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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의 연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서로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에게는 낭만적인 설레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간절했던 마음은 즐겁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눈앞의 연인을 두고서도 마음은 뇌 속의 연인 때문에 몸살을 앓습니다. 뇌 속의 연인이라고 해서 다른 이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걱정거리를 말합니다. 이러한 뇌 속의 연인으로 딴 생각을 하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마음이 답답한 미로를 헤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일본의 젊은 주지스님 코이케 류노스케는『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사고병(思考病) 즉 생각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인간은 불필요한 생각 때문에 ‘무지(無知)’한 딜레마에 빠진다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과식(過食)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스스로를 가볍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생각의 잡음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맙니다. 결국에는 번뇌에 때문에 『법구경』에 나오는 ‘사라목’(紗羅木)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즉, ‘조금도 마음을 조절 안하는 사람은 원수가 바라고 원하는 일을 자기에게 해버리고 자멸한다. 넝쿨풀에 휘감겨 고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기본 번뇌가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바로 탐욕, 분노, 어리석음입니다. 탐욕은 어떤 것에 대해 좀 더 좀 더 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충동에너지입니다. 반면에 분노는 어떤 것에 대해 하고 싶지 않다, 라는 반발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은 앞서 말한 생각병처럼 눈앞의 것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자극을 구하려는 마음의 충동에너지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 번뇌가 생각을 많이 하게 하여 뇌를 분주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병에게 생각은 악업(惡業)에 불과합니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일체유심조라고 하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마음이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각병이 문제시되는 것은 나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마음은 우리를 무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돌려야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휴뇌법’(休腦法)은 생각의 잡음으로 인한 무디어지는 감각을 치유해주고 있습니다. 휴뇌법은 뇌 그 자체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휴뇌법을 통해 스님은 마음속에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생각에 대한 깨달음이며 미음의 작용을 바꾸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쓸데없는 생각의 깨달음을 염력(念力)이라고 합니다. 염력이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알아차린 뒤에 마음의 작용을 바꾸는 힘을 ‘정력’(定力)이라고 합니다. 이 힘을 집중력이라고 하는데 의식을 조절해 하나의 장소에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감(五感)이 분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면 어지러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 생각은 나중에 하고 먼저 오감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오감이란 눈, 코, 귀, 혀, 몸을 말하며 외부의 자극을 인식하는 통로입니다. 이러한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나(我)의 정체 즉 이것이 나다’라는 것입니다. 가령, 청각에 있어 ‘들린다’와 ‘듣는다’의 차이는 수동적 상태와 능동적 상태와 연결됩니다. 수동적 상태가 실념(失念:정념을 잃음)이라고 한다면 능동적 사태는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능동적 상태에서 우리는 생각의 잡음에 방해 받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에 비 오는 소리나 물 떨어지는 소리에 대한 감수성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오감을 살펴보면 촉각은 주목할 만했습니다. 우리는 ‘가려우니까 긁는다’를 스스럼없이 합니다. 가려운데 긁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것이 마음의 불안만 키우게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자는 가렵다, 라는 외적인 요인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긁는다는 것이 유쾌할 수 있으나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가렵다’ 라는 촉감에 집중하면서 가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삶의 명상에서 얻어지는 ‘휴뇌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휴뇌법은 삶의 거대한 행복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휴뇌법이 곧 명상이라는 굴레 때문에 오히려 현실 도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을 보면 일에 시달리면서 바쁘게 삽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을 느리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번뇌를 만듭니다. 그래서 저자는 명상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고 역설했습니다. 우리가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관찰을 하면서 ‘무명’(無明: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혼란한 상태)에 빠진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삶의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금 ‘생각병’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은 큰 울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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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실패하는 원인은 대부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을 우리는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마음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하여 내달리는 특징이 있으며, 부정적인 사고는 뇌에 더 강한 자극을 주게 되어 이것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생각 버리기 훈련법이란 오감을 갈고 닦아 실제적인 감각을 강화하여 생각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우리들이 사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어떻게 하면 비울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 선문집 비슷한 책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고난 지금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생각들이 무엇이고 왜 비워야 하는지를 알려준 것은 맞았고,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자기계발 서적인줄은 몰랐다. 