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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의 용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배덕만 교수의 기독교 비평 또는 비판에 가까운 이 책은, 우리 삶의 행복이란 무엇이며 미움과 배척과 용서는 또 무엇인지, 우리가 생각없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이유로 움직인 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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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 건 출판되었던 2010년 중후반 쯤인 걸로 기억합니다. 최근에 교회사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근본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 책이 기억나서 곧장 구입했습니다.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뿌리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부터 시작해 한국 개신교에 근본주의가 어떤 성향으로 뿌리 내렸는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책의 내용이나 크기도 적당해서 가볍게 읽기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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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 배덕만 카카오톡 오픈 챗방에서 기독교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많은 오픈 챗방이 나온다. 사람이 많고 활성화된 오픈 챗방에 가보면 크게 둘중 하나이다. 첫번째는 어려운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간증이나, 기도제목을 나누는 챗방이다. 또하나의 챗방은 근본주의적인 이야기가 지배하고 있어서 조금만 근본주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면 이단이라는둥 잘못되었다는둥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죄함이 넘쳐난다. 이것이 우리나라 기독교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경건주의, 세대주의 종말론 등 근본주의의 시작부터 근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와서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본다. 미국의 초기 근본주의로 인한 부흥과, 그로 인한 선교, 그리고 우리나라에 복음이 근본주의로 들어오게 된 역사를 살펴본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우리나라의 일제시대, 6.25 및 분단의 역사, 그리고 경제 발전시대와 함께 어떻게 발전해서 지금의 우리나라 기독교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근본주의의 특징을 신학적, 윤리적, 사회적으로 살펴본다. 성서무오설과 다원주의의 배척, 창조과학, 술, 담배의 문제, 페미니즘, 성에 대한 문제와 생명윤리, 보수 정치와 천민 자본주의의 지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아는 기독교의 편협하고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근본주의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저자는 근본주의의 잘못된 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발전에 근본주의가 기여하고 기독교 정신을 지켜낸 공로를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에서는 근본주의의 장점보다 폐해가 더 많음을 지적하면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저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근본주의가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 모습에 기여한바는 분명히 적지 않다. 근본주의로 인해 구별된 모습을 지키고 기독교 정신을 보존해온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적으로 보면, 근본주의도 변화되어야 한다.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역사적 관점에서 성경 말씀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두가지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모순인것 같지만, 신학은, 신앙은 모순 속에서 길을 찾는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열여주실 것이다.
#기독교 #독서 #독서감상 #2019년 #근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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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저자
저자인 배덕만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을, 미국 드루 대학교에서 교회사(Ph.D.)를 공부했다. 현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원으로 교회사를 가르치면서 백향나무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교회사의 숲』 『한국 교회, 인문주의에서 답을 찾다』 『우리는 교회인가 』 『복음주의 리포트』(이상 대장간),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홍성사), 『칭의와 정의』(공저, 새물결플러스』, 『혐오와 한국 교회』(공저, 삼인), 『탈교회』(공저, 느헤미야) 등을 썼다.
저서에서도 잘 나와 있듯, 저자는 교회 개혁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학자이자 목사이다. 개신교 개혁을 고민하는 10여개 단체들이 결성한 ‘개신교 회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한국 교회는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석학이다.
특별히 저자는 본서를 통해서 1부에서 미국 근본주의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고찰하면서 근본주의가 형성된 과정을 서술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한국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고찰한다.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2부 한국개신교 근본주의 형성 과정을 서술하면서 미국 근본주의가 어떤 영향을 끼치며 그것이 한국의 시대 상황가운데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주며, 이를 통해서 3부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특징을 서술하면서 신학적, 윤리적, 사회적 부분에 걸쳐서 근본주의가 미친 악영향에 대해서 서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적 제언으로 논지를 펴고 있다.
나. 내용 요약
오늘 날 교회가 겪고 있는 내우외환은 다양하다. 다양한 내우외환 가운데 저자의 말처럼 “화려한 부활이 아닌 처참한 추락을 경험”(p. 8)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따른 처방과 실천을 통한 회복을 위해서 저자는 그 비판과 반성의 대상으로 근본주의를 꼽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근본주의는 무엇인가? 저자의 말처럼 이 근본주의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근본주의의 형성에서부터 논지를 출발하는데, 한국 기독교 가운데 큰 영향을 미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기원과 역사에서 그 배경을 찾고, 이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한국으로 들어와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1)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가) 기 원 본서의 1부에서 저자는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기원과 형성에 따른 발전과정과 분화를 이야기한다. 먼저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기원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사회학적 해석과 신학적 해석, 문화적 해석과 통전적인 해석들을 약술하고 있다.
