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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 작가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책을 읽는 독서가나 평론가들에게 뜨거운 화두로 거론되었다. 팟캐스트에서도 다루어진 그 작품을 읽은 많은 이들의 수많은 감상문과 서평들이 여기저기 넘쳤는데 하나같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 지루하고 모호한 내용이라는 말도 종종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난해하지 않고 쉬운 작품은 고전이나 수상작 반열에 들기도 어려운 현실이 되버린 것 같다. 남들이 다 읽는 베스트셀러는 피해가야 한다는 왠지 모를 오기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아무튼 결론은 이 책 역시 쉽지 않았다. 소설은 3개의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이야기는 단순 반복되는 일상, 똑같은 사람들에 지친 십대 중후반의 여주인공들이 각자의 일탈과 자유를 꿈꾸며 무작정 이끌리는 대로 리옹에서 파리행 기차를 타고 떠나거나, 기숙사 탈출을 감행하고, 런던에서 파리로 와 여기저기를 헤매이며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인하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허탈한 공허함과 이방인의 신세가 된 타국에서의 고독함뿐이다. 그녀들은 만나는 사람과 일행들에게 자연스레 섞여들어가려 시도해 보지만 마음 속 깊은 구석엔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괴리감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족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도전의 실패는, 안정된 인생의 길을 보장하는 코스를 안내하는 누군가의 카운셀링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없이 떠도는 삶. 혹은 발길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는 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한편으론 모두의 로망이기도 하다. 감옥과도 같았던 수녀원 기숙사의 금욕적인 생활과 도시의 어느 곳에 있어도 벗어날 수 없는 말발굽 소리는 그녀들을 옥죄는 권태로움과 억압된 자아의 다른 이름이다. 본명을 알수 없는 남자의 애인이 되고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중에 아버지가 남긴 자신의 가방 속에 든 물건을 보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 그것은 과연 우연의 결과일까 아니면 꾹꾹 눌러져 있던 자신의 욕망과 억제된 감정의 분출의 작용으로 예견된 일이었을까.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의 간결하고 무심한 듯 담담한 문체에 그저 홀리듯 빠져들게 된다. 그는 어떠한 주관적인 견해나 생각도 덧붙이지 않고 주인공의 대사과 전후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 그 해석들을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모든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나 행동등을 1인칭화하여 서술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소설을 읽고 난 후의 서평은 언제나 어렵다. 존재론적 사색과 흔적. 스쳐가는 기억, 결핍을 얘기하는 모디아노의 소설은 더욱 그러하다. 책을 덮고 긴 여운과 나만의 생각을 적는 시간이 깊고도 풍부하게 느껴졌던 작품. <신원 미상 여자>를 읽고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통해 그의 세계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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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과거를 잃어버린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을 그리면서 동시에 '인간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 주제를 몽상적인 언어로 다뤘다"는 평을 받았다고 조선일보 기사에서 읽었던 파트릭 모디아노. 비교적 최근에 나온 그의 소설 '신원 미상 여자'는 전작들만큼 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뿌리 깊게 드리워져 있진 않다. 대신 그 시절의 실종된 정체성을 현대에 끌고 온다. 현대라고 해 보았자 항상 그가 즐겨 다루는 1950년대와 60년대의 일상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1부, 2부, 3부로 나뉘어져 있지만 각각 독립된 이야기다. 주인공이 모두 같은 '인생의 시기'를 겪고 있는 젊은 여자들일 뿐이다. 그들은 지금 고등학생 혹은 사회에서 보호받고 있는 나이의 종착점에 이르러 이제 자신의 인생을 홀로 개척해야 할 시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독립의 의지가 현재 구속되고 있다고 느끼는 생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일 뿐인지, 아니면 그 나이에 가져야 하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의지인 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자신'이라고 느낄 수 있는 혹은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모든 의지가 안개 같이 보이는 현실 앞에서 그 의지 자체가 정체성을 잃고 만다.
