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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저자와 엉터리 출판사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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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벽 - 동경대 의학부를 나온 저자가 현세대의 대화소통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이다. 잘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작가가 개념파악조차도 안되있는것 같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일원론이 서양종교의 사상이라서 문제가 된다고 하고, 자기는 이원론자라고 한다. 근데 알다시피 일원론은 정신과 육체가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동양의 사유방식이고, 이원론은 데카르트이후 서양의 주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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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벽 - 동경대 의학부를 나온 저자가 현세대의 대화소통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이다. 잘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작가가 개념파악조차도 안되있는것 같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일원론이 서양종교의 사상이라서 문제가 된다고 하고, 자기는 이원론자라고 한다. 근데 알다시피 일원론은 정신과 육체가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동양의 사유방식이고, 이원론은 데카르트이후 서양의 주요지배사상이 된 물질(육체)과 이상을 분리하는 철학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서양사상의 주요적인 철학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개념자체를 혼동하고 있다. 분명히 이 작자가 말하는것은 동양의 일원론인데도, 자기는 이원론적 사상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거 하나 때문에 작가의 능력이 의심될 정도다. 더군다나 책의 내용이나 논리가 너무 빈약해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글솜씨도 형편없어서 읽기에도 너무 지루하다. 더군다나 이 글은 강연이나 잡지투고등을 모은 연재분이라서 일관성도 떨어진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소리를 하지만 작가가 워낙 글솜씨가 바보같다보니 읽는이에게 별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다. 더군다나 고이즈미라는 바보가 이 책을 인용해서 자기말을 안듣는 사람들을 바보의 벽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어른들 말 안듣는 젊은세대에게 훈계조로 쓰이기 딱 좋은 책이다.
r***4 2004.02.06.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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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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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책을 접했을때는 제목을 보고 먼가 있을 것같은 기분으로 선뜩 선택햇다... 한장한장 읽을수록 작가가 생각을 하고 쓴 책인지 자꾸 의심스러워졌다. 작가자신도 이런 내용으로 책을 쓰기에는 미숙한게 아닌게 싶다. 인간사이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어떤벽을 얘기하려고 하는거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 신경질이 난다. 얼마되지 않는 책값보다 이런책을 위해 소모된 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책이다." 내용보기
처음 이책을 접했을때는 제목을 보고 먼가 있을 것같은 기분으로 선뜩 선택햇다... 한장한장 읽을수록 작가가 생각을 하고 쓴 책인지 자꾸 의심스러워졌다. 작가자신도 이런 내용으로 책을 쓰기에는 미숙한게 아닌게 싶다. 인간사이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어떤벽을 얘기하려고 하는거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 신경질이 난다. 얼마되지 않는 책값보다 이런책을 위해 소모된 내 시간이다. 이 리뷰가 선택되어 올릴지 모르겟지만, Yes 24에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어느정도의 책을 선정해서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베스트나 새책소개 같은 란을 많이 참고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도 신경써 주셨으면 하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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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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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 기업에서 최대의 화두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이기심에 의해 꽉 막힌 커뮤니케이션의 물꼬를 틀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화나 협상, 질문에 관한 책들이 무척 많이 나와 있고 또 팔리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니 일본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문제에 부딪혀 있는 것 같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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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 기업에서 최대의 화두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이기심에 의해 꽉 막힌 커뮤니케이션의 물꼬를 틀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화나 협상, 질문에 관한 책들이 무척 많이 나와 있고 또 팔리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니 일본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문제에 부딪혀 있는 것 같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서양인들과는 다르게 일본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며,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책에서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인식의 벽부터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인)편. 도를 듣는다는 것은 학문을 하여 뭔가를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침에 학문을 해서 뭔가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니, 너무 심한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이 뭘 뜻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앎'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암 선고를 받고 벚꽃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작년까지 자신이 저 벚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바꿔 말해 지금까지의 나는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날 아침 다시 한 번 자신이 확 바뀌어서 세계가 달라 보이고, 저녁이 되어 죽는다 하더리도 새삼 놀랄 일도 아닌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끊임없이 소멸하고 늘 새로운 내가 태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y********1 2004.02.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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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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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의 제목이 "바보의 벽"일까? 세상에는 ''바보''가 존재하고 그 바보는 벽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지칭하는 ''바보''는 단순히 IQ가 낮은 사람이 아니라 상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아무리 전문적이고 한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에 대한 적응력이 없으면 그는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다. 저자는 도시화, 뇌화 된 현대사회를 언급하며 그 중에서도 일원론적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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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의 제목이 "바보의 벽"일까? 세상에는 ''바보''가 존재하고 그 바보는 벽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지칭하는 ''바보''는 단순히 IQ가 낮은 사람이 아니라 상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아무리 전문적이고 한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에 대한 적응력이 없으면 그는 상식이 부족한 사람이다. 저자는 도시화, 뇌화 된 현대사회를 언급하며 그 중에서도 일원론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하게 된 것을 걱정한다. 