저자는 생각을 병(病)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무지(無知)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얻고 있는 정보와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속의 충동에너지가 번뇌라고 한다. 또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 번뇌 세가지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이며, 탐욕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에 대해 좀더.., 좀더.. 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충동에너지를 말하고, 분노는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반발하는 충동에너지라고 한다. 또한 어리석음은 눈앞의 것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자극을 구하려는 마음의 충동에너지를 말하며, 우리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사고병, 생각병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쓸데없는 생각이 마음속을 채우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지켜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감각에 대해 수동적이기 보다는, 들린다를 듣다로 바꾸고, 보인다를 보다로 바꾸는,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의 잡음에 방해 받지 않고, 그 순간의 정보를 확실히 인지할수 있게 된다고 한다. 눈, 코, 귀, 혀, 몸의 오감(五感)에 의(意)를 더하여 육문(六門)이라 하며 이것이 외부의 자극을 인식하는 통로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팔정도(八正道)라 하여 사람이 바르게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할 여덟가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정사유(正思惟;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正命;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기), 정정진(正精進; 마음을 정화시키기), 정정(正定; 집중하기), 정념(正念; 마음의 센서닦기), 정견(正見; 깨닫기)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런 사고병, 생각병에서 우리들이 벗어나기 위하여는 몸과 마음을 우리들이 조종할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짜증과 불안을 없애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연습의 첫번째로 말하기를 들고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은 자극과 압력과 그것에 대한 생각의 자동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언어사용의 실패는 이런 반응과정에 대한 조절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은 탐욕이라는 번뇌가 클수록 우리는 큰 목소리로 빨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것은 상대방에게 분노의 번뇌를 불러일으켜 동의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야기 할 때 항상 자기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 그리고 자기 감정을 응시해보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자신의 목소리에 의식을 집중하기만 하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따옴표로 묶어내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또 듣기와 보기 연습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큰소리를 듣게 되면 분노의 자극이 커지지만, 그러나 자극이 약한 소리에는 집중하지를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세한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변의 소리 각각에 미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할수 있게 되며, 그렇지 않으면 듣기 싫은 소리는 안들을려고 딴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타인의 소리를 들을 때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소리에 즉시 반응하는 패턴에서 빠져나오면 평상심을 유지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보는것 또한 마찬가지라고 한다. 자극이 강한 영상은 번뇌를 키우기 쉬우며,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는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자아 혹은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최소한 적게 보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자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쓰기와 읽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메일이나 블로그에 우리는 매일같이 많은 글들을 쓰고 있으며, 또 타인의 그것들에서 많은 것을 읽는다고 한다. 이러한 쓰기와 읽기를 저자는 타인에게 받아 들여지고 싶다는 욕구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욕구가 고통을 부르고, 번뇌는 구하면 구할수록 커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만이 읽을수 있는 일기가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글은 자기자신을 바로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진정한 자아를 왜곡시킬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먹기, 버리기, 접촉하기 등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마음속에 번뇌를 가지게 되는지, 또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들은 대부분 생각이 제멋대로 달리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지나치게 많이 생각한 나머지 결국은 생각 자체가 혼란스러워 진다고 한다. 저자는 생각버리기 연습을 통하여 충전의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예리함과 명철함으로 가득찬 새로운 사고의 세계로 들어설수 있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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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귀퉁이에 자리를 내고 있던 철쭉 꽃봉오리가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 새 선연한 핏빛 꽃 한 송이가 피어 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섰음을 알리고 있다. 꽃샘추위가 물러난 자리에는 푸른 잎이 뾰족 내밀고 새롭게 깨어나는 이른 봄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자리에 누웠다 하면 금세 잠이 들어 새벽이 가까워서야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지 못하여 미안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새벽까지 깨어 있기 일쑤다. 고3 수험생인 딸에게는 자신의 인생이니 스스로 알아서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딸에 대한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딸을 기다려야 하는 고통보다는 여러 생각이 자꾸만 일어나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 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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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마치 무거운 추를 달고 물속으로 자꾸만 깊게... 더 깊게 빠져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음이 몹시 무겁고 언짢았던 기억이 있다. 이성을 마비시킬만한 격렬한 스트레스와 지칠대로 지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피로가 몰려들었었다. 극심한 자괴감과 함께 도망칠 수도 숨을 곳도 없이 그야말로 '화병'이 나기 일보직전이었달까?
