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제학 이론들을 소설의 형태를 빌려 쉽게 설명했다는 것과 주요 유명 미국대학에서 학습 교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그동안 배웠고, 판단하고 옳다고 느꼈던 사실(?)들이 사정없이 흔들리거나 부서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기존 사실에 대해 색다른 이해를 가진 샘 고든과 우리와 같이 느끼고 있는 로라라는 두 교사 인물들의 열띤 논쟁을 통해 알려주고 말해주는 내용들은 현재로서 내 자신이 100% 받아들이거나 이해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편협적인 사고방식들을 전부인량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고, 그걸 이해의 척도로 삼은 것은 아닌지 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은 정말 내 사고의 큰 발전이 아닌었는가 판단이 된다. 무조건 노동자를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는 회사 CEO들의 무책임성을 논하기 앞서, 그들은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며, 자신의 회사를 투자한 주주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정부가 시장기구 자율적 기능을 배제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규제정책을 도입한 것에 대한 무책임성을 비판하는 점, 공정하다는 개념에 색다른 해석등 다양한 경제학 이론들을 등장인물들의 대화속에 담았다는 시도는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리타분한 이론의 나열을 통해 이해시키기 보다는 다양한 예와 사실들의 접근을 통해 경제학이 단순히 학자적인 연구대상이 아닌 우리가 경제 사회속에서 숨쉬고 살아갈 수 있는 산소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책인 듯 싶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샘 고든의 지나칠 정도의 사고방식을 편협되었다고 이해할 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하나 펼쳐보면 나름대로의 해석과 이해가 있고,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잘못 판단하고 행하는 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경제관련 TV토론속에서 기업활동에 대해 정당성과 이해를 요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으로 비판했고,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고 비판했던 생각에서 '아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법칙이며, 어느 정도는 그들을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었다. 색다른 재미보다는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대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다 |
| 이 책은 보는이로 하여금 로라의 오빠가 그랬듯, 샘과 한바탕 논쟁을 벌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자유주의를 따뜻하고 논리정연하게 옹호했으며, 상당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 글은 그렇지 않은 부분, 즉 논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거두 절미하고, 내가 눈여겨 본것은 극중 샘이 사례로 들었던 옐로우스톤 공원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샘의 주장의 가장 강력한 근거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옐로우스톤 공원에는 고라니와 늑대와 비버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늑대가 근처 농가를 침범하여 양을 잡아먹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이에 대해 주민들이 항의하게 되었고, 정부는 늑대를 모두 쫓아내었다. 그 결과 숲에는 고라니 수가 급증하게 되었다. 가끔 숲에 놀러오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무서운 늑대가 사라져 다칠 위험도 사라지고, 귀여운 고라니는 늘어나 숲 어디서나 고라니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버를 포함한 생태계 전체 입장에서는 비극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라니수가 급증하게 됨에 따라 그들이 비버가 먹어야할 풀까지 모두 뜯어먹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굶어죽는 비버수가 늘어나고, 생태계 전체의 균형도 무너지게 된 것이다. 처음에 이 문제는 고라니와 늑대만의 문제라고 생각되기 쉽지만, 실상은 생태계 전체가 관여되는 좀 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샘은 이 사례를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근거로서 사용한다. 생태계에 대한 온정적 간섭이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균형을 깨뜨린 꼴이 되었듯이,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도 부분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거시적으로는 사회전반의 균형(물론 샘이 말하는 균형은 좀 더 복잡한 개념이다.)을 깨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샘의 핵심 주장이다. 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너희가 뭔가를 개선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정책을 세워서는 안돼. 정말 도움이 될 정책을 세워야지. 그리고 너희가 뛰어난 경제학자가 되려 한다면,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해.” 그러나 샘의 이러한 유비적 추리에는 매우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 키워드는 “뭔가를 개선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정책” 정도 되겠다. “뭔가를 개선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중요하며 이것이 내 주장의 핵심 근거로서 사용될 것이다. 사실 늑대를 쫓아낸 행위는 ”뭔가를 개선“한것처럼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고라니와 양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다. 외부의 어떤힘이 간섭하지 않으면 누군가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생명을 구하는 행위가 샘의 눈에는 ”정말 도움이 될“ 행위가 아니라 개선된것처럼 착각되는 행위의 수준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하는 것인가. 