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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을 보면서 페미니즘 소설일거라는 생각이.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명랑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좀 기발한(이상한) 성장소설이기는 하지만. 한 여성이 겪는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쓴 글인 것 같다. 주인공 어떻게 보면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의 로망인 나이 줄이기. 진짜 사십이 되기 전에는 나이를 한, 두 살 더 올리려고 했고, 사십이 넘어가면서 나이를 한, 두 살 더 줄이려고 하는 것이 보편이 아닌가? 나에게 12살을 줄이면, 생물학적 나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주민등록상의 나이를 그럼 어떨까? 삼십을 느끼는 감정이 올가미와 공포라니..여자라서 그런가? 난 좀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았는데. 변호사 이 평안과 약간은 전형적인 스토리. 현우와의 만남. 검정고시 학원의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현우의 임용고시 뒷바라지 하지만, 항상 그러하듯이 잘 있어라 그 동안 고마웠다. 알코올 감정 선을 자극한다. 밤은 사람들의 근성에 내재된 소심함과 두려움까지도 송두리째 삼겨 버린다. 내 인생의 첫 데이트 사라진 혜린의 바지와 수위아저씨의 비밀 그리고 순자의 책상, 게시판의 사연과 짐 캐리의 영화 그리고 지영이와 아이(그 조그만 생명이 숨이 꺼지려는 나를 소생시킨 거나 마찬가지야.). 나도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사람이 어른일까? 바이올린 연주회장의 아내의 눈물(아무도 자신을 한 여자로 대해주지 않아서)을 본 이 변호사와 아내. “무대 위에 서 있던 난 사위어가는 불꽃처럼 그렇게 소멸해버릴 줄 알았는데 스무 살 무대의 주인공도 나였고, 서른 살 무대의 주인공도 나였으며, 마흔 살 무대의 주인공도 다름 아닌 나였다.”로 나이 먹음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았다. 문장에서 한자어 단어와 젊은이들의 단어의 부조화를 보이지만, 내용에서는 해학적이면서도, 문체에 수식이 많고, 화려하다. 그러나 재미있다. 추억의 학교 이야기라서 그런지. 아니면, 인간의 꿈을 이룬 이야기여서인지도. 아 나도 젊어지고 싶다. 하지만, 지금도 좋다. 나이 먹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는 의무의 두려움이 아닐까?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숙명. 성숙이란 단어와 인간됨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단지 여성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었다. 인간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지고 사는 현실의 무게와 삶 그리고 꿈을 그린 희망찬 이야기. 좀 웃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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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일까? 찬란했던 20대 젊음을 뒤로 하고 이제는 "젊지 않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드는 분기점인 "서른"에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돌이켜보면 나에게 있어 “서른”이라는 나이는 삶의 무게에 지쳐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간 그런 나이였다. IMF 여파로 인한 회사 부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많은 동료들과의 이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밀려오는 일들로 밥 먹듯이 해댔던 야근과 휴일 근무, 하루하루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서른은 소리 없이 나에게서 지나가 버렸다. 서른을 넘긴지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던 중 술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듣고는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한 그런 충격을 받았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과연 서른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었을 만큼 “특별한 나이”였던 서른이라는 나이를 그렇게 허무하게 보냈다는 것에 대한 짙은 후회와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나에게 있어 서른에 앓는다는 나이병인 “서른병”은 서른이 지나서야 때늦은 가슴앓이로 나를 괴롭혔고,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서른이 지난 한참 후인 지금까지도 부를 때 마다 가슴 한 켠이 아파오는 그런 노래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는 그 나이를 지나는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이처럼 특별한 시간인 서른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인 김은정의 <서른만 실종된 최순자(판테온하우스/2010년 9월)>을 읽으면서 이제는 멀리 지나온 나이지만, 그리고 더욱 감성적인 여성들의 이야기지만 나의 서른 즈음을 떠올리면서 킥킥거리면서 웃기도 하고, 때로는 뭉클한 감동도 느끼게 한 유쾌하고 즐거운 책이었다.