첫 번째 사회학적 해석은 리처드 니버의 주장을 인용한다. “미국 농촌문화 대 도시문화의 충돌(p. 15)”로 근본주의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즉 당시 미국의 농촌문화의 전근대적인 모습과 근대 과학과 산업문명의 영향력을 받은 도시문화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신학적 해석은 사회학적 해석에 반발하여 어네스트 샌딘이 주장하는데, 사회학의 단순한 충돌이 아닌, 전통적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응한 신학적 충돌에 따라서 근본주의가 발생했으며, 종말의 천년왕국에 해석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신학적 해석에 따라 근본주의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세 번째 문화적 해석은 조지 말스텐이 주장하듯 근본주의의 형성은 단순한 신학적인 해석의 차이를 넘어서 문화, 종교적, 지적 상황을 폭넓게 고려해야 하며, 구체적으로는 샌딘의 신학적 해석의 틀을 넓혀서 문화라는 거대한 틀 가운데 상호영향 안에서 근본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마지막 네 번째는 통전적 이해로 조엘 카펜터로 대표되며 어느 한 현상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난해한 근본주의의 특성상 일원화 획일화된 이해가 아닌,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이해를 통해서 근본주의가 형성되었음을 주장하는데 특별히 저자는 해석의 다양함에서 오는 난해함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근본주의가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저항운동”(p. 18)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근본주의의 기원을 고찰하면서 근본주의의 기본적인 특성이 논쟁적이고 배타적이며, 수용성이 낮고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편협한 특징을 강조하면서 근본주의가 한국 기독교 및 기독교계 전체에 영향을 준 문제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형성 과정 다음 단락으로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형성을 이야기 하면서, 미국은 19세기를 지나며 급격한 사회적 문화적 신학적 격변을 겪어왔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한계와 문제들에 대하여 위기의식이 팽배한 시대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낙관적인 세계관과 전통적 기독교 윤리의 붕괴를 초래하여 심각한 위기를 조장하였고, 이에 따라 신학적인 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비관론에 따른 전통적 신앙의 강박관념을 고착화시켰고, 이는 사회적, 학문적 대항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무디가 주도하던 부흥운동과 더불어 근본주의는 대중성을 가지게 되고 이 대중으로의 확산은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교단 분열과 새로운 교단 출현을 가속화 했다.
그러나 근본주의의 확장에 제동을 거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1925년 “스포크스 재판”으로 세계적인 관심가운데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이어지다가 진화론의 유도심문에 논리적 참패를 겪어 근본주의가 전근대적 사고로 폄하 받아 큰 부침을 겪게 된다.
다) 미국 근본주의 부활과 분화 근본주의자들의 참패로까지 여겨지면서 근본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으나. 1940년대 초반 근본주의 2세대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2세대들은 분리주의적, 반지성적 경향에서 반성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새로운 근본주의를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전통적이고 전투적인 근본주의자들과의 갈등을 초래했는데, 그 결과 이 새로운 근본주의자들은 “신복음주의자들”로 분화되었고, 근본주의 그룹은 더욱 우경화하여 전투적인 색채가 짙어졌다. 즉 근본주의 그룹의 비수용성과 논쟁적이고 저항적인 특징이 더욱 강하여 진 것이다.
신복음주의자들과는 달리 우경화된 근본주의 그룹은 격동의 60, 70년대를 거치며 기독교 우파라는 이름 아래 다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다양한 사회상과 환경으로 인해서 더욱 많은 분화를 초래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근본주의는 획일적인 시각과 잣대로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모호성과 역설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즉, 1부를 통해서 저자는 미국 근본주의에 대해서 간략하게 고찰하면서, 근본주의가 모호성과 역설을 가진 채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분화되어 왔는지 보여주면서 근본주의가 가지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제기한다.
그러면서 2부를 통해서 이렇게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가 형성되는 동안, 이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한국 개신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됨을 지적하는데, 이것은 한국 개신교의 출발의 특징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바로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가 전래 되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는 것이다.
2)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형성과정
가) 1884 ? 1930년대 한국 개신교가 시작된 것은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제외하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미국의 보수주의적 선교사들이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 보수주의적인 배경의 선교사들은 근본주의에 기반한 보수적인 신학에서 훈련받고 사역했기 때문에 초기 한국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선교사의 면면들을 보면 잘 알수 있는데, 감리교의 아펜젤러나, 장로교의 언더우드는 무디의 영향을 받아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던 자들이였고, 마찬가지로 초기 선교사들과 또한 형성된 신학반의 교수들의 면면을 볼 때, 보수적인 신앙적 색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즉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적인 신앙과 근본주의적인 형태를 강하게 띈 것이다.