자신이 독립할 수 있다고 느꼈던 어떤 기회(첫 기회)가 상실될 때, 혹은 그 이전까지 아무 생각없이 자신을 살게 해줄 수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떠날 때, 그런 독립의 의지가 찾아든다. 아니 그 사건들이 그녀에게 독립의 의지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런 의지는 사실상 아무 준비 없이 그저 우연의 힘을 믿고 길을 떠나는 그녀들에게 더욱 불확실한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리를 잃는 자신의 자아만 인식시킬 뿐이다. 독립을 하기 위해 그들은 우연의 안내를 받기를 원한다. 그 우연의 안내는 그들이 우연히 혹은 시간의 우연은 있지만 그들의 연줄을 타고 만난 남자들에게서 나오는데, 첫 두 소설은 성적 관계의 의존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자아의 부름', '자아의 성찰'이라는 철학적 모임에 참가하느냐 아니냐로 그 남자의 관심이 결정된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에 심취했던 그 시절 나는 안개 속의 풍경이라는 그리스 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모디아노의 작품과 그 그리스 영화는 서로 맞닿았고, 그들이 함께 그려내는 '안개 속에 묻히거나 어렴풋이 드러나는 <정처없이 떠돌아서 어딘가에 확실히 위치시킬 수 없는> 모호한 자아의 풍경'은 그 시절의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서양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 독립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한국 학생들은 대학생 때까지 유예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부모님들이 도와주지 않는 서양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대학생 때 취업 공부를 하며 어떻게 보면 (사실은 생존이지만) 자신의 갈 길(사실 경제와 자립의 측면)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그때 나는 나와 같은 출발점에 이른 독일 고등학생과 펜팔을 하며 서로 어떻게 준비하는 지 편지로 쓰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같이 청년 실업이 늘어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자리 따내기가 힘든 지금 이 소설에서 보이는 젊은 여성의 고민은,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우리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준비는 했으나, 그 준비된 것을 갖고 나아갈 길을 모르는 젊은이, 즉 교육에서 준비시키는 것과 막상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다르니 말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놓이면, 어떤 가능성이라도 붙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주인공들이 보였던 그 절박함으로, 모디아노의 소설은 우연을 따라 가고, 그것에서 혹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탐색하듯 글이 이어진다. 물론 결과는 허망하다. 오픈 결말인 것도 아니다. 잠시 위로거리를 찾다가 다시 막연한 현실로 내던져지는 기분이다.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현실의 불안과 시름에서 놓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 나의 프랑스 생활도 마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위로와 같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활을 자세히 보면, 이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각각 이야기의 결말처럼 허망하게 그 챕터가 끝났던 것 같다. - 그렇기 때문에 모디아노의 소설이 진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 소설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우연의 힘에 끌렸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몇 개월간 나는 파리와 리옹, 안시에 마치 갈 것 처럼 호텔과 비행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모디아노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고, 혹시 리옹과 안시에서 그의 원작을 사고 싶을 때 구할 수 있는 서점을 심심삼아 찾아보고 위치와 재고 수까지 파악했다. 그런 와중에 노벨문학상 모디아노가 인기 작가로 등장해 웹에 메인 화면으로 뜨는 그의 소설 리스트를 검색하다가, 그 많은 소설 중에 '어둔 상점들의 거리'와 더불어 이 '신원 미상 여자'가 강력 추천으로 뜬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어렵사리 구했다. 그리고 놀라웠다. 처음 이야기는 리옹, 두 번째 이야기는 안시, 세 번째 이야기는 파리.