자신이 이름을 못내 촌스럽다고 느껴 이름불리기가 부끄러운 주인공 최순자는 고등학교 2학년인 18세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만 부모님을 잃게 된다. 부모님이 남긴 빚 때문에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학교를 자퇴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자신에게 별률적인 자문을 해주고 나중에 수임료로 “짜장 덮밥”이나 사라던 이평안 변호사에게 몇 년 후 자신의 퇴직금으로 거하게 지불하고는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게 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남들처럼 남자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그런 젊음을 보내면서 이제 서른을 몇 달 남기지 않은 스물 아홉 살의 나이가 된다. 그녀는 중도에 포기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해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를 꿈꿔보지만 이제 서른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가 여간 두렵고 겁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버린 증권회사 직원 남자의 꾀임으로 어렵게 모은 돈 300만원을 탈탈 털어 샀었던 주식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20배가 넘는 6천만원이라는 거금이 생기게 된다. 이제 걱정이었던 결혼자금도 마련되었고, 이정도 돈이라면 무엇을 시작해도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게 된다. 그런데 때마침 자신을 보살펴준 이평안 변호사에게 곤란한 일이 생겨 급전이 필요하게 되고, 최순자는 변호사에게 그 돈을 빌려주는 대신 전혀 얼토당토 않는 요구를 하게 된다. 그녀는 현실적인 대안보다는 판타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12살이나 어린 17살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녀의 서른은 이렇게 실종되고야 만다. “살면서 한 번쯤 ‘내일모레 서른이다.’를 되뇌며 한 숨 쉬어봤을 사람들만 읽어야 할 책”라는 친절한 권고(?) - 서른을 한참 넘긴, 그것도 남성인 내가 읽은 것이 어찌보면 반칙일 수 도 있겠다^^ - 가 달린 이 소설은 책 도입부에 빽빽하게 적혀있는, 출간 전 원고 공개를 한 20대~30대 여대생 및 대학원생, 커리어우먼, 주부들이 적어놓은 짧은 추천사들대로 일종의 심리 치유 소설 또는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또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상상, 즉 다시 젊었을 시기인 10대나 20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을 소설로 엮어낸 일종의 판타지 소설(?)로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처음 읽으면서는 인기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킥킥대고 웃다가 중반 이후 17세가 되고 이름마저도 “최수지”로 바꾸어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는 대목부터 하이틴 로맨스 물로 바뀌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스러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결코 산으로 가지 않았고, 계속 읽으면서 그런 난감함은 어느새 사그러들면서, 황당하면서도 재밌는 이야기에 푹 빠져 마지막 장까지 입가에 미소를 계속 짓게 할 정도로 유쾌한 책읽기였다. 그러고는 비록 짧은 1년여 남짓이었지만 17세 학창시절로 돌아가 젊음을 만끽해본 최순자의 이 기발한 모험(?)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다면, 서른이라는 나이를 이렇게 유쾌하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마도 이 책을 황당하고 유치하다고 평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다면 그런 황당함은 한번쯤 눈을 감아줘도 좋지 않을까? 물론 내 나이 서른 시절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며 왠지 감성에 젖어보게 만드는 그런 지극히 감상적인 책은 아니었지만, "서른"이라면 괜히 우수에 젖고 까닭없이 심각해져야 한다는 그런 편견을 과감히 깨뜨리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이렇게 유쾌하고 기발하게 그려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작가의 글 솜씨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특별한 "서른"을 보낸 최순자의 삶, 결국에는 자신이 꿈꿨던 일을 이뤄내고 사랑까지 얻게 된 그녀의 앞날이 누구보다도 즐겁고 행복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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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느꼈던 생각이지만, 정말 작가는 아무나, 누구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쩜 소설의 소재를 이렇게나 다양하게, 기발하게 생각해낼수 있는지 심히 궁금할뿐이다. 