그러한 맹목적이고 무책임한 일원론이 사람간에 벽을 만들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물유전''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정보, 변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다. 정보는 그대로 있지만 받아들이는 인간이 변하기 때문에 그 정보가 변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대사회는 정보사회이며 뇌화 사회이다. 인간은 항상 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기에 대한 변하지 않는 정보를 구축해놓으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성의 중요성을 부르짖지만, 맹목적으로 유행만 따르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순수하고 고유한 개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개개인의 육체마다 달라서 같은 사람이 없다. 지문 하나만 해도 세상에 똑같은 것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개성을 가지려고 유행을 따르는 것은 오히려 서로를 획일화하는 행위이므로 어리석은 것이라고 할 만 하다. 이렇게 인간은 변하지 않고 정보가 변한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두고 저자는 ''역전현상''이라고 말한다. 사실 변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전현상''은 무의식, 몸, 공동체의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자연사회에서는 공동체, 몸, 무의식의 순으로 개념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를 가장 중요시했다고 해서 몸이나 무의식을 중요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연사회에서는 무의식이 특별히 자각하지 않아도 항상 거기에 있는 공기 같은 것이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중요시하게 된 것은 근대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무의식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식으로 느끼고 그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뇌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의식''의 세계에 살게 되었다. 각성제의 힘을 빌려서까지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의식의 상태를 좋아하는지, 무의식의 상태를 간과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무의식은 점점 배제 되어가는 추세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개인은 몸의 문제를, 사회는 공동체의 문제를 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 혼자서만 삶의 의미를 깨닫기는 힘들다. ''의미는 외부에 있다''는 말처럼 삶의 의미를 자각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이다. 내 안에만 갇혀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한다. 저자가 바보의 벽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원론적 사고방식, 원리주의이다. 그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위험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는 일원론적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고 잘못된 결과만을 들고 있다.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사고방식을 아무런 고민이나 성찰 없이 따르는 것은 물론 위험한 일이지만, 무조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하자''는 생각으로 맹목적이고 무분별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 또한 또 하나의 일원론적 사고방식이며 원리주의가 될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일원론을 비판하는 것은 좋다. 일원론을 버리고 이원론을 따르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는 데에는 스스로의 성찰의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그는 여전히 바보의 벽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꼭 일원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저자의 편견인 것 같다. 물론 일신교를 믿는 사람이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어느 정도 부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일신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남의 사고방식을 무시하고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편협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인간이 항상 변하는 존재라면 이왕이면 바람직한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방향성을 제대로 찾는 것이 곧 바람직한 삶일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라는 것이 와 닿는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살기를 고수한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 바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보의 벽을 가진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려면 스스로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맹목적으로 남의 생각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바보의 벽을 쌓는 사람이다. 저자는 일원론적 사고방식을 비판했지만, 일원론적 사고방식마저도 줏대를 가지고 자기 논리를 확고하게 다져가면서 가질 수 있다면 그 또한 바보의 벽을 허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작업들을 공동체 안에서 해 간다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크게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원래 문명의 발달이란 이 목 아래의 운동을 억압하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다리로 걸어가는 대신에 자동차를 만든 것은 목 아래의 운동을 억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4.05.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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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선 비판하기도, 좋다고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비판하기도, 좋다고도 하지만..." 내용보기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짜여진 논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샌 이런 구성이 유행인가?=_=;(10년 후, 한국 도 그렇고..) 다시말해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받칠 논지를 차근 차근 쌓으면서 확장시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성있게 제시하는데 괜찮았다. 그런 구조이니, 앞 부분을 다 읽지 않고 뒷 부분만 본다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선 비판하기도, 좋다고도 하지만..." 내용보기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짜여진 논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요샌 이런 구성이 유행인가?=_=;(10년 후, 한국 도 그렇고..) 다시말해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받칠 논지를 차근 차근 쌓으면서 확장시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성있게 제시하는데 괜찮았다. 그런 구조이니, 앞 부분을 다 읽지 않고 뒷 부분만 본다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요새 나오는 책들이 다 그 내용이고 그 내용지만, 이쪽 계열은 별로 안 읽어본 까닭에 그리 고전적이라는 느낌은 안 들었다. 오히려 약간 신선했다. 다 아는 내용이라지만 실상 우리는 그걸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가? 부분에 따라 공감가는 곳도 있었다. 인간은 인간과 살아간다. 그 속에서, 타인들을 존중하는 개성이나 창의력만이, 소외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일지도. 한편으로 이런 사고방식은 다분히 일본적인 것이라고도 여겨졌다. 물론 이것은 한국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미국이나 유럽 쪽으로 가면 아마 아닐 걸.) 다만 한국도, 일본도 세대마다 반응이나 의견 차이는 클 듯 하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수긍할 만 한 것이다. 무작정 새롭고 튀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생각 얕은 사람들은 별로 그렇지 않을지도.( '') 또, 인간이 변화하고, 정보는 고정된다는 단순한 식을 꼭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의 지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건드려 답답하면서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맞다 틀리다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방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을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오늘날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갈 종자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타인과, 타인의 것을, 조금은 존중해주는 정신을 바라는 건 지나친 걸까.