이를 저자는 “당시의 선교사들의 한국 교회를 향해 갖고 있었던 거의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 때문에, 한국인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이런 흐름을 수용했고”(p. 35) 좀 더 심하게 말해 무조건 수용함으로써 근본주의가 한국교회의 주류적인 특징이 된 것이라 평가한다.
나) 1931 ? 1950,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화 과정 당시 주류이던 근본주의적 색채의 선교사들이 중심이 된 것과 더불어, 한국 개신교가 진보적 경향을 배격한 것이 근본주의의 내재화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즉 1930년대 이르러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의 교리와 신조는 성경의 완전영감과 무오류를 주장하면서 같은 입장에 있었고, 이러한 해석의 기준은 진보적 경향을 배제하고 탄압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김춘배 목사의 여권문제사건과 아빙돈성경주석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특별히 여권문제사건을 상술(p. 38)하는데 이러한 공격에서 진보적 경향은 점차 힘을 잃었고, 장로교 내 근본주의는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가 단순히 학문적인 부분을 넘어서 성도의 삶으로 대중화 된 것은 길순주 목사의 업적이라고 평한다. 길선주 목사가 부흥회와 교단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보수적이고 근본주의 신학의 기초를 만들어 그 카르텔이 공고화 된 것이다.
다) 1950 ? 1980, 한국전쟁과 근본주의 근본주의가 신학적 주류가 된 것에는 선교사들의 배경과 부흥 사역자인 길선주 목사와 교단적인 영향력이라고 한다면 그 근본주의의 전투적이고 정치적인 색채에 영향을 준 것은 한국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은 서로에게 부정적인 이미지와 뒤틀린 해석을 심화시켰으며, 반공이라는 시대적인 특성이 강하게 드러났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의 등장은 마치 이단이나 적그리스도의 등장과도 같았으며, 자신들의 신앙에 선민의식을 결합하고 신학 및 정치적인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한국 개신교 내에 근본주의적인 성향은 주류를 이루었고, 이것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가져왔던 것이다.
3)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특징 : 1981 ? 현재
저자는 1980년대까지를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형성배경으로, 그리고 81년 이후 현재까지의 모습은 3번재 단락인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 특징으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즉, 이제는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현상을 관찰(p. 47)하는 것으로 3부에서는 근본주의 현상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 및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중심부에 안착한 근본주의가 급변하는 사회 가운데서 탄력적으로 적응하기보다 그 근본적인 특징인 비수용성과 투쟁성을 크게 보였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자기방어 및 전통수호라는 미명하에 발생한 부작용인 분열과 갈등의 모습에 대해 말한다.
가) 신학적 근본주의 신학적 근본주의는 성서영감론 및 성서무오설을 근거로 성서비평학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다. 이것은 근본주의의 중요한 신학적 특징으로 종교적 배타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근본주의는 타종교들과 갈등관계를 현성하고, 진화론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서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다보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는 묵시적 종말론을 주장한다. 이런 종말사상은 자연스럽게 현재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사회 개혁이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미선교회 사건을 예로 들게 되는데, 사이비적 종말운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정도로 동조한 것은 이런 유형의 종말론에 대해서 암묵적 승인 혹은 동조(p. 51)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는 자유주의자가 근본주의자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말하면서 WCC 총회에 대해서 표출된 여러 입장들을 제시하면서 근본주의자들이 가지는 배타성에 대해 지적하며 이런 성경관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성경 무오설의 이론적/ 현실적인 불가능성과, 우리의 해석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이것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할 위험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대응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근본주의적인 특성으로 전투성을 말하면서 이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면서 실제 배타적인 사례들을 들고 있다. 이런 배타적 호전성이 가져올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런 목소리가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말하며 이런 목소리가 한국 교회의 주류인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끝으로 신학적인 근본주의의 속성의 단적인 확인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미국 교회의 보수적인 태도가 한국교회에 그대로 수입되었고,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의 형성과 더불어 지적설계론 등의 전투적인 활동을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복음주의 신학자 김기현의 말이나, 호남신대 신재식 교수의 말처럼 논쟁의 능력을 결여한 전투적인 활동은 복잡한 세상에서 오히려 자가 당착의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언급한다.