제목에 나와 있는 그대로 최순자가 주인공이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여자의 이름치고는 솔직히 촌스럽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들은 각자 깊은 뜻과 애정을 가지고 이름을 지어주시지만, 결코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당사자에게는 그게 무거운 짐이 될수도, 벗어버리고 싶은 갑옷같은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할머니 이름을 물려받은 최순자가 예쁘게 자라야 할 그 청춘시점에, 그 이름으로 불리는것이 어찌보면 족쇄같았을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님 모두를 잃고 났는데, 자신에게 남겨진 거라고는 빚뿐일때, 순자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의 무게는 너무 가혹할만치 무거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학교까지 그만둬야 했던 그 예민했던 시기에 선택할수 있는 것이 자살일수도 있겠다 싶다. 다시 살아난 최순자가 이평안 변호사의 도움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지극히 평범하게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러한 반복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 증권맨때문에 가지고 있던 300만원을 쏟아부었던 주식이 6천만원의 거금이 되는 행운(?) 일어나고. 그로 인해 12살이나 어린 17세로 돌아가는 어찌보면 현실세계에서는 있을수도 없고, 가능할것 같지도 않은 일을 벌이게 된다. 최순자가 어쩔수없이 그만둘수 밖에 없었던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것은 과연 무슨 이유일까? 그때 그당시로 가면 뭔가 다른 인생이 펼쳐질거라 생각했을까? '서른'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가 과연 뭘까? 나는 참 무던하게 살았나 보다. 그 시간을 훌쩍 넘어선 지금에 와서도 그 서른즈음에 어떤 공포나 두려움없이 그냥 살았던 것을 보면 마냥 용감했다고 해야 할까? 책소개글에 나온 말이 너무 멋졌다. 영화 <파티핑크>의 주인공 파니가 '서른이 넘은 여자가 멋진 남자를 만날 확률은 원자폭탄을 맞고 살아남을 확률보다 낮다'라고 말했다는 글을 보면서, 또 독일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나이 서른을 가리켜 "가만히 있으면 불ㄹ안하고, 뭔가를 하더라도 의구심이 드는 나이다."라고 했다는 글 앞에서 괜히 숙연해졌다. 난 너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았나 싶어 이제서야 후회가 드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 나이 '서른'이 부여하는 의미가 참 많았구나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마음을 참 잘 짚어냈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코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시간을 지나고나면, 지금까지와 다른 인생살이가 펼쳐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보다는 현실에 충실한것이 중요하다고 싶다. 지난 시간이 완벽하기만 하다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실수가 있고, 좌절이 있었기에 그것을 토대로 느낀점도 있고, 배운점도 있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에는 이렇게 해야지 하는 다짐도 할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몇년전으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이라는 전제를 단 상상도 하게 되는 것이고. 주인공 최순자가 12년전으로 돌아가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서른을 맞이할지도 기대되고.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인생이 항상 밝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앞으로 서른을 맞이해야 할 모든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음과 동시에 현실에 더할나위 없이 충실할수 있는 원동력을 얻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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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느끼는 불안한 것은 무엇일까? 나 역시 30대에서 40대를 바라보고 있기에 이러한 느낌은 어찌 보면 공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10대에는 20대로 빨리 시간이 흘려서 가기를 바라지만 20대에 와서는 30대로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라진다. 30대가 겁나는 여성들이 읽으면 재미있게 웃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 책이 주는 것은 아마도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절대 말도 안되는 나이 속임을 누가 믿어 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29살에서 12살 아래인 17살이 된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그러나 이 책은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것 같지만 여하든 최순자라는 여자는 자신이 가장 힘든 시기인 17살로 나이 변신을 하게 된다.