그때, 그 당시 가장 유명세를 탔다고 할 수 있는, 초 베스트셀러라 칭해지는 이 책을 만났다. '생각 버리기 연습'이란 제목과 표지의 눈을 감고 버스의 벽에 기댄 스님의 사진이 어딘지 묘하게 편해보였다. 아마도 저렇게 쉬어가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당장이라도 읽어버릴 것만 같았던 책이었지만 바빴던 건지, 아님 나를 괴롭혔던 감정이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렸던 건지 책장에 꽂아놓은 채 그렇게 몇년을 바라보기만 한 책이었다. 그러다 이와 비슷한 다른 책을 몇번 읽고 나서야 난 간신히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살아가는데 있어 위로와 위안이 가득한 말들이 담겨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도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살짝 어긋났다. 정말 저자가 칭한 '생각병'을 버리기 위한 연습과도 같은 말들이 나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법(짜증과 불안을 없애는 연습)이 몇가지 나와있는데 이게 바로 마인드 컨트롤이 아닌가 싶다. 마인드 컨트롤이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용어인데 대강의 뜻은 '마음을 다스린다'로 풀이할 수 있다.
말하기
크게 이렇게 구분지어놓고선 하나 하나 선생님이 제자를 가르치듯 이런저런 말들을 일러준다. 자신이 겪은 체험담이라기 보단 수행담이 조금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이러한 상황에선 이러저러하게 행하는 것이 더 낫다던가,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줄을 길게 서야할 때, 혹은 차가 제 시간에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을 조바심을 내다못해 화까지 내게 되는데 이때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인해 자기자신을 괴롭히거나 그런 걸로 마음(혹은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게 훨씬 자기자신에게 여러모로 좋다는 것이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감정들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잘 알면서도 어려워 하는 게 바로 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명상서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자기계발서라고 하기엔 더더욱 어중간한 글인데 '생각병'이란 것과 '생각 버리기 연습'이 무얼 뜻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연습을 스스로 하게끔 해야하는데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면 돼...라고 마치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이상한 걸까?
이와 비슷한 글은 쉽게 읽히고 받아들여지기 마련인데... 왠지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그건 비슷한 글들을 많이 접해서 그런 걸수도 있고 몇년 동안 미뤄왔던 책이었기에 더 그랬던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인터넷과 블로그의 글쓰기에 관한 글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고 부록처럼 나온 이케가야 유우지라는 뇌과학자와의 '뇌와 마음의 신비로운 관계'에 관한 대담은 신선함과 호기심을 가져다주어서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분명한 건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이란 걸 하기에 괴로워도 하고 슬퍼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을 버린다기보단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준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
이렇게 자기 자신을 온갖 부정적이고 괴로운 생각들로부터 끊임없이 위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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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어리석음, 불교용어론 無明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이다. "무지는 교양이 없다든가 머리가 나쁘다는 듯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의 의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사고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의 일부를 혹사하며 생각을 많이 할수록 신체와 마음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알기 어려워지고, 무지해진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같은 얼굴이군, 지루해...'라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개념과 망상만 쌓이게 되고, 현실과 의식의 실제 흐름에 무지하게 된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왜 문제인가? 무지는 번뇌의 원인이고 번뇌는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무슨말인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오랜 친구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스트레스 두가지가 있다. 금속이 자주 구부러지고 휘면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부러지듯이 육체도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스트레스는 정신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적 스트레스는 욕심(탐)과 분노(치) 때문이다. 무엇이 갖고 싶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교에서 욕심과 분노를 무지와 함께 3독이라 하는 이유는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고 우리를 피곤하게 하며 괴롭게 하기 때문이다.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되도 갖지 못해도 번뇌가 일어난다. 욕심 나는 것을 가져도 더 갖고 싶고 못 가지게 되면 분노가 일어난다. 그러나 욕심내는 마음 자체가 어리석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고 괴롭지 않아도 되는데 괴롭게 되니 문제인 것이다. 인생은 괴롭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 문제이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불쾌해지면 '이런 말은 듣기 싫다'라는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도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긴장하는 것도 원인은 모두 하나이다. 바로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연료가 되어 타오르는 충동이다. 분노의 어두운 번뇌 에너지가 증폭되면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화낼 일에는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대부분 분노할 것이 아닌 것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원인은 우리 자신의 망상 때문이다. '이 일을 실패하면 어쩌지?'라든가 '실패해서 저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어쩌지?'