이야기는 나의 학창시절과 비슷했을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내 학창시절은?
누나 혹은 여동생이 없는 남자분들은 꽤나 여중 여고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으신 듯하다(물론 나 역시 남학교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꼭 여학교에 실습 나갔다가 여학교의 실체에 눈물 흘렸다는 남자 교생의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그건 진짜다. 정말. 레알. 어차피 펌과 염색이 허용되지 않는 학교 규칙 덕분에 여학교에는 많은 소녀들이 생머리 휘날리며 교복 단정하게 입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고 있을...리 없다. 그들의 실체는(수험생활의 스트레스을 겪고 있는 여고생이라고 고려는 해 주시압.)? 절대로 집에 가지고 가질 않고 아이들끼리 돌려 입는 체육복을 입고, 수업 끝나는 종이 땡 치면 매점과 식당으로 잘도 달려간다. 그러나 맛난 간식을 교실에서 먹고 나면 쓰레기통까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이 귀찮아 책상 옆에 비닐봉투를 걸어놓고 그 곳에 간식의 잔해들과 코 푼 휴지들을 집어넣는다. ...여기라도 집어넣으면 다행이다. 교실 바닥은 이미, 쓰레기와 여고생들의 머리카락에 점령당한다. 쓰레기통만 안 갈 뿐이겠나. 사물함도 절대 안간다. 쉬는 시간마다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한 교과서를 가지러 교실 뒤 사물함에 가는 것이 귀찮아 소녀들은 책상 서랍 안으로 책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매점에서 빈 상자를 집어 와 그 상자 속에 책을 집어넣는다. 그 상자도 어느샌가 꽉 찬다. 그러면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상자를 가지고 와 다시 책을 채우기 시작한다. 심한 경우 상자 그대로 큰 상자에 넣고 나머지를 집어넣기도 한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상자 세 번까지 바꿔봤다. 제일 큰 컵라면 상자를 가져와 책상 옆에 고이 모셔두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모든 책을 집어넣었을때의 그 희열이란! 그래도 모자라면 역시 책상위에 책을 수북이 쌓아둔다. 선생님은 못 볼거라 확신하며 그 책을 바리케이드삼아 수업시간에 숙면을 취하는 소녀들.. 덕분에 몸은 점점 불어나고 피부는 거칠어지며, 눈 밑에는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다크서클 덕분에 소녀들의 한숨소리는 커져만 간다. 대학가면 살빠진대, 대학가면 연어랑 브로콜리만 먹을거야.
노는 것은 또 거칠다. 체육시간, 하라는 줄넘기 연습은 안하고 체육관 구석에 서서 말뚝박기 혹은 꼬리잡기나 하고 있는 소녀들. 혹은 세월아 네월아 체육관에서 누워서 또 잔다. 웬만한 남학생 못지 않은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히려 남녀공학이라는 조건에서 이성에 대한 의식을 하는 것보다 여학생들끼리 모여있기에 서로를 여과없이 드러내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지 않을까? 난 내 여중여고시절을 이렇게 추억한다. 즐거웠다.
자, 이런 중에도 빛을 발하는 소녀는 각 반에 혹은 두 반에 한 두명씩은 존재하는 법이다. 언제나 윤기가 흐르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고 그 까만 머리를 위한 하얀 얼굴, 그리고 얜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남들 다 살찐다고 한숨쉬는데 슬림하기 짝이없다. 게다가 성격도 도도해 친구들이 감히 다가가기 힘든ㅡ소녀는 사실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친구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성격의 소유자가 많더라만. 뭐 어쨌든, 예쁘고 똑똑해 친구들과 선생님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소녀 역시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행복하고 즐거웠을까?ㅡ라는 가정에서 출발해 가노 도모코는 <유리 기린>이라는, 섬세한 소녀들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만들어냈다. 안도 마이코라는 학생이 있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다. 선생님의 신뢰, 친구들의 우정을 한 몸에 받아 행복하기 그지없어보이는 소녀다. 그런 그녀가 정체 불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숨지고 만다. 그녀의 죽음을,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여러 요소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안도 마이코라는 소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ㅡ.
안도 마이코의 진짜 모습을 그려낸 게 무슨 미스터리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미스터리일까?