물론 앞에서도 논의했듯이 고라니를 보호하는 선택을 할 경우에 생태계의 균형의 붕괴라는 결과는 받아들여야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자.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라니 혹은 늑대 혹은 비버의 생명의 소중함 때문인가? 즉 생태계의 균형을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되어야 할 것이 이러한 생명의 소중함인가? 결코 아니다. 생태계는 낱개의 생명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낱개의 생명체가 살든지 누군가에게 잡아먹혀 죽든지 관심이 없다. 위의 물음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은 "생태계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당연히 그래야지."와 같은 식의 추상적인 형태로 이끌어질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연세계를 주관하는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일반적인 원숭이 집단에는 관심이 있어도 낱개로서의 원숭이 한마리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이 신은 철저하게 생물학적으로 접근할것이다. 그는 어떻게하면 종의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을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을뿐이다. 누가 죽으면 다른 녀석이 살아남아 빈자리를 채우면 그만이다. 이렇듯 매우 잔인하게, 경제학적으로 철저하게 환원되어 움직이는 곳이 자연세계이다. 샘은 헬스넷이라는 기업이 오하이오주의 마탈론 공장을 없애고, 멕시코에 공장을 신축하는 사건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마탈론 공장이 이전하면서 실직자들은 단기적으로는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하지만, 장기적 견지에서 조지 서덜랜드의 자식세대는 따분한 공장일로부터 해방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따라서 좀더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멕시코의 노동자들은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다. 헬스넷 사장인 찰스 크로스도 만족하고 조지 서덜랜드도 만족하며(자식세대에게 좋은일이므로) 멕시코 노동자들도 만족하는, 모두가 행복해질만한 결과를 시장이 만들어줄 거라는 샘의 이상주의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서덜랜드 자식세대의 만족할만한 삶이 현실에서 검증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년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장기적 관점 운운할때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양이나 고라니로서는 장기적으로 세계가 어떤식으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느니 하는 얘기따위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라니와 양에게 있어서 단기적관점의 고수는 목숨을 지키는 것과 같은 수준에서 이해되야 한다. 장기적 균형을 위해 단기적으로 위기에 몰리는 이들은 오하이오주의 서덜랜드와 그 밖의 마을 사람들이다. 이렇게 낙오된 이들은 가난하게 생활할 것이고, 소비활동도 별로 안함으로써 인류적 관점에서 봤을때는 상당량의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하든가 많지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하면 인류의 개체수도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되니 전체적 균형을 위해서 얼마나 바람직한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상황을 결코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약자를 보호하고 생명은 소중하다는 도덕법칙을 발명한 순간에 이미 인간세계의 균형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전체의 균형이라는 명목하에 고라니 한 마리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해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제2 제3의 조지 서덜랜드들이 출현했을때 “정말 도움이 될 정책” 운운하면서 이들에 대해 침묵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며, 시장을 견제하고 비판할 것이다. |
| 서울 역 지하도에서 노숙자를 만난 당신은 그를 도우려 한다. 놓여진 방법은 두가지. 현금을 주는 것과 영양제를 주는 것. 영양제를 주는 쪽을 선택했다면 당신은 저자와의 한판, 말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다. 책이 말해주는 것은 자유의 소중함이다. 그리고 저자는 휴머니즘의 근원을 자유로 보고 있다. 물론 이것은 맑스적인 공산주의를 따르는 사람이나, 아나키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절대적인 사항이다. 좀더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파시즘, 전체주의, 중세주의가 지상 낙원을 건설케 할 것이라 생각하는 insanitists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에 있어 자유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책이 주창하는 자유는 위의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방법론 또한 다르다. 나쁘게 말하면 방종을 선호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최선이 되지는 못하지만 차선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뭔가 수상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의심대로 이책은 신자유주의를 설파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괴물 같은 모양새로 이땅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악의 화신에 대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따위쯤으로 치부하지 않길 바란다.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슬슬 저자가 말하는 자유가 뭔지를 들어보자. 왜 영양제가 아닌 현금을 노숙자에게 줘야 하는지. 이유는 한가지다. 노숙자의 자유를 존중하자는 것. 노숙자를 도와주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그 도움을 처분하는 것은 노숙자의 자유다. 더 자세히 말해 영양제로 노숙자의 건강을 돕는다는 알량한 선행은 노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하지만 현금으로 주는 것은 그 노숙자의 자립심 향상에 도움이 된다. 