하는 잡념이 연쇄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며 마음속에 들끓게 되고 마음의 메인 메모리는 헛된 잡념으로 가득찬다. 1초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커뮤니케이션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상대가 자신을 희생향 삼아 쾌락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대의 말소리라는 정보에 의식을 집중하면 상대가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것이 고통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망상을 멈추고 자비심에 가까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반사적으로 분노를 품게 된다. 그러나 무시당했다고 부당한 이유라고 괴롭힐려 그런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터트리기 전에 상대가 왜 분노하는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같은 불평을 도대체 몇번이나 되풀이하는 거야. 이 사람 나한테 스트레스를 풀고 있군!'하고 화를 내며 스스로의 고통을 더한다. 그러나 사실 불평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풀기는 커녕 호릅이 얕아지고 표정이 굳고 목소리가 불쾌하게 올라가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상대의 고통을 본다면 화를 내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이며 거창한 말이 아니다. 우리의 스트레스는 대개 이런 식이다. 스스로의 생각에 잡념에 휘둘려 분노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는 여유가 있다면 분노를 터트릴 이유가 없는 것.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간단하다. 우리를 휘두르려 하는 잡념을 줄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잡념을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만일 화가 치민다고 생각되면, 이 '화가 치민다'를 따옴표로 묶어버린다. 그 다음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 나는 '화가 치님다'고 행각다...'라고 되풀이 하며 마음속으로 외우타시피 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화가 치민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책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불교 명상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짐작하겠지만 이상의 내용은 '알아차림(mindfulness)'를 일상생활의 맥락에 적용한 내용이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음의 인용을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집중이 잘 안된다면 촉감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보통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럴 때쯤 의자 바닥과 접하고 있는 엉덩이의 감각, 등에서 배에 이르는 감각, 신체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감각에 지긋이 의식을 집중해 본다. 의식이 그런 촉감을 향하도록 하면 떨어진 집중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알아차림은 불교수행의 가장 기초이며 끝이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眞如)를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인가? 이책처럼 말한다면 잡념으로 염색되기 전, 현상을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위에서 상대가 화낸다고 같이 따라 화내기 전에, 상대의 분노라는 입력에 나의 분노를 염색하기 전에 그 입력을 그대로 본다면 있는 그대로 상대의 고통이 보일 것이고 분노를 터트릴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처럼 말이다. 이책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잡념, 즉 번뇌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위에서 든 예처럼 구체적인 맥락에서 여러가지를 말한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쓰는 것, 맛보는 것, 등 우리의 오감에서 들어오는 자극은 언제나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야만 의식될 수 있다(현상학의 지향성 개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부여된 의미에 의해 우리가 부여한 의미에 의해 번뇌에 시달리고 번뇌는 괴로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감각자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불수는 없다) 반성할 수 있다. 그것이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 의미를 넘어 있는 그대로를,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事象 자체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일상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책은 보여준다. 그리고 단순히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와닿게 아하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쉽게 쓰여졌다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행복은 멀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런 지극히 일상적인 실천에서 작은 실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책의 매력이다. 평점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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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속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항목이 있다. 하나는 '책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베스트셀러'이다. 매력적인 책 제목에 속아 책값을 낭비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또한 베스트셀러라고 무작정 구입했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책 선택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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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책을 다 읽고나서야 난 이 책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한눈에 쉽게 들어오는 제목. 불필요한 잡생각들로 가득찬 내머리를 식혀줄수 있을거같은 느낌..이 책을 읽으면 내 머리를 좀 쉬게 해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생각을 않하게 해주는 책이 아니라, 단지 연습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책일뿐이었다.. '생각 버리기'에만 내 신경은 가있었고, 자연적으로 '연습'이란 이 단어는 까맣게 잊은것이다. 쉽게 읽으려고, 머리를 식히려는 해결책으로 이책을 짚어들면 나처럼 뒷통수 맞는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연습을 하라는 저자 덕분에 내 머리속에는 더 생각이 많아졌으니까 말이다.
내 초반 판단착오로 인해 중반까지 읽고는 손에서 놔버렸다가 어제,오늘 다시 짚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을때는 중단했을때의 반감은 어느정도 배제하고 읽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 망각했던 연습이라는 단어에 중점을 두고 읽어서인지 처음보다는 다소 더 몰입을 하며 읽을수는 있었다.
