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에 맞지 않는 말과 이를 고친 바른 말을 나열하는 책을 쓰는 일은 속은 편할지 몰라도 딱히 공이 깃들 필요는 없다. 단지 사례를 많이 수집하고 몇몇 자료만 검토하면 되는 일이다. 지나친 폄하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애국주의와 쇼비니즘을 구분해야 하듯, 우리말을 사랑하는 것과 바른말에 집착하는 것은 구분해야 할 일이다. '삼가하다'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왠지 불편하여 수정액으로 가운뎃글자 '하'를 슬그머니 지우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우선 왜 '삼가다'가 바른 말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사용빈도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삼가다'가 적자 대접을 받는 것이 타당한지, 더 근본적으로 과연 규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인가? '삼가다'를 쓸 때마다 행하는 뜨끔한 자기검열에서 벗어나 과감히 마음 편히 '삼가하다'라는 말을 쓰자고 할 정도의 급진적 내용을 담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만일 나나 당신이 그런 책을 기대했는데 이 책이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자들을 탓할 수는 없다. 혹시라도 실망했다면 그건 나나 당신 잘못이지, 우리와 사상이 같지 않은 저자들 잘못은 아니다. 다만 다시 한번 그들의 생각을 거울삼아 내 생각을 이리저리 견주어 보고 '나'라는 인간의 몸에 맞는 놈을 고르면 그만이다.
본문도 본문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마도 서문일 것이다. 우리말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오늘날의 언어사용실태를 개탄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책을 쓴다는 자못 비장한 머리말 대신 저자들은 규범이 오히려 우리말을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일갈하는 것으로 서문을 시작하고 있다. 뒤이어 저자들 왈 "규범과 편리성이 공존해야만 우리말이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현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저자들은 줄타기를 하려 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말이다. 규범의 필요성도 인정하지만 언어사용의 편의성도 인정해야만 한다는 논리는 결국 규범은 규범대로 실제 사용은 또 그대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관계가 사실 그렇긴 하다. 표준어를 통해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언어를 정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곧 사투리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투리는 없앨 수도 없을뿐더러 그 지방의 색깔과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어사용일반으로 넘어오면 곤란하다. '삼가다'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삼가하다'를 사람들이 많이 쓰니 또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다. 규정이 존재하는 의의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표준어가 필요한 것처럼 규범도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말과 분리되어선 안 된다. 사람들이 '삼가다'를 쓰도록 유도하거나 혹은 규정을 바꿔 '삼가하다'가 맞는 말이 되게끔 해야 한다.
규범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예는 '건강하세요'(p.57)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들의 설명처럼 우리말은 기본적으로 형용사의 명령형을 허용하지 않는다. '높아라', '빨라라'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건강하다'와 '행복하다'에는 명령형이 사용된다. 책에서는 '건강하세요'가 우리말의 규정에 맞지 않으므로 '건강해지세요'나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로 바꾸어 쓰기를 권하고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말 형용사에 명령형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물로 삼아 이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고기는 올바른 우리말로 인정치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편협한 것이다. 언어에 있어 예외란 규정에 부합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다.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은 언어가 내 뜻대로 안 될지언정 살아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반면 이 책은 과감하게 규범의 테두리를 벗어나 언중의 선택을 존중하는 넉넉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세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이중피동표현을 인정하고 있다. '씌어지다'(p.271)와 같이 피동사 '쓰이다'에 피동을 의미하는 '-어지다'가 함께 쓰인 표현을 이중피동이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중피동을 우리말 체계에 맞지 않으므로 틀린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저자들의 설명처럼 이중피동의 의미는 분명 단순피동과 구별된다. 이중피동은 객관적 태도나 주체의 무기력한 상황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이 책에서는 이중피동을 인정하자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둘째로 합성어 구성방식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먹거리'(p.180)이나 '쌀뜨물(p.268)가 그 예다. 우리말의 합성어는 대체로 문법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래서 '먹거리'나 '쌀뜨물'은 '먹을거리'나 '쌀뜬물'로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덮밥'이나 '접칼'의 경우에서 보듯 동사 어간과 명사가 직접 결합한 예가 없지 않다. 저자들은 이러한 결합방식 또한 한국어의 정당한 합성어 구성이므로 '먹거리'나 '쌀뜨물'도 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로 동어반복표현에 대해 그 이유를 제시하고 이를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박수 치다'(p.198)나 '자문을 구하다'(p.334) 등 논리적으로는 반복에 속하는 말들에 대해,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박수하다'나 '자문하다'로 고쳐 쓸 것을 종용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사람들의 관념 속에는 '박수'가 손뼉을 치는 행위가 아닌 손뼉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자문 역시 '자문하여 얻게 되는 의견이나 판단'으로 의미가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비슷한 류의 다른 책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국어학과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올바름'에 대한 유혹을 떨치고 언중의 선택을 존중하는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규정에 대한 근원적 의문이나 한국어규범에 대한 실천적 제의를 할 정도의 급진좌파적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막무가내로 그것들에 끌려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제3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이제 좌우의 세력에 균형을 맞춰 줄 다른 책을 기대해 보는 것도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규범과 편리성의 공존은 '우리말이 우리의 생각을 담아 내는 부드러운 노래로, 규범은 그 노래를 담아 내는 악보'로 인식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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