안도 마이코의 죽음을 둘러싸고 주위의 인물들에게 '사건'이 발생한다. 시점이 다양하게 나뉘어 소개되고 있는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소개되어 안도 마이코의 이야기를 상당히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2월, 안도 마이코가 살해당했다. 안도 마이코의 절친한 친구인 노마 나오코의 아버지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동업자 오미야(라 쓰고 고미야라 읽는다)가 발행하는 동화 잡지 덕분에 안도 마이코가 생전에 썼던 동화 「유리 기린」이라는 작품이 세상에 드러난다. 하지만 3월이 되어 개학을 해도 안도 마이코가 있던 학교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있다. 그 와중에 기막힌 타이밍으로 인해 「3월 토끼」와 같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사소한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런가 하면 키가 작아 슬픈 소년 오미야 다카시의 동네에서는 고양이들의 발이 칼에 베인 듯한 상처를 입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나오코, 그리고 나오코가 다니는 학교의 보건 교사인 진노 선생 덕분에 「닥스훈트의 우울」은 어느 정도 극복된 듯하다. 그리고 5월, 학생들은 어느 정도 안도 마이코를 잊고 본래의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마이코의 유령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다. 실마리가 된 것은「거울 나라의 펭귄」처럼 수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안도 마이코의 스티커 사진이다. 이 때, 안도 마이코의 이름으로 한 여성에게 편지가 배달된다. 자신을「어둠의 까마귀」라 칭하는 그녀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인지, 그리고 마이코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처럼 외로웠던 마이코의 진심이, 또 한 번 드러난다ㅡ.
이 <유리 기린>을 소설집이라 해야 할지, 장편 소설이라 해야할지 헷갈린다. 처음에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에는 이게 무슨 상관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다보면 결국 이들은 모두 안도 마이코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이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의외의 결말을 내놓는, '미스터리로서의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을 뿐 보건 교사인 진노 선생의 입으로 간략하게나마 진상이 드러남으로써 마무리 지어지는 단편들이기에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마이코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것 뿐만 아니라, 단편 하나하나가 '사건 발생-탐정 등장'과 같이 미스터리로서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시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전혀 상관 없어보이던 이야기를 하나로 맞추어낸 구성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미스터리가 아닌 소녀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나는 많이 공감하진 못했다. 여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많이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쳤지만, 내가 소설 속 소녀들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크게 공감하는 부분은 딱 하나, 읽고 움찔!한 문구가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미스터리로서의 <유리 기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소녀들의 감성에 공감하는 것보다 이 작품에선 어떤 요소가 숨어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 흡입력도 있어 하루만에 읽어치웠을 정도. 물론 내가 상당히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안도 마이코와 같은 매력적인 소녀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둔한 쪽에 가깝고 속도 없는 성격이라 하는게 맞겠다. 소설 속 「유리 기린」과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에서 느껴지는 마이코의 외로움에 고뇌할 정도로 섬세하지 못한 것이다. 뭐 어쩌겠나, 나의 성격이 그랬고 그로 인한 나의 십대가 이들처럼 섬세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을.
+) 딱 하나, <유리 기린>을 읽으며 이것만은 정말..! 하며 공감했던 문구. 정말 왜 이럴까? 재밌다. 나만 그런건가요?T-T
넥타이 색은 학년마다 달라, 현재는 3학년이 주황색, 2학년이 적자색, 1학년이 황록색이다. 학생들은 입학할 때 지정된 색의 넥타이를 3년간 착용하기 때문에 그 구분은 매년 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학년이든 특히 넥타이에 관해서는 자기들이 '재수가 없다'고 느끼는 듯하다는 점이다. -p.70, 「3월 토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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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를 무대로 소녀들을....이란 감수성 느껴지는 소재 (그럼에도 비슷한 제목인데다 위태로운 순수한 감수성의 처자가 나오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은 꽤나 좋아했는데, 말로 "난 이런 스타일별로야"라고 말하면서도 은근 속으론 관심을 두고 있나보다. 말은 믿을게 못된다) 보단 드라이한 것을 좋아하는 통에 뒤로 미뤄뒀는데, 생각밖으로 앞부분보다 점점 더 읽어갈 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6가지의 단편은 각각 다른 이야기인듯 보이나, 결국 맨처음 작품 '유리기린'에서 동일한 제목의 동화를 써서 시동화전문지 [환상공방] 동화상에 당첨된 동화를 쓴 안도 마이코란 17살의 미소녀 고등학생이 살해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마치 불투명한듯 유리구슬 꿰어놓고 나니 목걸이가 되는 듯한 느낌.