저자가 스님이라서인지 책의 내용은 불교적 관점에 따라서 서술되어있다. 우리의 수많은 번뇌중 제일 기본이 되는것이 분노,탐욕, 어리석음이라 말하고 자신의 끊임없는 욕심과 같은것들을 만이라든지 하는 용어로 설명해주고 있는데,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수많은 번뇌에 따라 어찌 행동하고 판단해야할지 불교사상에 기초하는 바른 행동양식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허나, 이 책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제약이 너무나 많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번뇌를 제시해면서 이렇게 하지마라 저렇게는 하지 않는게 좋다라고 얘기하는데 내관점에서는 하나같이 수행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 이상은 온전히 지켜내기는 힘들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TV를 볼때 예능프로를 즐겨보는 이유는 현실에서 받은 강한 스트레스를 보다 강한 자극으로 잊기 위함이라고 한다. 요즘 코미디프로의 대다수가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적인 성향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남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우리는 즐거워 하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코미디프로같은것은 보지않는게 좋다고 말하고있고, 또한 뉴스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건사고들로 인해 그것을 보는 우리들은 때로는 화내고 때로는 짜증도 낸다. 그렇기에 그런 자극이 있는 프로그램은 웬만하면 보지 않는게 낫고 봐야한다면 아주 가끔씩 접하라고 말하고있다. 거의 모든것이 이런 맥락이다. '되도록이면...되도록이면...' 무엇이든지 적당히 하는게 가장 좋다는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거다. 다만, 그것을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
항상 말할때, 볼때, 들을때 등.. 한발 물러서서 자기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화를 내려 할때, 먼저 마음속을 귀기울여 들여다본다. 지금 난 화가났다. 이 상태로 지금 내앞에 있는 상대방과 대화한다면 내 화난 마음을 고스란히 쏟아붓게 되고 과격해지겠지? 그렇게 말하면 저 사람은 나때문에 또 화가 날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 이기분을 내가 하려는 말을 조금 더 생각해보고 스스로 먼저 화를 다스려보자. 무턱대고 화를 표출하기보다는 항상 그 뒤를 생각해야한다. 스스로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후에 오게 될 파장을...자신은 화를 못이겨 더 큰 화를 낼테고 그것이 풀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기분이 좋지 못할것이다. 이것은 비단 화가 났을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생활속에서 조금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고,느끼고,말하고,행동하라고 한다. 끊임없는 연습인것이다. 자신의 입에서 말이 나가기전에도, 눈에 보이는 것에도 그 자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리에도 예를 들어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서 싫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소리 본연에만 집중한다. 지금 저 소리가 시끄럽군, 그런데 저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지? 그리고 왜 저런 소리가 나는걸까..저 소리로 인해 지금은 조금 괴롭지만 곧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한다던지?
사실, 당장 이런식으로 행동하는것은 웬만한 현인이 아니고서야 어렵기도 하고 짜증도 날것이다. 그러고는 에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잖아? 라고 짚어쳐버릴지도 모른다. 어차피 자기계발 서적이라는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보고 수용할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히 아웃시켜 버리면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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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계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였던 책. 무슨 내용일지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변역되어 나왔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쓸데없는 잡생각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 속에서 살고있다. 많이 생각을 하면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머릿속만 복잡해지고 잘되던 일도 꼬이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머리를 가볍게 해주는 책 한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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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람들에 비해 현대인들은 항상 많은 생각 속에 살아간다. 예전 사람들은 1차 산업이라는 단순 노동 속에 다양한 상황 속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나 고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 속에 사람들은 그 때보다 몇 배의 규모가 되는 인구 속에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 철학자들이나 했을 법한 고민들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현장 속에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은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가끔은 하도 많은 생각을 해 방금 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생각을 깊게 해 자기 발전을 이루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번잡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생각이 없는 것만 못하다. 빠르게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해서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다 판단이 늦어져 실수를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대화 중 필요 이상의 말을 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머릿속의 번잡한 생각은 우리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 여러모로 갉아 먹는다.