17살 .... 그녀의 삶이 가장 힘이 들고 남들이 공부 하는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던 아픔 시절을 그녀는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인생을 설계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삶이란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최순자... 그녀의 삶은 너무나 평범했다. 직장 여성으로 열심히 살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44사이즈가 아니라 남들이 싫어하는 66~77사이즈인 그녀는 너무나 지루하게 살아가고 있던 여성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학교를 중퇴를 해야 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검정고시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헤어짐을 거치면서 그녀는 "막돼먹은 영자씨" 같은 성격으로 변하는 자신이 싫어질 수도 있지만 인생이란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이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그런 사랑도 왜 그녀에게는 그리 쉽게 끝나버리는지 조금은 안스럽기까지 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두번 째 사랑은 하느님의 보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증권맨이었던 두번 째 사람은 연애하는 동안 주식을 샀는데 헤어지고 나서 주식이 대박이 나는 인생이 되었다. 300만원을 투자해서 20배가 뻥튀기가 되었다고 하니 우와 이 여자 전생에 좋은 일을 했나 보다 라고 생각을 했다. 순자라는 이름을 너무나 챙피하게 생각하는 그녀를 보면서 자신이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나이 뿐만 아니라 이름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이름과 나이를 새롭게 변신을 시키면서 그녀의 제 2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이 책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던 내용이었고 그녀가 자신이 버리고 싶어 했던 30살을 어떻게 다가 가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했다. 그녀의 삶이 이제는 나이와 상관없이 행복하게 변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접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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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만 실종된 최순자 처음 제목을 접했을때 ..'서른만 실종됐다고?? 무슨 뜻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중간 까지 왠지모를 서두를 읽는 듯한 빙빙거림을 느꼈다. 물론 글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가의 유쾌한 재치를 알수 있었지만.. 소설의 중반을 달리면서 왜 순자씨의 삼십대가 사라져 버렸는지를 알게 됐을 때 작가의 기발한 발상에 감탄을 금 할 수 없었다. 나도 꽤나 평소에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문서를 위조해 나이를 속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였다. 주인공 순자씨는 어린 고교시절 부모님을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처자이다. 여자로서 더욱이 성인도 되지않은 어린 여자가 이세상을 홀로 살아가기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녀의 20대는 보고 듣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힘든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위해 여자의 일생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는 20대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직장생활과 몇번의 몹쓸 남자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삶에 지치고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수 없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에게 그리 가혹하지만은 않았다. 첫번째로 사귀었던 남자를 통해 구입하게된 증권이 어느날 대박을 치면서 황금알을 그녀에게 전해주었고 때마침 개인적인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했던 그녀의 사장인 변호사와의 은밀한 밀거래를 통해 그녀는 안탑깝게만 보내야 했던 그녀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남은 진실한 일생을 위해 다시 새롭게 출발하려 한다. 부모님의 사망으로 잃어버렸던 그 시점부터 시작하여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지만 진실은 현실이다. 진정한 타임머신을 타지못한 순자씨는 자신은 알지만 남들에겐 모든걸 철저히 숨기고자 한다. 우선 이름부터 바꾸고 외모도 그녀가 할수있는 한 최대로 어리게 가꿔 비록 어린 학생들에게 몇몇 지적을 받기도 하였으나 완벽에 가까운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소설의 중반까진 그녀가 잃어버린 삶을 찾기 전까지의 내용이라.. 극히 짜증나는 현실 상황들로인해 읽는 나조차도 힘든 그녀의 삶으로 인해 힘들고 지루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새 삶을 살게 되면서 12년이나 어린 고등학생들과의 알콩달콩한 생활들에 나 또한 어린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간것 같아 흥미진지 하고 가슴이 설레였다. 진실한 시간여행이 아니였기에 그녀의 거짓이 탄로날까 가슴 조마조마한 상황들이 펼쳐졌지만 그때마다 발휘되는 그녀의 기발한 재치들! 그리고 그녀도 모르게 다가오는 진실한 사랑이 이런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정말로 우스운 일이겠지만 허구적인 소설이기에 때로는 깔깔대고 웃으며 가끔식은 가슴 저린 아픔을 동감하며 읽은 오래간만에 맞은 유퇘한 소설이었다. 나또한 현재 순자씨와 같은 서른이 넘은 여자로서.. 할수만 있다면 과거로 고등학생이 아닌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나.. 이미 난 결혼을 했고 곧있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사람이기에.. 그저 상상으로 밤에 꿈이나 꿔야겠다~~ 이휴..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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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 언제나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앉은것 같은 엄친아님께서 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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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라... 이제 서른을 보면 참 좋을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 나이에 나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느냐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서른의 공포라고 하지만, 내게 공포는 아이의 울음이었다.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는 초보 엄마의 공포. 그래서 서른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시 그때가 되면 대학원을 진학했을텐데하는 아쉬움정도.