어쩌면 노숙자가 그 돈으로 술이나 사먹을 수 있지만, 우려와는 달리 노숙자는 한푼두푼 그 돈을 모아 다른 일을 꾀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러한 사고의 흐름으로 저자는 자신의 주가 규정하고 있는 안전수칙들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예를 들면 에어백의 필수적인 설치 등과 같은.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몇층 이상의 건물에는 베란다를 설치하는 것에도. 왜? 그것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아니 정부라기보다 똑똑하고 휴머니즘(신자유주의적인 휴머니즘과는 다른)을 가진 정말 잘난 사람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당사자가 합리적인 판단으로 결정할 일인 것이다. 만약 아이가 건물 밖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아이는 위험한 행동에 대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가. 약간의 부상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울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책에는 이외에도 더 많은 사례에 대해 토론을 벌이지만 그 방식이 무척 재미 있다. 지금까지의 딱딱한 경제학 책과는 달리 연애 소설 형식으로 글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책이 독자들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마인드다. 그것은 아마 모든 이성주의에 대한 경고와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담배는 나쁜 것이고, 마리화나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안전벨트는 꼭 매어야 하는 등등의(이렇게 급진적 좌파적인 생각이 급진적 우파에게서 나올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하다면 일독해봄이).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리고 이성주의는 결국 규제와 부패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걱정을 책은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이미 버지니아 학파의 공공선택이론으로 체계화된 바 있다(정부 조직이 얼마나 썩어 있다는 것을 굳이 tv를 통해 확인하는 것보다 직접 군생활을 해보는 것이 나을 듯하다. 우리 부모들은 썩은 조직의 조직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으며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뭐 이런 것쯤이야로 인식). 또한 앞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 차선이라는 것 또한 케인즈주의에 대한 프리드먼의 반박 속에 애덤 스미스 시대보다 훨씬 정교하게 체계화되었다. 책은 기본적으로 자유에 대한 마인드를 이해시키려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여러가지 현상을 애정 소설 형식을 빌려 토론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이슈가 되는 소재들에 대한 논쟁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면,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싶다면 이책 정도는 읽어봐야 옳은 게 아닐까. |
| 원제: The Invisible Heart 저자: Russel Roberts (워싱턴대학 교수, 경제/정부/공공정책 연구) 출판사: Massachusettes Institue of Technology Press, 2001 자유주의 사상, 특히 서구적 자유주의 사상에 관한 한, 내가 읽어본 가장 전달력과 설득력이 높은 책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사회와 공공정책을 바라보고, 인위적인 개입은 언제나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기본 명제를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free lunch)."라는 유명한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말과 함께 풍부한 예화로 풀어내주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에게 큰 효용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는 이제 경영컨설팅에 입문할 사람으로서 내가 제공하게 될 어떠한 실천적 자문의 이면에 담겨져 있는 철학이 지녀야할 성격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효용을 중시하는 경제학적인 관점("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벤담)과 형평을 중시하는 법학적인 관점으로 간명하게 분리해서 살펴볼 수 있게 해준 점도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이것은 지난 학기 동안 내가 고민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현재로서 BA 프로그램을 McKinsey에서 마치고 미국 로스쿨을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 생각할 만한 거리가 되어주었다.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에 대한 종교적 해석의 문제이다. 나는 정신적으로 기독교적인 가치들을 진리라고 믿고 있고, 나의 생활이나 영혼이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사회생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한 가지 화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자유의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근대서구철학이 규정한 자유주의와 내가 종교적, 그리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고민하는 자유의지를 비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특히 인간됨, 인간다움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더욱 즐거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덧붙여, 로맨스 소설의 형태로 이러한 내용을 엮어낼 수 있었다는 점과 책의 말미에 모든 매우 충실한 bibliography를 기록해 독자가 추가적인 학습이나 연구가 가능하도록 한 것 또한 매우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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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수강 중인 [재무관리]의 부교재 중 한 권. 경제학을 쉽게 재미있게 설명한 책 중의 하나다. '샘'과 '로라'라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학'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차근차근 해명한다.
