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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전쟁은 끝날 수 없었다 (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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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아우슈비츠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소련군의 점령 이전에 독일군은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들을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성홍열, 디프테리아와 같은 질병에 걸려 이동이 힘들었던 7,000여명에 불과했다. 프리모 레비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수용소에 남았던 이들도 많이 죽었지만, 레비는 거기서도 용케 살아남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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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1월 아우슈비츠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소련군의 점령 이전에 독일군은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들을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성홍열, 디프테리아와 같은 질병에 걸려 이동이 힘들었던 7,000여명에 불과했다. 프리모 레비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수용소에 남았던 이들도 많이 죽었지만, 레비는 거기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그때까지의 이야기는 『이것이 인간인가』에 담았다. 『휴전』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 이후 고향 토리노까지 돌아오기까지의 경험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이 인간인가』의 속편인 셈이다.


“자유,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자유, 아우슈비츠로부터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어서 꿈속에서만 감히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 자유가 찾아왔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무자비하고 황량한 벌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시련, 또 다른 피로, 또 다른 배고픔, 또 다른 추위, 또 다른 두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57쪽)




지난한 과정이었다. 초기 몇 달 동안은 카토비체의 소련군 주둔지에서 생활하며 간호사로 일했고, 6월이 되어서야 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한다. 귀향은 무려 네다섯 달이나 걸렸다. 동쪽으로 이도앟여 즈메린카로, 다시 얼토당토 없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스타리예 도로기로, 거기서 몇 달을 보낸 후에야 남쪽으로 이동하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고향에 다다르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이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 그리고 함께 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과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그렇다고 에피소드의 의미라든가 인물들의 옳고 그름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고 있지는 않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상시의 의미로 결코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바로 보편적인 인간성에 해당할 수도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인물들을 선과 악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대신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건조한 언어 대신 유머 깃든 표현들로 독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이는 그가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군과 소련군에 대한 묘사도 매우 날카로우면서도, 분노 같은 것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도 독일군이라든가, 독일인에 대해 그랬지만, 소련군에 대해서도 해방시킨 군대이기에 기뻐하고 환영한다거나, 얼토당토 않게 귀향을 미루었기에 분노한다거나 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화학자’인 그는 딱딱한 규율의 독일군의 차가운 세계와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소련군의 세계를 대비시키며 비교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물론 그가 여기서 명시적으로 평가하지 않더라도 독일의 만행을 달리 평가할 독자는 없다. 그는 이미 그걸 알고 있다).


“독일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독일인 각각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결산을 해야 할, 체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때 그러는 것처럼 질문하고 설명하고 논평해야 할 절박함을 느꼈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자기 집 문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상적으로 자행된 조용한 대학살에 대해 ‘그들’은 알고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길을 가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자식들을 바라보고 교회의 문턱을 넘어 들어갈 수 있었던 말인가?... 나는 내 팔에 문신으로 새겨진 숫자가 쓰라린 상처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들었다.” (323쪽)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를 대충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제목이 ‘휴전’이냐는 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라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야기임에도 그는 ‘휴전’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것이다. 이 의문에 관한 힌트는, 책에서 현인으로 묘사되고 있는 그리스인 모르도 나훔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다.


나훔은 신발이 망가져 거의 맨발로 다닐 수밖에 없게 된 레비를 보고 바보라고 질책한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는 데 신발과 먹을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둘 중에서도 신발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전쟁은 끝났다고 하는 레비에게 나훔은 “전쟁은 늘 있는 거야.”라는 ‘잊을 수 없는 대답’을 한다(79쪽).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전쟁은 절대로 끝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되었고, 고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유를 찾았다. 그 2년간의 기억은 너무나 또렷했고, 그래서 기록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고,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의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인식하기 위해서는. 늘 전쟁인 세계에서.

