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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그림형제/김양이 인디고/2021.1.25.
동화는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이야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나이든 어른이 읽어도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많다. 첫째, 어렸을 때의 추억을 소환하여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둘째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던 의미를 깨닫게 되어 인생을 다시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셋째,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상상력과 희망을 다시 되새기고 현실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백설공주>는 그림동화로 널리 알려진 동화다. 저자는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 형제로 형은 야콥 그림이고 동생은 빌렐름 그림이다. 그들이 게르만 언어학의 연구, 그리고 독일의 옛이야기와 전설의 수집으로 전환한 계기는 낭만파 문학에 의하여 촉발된 향토적 거민적인 것에 대한 깊은 애정에 기인한다. 주요 저서로는 <그림동화>, <독일전설>, <독일어 사전> 등이 있다.
<백설공주>는 그림형제가 모은 독일의 전래 동화 중에 15편을 엮어낸 동화책이다. 대부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독일의 자연 환경에서 생겨난 동화들이기에 어린이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숲이 주 활동영역이고 나오는 이들로는 동물이나 공주, 왕자, 그리고 마녀가 주축이 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어른처럼 이해타산을 따지거나 상대편을 의심하는 일이 없다.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 때문에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순수한 마음 때문에 의외의 인물에게 도움을 받아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는 널리 알려진 백설공주는 물론 빨간 모자, 신데렐라, 헨델과 크레텔, 황금거위,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과 순박한 어린이가 주인공인 행운아 한스, 홀레할머니, 생명의 물, 황금머리카락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렸을 때는 어땠었는지 모르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신데렐라가 ‘재투성이 아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쩌면 어렸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것을 이제 새롭게 인식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열두 왕자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 읽었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것 역시 왜곡된 기억으로 인한 것인지 번역 과정에서 다르게 번역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새로웠던 것만은 틀림없다.
동화는 짧은 이야기 속에 교훈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거나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모험을 떠나고 그 모험을 통해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도 전래 동화나 전설 등이 있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전래 동화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밖에 나가 마음껏 활동할 수 없는 때에는 동화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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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도 그렇고 책 뒷면의 글귀도 그렇고 조금은 서늘하면서도 동화스럽지 않은 차마 아이들에게는 들려주지 못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거라는 기대를 걸고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넌 뭐냐?
아주 동화스러울거면 제대로 동화스럽던가 아님 아주 어른스러울거면 제대로 어른스럽던가... 이도 저도 아닌 이런 책은 왜 나오는 걸까? 이야기에 극적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알았던 동화에서 별로 이렇다할 서늘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도 아닌 것은.... 어쩌라는 것인지...
다만 내가 알고 있던 신데렐라와 이 책의 신데렐라의 내용이 약간 다른정도?
내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는 12시라는 시간의 제약이 있는 반면, 실제 원작에서는 그런 말이 없다. 심지어 왕자가 신데렐라를 집까지 바래다 준다.
하지만 감쪽같이 사라지는 신데렐라를 찾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계단에 송진을 발라 구두가 바닥에 달라 붙게 만들었다. 황금 구두를 발견한 왕자는 신발의 주인만이 자신의 아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신데렐라의 집으로 이 신을 보낸다.
첫째언니가 엄지발가락을 잘라 신을 신고 왕자앞에 나가 궁궐로 가다 비둘기의 노랫소리에 가짜 신부라는 것을 앍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둘째언니가 발꿈치를 잘라 신을 신고 왕자앞에 나가 궁궐로 가다 다시 비둘기의 노랫소리에 가짜 신부임을 알고 돌려보낸다.
그다음에는 우리 알고 있는 내용으로 왕자와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다 라고 끝을 맺지만 여기서는 결혼식날 두 언니들은 비둘기들이 달려들어 두 눈을 쪼아 장님으로 살아가야 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런 내용들 때문에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는 왕자와 공주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끝을 맺어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몇편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12,8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이 책을 사서 읽으시오.... 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것 같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하지만... 아주 솔직한 내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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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15편의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기묘함을 자아내며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림 형제는 이 동화들의 뿌리인 민담을 미화시키기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드러나 있는 잔혹한 부분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러한 요소들이 동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백설공주 : 그림형제의 기묘한 이야기』. 아름다운 열다섯 편의 동화 속에 숨겨진 그림 형제의 서늘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에 감성적인 일러스트를 더한 이 책은 하드커버 양장 제본에 들고 다니기 쉬운 사이즈로 제작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 속 주인공들을 상상력 넘치는 일러스트가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은 물론이고 잔혹한 부분도 그대로 나온다 내용들을 보면 우리가 알던 동화속 이야기들보다 주인공들을 괴롭히던 주변인물들이 더 잔혹하게 벌을 받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편의 이야기들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일러스트도 상상력을 자극하는게 더 읽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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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동안 독일의 옛이야기와 전설을 수집한 , 구전으로만 전해져 오던 이야기를 그림형제가 함께 책으로 펴내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에게 그림형제의 이야기는 너무나 친숙한 동화일게다. 전에 국제기록전시회에서 그림형제의 원본그림책을 보고 온 적이 있다.