2월,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동급생, 아니 전교생으로부터 미모를 시기, 동경을 받던 소녀 안도 마이코가 길을 가다 차를 세우고 습격한 인물로 부터 칼에 찔려 살해당한다. 그 전날 동일한 습격을 받았으나 살아남았던 동급생 노마 나오코의 아버지는 발 그 안도 마이코가 쓴 동화 '유리기린'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로 약속된 인물. 그는 마이코의 살해이후 이상증상을 보이는 딸때문에 학교 상담교사인 진노에게 상의를 한다.
그리고 학교와 학생들에게서 벌어지는 자그만한 사건들. '3월토끼' 에선 어느 눈이 내리던 추운날, 지하철에서 내리다가 엄청나게 비싼 도자기를 깨놓고 도망한 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학교로 온다. 학년별로 다른 색의 넥타이로 목격자가 지목한 것은 2년생. 안도 마이코의 담임인 오바타선생은 아이들의 수다에서 사실을 알아내고...
'닥스훈트의 우울' 에선 키가 작은 소년 다카시는 은근 좋아하는 친구 미야의 고양이 미아가 칼날 공격을 받아 다치고, 동네의 다른 고양이가 칼날 공격에 다리를 못쓰는 사건을 알게된다. 집고양이라면 사람손을 꺼리지않겠지만 그래도 칼날과 그것을 든 자의 살의를 감지못하고 당했을까....하는중 누군가의 악의를 발견한다.
'거울나라의 펭귄', 습격을 당한 노마 나오코, 그리고 살해당한 안도 마이코과 같이 스티커 사진을 찍은 나루오 사야카는 무언가의 시선을 느끼고 두려워한다.
...상상력의 결여는 위험. 타인에게 찾아온 재난은 언제나 자기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 너희는 어리석을 정도로 무방비하고 기가 막힐 정도로 낙관적이다. 그렇게 소녀들에게 경고해주고 싶어졌다.....p.131
'어둠의 까마귀', 야마우치 신야는 회사원, 새로 들어온 리셉션의 여직원 구보타 유리에에게 매력을 느끼고 어느덧 청순한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날 그녀는 자신은 한번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고백을 하고...이는 2월에 살해됬으나 6월에 부친 자로 되어있는 안노 마이코로 이어진다.
..몸의 피로가 한계에 달했을떄 그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에 문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어쨌든 마그마가 분출된 것이다.....p.198
....적어도 타인의 행동이나 운명에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건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심해져서 남의 생사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이야말로 진짜 살인자가 되는게 아닐까요...하지만,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의 슬픔고 괴로움, 그리고 어쩌면 죽음에 책임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걸 천진난만학 믿는 사람은 어지간한 낙천가 아니면 엄청난 바보입니다.....p.219
그리고, ' 마지막 네메게토사우루스' 에서 귀결.
매우 순수하게 영향을 받고, 비슷한 느낌에 끌리고, 위험을 인지못하는 순진무구와 무지를 왔다 갔다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두려움과 당돌함으로 보다 증폭되고, 결국 스스로로 위험을 초대하는 지경까지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 순수함을 지켜가는 이들로 인해 진실은 밝혀지고, 잔인한 진실은 밝혀지자 두려움으로 과장되었을뿐, 비열한 인간의 자포자기, 비열함와 잔인함일뿐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p.s: 가노 도모코 (加納朋子)
- 고마코 (駒子) 시리즈 1992, ななつのこ, 3회 아유카와 데츠야상 수상
- 앨리스 (アリス) 시리즈 2002, 虹の家のアリス (무지개집의 앨리스 ) 전편보다 더욱 성장한 초보탐정 니키와 소녀조수 아리사
- 시리즈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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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삶의 지난한 도정에 서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어 본다.
한 소녀의 살해당한 죽음.. 그리고 소녀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
수상 이력도 있고 겉보기엔 추리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이 소설은 간혹 드러나는 보건교사(우리나라 양호교사?)의 재기를 제외한다면 그다지 번득이는 심리물이라 할 수 없다.