YES마니아 : 로얄 n*****m 2024.08.13.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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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지면 코 닿을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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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4060977 >를 통하여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가 저지른 만행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민낯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난은 종전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부나-모노비츠의 노동수용소에서 종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기록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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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4060977 >를 통하여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나치가 저지른 만행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민낯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난은 종전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부나-모노비츠의 노동수용소에서 종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기록한 것이라고 하면, 그 속편 격인 <휴전>은 부나-모노비츠에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치면, <이것이 인간인가>는 <일리아스>에 해당하며, <휴전>은 오디세이아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종전이 되었다면 나치에 의하여 감금된 사람들을 재분류하여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일이 꼬이려니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엉뚱한 곳으로 다시 끌려갔다가 9개월이나 되는 세월을 보낸 다음에 겨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우슈비츠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까지 가면 될 것을 열 두배도 더 되어 봄직한 거리를 돌고 돌아서 간 셈입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의 공산화를 위한 밑작업의 일환으로 동유럽국가들과 서유럽 국가들 사이의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치의 수용소에 붙들려 있던 사람들은 진주한 러시아군에 의하여 다시 나치가 만든 수용소에 수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을 보면 전후 수습과정을 통제하는 체계가 있었나 싶습니다. 심지어는 종전이 된 뒤에서 나치의 잔당이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사태도 있었던 듯합니다. 저자의 기록에서도 그런 상황의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4년 동인 전쟁을 하고 승리한 러시아의 붉은 군대 (…) 그들은 조금씩, 천천히, 외관상으로는 극도로 무질서하게 귀환하고 있었다.(241쪽)” 그들에게서는 개선군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패잔병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떻든 저자는 동아줄 같은 행운을 타고 났던 모양입니다. 처지가 어려울 때마다 이인을 만나 도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저자가 이탈리아어 외에도 독일어와 라틴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무언가 남다른 재주가 하나쯤 있어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저자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도 불사했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거짓말과 도둑질은 기본이고, 불법 상인이나 밀수꾼 노릇까지도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런 짓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는 기록은 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에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무형의 위협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으로 고통받았음을 고백합니다. ‘나만 홀로, 온통 잿빛의, 무감각한 무(無)의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 내가 다시 라거 안에 있고, 라거 밖에 있는 그 무엇도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가족과 꽃이 핀 자연과 집은 짧은 휴가 또는 감각들의 속임수, 곧 꿈이었다.(328쪽)’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앓았던 것인데, 당시만에서 의학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고향으로 돌아와 바로 집필하였던 것과는 달리, <휴전>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1962년에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가 겪은 일을 담담하게 기술하는 일기형식이었다고 하면, <휴전>은 문학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하였다고 합니다. 옮긴이를 힘들게 했던 부분 가운데, 독일어, 불어, 라틴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이디시어까지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여 현장감을 높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y*****2 2016.09.16.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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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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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명의 인원 중 단 세 명만이 살아남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초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은 그러나 승자로 군림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기억은 그들을 평생 괴롭힐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리모 레비의 삶이 비극적인 자살로 마무리 된 것도 폭력의 상흔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극명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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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명의 인원 중 단 세 명만이 살아남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초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은 그러나 승자로 군림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기억은 그들을 평생 괴롭힐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리모 레비의 삶이 비극적인 자살로 마무리 된 것도 폭력의 상흔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극명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는 화학자였다. 학자로서의 촉망 받는 미래가 산산이 부서진 것은 그가 시대에 굴복하지 아니했기 때문이었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

이 책은 제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허나 시점은 제2 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무렵이다. 이미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통해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을 기술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또 그에게 글을 쓰게 만든 것일까? 독일이 패망했다. 나치즘은 역사 저편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한 권의 책이 완성될 정도의 이야기가 그에게 남았다.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이 이렇게 힘들 줄 누가 알았을까? 읽다 보니 기가 막힌다.

아우슈비츠에서 시작된 여정은 점점 더 동쪽으로 치닫는다. 급기야 구 소련의 영토까지 침범하고야 만다. 현 벨로루시 영에 속하는 보브루이스크와 스타리예 도로기까지, , 이 도시들은 이름도 어렵다, 대체 왜 이들은 제 고향과는 전혀 합치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갔어야 했던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명확히 내려주진 않는다. 실은 저자뿐만 아니라 이들의 방랑을 지휘했던 이들도 아마 라는 질문 앞에서는 침묵을 할 것이다. 모든 체계가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다. 전쟁이 종결됨과 동시에 그때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모든 질서가 붕괴해버렸다. 어두침침함 속에 오래 놓이면 어둠의 농도를 가늠하는 눈이 생긴다고 했던가? 저자의 글은 마냥 어둑어둑하지만은 않았다. 비관주의자였더라면 극한 상황으로부터 살아남지도 못했겠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사람이 썼다고 하기엔 기대 이상으로 밝다. 소소한 유머가 그에게 생을 불어넣어 준 것이 아닐지 싶다.

끔찍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문장에 드러난다. 독일군이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체득한 전쟁의 기운은 여전히 그들 가운데 감돌고 있었다. 저자를 소개하는 이는 그를 유대인이라고 하기보단 사상범으로 부르길 원한다. 그게 더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독일군의 후퇴는 영원할 거 같지가 않다. 꼭 독일군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다시금 갑자기 몰려온 이 자유를 앗아갈 것만 같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은휴전이다. 종전 아닌 휴전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무뎌질 것이다. 그렇지만 무심함이 곧 종결을 의미하진 않는다. 가난은 분명 끔찍했다. 먹을 게 없고, 위생상태도 양호할 리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 들어차 있었기에, 그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며 다음 번엔 부디 제 차례가 아니길 기도할 뿐이다.