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라기보다 경제철학적인 책이라 말하고 싶다. 그만큼 어떠한 사회 현상을 두고 이것을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매우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을 많이 던진다. 작게는 단순히 경제학을 설명하는 내용이지만 넓게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과 통찰력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정말 우리에게 비춰지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모습엔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고,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면에서도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기업들의 활동을 어떤 시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게 바람직한 것일까. 또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일까. 굳이 돈이 관여되지 않아도 우리들의 활동 대부분은 경제적 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소설에 의하면- 경제학은 돈과 관련된 학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
요즘들어 나도 경제학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된다. 비록 경영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경제학 지식이나 관심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래서 나 역시 단순한 이론이나 그래프같은 경제학적 도구(tool)는 익숙할지언정 경제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경제학의 참된 배경의 이해에는 낯설었던게 사실이다.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일부 서적들을 읽으며 경제학이란게 그렇게 계산적이고 냉정하기만 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경제학,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이고 멋진 학문이다. ㅎㅎ
대학을 다니며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어떠한 학문, 혹은 어떠한 과목이든지 그 수업(학문)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여부는 학생의 개인적 흥미와 호기심은 물론 담당교수의 몫도 크다는 점이다. 즉, 담당교수의 학문에 대한 애정이나 학생들을 존중하는 정도에 따라 아무리 관심없는 학문도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관심 있던 학문도 영 따분한 수업이 되버리기 쉬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수업을 듣는 독고 교수님이나 이 소설을 쓴 러셀 로버츠 같은 분은 최소한 경제학을 사랑하고 그 경제학을 소개하는 열정의 정도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나같이 경제학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던 사람에게까지 경제학의 매력을 가차없이 전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 '보이지 않는 마음'은 책의 내용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매력적인 표현이다. 단순히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만 가지고 유추하지 마시길.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동일한건 아니니까. ^^; 경제학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분명 후회 하지 않을 책이고, 오히려 경제학을 싫어하거나 관심없는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경제학은, 결코 나쁜 학문이 아니랍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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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샘은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경제학은 끊임없이 '공짜점심은 없다'라는 걸 가르쳐 준다. 어떤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을 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해. 후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거야. 나는 공짜점심이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에 감사한다. 결과와 대가가 없는 세상이란 의미 있는 선택이 없는 세상이지. 책임이 없는 삶은 어른으로서의 삶이 아니야. 그것은 동물이나 어린아이나 로봇의 삶이지."
경제학 선생님인 주인공 샘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형태의 경제학 책이다. 이미 주요 유명 미국 대학교에서 교재로도 삼고있는 이 책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경제적인 개념이 밀접하게 와 있고 얼마나 바보스러웠는지도 느끼게 해준다.
경제적인 개념이 있는 당신이라면 꼭 읽어보라. 고집있는 샘과 겨뤄볼 준비가 되어있나? 아니면 그에게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나?
애덤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워싱턴 대학의 교수인 러셀 로버츠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 지금은 국회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유시민 의원은 원래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유명한 글쟁이였다. (한때 시사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기도 했지만) 그가 2002년에 냈던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라는 책 앞부분에 있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유시민이 대학에 입학해서 신입생 때 밥을 남기는 친구에게 뭐라고 핀잔을 주었더니,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그 친구 왈 ‘밥을 남기면 소비가 촉진되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참 경제학에 대한 인상이 안좋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경제학 까페’는 학생운동과 열린우리당으로 이어지는 유시민의 경력 답게 기존 경제학에 대해 ‘경제학적으로’ 딴지를 거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번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마음’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 밀턴 프리드만이 이 책을 칭찬했다는 것을 정면에 내세운 것에서 알 수 있듯, 정반대의 관점에서 그 ‘경제학 까페’를 생각나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상식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 경제학적으로는 상식이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한 비판으로써 쓰여졌던 ‘경제학 까페’와는 달리, 이 ‘보이지 않는 마음’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상식이 경제학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혀 상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독자들은 가난한 이에게 돈을 주기보다 영양제를 주는 것은 그 가난한 이로 하여금 교환의 어려움을 갖도록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NGO들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적재적소에 자원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식의 논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무한한 믿음으로 귀결된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그것들은 ‘생각보다’ 꽤 잘 돌아간다고 주인공은 믿는다. 오히려 시장의 불균형을 제어하고자 개입하는 정부와 법률이 더욱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이 책은 철저히 자유주의적인 노선을 따라간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방식이다. 남녀 고등학교 교사를 전면에 내세운 로맨스 소설의 형식을 빌어 경제학적 논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책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다른 주장을 하는, 그리고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자신의 믿음을 이야기하는데 상당한 각오를 해야만 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적 사고를 가진’ 남자 주인공 샘 고든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유쾌하기까지 하다. 경제학에서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별로 흥미로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이 인간 개개인의 행동양식에 대한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다만 MIT 대학의 교재로 채택되었다고 부제를 ‘MIT 경제학’이라고 이름붙인 한국측 출판사가 보다 편집에 있어 세심하게 신경써주었더라면 훨씬 더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