그런데, 작가는 말한다. 여자에게 가장 큰 공포는 사내 맛을 못 본 처녀귀신도 아니요, 임신 테스트기의 방백 '한 줄이냐 둘이냐'의 답을 구하는 순간도 아니요.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혈서까지 써대던 진드기 같은 놈도 변심까지의 유통기한이 불과 3년이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대면하게 된 순간도 이난, 바로 '서른이 된다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거기에 권고까지. 살면서 한 번쯤 '내일모레 서른이다'를 되뇌며 한 숨 쉬어봤을 사람들만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그럼, 나는 아닌데... 그래도 읽었다. 너무나 유쾌하게 읽어버렸다.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최순자. 한창 예쁘고 예민한 18살, 고2 어느 날 그녀의 부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부모가 남겨준 것이라곤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과 빈 몸뚱이, 그리고 5천만 원의 빚.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설상가상 학교도 그만 둔 그녀는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모진 것이 사람 목숨이라고, 다시 살아남게 된 그녀는 이평안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1년 후. 스물아홉 살이 된 최순자.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그녀에게 어느 날 6천만 원이라는 거금이 생긴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그녀는 호적 세탁을 통해 11년 전, 고등학교 2학년 즉 18살로 돌아가기로 한다. 11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녀는 다시 18살 시절로 돌아가고,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유쾌하고 발랄한 10대 학창시절과 10살이나 어린 남자와의 발칙한 연예담, 그리고 깜짝 놀랄 반전이 숨어 있는 순자씨의 이야기.
11살을 호적으로 줄일수는 있지만, 몸을 바꿀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순자씨는 18살이 되었다. 그리고, 꿈꾸던 고교시절을 보낸다. 열아홉 젊은 선배에게 가슴도 콩닥콩닥 뛰어보고, 열여덟 어린 아그들의 친구로 말이다. 다시 10대로 돌아가면 순자씨처럼 할수 있을까? 주구장창 공부만 하라던 학교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순자씨가 다니는 학교는 유쾌하다. 재미있다. 교과서에 숨기고 보던 하이틴 로맨스 처럼 달달하고, 그시절 명랑만화처럼 통쾌하다. 될 법한 이야기인가? 10살이나 어린 아그가 첫사랑이라니... 그래도, 그래서 재미있다. 가질수 없는 꿈이 실현된 듯 하니 말이다. 딱 서른만 실종된 순자씨. 어찌 되었는지는 감만 잡는다. 군복을 입은 잘생긴 청년에 대한 부연도, 그녀의 친구들이 지금 하는 일만 나와있고, 순자씨와의 관계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끝은 어디에도 없다. 설사 죽어서도 땅에 묻혀 다시 한 그루의 은행나무 속에서 피어나지 않는가.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나는 사랑도 질투도 그리움도 실패도 망설임도 후회까지도 즐긴 준비가 되어있다. - P.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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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은정은 말한다. 여자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서른이 된다는 것이라고, 처녀귀신보다, 다이어트에 대한 히스테리보다, 먹던 음식에서 나오던 바뀌벌레보다도, 임신테스트기의 한 줄이냐 두 줄이냐의 문제보다도, ’서른이 된다는 것’ 이 가장 공포란다. 아마도 작가는 지금 29살을 넘어 30살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가보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최순자는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평범한 소녀 최순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8세의 나이에 양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어야 했고, 그로 인해 학교도 중퇴를 했다. 