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잘 나갈 때는 사내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씩 같이 영화를 찍고픈 사람이기도 했고,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여배우였지만, 소피아 로렌은 내게는 그리 당기지 않은 사람이다. 요즈음의 안젤리나 졸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태어난 나라가 이탈리아와 미국으로 다를 뿐.
174센티미터나 되는 늘씬한 키에다 큰 가슴이 드러나는 몸매에 두툼하면서도 큰 입술을 보면,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얼굴이나 몸매로 먹고 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감독을 잘 만나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영화를 남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1970년에 찍은 영화 <해바라기 I girasoli / Sunflower>에서다. 텔리비전으로 보면서 소피아 로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배우들의 솜씨를 끌어내는 건 감독 몫인가 보다.
뒤늦게 보았지만,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이 1960년에 만든 <두 여인 La ciociara / Two Women>도 소피아 로렌의 연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나온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내들이 벌인 싸움은 얻는 것 없이 힘없는 아낙네들을 괴롭힐 뿐이다.
2. 로마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세시라(소피아 로렌)의 삶은 첫 단추부터 꼬였다. 하루 한 끼밖에 먹을 수 없는 산골에서 태어났으니, 로마에서 제 때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 늙은 사내와 같이 살기로 했다.
옆지기는 죽고 이젠 열세 살인 딸 로세타만 곁에 있는 로마는 무섭다. 날마다 연합군의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고 있어 목숨을 잃을 판이다. 그러니 로마를 떠나야 한다.
산 넘고 물 건너 세시라가 태어난 땅인 산골로 찾아가지만,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러시아나 영국, 도이칠란트 군인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린 딸을 지키며 살아가야만 하는 세시라한테는 하루 하루가 고단하기 짝이 없다. 피난온 사람들이 많아 잠자리도 모자라고 먹을 것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젊은 미셀(장 폴 벨몽도)이 있어 견딜만 하다. "우리는 모두 돼지죠...세상 모든 것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은 없어요..." 세시라보다 나이가 적은 스물다섯 살의 미셀이라 마음은 가지만 세시라가 다가서지는 못한다.
무솔리니가 물러나고 이제 싸움이 끝나고 있어 세시라는 하루 빨리 로마로 돌아가려 한다. 올 때보다 갈 때가 더 쉬울 것 같은데, 세상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 듯 쉽지 않다. 게다가 젊은 아낙네가 어린 딸을 데리고 사내들이 총 들고 설치는 곳을 지나치려면.
3. 영화에 나오는 사내들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사람의 탈만 썼을 뿐. 그래서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얻는 것 없는 싸움을 벌였는지도 모르지만.
로마의 집과 가게를 사달라고 찾아간, 옆지기의 벗인 지오반니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당신 옆지기는 멍청한 놈이었어..." 하며, 세시라를 어떻게 해보려고 안달이다.
비록 부서졌다 하더라도 성당 안인데도 모로코 군인들은 세시라와 로세타를 가만 두려 하지 않는다. 제가 살던 곳을 떠나면, 아랫도리를 한동안 쓰지 않으면, 사내들은 다 짐승이 되는가?
제 나라로 돌아가려고 길을 가르쳐달라고 하면서 억지로 미셀을 데리고 간 도이칠란트 군인들은 미셀같은 아들을 기다리는 어버이 마음을 모르는 짐승들이 되어버리는지...
4. 제 새끼를 지키려 온몸으로 맞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피아 로렌은 이 영화에 나올 때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억센 엄마 노릇을 잘 보여준다. 엄청난 일을 겪고 헤매는 딸의 마음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애쓰는 세시라의 모습을 볼 때는 '뭐 저런 사내 놈들이 다 있어...' 하는 생각에 성이 나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서도 고향을 바삐 떠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무리가 잘 된 다음에 떠날 것이지, 왜 그렇게 바쁘게 가서 몹쓸 짓을 겪는지...
흑백 영화이고 디브이디 화면이나 소리는 그저 그렇다. 영화 아래에 나오는 우리말도 반듯하지 못하고 떨린 글씨로 나온다. 오래된 영화라 예고편을 비롯한 보너스는 아예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디브이디 값으로 매긴 14,000원은 싼 게 아니다.
예스24나 디브이디 껍데기에는 이 영화가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것으로 나와 있으나, 루이스 브뉘엘 감독이 만든 <비리디아나 Viridiana>와 헨리 콜피 감독이 만든 <오랜 부재 Une aussi longue absence>가 같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탔고, 이 영화는 후보에만 올랐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