![]() 책크기 비교해보시라고 올려봐요 ![]()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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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제목은 백설 공주이지만 그림형제가 지은 동화 이다. 누구나 한번이라면 듣거나 보았을 그런 동화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한번이라도 읽었다면 알만한 법칙이 하나 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은 이 책의 동화 대부분의 결말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전개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쉽고 따분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전개가 나오게 된 배경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림형제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한다. 그림형제의 일생 연대를 보면 형은 야코프(Jacob Grimm:1785∼1863), 동생은 빌헬름(Wilhelm Grimm:1786∼1859)이다. 자세하게는 알 수 없어도 1800~1850 년대 까지는 알아야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당시 프랑스에 산업혁명이 유럽 전역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구가 대폭적으로 늘어난 시기였다. 과잉인구는 불안전 고용과 그에 따른 빈곤을 초래했다. 그 결과 유럽 여러 지역에 살던 농민들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떨어져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갈 수준이었다. 그리고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로 많이 유입된 농촌 인구의 도시 노동 계급의 삶도 경재불황에 의에 그다지 안정된 생활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노동 계급에서 중간 계급으로의 진입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일은 하고 있으나 삶의 질은 나아지지 못한 당시 노동계급의 생활은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림형제가 비록 고대 민간설화를 인용해서 동화를 냈으나 시민들에게서 전해진 이야기 이므로 당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의한 영향을 적잖이 받았을 것이다. 농촌에서의 빈곤한 생활 때문에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나오고 도시로 유입된 농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에 ‘행운아 한스’ 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화의 결말에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 라는 어구도 그 당시의 노동계층의 고된 삶에 행복을 바란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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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삽화와 함께 친숙한 고전 동화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어린 시절 누구나 읽어 봤을 그림 형제의 동화 15편을 담았다. 신데렐라〉, 〈백설 공주〉, 〈라푼젤〉 같은, 소녀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동화들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물론, 〈황금 머리카락〉, 〈생명의 물〉, 〈홀레 할머니〉 같은 고전 동화도 함께 만날 수 있다. |
![]() 우리가 어릴적 읽던 고전 동화들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착한 마음의 선남선녀이며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말로써 이야기를 끝맺는다. 예쁜 일러스트와 아담한 크기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는 딱 딸아이의 취향에 맞아 이미 다 읽은 내용일지라도 한 권 한 권 모으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나 또한 아이들 어릴적 머리맡에서 읽어 주던 때를 새록새록 떠올리며 우렁각시마냥 방주인이 없을 틈을타 새롭게 출간된 고전 동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엔 그림형제의 동화가 새로운 형식으로 출판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각색한 행복한 결말의 착한 동화에서 벗어나 그림 형제의 원본에 충실한 번역을 선보인다니 기대를 갖고 신데렐라, 백설 공주, 라푼젤, 황금 머리카락,생명의 물, 홀레 할머니 같은 기존에 알고있던 고전 동화동화를 새로 덧붙여진 원전의 내용과 비교하며 마음은 어느덧 상상의 세계로 주인공들을 만나러 간다.