다만. 평범한 추리소설이 간과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에 자리한 아픔이나 고통을 보여준다. 때론 너무 농밀해서 가슴이 저려왔다. 그래.. 읽은 보람을 느낀다.
이 소설은 누가 주인공일까?
처음과 끝의 시점을 장식한 상처한 중년의 일러스트레이터? 완쾌됐음에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인해 아직도 다리를 저는 보건교사?
식상한 말이겠지만, 무언가에 아파하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바닥을 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한다면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유리로 된 기린이여. 부디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길을 건너, 따뜻하고 시원한 물을 만나 쉬고, 보드라운 풀을 만나 그 땅에서 뛰어 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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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기린' 아! 작품 외적인 이야기는 이제 살짝 접고, 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1편 유리기린은 그녀의 죽음에 참석한 친구의 아버지로 그려지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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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때, 산다는 게 아주 힘들었어요. 매일 숨이 턱턱 막히고,
꼭 스티로폼처럼 하얗고 가볍고 버석버석했던 거예요, 그래서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 했어요' 라는 작품 속의 대사처럼 십 대 소녀의 내면은
여리고 섬세한 동시에 불안하고 위험하며 때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괴한에게 살해당한 한 소녀, 그리고 죽은 소녀가 남긴 동화 '유리기린'
온통 유리로 된 몸을 하고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유리기린의
모습은 도도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마음은 혼돈에 사로잡혀 있던 소녀,
안도 마이코의 모습과 겹치며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녀의 감춰진 내면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소녀와 살인사건, 동화와 내면의 어둠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결합된
'유리기린'의 독특한 분위기는 지금껏 그 어떤 소설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을 선사하며 이야기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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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추리소설은 의외로 범용성이 상당해서 다루지 못할 소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상극인 소재도 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소녀'라는 키워드가 그렇다고 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 <방과 후>가 동기에 있어서 독자들의 의견이 갈렸던 것처럼 -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동기가 늘 논란의 중심인 것 같지만... - 일본 문학에서 소녀에 대한 정의나 쓰임새는 대체로 위태롭기에 불가사의한 존재에서 벗어나질 않는 것 같다. 위태롭다느니 불가사의하다느니, 그래봤자 거릴 두는 말들인 것 같아 별로 와 닿지 않는 표현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소녀라고 다 같은 소녀가 아니니까 일반화하기 애매하지 않은가. 그런데 단지 추리소설에서 등장한 일부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그들을 확대 해석하는 게 아닐까. 추리소설은 물론이고 일본 문학을 접할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다. 피해자든 가해자든 목격자든 소녀가 개입하거나, 아니면 아예 여고가 배경이면 명쾌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추리소설이 방향을 잡기 어려워 하는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유리기린>에서 그걸 확실히 느꼈다. 책의 제목과 동명의 동화를 쓴 여고생이 살해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작 소설인 이 작품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소녀의 불가사의함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 오해는 마시길. 각각의 미스터리는 복선이 충실해서 추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꽤 탄탄하니까. 중요한 건 이런 미스터리를 만들어낸 당사자들의 심리인데 이게 좋게 말하면 독특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이해 불가한 것일 터다. 그리고 나는 좋게 말하고 싶다. 소녀라는 존재에 필요 이상으로 의지해 미스터리를 얼렁뚱땅 해결하는 건 원치 않는데 이 작품에선 소녀의 심리를 굉장히 예리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 제법 감탄스러웠다. 각각의 연작의 제목이 시사하는 주제의식이 무척이나 선명해서 살짝 석연찮았던 심리 묘사도 그럴싸하게 다가왔다. 아마 이 작품에서의 난제는 주어진 단서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단서를 통해 규명된 진상이 일반적인 상식으론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일 것이다. 한마디로 궁극의 'Why done it?'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 물론 'How done it?'