졸지에 고아가 되버린 최순자, 남은 것은 부모가 남겨준 빚 오천만원과 최순자라는 이름 뿐, 집도 빚에 넘어갔고 이평안 변호사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갈 길을 열었다. 7할의 웃음과 3할의 눈물, 최순자는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며, 20세 이상의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카페를 운영하는 운영자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내년이 바로 그 공포의 30살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공포스러운 것인가 싶어 나의 서른살 시절을 돌아보았다) 그때 부모님은 만 29살이라고 우기며 서른엔 꼭 결혼하라고 등떠밀고 계셨지! 그리고 정말 등떠밀려서 만 30살을 채우기 일주일전인 1월 31일날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긴 하다) "지구에 사는 생물학적 여자라면 한 번쯤 다시 스무 살이 되고 싶다고 넋두리를 해봤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 생각을 해봤겠지만 과연 스무 살일까? 스무살 대입시험을 치르느라 정말 똥줄타는 시간이었을텐데~~~. (아~ 또 트집잡고 있는 건가?) 아마 서른이란 나이도 지금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라 그럴것이다. 평범한 그녀가 실천을 해버렸을 때, 그것도 그녀가 출근하던 변호사 사무실 앞에 있는 학교로 그 용기가 마냥 부러웠다. 아마 책을 읽은 수많은 여성들이 다시 그런 꿈을 꾸게 될런지도 모른다. 30살의 나이에 다시 18살로 돌아갔다(?) 변호사의 도움으로 불법으로 호적정정을 했고, 다시금 18세가 되어 최수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갔다. 만약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18세의 몸으로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 난 무엇을 하게 될까? 아마도 그때는 내가 원하는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를 갈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시 고등학교에 간것 같아 희미한 웃음이 새나왔다. 30살 나이에 18살 친구들이 생겨났고, 다시 대입시험을 치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한번 돌아가 보고 싶은 시절이기도 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 그렇지만 나이순처럼 보이기는 해. [서른만 실종된 최순자]를 보면서 잠시나마 그런 상념에 젖어 들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젊은 여자는 아름답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더욱 아름답다. - 19세기의 미국 시인 휘트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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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계란 한 판으로 비유되는 나이가 있다. 앞의 숫자가 1도 아니고 2도 아닌 3이 되는 그 순간이다.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이) 그 순간을 못견뎌한다. 고작 2에서 3이 될 뿐인데 죽을 듯이 괴로워하고 때로는 세상이 무너질 듯 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계란 한 판도 더 이상 30개가 아니다. 10개인 한 판도 있고 15개인 한 판도 있고 혹은 20개인 한 판도 있다. 그렇게 계란 한 판이 되는 순간을 피한 여자가 있었다.
최순자. 촌스럽디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귀에 착 달라붙고 너무 정감가는 그녀의 이름은 순.자.이다 서른을 목전에 둔 여자는 짜장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변호사님을 보필하며 사는 평범한 나 또래의 여자이다. 그런 여자에게 실종된 서른이라니. 누구나 서른이라는 그 순간만을 잃고 싶어한다. 그녀도 나도 그리고 주변의 이십대 후 반과 서른을 목전에 둔 많은 여성들이...
그녀는 딱 12년을 실종시킨다. 서른만 실종 된 것이 아니라, 실종과 다름없었던 10대 후반에서 20대를 되찾기 위해 서른을 실종시키고 지내왔던 12년도 실종시킨다. 허무맹랑했고 이게 뭐냐 !! 그런 소리가 나왔지만 나는 순자가 사실은 너무 부러웠다. 그녀의 마음을 백프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3이라는 숫자를 앞에 다는 것이 무서운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1과 2를 앞에 달고 살았던 우리는 3이라는 조금 더 무거운 숫자를 달고 있으므로서, 무거운척 하고 심각한 척하고 이전과 달리 신나고 즐거운 것만 찾으면 안되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점심종소리를 직접 자신의 종소리로 만들게 된 순자. 임신테스트기의 두줄보다도, 눈가의 주름보다도, 접혀진 뱃살과 출렁이는 팔뚝살보다도, 우리를 두렵게하는 것은 더 이상은 '1과2'같이 신날 수 없을거라는 편견은 아닐까?
