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영혼은커녕 아무런 정보도 담겨 있지 않을 듯한 그 이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지... 예컨대 '슈테파니 츠바이크'란 이름은 마치 낡은 고무 타이어처럼 딱딱하고 거친 느낌이 들게 마련이어서 그녀가 쓰는 글이란 글은 언제나 유머와 감성을 모두 제거한 채 칙칙하고 우울한 느낌만 전달할 것 같잖아. 반면에 빌 브라이슨은 어때?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은 마치 대문자 비(B)를 닮은 퉁퉁한 몸매에 털털하고 인상 좋은 남자일 것 같지? 게다가 그가 쓰는 글은 모두 재미있고 유쾌할 것만 같고. 웃기는 건 한 사람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사람들은 이름 하나만으로 많은 걸 유추한다는 거야. 때로는 황당하게 때로는 제대로.
"나는 두 귀로 그 이름을 흘러들어오게 했다. 내게 얼마나 꼭 맞는 이름인가. 왕비의 이름에 걸맞고 시녀에게는 귀족신분을 부여하는 고전적인 모든 의미를 망라하는 이름이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사실은 나 역시 아주 오랫동안 이런 아름다운 치음(齒音)을 원했음을 알았다. "시시," 내 마음은 환희로 가르랑거렷다." (p.50)
그렇다. 슈테파니 츠바이크가 쓴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는 고양이 시시가 주인공이다. 작가가 '슈테판 츠바이크'인데 '슈테파니 츠바이크'라고 잘못 쓴 게 아니냐고? 그럴 줄 알았다. 그 얘기가 왜 안 나오나 생각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 평전>을 쓴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지. 반면에 슈테파니 츠바이크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유년생활을 보냈고 작가 겸 극작가로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93년에는 독일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
소설의 주인공인 시시는 처음에 살던 집에서 어느 날 탈출을 감행한다. 이유인 즉 고양이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집주인이 자신의 주말농장 창고에 쥐구멍이 있는 걸 본 후 쥐를 잡기 위해 시시를 그 창고로 보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시시는 정신과 의사인 율리아의 집이 맘에 들었고 순진한 율리아를 자신의 '양녀'로 삼기로 했다. 비를 맞은 처량한 모습으로 시시는 율리아를 자극했고 애완동물이라곤 길러본 적 없는 율리아도 시시의 연기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율리아와 시시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녀가 자신의 환자를 치료할 때에도 둘은 환상의 콤비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시중을 들자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태생이 고매한 우리 시암 고양이는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생쥐로 배를 채우는 한심한 도둑고양이는 아닌 것이다." (p.14)
그러던 어느 날 율리아가 자신의 환자였던 슈테판 베르크를 맘에 두게 되었고 슈테판은 그의 동생 게오르그와 함께 율리아의 집에 들러 카드놀이를 하거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무렵 시시는 수려한 외모의 수고양이와 사랑에 빠진다. 율리아의 눈을 피해 수고양이와 사랑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던 어느 날 밤, 시시가 사라졌다는 불안감에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꽁초의 불을 제대로 끄지 않았던 탓에 화재가 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자고 있던 율리아를 시시는 다급하게 깨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입에 올리고, 수없이 한숨짓고 노래하는 사랑…… 나는 이런 사랑이란 싱싱한 연어 한 토막만도 못 하고 몇 차례 후려갈겨 떠나보낼 정도의 가치만 부여하고 싶다. 아침 여명 속에서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조차 한기와 갈증과 허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따뜻한 집과 율리아의 따스한 체온이 어찌나 그립던지 애처로운 소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p.125)
시시의 무용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인 척 가장해 율리아와 가까워진 남자가 율리아가 없는 틈을 노려 집안의 보석을 훔쳐가려 했을 때 시시는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고 하여 남자를 쫓아내기도 했다. 그것도 임신한 몸으로 말이다. 또한 율리아가 시시를 위해 출산침대를 만들다가 망치에 맞아 다리를 접질렸을 때도 시시와 슈테판이 그녀를 간호했다.