이 책에는 15편의 아름답고도 섬득한 이야기들은 담고 있어 시종일관 책을 놓을 수 가 없다.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오던 민담을 바탕으로 그림 형제에 의해 쓰여진 동화들은 순화되고 미화시킨 환상의 이야기만은 아니였다.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담겨있고 죄의 댓가를 참혹하리 만치 혹독하게 치룬다. 때론 잔혹한 장면들도 그대로 싣고있다. '신데렐라'에서는 왕자님이 무도회에서 한눈에 반한 아가씨를 찾기위해 집집마다 방문하여 남겨진 유리구두 한 짝의 주인공을 가려내고자 한다. 유리 구두에 발을 맞추기위해 딸들에게 발뒤꿈치를 자르고 바가락을 자르도록 시킨 엄마와 신발에 질퍽한 피를 흘리며 신을 신던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마침내는 새에게 눈을 쪼여 장님이 되고야 만다. 공주님의 키스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된다는 '개구 왕자'의 동화속 왕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공주에게 약속을 지키라며 추궁하다 공주가 징그럽다고 바닥에 집어던지는 바람에 다시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니, 왕자는 과연 공주에게 감사하는 마으을 갖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을까. 질투의 화신이며 아마도 서양사에 최초의 외모지상주의자인 '백설 공주'의 계모인 왕비는 백설공주를 죽이고자 온갖 방법을 동원하더니 결국 왕자와 백설공주의 결혼식 날, 뜨겁게 달구어진 쇠 신발을 신고 목숨을 잃을 때까지 춤을 추어야 하는 처참한 벌을 받게 된다. 백마를 탄왕자와 궁에 갇힌 답답한 생활이 자연과 더불어 난쟁이들과 하메한 소박한 삶보다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 그대로 지금껏 알고 있지던 동화속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환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어린 시절 백마탄 왕자님을 꿈꾸며 금발의 바비인형처럼 날씬하고 예뻐지길 소원하며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는 환상에 젖었던 소녀적 상상은 지금은 아련한 추억속 빛바랜 기억에만 자리한다. 아무리 끝이 좀 잔혹하고 섬짓하여도 고전 동화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다. 동화속 이야기와 현실의 간격을 확연히 알아버릴 만큼 부쩍 커버린 딸아이도 현실속에 담지 못하는 꿈과 상상을 동화속 세계에서 만큼은 맘껏 펼치길 바란다. 책꽂이에 빼곡히 꽂힌 예쁘고 아담한 책을 한 손에 들고 꺼내 볼 때마다 순수한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한다. 딸의 책꽂이 앞에서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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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읽어 보았던 동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무의미할 지도 모르지만, 그림형제의 이야기라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예전에 내가 보았던 이야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이 읽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에 맞게 각색되어진 이야기들이다. 보다 아이들에게 맞도록, 의도를 가지고 바뀌어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재미있느냐고 내게 묻는 다면, 나는 그림형제의 동화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물론,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도 그림형제의 이야기 그대로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잔인하다? 라는 의문이 붙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잔인하다라는 것에 시대적인 배경과 그 당시의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고 싶다. 오히려 그러한 이야기를 읽으므로써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시대에 따라 역사가 바뀐다는 것, 시대적 환경에 차이가 있다는 것, 지금의 이 세상이 더 풍요롭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좋은 동화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얼마전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아동범죄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수상한 사람을 그려보라는 과제에 대해서, 국내의 아이들은 말 그대로 수상한, ’마스크를 쓰거나, 흉악한 인상 혹은 어두운 빛’을 연상하는 그림을 그린 반면, 외국의 아이들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을 그림으로써 차이를 보였다. 동화의 문제는 선악의 기준이 지나치게 우열의 논리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사악하고 나쁜 이들은 흔히 못생기고, 추하며, 신체에 장애를 가지거나 매부리코이다. 반면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다. 혹은 못생기거나 추한 ’우울한 상태’에서 ’아름다운 용모’로 바뀌며 해피엔딩으로 끝이난다.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일방적으로 가치에 서열을 매기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생기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동화는 이런저런 연유로 지금의 시대에 맞게 각색되어진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의도로 혹은 여러가지 설 중에서는 나쁜 의도로도 해석이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화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기 전까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함께 읽어주며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가 좋다고만 생각하는 동화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원전이 성인을 위한 잔인 동화라는 표현은 어떨까? 