순자를 보면서 느꼈다. 아마 앞으로 3을 달고 살다보면 4와5에는 무심해지고 계속 1,2,3만을 그리워하고 계속 후회만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기에 남은 2와 다가올 3을 기쁜 마음으로 즐겨야겠다. 그녀는 3을 몇년동안 유예시킬 수 있지만, 나는 든든한 어떤 배후의 세력을 가진 변호사같은 줄이 없기에 주어진 내 시간을 더 이상은 슬프게만들지 말아야겠다.
초반의 그녀의 지리멸멸한 과거사는 너무도 흔해빠지고 닳아빠져서 지겨웠다. 하지만 그런 지겨움도 일상이 아닌 과거가 된다면 눈물이 나도록 그리울 시간들임을, 서른만 실종한 최순자씨와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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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서른은 여자에게 참으로 치명적인 숫자임이 분명하다. 단 1년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스물아홉 살과 서른 살에 대한 대우는 여러 가지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 금세 내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서른만 실종되다니, 대체 어떤 내용일까 싶어 궁금했다. 나 역시 이제 만으로 꽉 찬 서른, 이제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이다 보니 그 궁금증은 더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디 가서 나이를 물으면 ‘아직 만으론 서른이다’며 허세를 부렸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할 수 없는 최후의 상태였다. 제목만으로도 이 땅에서, 특히나 이 한국 땅에서 서른을 앞두거나 서른에 들어선 수많은 여성들 역시 나처럼 제목만 보고도 이 책에 마음이 사로잡혔을 것이다.
궁금증과 호기심에 이끌려 보게 된 책. 시작부터 바로 서른을 앞둔 불쌍한 최순자가 등장했다. 굳이 서른을 맞이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인생은 충분히 불행했다. 게다가 그녀가 그동안 만나온 거머리 같은 남자들은 또 어떻던지. 그들은 그녀를 구제해 주기는커녕 그녀의 불행에 부채질만 더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곧 닥칠 서른이라는 시련은 더없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거금 육천만원과 그것을 나이와 맞바꿀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일이 년이 아니라, 무려 십이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되찾아왔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야 할 해에 열여덟 살이 되어 학교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서른 살이어야 할 최순자가 열여덟 살 최순지가 되는 순간. 난 너무나 부러웠다. 그리고 되짚어 봤다. 나의 열여덟 살의 삶과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되돌아간다면 그때보다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서른 살의 몸으로 나이만 열여덟 살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잘 하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최순자처럼 좋은 행운과 기회만 잡는다면.
화려한 수식어와 미사여구에 이끌려 한 장, 두 장 읽다 마지막 장까지 넘기게 된 최순자의 서른 살 이야기. 열여덟 살 학생으로 서른 살의 해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같은 사람이더라도 서른 살로 살 때와 열여덟 살로 살아가는 건 너무나 달랐다. 특히나 최수지는 잃어버린 학창시절을 돌려받았기에 더 열여덟 살의 학창시절은 달콤해했다. 이미 충분히 학창시절은 보낸 나 같은 사람도 가끔씩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는데, 최수지는 어떠했을지. 게다가 그녀 앞에는 맑고 순수한 핑크빛 로맨스까지 펼쳐졌으니, 정말 꿈만 같았을 것이다. 괜히 나까지 다시 열여덟 살로 돌아간 듯 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다시 열여덟 살이 되어 학창시절을 보내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 살도, 서른 살도 그리고 마흔 살도 무대의 주인공은 나라는 마지막 구절이 나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최순자였을 때보다 최수지였을 때가 더 행복해보였지만, 아마도 그건 서른 살 최순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공감하며 즐거울 수 있었던 건, 내가 서른 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열여덟 살에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른 살의 무대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도록 오늘도 열심히 달려보련다. 이제 서른 살 마저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괜찮다. 내년엔 서른한 살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면 되니까.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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