나) 윤리적 근본주의
윤리적 근본주의 문제에 있어서 청교도의 엄격한 윤리적 이상으로 인하여 미국의 근본주이가 주초문제에서 가진 거부감과 성과 결혼, 동성애에 대한 험오, 여성 차별 등은 고스란히 한국 개신교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먼저 주초문제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단호한 반대는 신앙의 정체성 및 순수성의 척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은 선교 초기 부흥운동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주초문제, 축첩제도, 조혼과 노비제도 등에 대해서 사회를 따르지 않겠다는 신앙적 결단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오늘 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삶의 문제에서 공적인 토론이나 권면과 격려가 아닌 이미 정해진 결론에 근거한 배타적 입장의 주입으로 한정되어 변화에 대한 노력이 아닌 정죄로 멈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거룩한 삶의 실천 보다는 율법적인 우월감에 머무르면서 오히려 거룩에 대한 노력이 폄하되고 장애물처럼 전락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 하는 일이 없기를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에 관해서도 여권문제의 논쟁은 일찍부터 있어 왔는데,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리더쉽에 대해서는 거의 변화가 없다. 장로교는 대부분 근본적으로 목사의 자격에 여성을 불허하고 있으며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통로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비하로 이어져 발언 뿐 만 아니라 여성 폄하로 이어져 성폭력으로 까지 이어지게 됨을 우려하고 있다.
동성애의 문제에 있어 한국 교회는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며 개인적이고 조직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이것이 개인의 성적 취향의 차원이 아닌, 사회의 현상과 영역으로 확대되어 한국교회의 연합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뜨거운 담론 가운데, 극단적인 혐오와 반대로 점철되어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포용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고 평한다.
생명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낙태의 문제에 있어 현재 모자보건법 등의 개정으로 법리가 현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낙태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변질한 현재 상황과 반전과 환경운동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다) 사회적 근본주의
미국의 근본주의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 정치에 핵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듯 한국의 근본주의도 최근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주목받았다.
광복 전 북한에 개신교의 70%가 평안도, 황해도 등 서북지역에 있었다. 지주들이었던 이들이 1945~53년 시기 주도권 쟁탈에서 공산주의자에 밀리고, 교회와 고향을 빼앗기고 월남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이런 자들에게 신학적 충돌보다, 모든 걸 빼앗긴 체험으로 인한 적대감이 더 컸으며 냉전 체제에서 남한은 우익 사회가 되었고, 이런 배경에서 서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공산당이 싫어요’ 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래서 개인적 경험과 생존적 요구가 만나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을 잡았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불법 선거, 쿠데타 등으로 정통성이 부족하니 지원세력으로 기독교와 손을 잡은 것이다.
기독교는 1 ~ 5공화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 개신교가 양적·질적으로 급성장했다. 광복 직후 5% 미만이었던 교인이 30년 만에 20~25%가 되고, 오피니언 리더 즉 정부 관료, 변호사, 의사, 언론인, 기업인의 교인 비율은 훨씬 높고, 자연적으로 대통령 선출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교회와 자본주의의 관계는 한국전쟁과 경제발전을 계기로 물질적 보상을 축복의 현실적 내용으로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기복신앙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여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제주의 물량주의 반 지성주의적인 특징을 가지며 교회의 세속화와 신비주의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정당화 한 것으로 한국 경제와 한국 교회가 발전주체에서 재무구조와 모형, 핵심 문제등에서 동일한 문제를 가지는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4) 결언
결언을 통해 저자는 신학적 차원에서의 성경에 대한 신뢰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변화된 상황에 대한 정직한 직시를 요청하며 개방적이고 책임있는 태도를 촉구한다. 또한 윤리적 차원에서 근본주의의 한계를 반성하고 진정한 윤리를 추구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정치적 차원에서 욕망의 덫에서 빠져나와 비판적 예언자의 자리에 서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상생의 매체로 기능하도록 교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책을 마치고 있다.
본서는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심층적인 문제에 대해서 살피는데 근본주의라는 성향, 즉 교회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근대주의, 세속적 인본주의를 반기독교, 반종교로 몰고, 성경 말씀을 순수하게 유지하려는 생각이 좋은 의도로 시작하였으나 극단으로 치우쳐 이러한 근본주의의 성향이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문제를 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즉 한국 교회의 문제가 더욱 정확히 말해서 근본주의적 개신교가 문제임을 주장하면서 이 근본주의적인 성향에서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근본주의 신학은 미국에서 만들어져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이식되었고, 이식된 근본주의가 한국의 특유의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아니라, 이것을 가능케 한 배경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말하고 있다. 복합적인 증상이나, 그 가운데 심층적인 문제에 대해 말하는 진단을 통해 정확한 처방에 이르려는 것이다.