저자는 이를 생각의 잡음으로 말한다. 언뜻 보면 머리를 비우라는 듯 보이지만 그는 우리에게 생각을 줄이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성숙시키기를 요구한다. 저자의 글에는 관계성 속에서 생각 버리기와 연습과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가지치기 훈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일상 속 위기 상황 혹은 아주 평범한 일과에 놓였을 때 어떻게 지혜롭게 그 상황에서 대처할 것인가에 중요한 핵심이 있다. 여기서 생각 버리기는 우리 머릿속에 일어나는 많은 생각들을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갈무리해서 내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로 쓸데없는 생각들을 깔끔하게 자르고 다듬어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말하고 듣고 보고 쓰고 읽고 먹고 버리고 접촉하며 자신을 기르는 훈련에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영적으로 키울 수 있는 훈련을 세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일정 부분 한계가 보인다. 물론 그의 말대로 한다면 우리가 접하는 상황이 보다 따뜻하고 평화롭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정신 건강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 상황이 그리 녹록치가 않다. 물론 현실을 핑계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부딪힘 혹은 현장 상황을 저자는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의 특수 신분, 즉 종교인으로서 세상을 바랄 볼 때 어쩔 수 없이 볼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불교에 몸담고 계신 분들은 답답하고 부정적인 속세를 벗어나 그 길을 택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저자 역시 그 부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라는 특수적 상황에서 자신이 겪을 수 있고 수행하며 다듬을 수 있는 것이 현실 상황 속에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자기 자신의 욕망과 번뇌를 버리고 훈련하는 모습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일반 사람들은 그런 수행자가 아니다. 이 작업은 내가 생각 했을 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모든 대중을 대상으로 성급하게 자기 생각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려고 하는 저자의 모습에 못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비단 저자 뿐 아니라, 여러 종교에 몸담고 있는 여러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을 깨달았는지 몰라도 세상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는 삶에 적용시키고 배울 점이 많다. 특히 늘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나로서는 그가 제시해 놓은 의견에 마음이 많이 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 혹은 전혀 중요치 않은 여러 가지 번잡함이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닌다. 그 순간이 정말 괴로울 때가 한 순간이 아니다. 특히 심각하게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여러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 올라 곤욕을 겪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가끔 내가 지닌 이런 점이 화가 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독서를 할 때도 보다 집중해서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렸만 항상 두둥실 떠다니는 생각들 때문에 한 가지 책을 끈기 있게 계속 읽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도 너무 깊게 생각을 해 낭패를 본 적도 꽤 있다. 그런 면에 있어 저자의 지혜로운 내용은 나를 깨닫게 하는 소리로 들린다. 단순하면서 깊은 생각을 하는 훈련을 해야겠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맑게 정화시켜 나 자신을 대하고 삶을 살아야겠다.
내게는 작은 지병이 하나 있다. 바로 두통이다. 내가 그런 과정을 어느 정도 이루면 이 두통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 때까지 열심히 생각 버리기 연습을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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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잔잔한 책을 읽은것 같다. 생각을 버리고 뇌를 휴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 좀처럼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잠시라도 뇌를 놀리지 않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각광받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써야 하며, 얼마나 같은 시간동안 효과적으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버리고 눈으로 보고 만지고 듣는데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때 우리 뇌는 쉴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천해보자.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으로 이동할때도 단순히 얼마나 왔고 얼마나 남았구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C라는 위치가 A에서는 어떻게 보이고 C를 지날때는 어떻게 보이고 C를 지나고 나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서울타워가, 63빌딩이 가까운 곳에 있을때, 그리고 먼 곳에 있을때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눈으로 확인해보자. 아니, 말이 틀렸다. '보이는지'같은 수동적 어휘가 아니라 스스로 보고, 들리는게 아니라 스스로 듣고, 촉각 또한 능동적으로 받아들여보자.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을때 어떠한 느낌인가. 공중화장실의 냄새가 불쾌하다면 냄새를 객관화 시키면 된다. 이 냄새의 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뇌에서 이 냄새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는 과정을 수행하지 않도록 차단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뇌를 휴식시키면 불쾌한 느낌이 생겨날리가 없을 것이다. 좀 어렵긴 하겠지만.
내가 기분이 좋으면 옆집 사람들이 떠들어도 활기차 보이고 내가 기분이 나쁘면 그 소리가 싸우는 것처럼 들릴 것이다. 작게는 내 목소리를 관찰하여 차분한 느낌을 전달하도록 톤이나 빠르기를 조정해볼 필요가 있으며 크게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 저자는 이메일을 쓸때도 진심을 담아서 쓰되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상상이나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구또한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답장을 기다리셨을텐데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 안기다렸으면 어쩔건데?라는 반응을, 끝머리에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등을 붙여 놓는다면 진심이 느껴지겠냐는것. 이런 논리라면 처음보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여쭙는것 또한 당신이 나를 뭘 안다고 내가 지금 안녕한지를 알려줘야 한단 말인가. 안녕안하면 어쩔건데? 어짜피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이어서 써놓았으면서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이런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면 내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느끼고 불가피한 생각을 생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좋게느낄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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