[인상깊은구절]
"당신이 아무리 100퍼센트 올바르다고 생각하더라도, 잠자고 있는 동안 자신의 의견은 거기에 반영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삼분의 일은 다를지도 몰라. 결국 의식의 세계는 전체의 67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니까. 당신은 자신의 의견이 100퍼센트 올바르다고 생각할지 몰라. 그러나 인간이란 늘 잘못을 범하는 존재이니까 그 중 50퍼센트는 잘못된 거야."
e*******2 2004.08.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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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새로운 키워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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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벽두에 읽은 책, 일본에서의 명성만으로 찾아 읽게 된 책 "'조직이 원하는 개성’을 발휘하라는 모순된 요구에 직면해 있는 많은 직장인들, 이런 모순된 요구의 결과로 파생된 것이 바로 ‘매뉴얼 인간’이다" 라고 일갈하고 있는 요로 다케시의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직장생활을 포함한 일상에서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모순된 상황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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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벽두에 읽은 책, 일본에서의 명성만으로 찾아 읽게 된 책 "'조직이 원하는 개성’을 발휘하라는 모순된 요구에 직면해 있는 많은 직장인들, 이런 모순된 요구의 결과로 파생된 것이 바로 ‘매뉴얼 인간’이다" 라고 일갈하고 있는 요로 다케시의 이 책은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직장생활을 포함한 일상에서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모순된 상황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명쾌한 답이다. 이 책을 읽고 주변을 둘러보니 신문과 잡지에 온통 ‘벽’에 관한 기사들이다. "기업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지 않고 모처럼 나온 좋은 아이디어도 실행이 되지않는 이유는 조직원의 사고와 행동습관이 부서(공통이해)라는 칸막이에 갇혀있거나, 부서이기주의 때문이다. 벽을 부숴야만 혁신이 가능하다." 올해는 우리나라에도 ‘벽’이란 단어가 새로운 화두가 될 것 같다. 강추!
i*******7 2004.0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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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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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재수를 해서 들어간 대학에 부모님 몰래 자퇴서를 내고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던 날이 있었다. 물론 공부하러 간다기 보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는데 마침 동네에 큰 도서관이 있어 몇 달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책 없이 간 큰 아이였다 .^^:: 그때 종종 지하철역에 있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곤 했었는데 친정집 책꽂이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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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재수를 해서 들어간 대학에 부모님 몰래 자퇴서를 내고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을 하던 날이 있었다. 물론 공부하러 간다기 보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는데 마침 동네에 큰 도서관이 있어 몇 달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책 없이 간 큰 아이였다 .^^::