특별히 배덕만 교수가 지적하는 한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특징 가운데, 본서를 넘어서 활동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다. 정치적인 부분에서 전광훈류의 목사들이 보이는 정치적 행보, 부흥회를 통해 종교적 열망을 채우고 돈과 사람을 끌어모아 좋지 않은 영향력을 주고 있고 이것은 기복주의 신앙, 성공주의에 물든 교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 혹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의 모습 보다는 개인들의 구원을 얻는 것으로 단편적으로 소비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단편적인 메시지가 마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으니 살기 위해 믿고, 기왕지사 지옥보다 천국에 가야 하니 죽기 전에라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감정과 경험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것은 고도성장기 배경에 따라서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이 성공의 척도, 응답의 척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고, 하나님이 복을 주는 것,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는 언약은 분명하다. 이미 이루어 졌으며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진 않았으나 종래에 완전히 이루어 질 것이다.
복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관심을 갖고 거기에만 머무르면 정작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감성팔이 소재가 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상은 과거에나 가졌던 열정으로만 추억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기독교는 생존을 위해 복을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다. 태초의 창조부터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식과 자연스레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랑함의 결과이다. 구약과 신약은 온통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이야기,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에서 비롯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이슈이다. 역사적으로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왕이나 제사장들, 신약시대의 바리새인이나 12제자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는 현실 정치의 배경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현실 정치적인 면은 보수냐 진보냐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기준이었다.
말로만 고백하는 신앙이 아니라 주 경외함이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않을때 선지자들은 나라 국방이나 경제면에서는 강성해져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을 꼬집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기를 겪은 선지자들, 특별히 예레미야는 오히려 이 나라가 망해야 산다고 말하다가 온갖 핍박을 겪는 것을 우리는 본다. 조금의 이물질이 전체를 버리게 만든다는 면에 있어서는 마냥 간과할 수는 없고, 당연히 우리는 돌이켜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저자는 이러한 면에서 한국 교회의 문제를 드러내며 이것이 근본주의에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탁견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탁월한 주장 가운데서도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저자는 본서는 아니지만 한 인터뷰에서도 종교학자나 역사학자들은 한국 개신교의 70%가 근본주의 성향이라 보고 있으며, 보수 개신교를 상징하는 한기총이 내부 갈등으로 한기총에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학국교회연합(한교연)이 나갔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고 본다. 전광훈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선거에선 보수 정당을 찍고, 문 대통령은 무조건 싫은 사람들로 일종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그러나 지적하는 '전광훈류의 목사들과 우익과 손잡고 성장한 기독교', '반공주의가 신학보다 앞서는 기독교'는 사실 일부의 기독교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의견과 행동일 뿐이다.
전광훈이 기가막힌 시기에 한기총에 무혈입성하면서 광화문에서 문재인 하야 집회를 진행한다. 아직 보수 교단 대표 상징성이 남아있던 한기총의 이름을 걸고 전광훈이 대통령과 싸운 것이다. 박근혜 몰락 이후 고사 상태였던 보수 세력에게 광장에서 정부에 대항하는 모습이 노년층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광화문으로 모여들게 했고 이는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가 전국구 교회가 됐다. 신도가 늘고 그 뒤에 대형교회가 받쳐주고, 김문수 김무성씨 등 정치인들이 찾아오니 전광훈은 이 사태에서 수익을 본 유일한 사람이다. 일부의 문제를 전부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여기에 근본주의 영향과 더불어서 일제 강점기의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분인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너무 약하다. 즉, 진보 성향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심지어 진보적이라는 교단 즉 감리교, 기독교장로회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목사가 보수적이고, 지역 교회들은 보수 교단과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70 ~ 80년대에는 그 교단들도 NCCK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최근 거의 보수화되었으며. 감리교 신학교 안에서조차 진보적 목소리가 소수가 된 시대로 평가한다.
그렇지만 이 진보적이라는 교단의 일제 강점기 시절의 행태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감리교등의 일부의 종교지도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 교회를 신도주의 종교 단체화했었고, 이러한 영향이 그 신학 자체를 배격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 분명한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은 지나치게 약하다.
또한 배덕만 교수가 이야기하는 성경영감론과 성경무오설에 대해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인본주의를 배격한다는 우려에 대해 심정적 동의를 하면서도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에 있어서의 오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축자영감은 아닐지라도, 분명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드러나는 몇 가지 현상과 오류로 인해서 그 권위까지 해치려 한다면 그야말로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게 되는 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 가운데서 제사법 등은 분명 현재에 통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 오고 오는 세대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법의 기준은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성경의 권위를 너무 강조한 것이 아니라 강조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