인류의 평균 수평은 지난 세기를 거치는 동안 50세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동화 속에서 주인공이 15세라는 사실을, 그 당시의 평균 수명이 30세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예전에는 아이와 어른에 대한 구분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아이들도 걸음마를 할 때 부터 어른들의 일을 도왔고, 좀 더 큰 아이들은 어른들과 똑같이 일했다. 아이라고 특별한 대우는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것이 따로 있을 그런 환경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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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서 온 세계의 동화란 동화는 다 읽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요즈음입니다.(내일이면 또 새해가 시작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로 인한 감상적인 기분은 '절대' 아니고요...^^;) 아마도 원인은, 이야기야 다 알기 때문에 오로지 디자인이 예뻐서 사기 시작한 인디고 북스 때문인 듯하네요. 덕분에 '호두까기인형'처럼 정확한 원작 내용을 알지 못했던 동화를 새로 발견하기도 했고, '작은아씨들'과 '빨간머리 앤'처럼 큰 뼈대만 기억나는 동화를 다시 읽으면서 시대의 간극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백설공주 : 그림 형제의 기묘한 이야기'는 정말 기묘하네요. 그림 형제의 동화가 실제로는 동화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를 손질해서 탄생된 거란 사실도 이제는 알고 있고 그 원형의 이야기도 책으로 읽은 적이 있지만, 막상 '예쁜 동화'를 표방하고 나온 이 '인디고 북스'의 책에서도 잔혹함이 느껴집니다. 시대가 달라져서일까요? 제가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에서도, 못된 왕비는 벌겋게 달군 쇠 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춰야 했고,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과 발꿈치를 잘랐으며,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 아들인 왕자들의 목을 베어 피를 석상에 문지르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땐 그게 나쁜 사람들의 벌이라고 당연시하면서 받아들였던 반면 지금은 그런 전개를 용인하기가 주저하게 되는군요. 이런 거부감은 어쩌면 어른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조카들과 놀다보면, (특히 남자애들은) 칼싸움이나 술래잡기에서 스스럼없이 '죽었다!', '죽어라!'라는 말들을 하니까요. 그러니, 옛날 이야기 속에서 악인이 잔혹한 형벌로 목이 베이거나 눈을 새에게 쪼여 먹히거나 몸이 둘로 찢어지는 건 오히려 애들에겐 자연스런 인과응보로 심각한 충격없이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벡설공주'는 인디고 북스의 다른 동화책들에 비해서는 얇은 편입니다. '빨간 모자'부터 '열 두 왕자'까지 15개의 이야기가 짤막짤막하게 실려 있어 이야기 분량만 따졌을 때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부담없이 읽을 만한 책이죠. 하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호두까기인형'의 길이감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수월하게 읽힙니다.
반면, 팬시문구점에서 보던 것같은 아름다운 '호두까기인형'의 삽화에 비해 '백설공주'의 삽화는 다소 거칠고 인상파 그림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표방합니다.
그렇다보니 '백설공주'는 괜히 샀다 싶은 기분이 좀 들기도 하네요. 내용도 디즈니 만화영화 '신데렐라'가 익숙한 제게 좀 어색하고, 툭 하면 아름다운 공주들의 외모에 반해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바보같은 왕자들도 못마땅한데다 자식을 차별하거나 학대하는 쪽은 하나같이 계모이고 아빠는 (눈 뒀다 어디다 쓰는지) 그런 사실은 까맣게 모른다는 설정이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같은... 어렸을 적엔 재밌게 읽었던 게 틀림없는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은 많이 불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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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눈의 여왕>을 봤을 때는 내가 알았던 이야기 이상의 것이 무언가 느껴져서 읽는 내내 왠지 모를 기쁨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림형제의 동화를 읽으면서는 그런 것이 없다. 내가 아는 내용이 다였을 뿐. 심지어는 조금 답답해지기까지 했다. 이건 대체 무슨 동화지.
뭐, 대부분의 동화가 그렇듯이 예쁜 공주는 착하고, 못생긴 여자는 성격도 고약하다. 그런 부분도 그래, 이해하고 넘어가더라도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개구리왕자는 왜 자기를 그렇게 홀대하는 상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한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라푼젤의 부모도, 룸펠슈틸츠헨 이야기 속의 왕비도. 다들 자기 필요할 때는 아쉬워서 매달렸다가 매정하게 돌아서버린다. 약속은 잊은 채로. 이것을 통해 역설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단지 우리나라와 외국의 관념차이?
그림형제의 동화를 얼마나 알까 싶었는데 의외로 많이 알고 있었다. 충신이야기 빼고는 거의 다 들어본 이야기였달까. 그런데도 어색하게 들리는 건 내가 지금 다 커버렸기 때문일까, 이 이야기들이 조금씩 이상한 부분이 있는걸까?
이런 책을 읽고있노라면 아이들은 왜 동화를 읽느냐고 물어본다. 동화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행복한 이야기였을 뿐. 어쩌면 '왜 동화를 보냐'고 묻는 사람들과 지금 그림형제의 책에 실망해버린 내가 다른 게 없나 싶은 마음도 들고 말이다..
여튼, 그림형제가 요즘 시대에 책을 썼다면 아마 나는 답답해서 한권 읽다가 기절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 할무니 빼놓고는 다 답답의 극치같다. 동화에 너무 흥분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