그때 종종 지하철역에 있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곤 했었는데 친정집 책꽂이에 그때 봤던 몇 권의 책들이 보여서 다시 한번 읽어 봤다. 책이란 거 아예 안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나 보다. 나름 꼭지를 접어둔 곳도 있고 연필로 흐리게 줄을 쳐둔 곳도 있는데 내용은 그냥 다 새롭다 ㅋㅋ



저자는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는  이유는 저마다의 가슴에 세워둔 '바보의 벽'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보의 벽은 각자의 고정관념이 만들어 놓은 벽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에 대해 나는 '굉장히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가 벽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바보의 벽' 앞에서 사고를 정지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에는 여러 가지 해답이 있을 수 있는데 자신은 객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다른 판단에 대한 벽을 세워 획일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편향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지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다른 답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을 뿐이다.

책에 보면 재미있는 비유가 나오는데 입력(자극)은 X, 출력(반응)은 Y라면 y = ax라는 일차 방정식 모델이 성립된다는 얘기다. 이때 a라는 계수는 '현실의 무게'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데 이는 곧 '감성지수'를 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문제는 변화하는 세상을 살면서 정작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를 두고, 정보를 지식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보를 지식으로 착각하고 입력하는 순간 더 이상 그 정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잘못된 정보는 그대로 자신의 벽에 벽돌 하나를 얹는 것과 같은 꼴이 되는 것이다. 그결과 아무리 다양한 자극이 주어져도 계수a 값이0 이기 때문에 어떠한 반응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해 입력과 출력의 과정을 반복할 때 인식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를 입력할 때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입력된 정보는 지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억압하는 커다란 벽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바보의 벽을 허물고 더 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계수의 값을 올려야 한다. 감성지능이라 불릴 수 있는 계수의 값이 높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답을 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편해지고 싶다면 계수의 값을 고정시키면 그만이다. 계수의 값이 고정되면 출력되는 사고는 늘 자신의 틀안에 있기 때문이다.

감성지능은 사회의 적응도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공통의 가치를 가지 위해 필요한 것이 감성 지능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감성지능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독서와 사유도 그중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 사고의 범위를 넓히고 예민해진 감각을 통해 가지는 세상에 대한 다양한 시선은 어떤 생각이 '바보의 벽'에 부딪혀 정지되지 않게 단단한 벽에 회전문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

독서를 통한 치열한 사유의 과정, 즉 지적 노동을 거쳐야 내 안에 '바보의 벽'을 허물수 있는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획일적이며 일원론적인 사고의 습관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앞서 사고가 정지된다면 그것은 내가 옳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벽에 의해 단지 내가 알고 싶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 이란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정지된 사고에 자연스럽게 플레이 버튼이 눌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나 삶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 p98

우리가 바보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 이유는 소통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소통은
중요한 문제이다. 더구나 각자의 개성이 중시되고 개인적인 삶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 '공동체와 소통'이라는 키워드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육, 혹은 배움을 통해 얻은 지식을 좀 더 활발히 입출력의 과정을 거쳐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바보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면 좋겠다.