도드라지는 것은 바로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혼돈 속에 놓인 사람들은 의외로 침착했고, 게 중에는 인간다움을 유지한 이들도 있었다. 제 나름의 엄격함을 간직한 그리스인의 태도는 존경할 만 하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유발한다. 식량은 없어도 신발은 있어야만 한다는 그 자신의 믿음은 우스우면서도 다분히 현실적인 시대의 고민을 반영한다. 생존에 있어서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듯한 체사레의 모습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지 않나 싶다. 어떠한 혼돈이 주어져도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저마다의 이유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당시를 경험한 이들은 이제 대부분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거나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하지만 끔찍한 기억은 한 세대에만 머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과거의 악랄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라도 그 끔찍함을 재생시킬 수 있는 씨앗은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 전쟁을 비롯하여 끔찍한 무언가를 종결시키는 것도 물론 어렵다. 그렇지만 하나의 사건이 끝났다고 하여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모든 이들이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귀환은 또 다른 전쟁이다. 그 과정에서 다시금 폭력의 불씨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에게 고향으로의 움직임은 휴전과도 같았다. 평화로운 듯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도 알고 보면 숱한 폭력을 꾹꾹 누른 채 휴전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q*****2 2011.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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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휴전] – 전쟁은 끝나고, 고향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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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휴전>   프리모 레비 – 전쟁은 끝나고, 고향은 멀다.   1937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에 입학한 프리모는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이때 이미 파시즘은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프리모가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 파시스트 정부는 “인종법”을 공포하는데 유대인은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 다행히 대학생은 그 법에서 예외가 되었는데,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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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휴전

 

프리모 레비 전쟁은 끝나고, 고향은 멀다.

 



1937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에 입학한 프리모는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이때 이미 파시즘은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프리모가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 파시스트 정부는 인종법을 공포하는데 유대인은 공립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 다행히 대학생은 그 법에서 예외가 되었는데,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한 프리모 레비는 유대인이라고 적힌 졸업장을 받는다.

 

1943년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고 무솔리니가 체포되었으며, 바돌리오 정부가 휴전을 선언했지만, 독일 무장군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며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반파시트 운동에 가담했던 프리모는 1943년 체포되어 카르피-포솔리 수용소로 보내지는데, 19442월부터 이 수용소는 독일군의 감독을 받게 된다. 독일군은 포로를 포함하여 남녀, 노인,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슈비츠로 보내게 된다.

 

프리모 레비는 독가스로 600만 명이 죽임을 당한 아우슈비츠에서 몇 안 되는 생존자로 살아난다. 19451월 독일군은 남아있는 사람들 중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데리고 가서 총살시키고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사람들은 그냥 둔 채 수용소를 떠난다. 때마침 그는 병을 얻어 누워 있었고, 그는 수용소에서 러시아 군인들에게 인계되어 이탈리아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19451월부터 10월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귀향하는 과정을 담은 글이다. 책 뒤편에 실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처럼, 프리모 레비는 직선거리로 치자면 얼마 되지 않는 곳을 빙빙 둘러 끝날 것 같지 않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의 첫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 나면 뒤이어 이 휴전을 읽어도 좋고, “주기율표를 읽고 휴전을 읽어도 좋다.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이후 15년 뒤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페인트 공장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집필하였는데, 그는 치밀하게 언어의 과학화를 시도하였다. 각 쪽의 단어 수를 조사하고, 단어의 빈도를 계산하고, 첫 작품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비교하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이 인간인가작품이 감정에 이끌려 쓴 작품이라면, 이번 휴전은 철저하게 생각하고 계산한, 의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것이 인간인가가 어둡고 무거운 바위와 같다면, 이 작품은 맑은 샘 아래에서 서로 부딪치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작은 돌멩이들처럼 느껴진다.

 

길고 긴 여정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무거울 수 있으나, 라거라고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폭력집단에 비해, 러시아 군인들은 자유로웠고 이미 독일의 손을 벗어난 수용소 사람들 역시 군인들만큼이나 자유로운 상태였다. 긴 여행길에 있었고 임시 수용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든지 그 곳을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팠다. 육체가 아팠고 마음이 아팠다.

 

자유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웠다. ... 인간의 정의가 상처를 없애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처는 마르지 않는 악의 샘이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고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고 영혼의 빛을 꺼뜨린다.

 

상처는 압제자들에게는 악명으로 되돌아가고 생존자들 속에서는 증오로 영속한다.

(휴전, 20)

 

, 프리모 레비에게 박힌 이 상처의 흔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에게 상처는 증오로 영속하는 존재다. 현길언 작가의 육이오의 아픔을 다룬 동화 못자국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무에 박힌 못은 나중에 못을 뽑아내어 버리더라도 영원히 흔적을 나무에 남겨 놓는다. 상처는 지울 수가 없다.

 

전쟁은 끝이 났고,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왜 책 제목이 휴전일까. 그 의아함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저자의 마음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게 전쟁은 영속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잠시 휴전 상태일 뿐.

 

우리는 육이오 전쟁을 통해, 휴전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에 앞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가 신발이고 두 번째가 식량이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듯 순서를 바꾸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신발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77)

 

하지만 전쟁은 끝났잖아요.” 나는 반박했다. 그 몇 개월의 휴전 기간을 살았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의미에서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은 늘 있는 거야.”

모르도 나훔의 잊을 수 없는 대답이었다. (78)

 

책은 17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낙관적이고 귀향하는 과정의 신기한 경험들이 가득해서 책은 쉽게 읽힌다. 이 책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아득한 고향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프리모 레비가 죽고 나서 10년이 지난 뒤였다. 는 진정한 고향에 들어갔을까. 그의 전쟁은 끝이 났을까. 프리모 레비의 여정을 따라갔던 재일작가 서경식의 후기가 들어 있어 더 값진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18.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