리옹은 솔직히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 1부에서 리옹 얘기가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바로 주인공이 파리로 떠나므로. 하지만 그 대도시 리옹에서 내가 아는 구역들만이 다루어졌다 - 안시와 파리는, 안시와 더불어 나오는 안느마스나 제네바, 그 거리 이름과 풍경들이 너무도 익숙했다. 그리고 안시에서 파리로 떠나는 밤기차! 그 기차는 내 인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아름답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안시에서 뭔가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은 파리로 가기를 꿈꾸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기차였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소매치기를 당했다 - 별로 돈이 없어서 잃은 것은 거의 없었고, 단지 내 친구가 만들어준 지갑 잃어버린 것때문에 기차에 있는 모든 쓰레기통을 뒤졌는데, 다행히 카드까지 다 꽂혀진 상태로 찾아내서, 소매치기로 인한 피해는 거의 보지 않았다 - 게다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파리의 그 많은 구역 가운데 내가 살았던 보지라르 거리와 콩방시옹 구역 일대를 언급하고 있다. 나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서 모리옹 가에 간 적이 있었다. 소설 주인공이 끝내 사진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끝내 내 모든 유럽 여행의 기록이 담긴 내 카메라를 찾을 수 없었다 (파리가 마지막 여행지였다). 그래서 파리에서 마치려고 했던 그 여행을 마칠 수가 없었다. 마치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았달까. 하지만 이 소설을 보니 겁부터 든다. 아무 것(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여자는 남자에게 줄 몸밖에 무기로 갖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하지만 남자가 몸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좀 이상하다. 물론 2부의 이야기는 극단적인 상황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 역시도 아주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희망과 모험의 의지를 뿌리채 뽑아내려는 것인가, 그건 달콤한 상상이며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경각시켜 주려는 것인가? 아니, 모디아노에겐 아무 의도도 없다. 그저 보여주는 것뿐이다. 만약 좀 희망을 가질 것이라면, 그것이 전부는 아닐 지도 모를 거라는 희망이다. 나에게는 다른 인생이 선택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아마도 나도 똑같이 그 안개 속에 함몰될 것이라는 것이 '현실'의 가르침일 지는 모르겠다. 결국 관건은 준비와 용기이다. 선택은 그 갈림길에 선 내가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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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씻어 안치고,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고... 밥 먹을 생각에 온 정신을 집중 하며, 리뷰를 쓰다. 배가... 너무 고프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이 요즘 너무 좋다. 세상에...읽고 나서...이렇게 살아가는 교훈이나 메세지가 없는 소설은 살다 살다 처음이다.
좋은 책 이후의 임팩트는, 내 가치관을 한 번 뒤집거나, 아니면 커다른 이미지가되어 남거나, 교훈은 아니더라도 뭔가가 마음속에 콱 쑤셔 박히는 느낌이였는데, 모디아노의 글은 물을 많이 섞어서 그린 채색화처럼, 뭐랄까... 선명하지 아니하고...옅은 바람이나, 새벽녂의 안개같은 밍숭 밍숭하면서도...사람을 붕~ 뜨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요 근래 프랑스 작가의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나오는 거리 곳곳을 빠리 지도를 펼쳐 놓고 다시 한 번 씩 확인해 보곤 했다. '황금 물고기'를 통해서 더러운 빠리 지하철을 상상했다면... 모디아노의 글을 읽으면서는, 쓸쓸한 빠리의 거리에서 그녀를 쫓아 가는 낯선 구경꾼의 입장에서 읽었다.
18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단 편 3개로 이루어져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나는 이 사람의 작품을 몇 개만 더 읽어봐야겠다.
ps.그나저나, 제목은 왜 저따위로 번역해놓고, 표지는 '천년여왕'처럼 만들어 놨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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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교를 탈출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탈출한 아이들을 언제나 부러워 했다.
봉고차를 차고 학교에 등교했는데, 혹시나 그때 내가 봉고를 타지 않고 학교 반대편 버스를 타게 되었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기사 아저씨가 마음을 바꿔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 지곤 한다.
이 책 또한, 내 일탈 소망처럼 신원이 불분명한 세 명의 여자들의 일탈과 방황, 좌절을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여성은 모델 오디션에서 떨어진 기억으로 아파하다가 파리행 밤기차를 끊어 일탈을 시도한다. 두번째 여성은 감옥 같은 안시의 기숙사에서 탈출을 꿈꾸다 기숙사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세번째 여성은 런던에서 파리로 온 여성인데 음울한 도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다가 까페에서 우연히 철학 교사를 알게되 ''자아의 부름''이라는 가르침으로 그녀를 탈출시키려고 한다.