 

"안다, 말하면 안다, 절대적 진실이 있다, 라고 생각해 버리는 태도, 거기서 일원론의 나락은 너무 가깝습니다. 일원론에 일단 걸려들었다 하면, 강건한 벽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언뜻 보기에 편합니다. 그러나 벽 건너 편이나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선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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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2.6 책 읽는 엄마-


12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잊은 건 아마도 그때 내 안에 어떤 벽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었을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비뚤어진 반감이었을 수도 있다. 몇 달 전 읽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책 내용이 고스란히 인용된 부분을 읽으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얼마 전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때는 정말 많은 감동과 위로, 깨달음을 얻었는데 12년 전 나는 같은 내용을 읽었으면서 아무런 감동도 배움도 얻지 못 했다. 왜 일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에게 반항하고 세상에 반항하고 부모에게 반항했던 나는  좋은 책을 읽고도 그냥 던져 버린 결과 12년이 지난 후에야 절실히 깨닫는다. 물론 그땐 나도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 빈약한 사고가 만들어놓은 내 마음의 벽이 세상의 끝인 줄만 알았다. 조금만 더 책을 읽고, 조금만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마음에 세워둔 바보의 벽은 소통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가로막았던게 아닐까 생각하니 속상해 진다. 하지만 12년전의 책을 꺼내 읽은 결과 이렇게 또 한가지를 배우니 슬픔에 빠지지는 말자. 어쩌면 12년전과 똑같지 않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l 2017.02.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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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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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혈기 왕성할 때 유명하다 수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도데체 이런 뻔한 이야기를 쓰면서 책을 내는 사람은 누굴까?" 다분히 수필 무용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모두 맞는 말만 써놓았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이것이 당시 수필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된 이유였던것 같다. 마음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읽었던 수필. 이제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안다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내용보기
한창 혈기 왕성할 때 유명하다 수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도데체 이런 뻔한 이야기를 쓰면서 책을 내는 사람은 누굴까?" 다분히 수필 무용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모두 맞는 말만 써놓았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이것이 당시 수필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된 이유였던것 같다. 마음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읽었던 수필. 이제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정말 알고있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책을 읽고난 후에는 자신있게 그렇다 라고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인 관계의 커뮤니케이션 뿐 만 아니라 모든 현상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이해하고 대화에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이책은 커뮤니케이션의 에러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인간관계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발생하는 갈등은 왜 생기는가? 그렇다면 해결할 방법은 무었인가에 대하여 설명한 책이다. 인간의 뇌에 대한 색다른 해석, 다양성과 일원화에 대한 생각, 교육환경에서의 다양한 개인의 개성을 육성하는 것과 달리 사회에서는 공통성과 동질감을 강요하는 모순 등 저자의 생각이 다소 도발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무엇을 말하고자한 것인지 "느낄"수 있었다. 화두에 말한것 처럼 지식으로 뇌에 입력하여 "아는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번쯤 느껴보시길.
k******r 2004.01.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인에 쓰여진 전형적인 일본인사고의 절정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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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당히 이중적인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일본인 특히 최절정인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이겠죠. 그러한 것이 일본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빈치코드가 전세계를 휩쓸때 일본에서는 미풍에 그친점, 그리고 허구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귀납적인 사고방식을 좋아하는 점은 일본인의 본심과 겉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봅
"일본인에 쓰여진 전형적인 일본인사고의 절정 그러나.." 내용보기
이 책은 상당히 이중적인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일본인 특히 최절정인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이겠죠. 그러한 것이 일본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빈치코드가 전세계를 휩쓸때 일본에서는 미풍에 그친점, 그리고 허구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귀납적인 사고방식을 좋아하는 점은 일본인의 본심과 겉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위 책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고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소스가 되어있습니다. 나중에 마지막 몇십페이지에 가서는 군국주의같은 전형적인 일본인의 사고관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보여주지만, (그래서 별하나 뺐습니다.) 그 와중에 도출되는 엄청난 보물들은 일본지식인들이 엄청난 독서에 따른 사색을 함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보다는 독서량이 월등한듯... 국민들도 그런지는 모르지만요.^^;) 그러한 점이 일본이라는 괴물을 만드는 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본인지식인에 대해서는 경계내지는 경쟁과 배움을 생각하게 되는 한번 보면 바보책 두번 보면 평범한 책 세번 보면 괴물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한국인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서 일본인입장에서 보면 위험한 사상이 정당성을 얻게되는 너무나도 무서운 책임을.... 그리고 현실을 보여줌을 압니다. 저자의 책들은 그러한 면에서 대단하네요.... 다른 사람들이 안읽음이 다행이네요. 제대로 된 통독이 아닌한 차라리 안읽으니만 못합니다. 오해의 소지도 많은 구절도 있습니다. 대단한 책이지만,이러한 지식인들의 보물을 자신들의 국가주의에 정당성에 다소나마 쏟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씁쓸한 느낌이 드네요.) ....... 과연 또 다른 나라지식인들의 독서량과 어떠한 논리가 있을까 궁금하네요 ..........
YES마니아 : 로얄 a********r 2005.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저자와의 壁을 절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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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벽’ 다분히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앞표지엔 장대높이뛰기로 벽을 뛰어넘는 사람의 그림이 있다. 마치 바보가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우물안의 개구리’는 왜 우물안의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가? 같은 진부한 물음이 뒤따라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의 원제는 ‘바람벽’대신에 ‘둥근옥 벽‘을 쓰고 있다. 즉 ’바보의 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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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벽’ 다분히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앞표지엔 장대높이뛰기로 벽을 뛰어넘는 사람의 그림이 있다. 마치 바보가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우물안의 개구리’는 왜 우물안의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가? 같은 진부한 물음이 뒤따라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의 원제는 ‘바람벽’대신에 ‘둥근옥 벽‘을 쓰고 있다. 즉 ’바보의 옥구슬‘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표지의 그림은 제목과 따로 노는 것이다. 표지만보고 출판사 혀를 차기는 처음이다.