도 출중하다. - 그렇게 드러난 진상이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다는 게 신기하고 다행이었다. 물론 이것도 다 개인차가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작가의 글빨 때문에 분위기가 탁월하단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이거야 원, 추리소설이 아니라 성장 문학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니. 그것도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작품이 말이다. 작중에서 인용되는 안도 마이코의 동화를 비롯해 일본의 동요, 혹은 동물에 대한 잡지식 등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는데 각각의 요소가 각 소설에서 상징하는 바가 꽤 커서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십분 도움이 됐다. 이게 은근히 효과를 거두기 까다로운 기교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의 아기자기하고 환상적인, 그야말로 동화적인 컨셉과 잘 맞물리는 인용들이라서 더 인상적이었다. 가끔 인위적이고 끼워맞추는 듯 얘기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추리를 해나감에 있어서 꽤 효과적인 연출이기에 오히려 추리소설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졌던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 전개 등 연작 추리소설로는, 그리고 일상 추리소설로도 더할 나위 없던 작품이었다. 어느 정도 취향을 탈 내용이긴 하지만 추리소설이 이렇게 색다르면서도 본분에 충실할 수 있단 걸 보여줬다는 점은 분명 인정할 만하다. 조금 솔직히 말하면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드러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내막이 너무 초월적인 감정선으로 점철된 것과 일러스트레이터 노마와 작품에서 탐정역을 맡았던 진노 선생의 러브라인이 뜬금없었던 게 좀 걸리지만 나머진 다 괜찮았다. 최근에 읽은 작가의 작품이 - 주로 초기작들 - 기대에 못 미쳐서 기분이 좀 그랬는데 이 작품을, 가장 처음에 접한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오히려 더 감명 깊게 읽혔던 것 같다. 안도 마이코 또래일 때는 잘 와 닿지 않았던 감정선이 지금은 다르게 읽히다니, 역시 당사자일 때 모르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것인가. 아무튼 예전에 읽은 작품이 처음보다 지금 더 재밌게 읽혀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역시 작가가 성장한 게 맞았군.
인상 깊은 구절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행동이나 운명에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건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심해져서 남의 생사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이야말로 진짜 살인자가 되는 게 아닐까요. - 21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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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제목하고 똑같은 느낌. 맑고 투명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신비스러움과 두려움. 단순한 깊음...... 뒤돌아보는 자의 시선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내겐. 여고시절.... 그냥 생각하면 굴러가는 가랑잎에도 깔깔거리던 밝고 명랑할 것만 같은.... 하지만 실제 나의 그시절을 떠올리면, 역시 그렇진 못하다. “그 나이때 여자아이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오만하고 여립니다. 마치 이야기속에 나오는 유리 기린처럼 말이죠. 언제나 있는 힘껏 목을 길게 잡아 빼고, 발돋움을 하고, 그래서 매우 불안정하고, 깨지기 쉽고, 늘 뭔가를 망설이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한 때 그 시절을 거쳤던, 그리고 아직도 그 상처를 곱게 간직하고 있는 진노 선생이 바라본 여고생. 이렇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실제 그녀 자신이 그런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때문일테다. “십대 때, 산다는 게 아주 힘들었어요. 매일 숨이 턱턱 막히고, 살아있다는 데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시절은 새하얀 공백이에요. 어떤 친구가 있었고, 무슨 꿈을 꿨고, 뭘 낙으로 삼아서, 무슨 생가을 하면서 지냈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지 뭐예요.” 나로선 어떤 쪽이냐.... 뭐 이렇게 오만하고 여릴 정도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불안하고 두렵고 죽고싶었던 것 같다. 위태롭고 불균형하게 성장하고 있는 육체와 성적.... 그것만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한다는 강박과 불안, 미래에 대한 두려움, 욕망과 죄의식.... 아무에게도 쉽게 터놓고 얘기할 수 없었던 외로움.... 내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들, 그녀들을 바라보는 중년의 아버지, 같은 시절을 겪으며 성장한 여선생의 시선들이.... 그래서 나는 막연히 아름답고 그리운 여고시절이 아닌......솔직한 이 소설이 반갑고 고마운 것 같다. 첫장면에 등장하는 안도 마이코...의 죽음, 친구에게 빙의된 영혼(뭐 실제는 아니었지만...), 묻지마 범죄.... 현실적이지 않아보이는 사건들이 얼마나 우리 일상과 잘 섞여있는지 섬세한 퍼즐조각 맞추듯 풀어나가는 미스테리적 서술이 꽤나 매력적이다. .... 약간 허술해보이는 뒷마무리마저도 안심될 만큼.... 흐흐 과연 지금의 여고생은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