이런 일탈 뒤에는 자유가 기다리고 있는 걸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이 책 제목 신원 미상 여자 처럼 그녀들의 일탈 뒤는 신원 미상 처리가 되어버렸으니까.. 결국 그녀들은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물론이지.... 나를 기라고 불러도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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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오면서 이 소설 속의 세 여자들처럼 생각하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새삼스럽게 그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나에게, 이 소설 속의 세 여자 중 어느 한 사람과 같은 삶이 주어졌다면, 나는 과연 시간을 삶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쉽게 장담할 수가 없다.
블로그 이웃인 '행복한 왕자'님 덕분에 이 작가의 이름과 소설을 알게 되었고, 권유로 읽어보게 되었는데, 그게 참 묘했다. 권하는 사람의 영향력이 내 개인에게 클 경우에는 작품 자체보다 이 작품을 권한 사람에 대해 더 탐구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이 글 어느 대목이, 이 소설 주인공의 어떤 삶이, 권할 만큼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일까 하고.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 내가 즐겨 읽어왔던 소설의 부류와는 다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프랑스 소설 특유의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외국 소설 중에서는 미국이나 캐나다 소설을 좋아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도 그러했지만 이 소설 역시 전체적인 분위기만큼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가라앉아 있다. 내가 가라앉은 소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젊으나 우울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젊었을 때는 그래도 희망이 더 강했다고 기억되는데, 요즘 같은 때에는 절망을 느끼는 젊은 영혼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사는 게 더 고달파진 것이겠지. 1960년대의 프랑스 사회 분위기를 2010년을 앞둔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닮아버린 것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 신원미상 여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이는 소설이라 하더라도 소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만 혹은 나만 우울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 이게 위로가 되는 말일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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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여기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막 십대를 졸업하게 된 열여덟의 금발머리 여자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열여섯의 갈색 머리 소녀와 실연을 당하고 낯선 도시에서 고독을 느끼며 외로워하는 좀 더 성숙한 여인이.
이들은 모두 떠난다. 금발머리 여자는 모델이 될 수 없음에 좌절하고 무작정 파리로 떠나와서 한 남자를 만나지만 그 만남은 정체불명의 남자와의 한 달 간의 만남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뒤로 오래도록 그 시간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이제 그녀는 신원 미상의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처럼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열여섯에 수녀원 기숙학교를 과감히 떠나 자립을 선택한 소녀는 고단한 나날을 보낸다. 사람들은 그녀가 잘될 거라고 말을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잘 되지 않는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두려움 가득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외로운 소녀의 고단한 삶은 자신을 찾을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다. 다만 과감한 결단력만을 가르쳤을 뿐이다. 말발굽소리를 싫어하던 여인은 좀 더 남아 있기로 한다. 아직 더 있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역시 좀 더 나이를 먹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여유를 갖게 되는 모양이다. 자아 찾기라... 과연 그들의 자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마치 가족이, 사회가 이들을 세상에 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느낌을 갖게 한다. 버려진 사람에게는 보호가 되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평생 찾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울타리가 있는 사람이든, 울타리가 없는 사람이든 찾지 못하면 절대 찾지 못하는 법이다.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사라지고 싶습니다. 떠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저를 안아주세요. 나를 좀 바라봐 주세요. 하는 것 같은 그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고 고단한 세상 어디에나 있을 신원 미상의 여자들이 지금 구원의 손길을 뻗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이들은 신원 미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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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문체로 인해 더디게 읽혀졌다. 성(性)은 존재하지만 신원은 제대로 알 수 없는 여자 세 명의 이야기가 한 편씩 나열돼 있는데, 기억나는 부분이 몇 없다. 세 가지의 다른 시선이 온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해설평을 봐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확 와닿지 않는 책이다. 제목은 되게 끌렸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