처음엔 개인철학을 읊조리는 책일 거라 생각했다. 저자는 도쿄대 의학부 출신의 의과대 교수. 신뢰도는 급상승하지만 해부학 교수라니 왠지 사회나 현실은 잘 모르는 샌님같은 글줄이나 늘어놓지 않을까 했다. 머리말을 보니 더 가관인 것은 이 책은 원래 저자로 나와 있는 요로 다케시 본인이 쓴 책이 아니란다. 출판사가 이 분이 강연 다니시면서 녹취했던 것들을 편집해서 펴낸 책이란 말씀이다. 물론 저자는 시간이 많으실테니(대학교수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기초의학 교수는 특히..) 책에 요모조모 수정 가하셨을 거다. 그런데 저자 말마따나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그럴듯하기도 하지만 되려 어설픈 시도가 되버리는 것은 아닌지.. 쉽게 시도해볼 만한 방법은 아닌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배경에서 비롯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역시 새로운 시도는 그저 새로운 시도일 뿐이였어라는 냉혹한 단정이 서둘러 내려진다. 책을 읽다가 그만두고 뒤 표지에 역시 배경 든든하고 이름난 비슷한 거물 부류들께서 한 마디씩 남기신 글줄을 보자니... 이분들 독서 능력은 있으신지 의문이다.

원래 번역책을 볼 땐 저자를 탓하기에 앞서 번역자를 먼저 의심해본다. 과연 제대로 번역했는데 이 모양이란 말인가 하고.. 근데 일본서 번역계통에서는 알아주시는 양억관님이 번역하셨다니 번역의 질보다도 그분의 책에 대한 심미안에 되려 의심이 간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출판사가 선택한 책일 수도 있다. 그래서 또다시 표지를 보며, 원 출판사, 번역출판사 모두에 실망 섞인 큰 한 숨 터트리며 책을 집어던진다.

이 책은 절대 과학적인 책은 아니며, 철학적인 책은 더더욱 될 수 없는 책이다. 그저 저자가 생각가는 대로 내뱉은 말들을 참으로 두서없이 짜깁기한 책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독창적이다 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독창적이다라는 말은 대체로 좋은 평가에 속한다), 타고난 구라쟁이 전여옥여사께서는 그 특유의 오버 리액션으로 독창적인데다가 의미도 아리송한‘참을 수 없는 가벼움’까지 같다 붙여주고 계시다. 그 밥에 그 나물인 격이다. 그런데 사차원적인 저자의 공상이 이렇게 후한 평가를 받는건 아마도 남들에게 이해받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결여한 듯한 집안 내력(어머니로부터의 유전)에서 비롯된 후광 때문인 것 같으니 저자는 참 희한한 복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마저 든다.

YES마니아 : 로얄 o****s 2007.06.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