"만일 율리아가 의사가 되는 대신 외교관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매일 세계대전을 치뤘어야 했을 것이다. 바보 율리아는 미모사처럼 우아를 떨고, 끔찍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데다 문제는 수다의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246)
시시와 율리아의 좌충우돌 동거기(同居記)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은 똑똑하고 우아하며 사랑스러운 시암 고양이 시시의 관점에서 전개되지만 인간과 고양이의 교감이 마치 인간 대 인간의 우정처럼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내가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의 이름에서 독자가 받는 인상은 무척이나 차갑고 거친 느낌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까칠한 고양이 시시의 독설과 그 매력에 푹 빠져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
|
나는 까만색 샴고양이. 내 주인 부부는 길거리를 방황하던 나를 주워다 키워줬다는 이유만으로 날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안다. |
| 다른 사람의 상처입은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시시....그 고양이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지 알았던 듯 하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곳...그곳은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것이 보장되어 있었지만...시시는 과감히 그곳을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필요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조금씩 열어주는 시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다. 난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해야할 일을 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내가 있어야 하고 나를 가치있게 하는 장소를 찾아 떠날 수 있는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럴 수 있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한없이 슬퍼진다. 하지만 나에게 도전을 준다. 그 도전을 지나치지 않을때 이 책은 당신을 그리고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
| 시시는 참 행복한 고양이다. 비록, 입양한 (사람이 고양이를 기르는 게 아닌, 시시는 자신이 율리아를 입양했다고 생각한다) 율리아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진 못해도 시시를 아끼고 사랑하고 시시는 그걸 알고있다. 거기에 멋진 남자 슈테판은 율리아에게서 부족한 무엇들을 채워준다. 그리고 때론 자신과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 시시의 눈에 비치고 들린 바를 써나간다. 인간의 입장이었을 때는 생각도 못할 고양이의 입장들이 피력된다. 시시는 영리하고 자존심 자부심이 강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랑이 충만한 시시는 그의 입양녀 율리아를 사랑으로 대하고 정신과의사인 율리아가 하지못하는 율리아의 환자들에 대한 치료까지 떠맡는다. 인간의 입장에서 썼다면 그저 평범한 고양이 기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이기에 전혀 다른 이야기, 전혀 다른 흥미가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화"가 아닐까 싶다. 대화가 단절된 세상, 말이 없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얘기하고 지껄이며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느낀다. 비록 말이 통하지않고 서로 의견소통에 애를 먹지만 율리아와 시시가, 스테판이 그러한 거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거기서 피어날 수 있는 행복이란 얼마나 큰 것일까... |
|
![]()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참으로 서글프다. 딱히 사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보고 싶었던 책도 아니었다. 그냥... 음... 1+1 행사때 딸려온 상품 중 하나 였다;; (쏠이~~;;)
여튼.. 그렇기 때문에 한동안 쭈~욱 곰군 책장에서 길게 은둔생활을 해야 했던, 이 책.
긴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독일은 한 작가의 작품이다. 참 생소한 나라의 소설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한 마리의 고양이다. 이름도 차~암 사람스럽게 "시시"다.
이 소설은 이 고양이 녀석의 시점으로 쭈욱~ 진행된다. 즉, 고양이 한 마리가 바라보는 인간들의 세상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작가는 고양이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 나열해 놓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가... 고양이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작부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소설 너무 흔했고, 은근 교훈적인 색체를 담으려는 내용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시시"라는 고양이가 미치도록 매력적이고, 영리하고, 사랑스러웁다며 말하지만, 전혀~ 독자로서는 느껴지지 않으니 그것또한 문제인 듯 하다.
즉, 그닥... 재미가 없다는 거다. (역시, 1+1 행사용인건가;;)
주인공 "시시"는 대~충 이렇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가르렁 거리는 것)을 들어주기만을 바라는 것. 자기는 명령이라고 하나, 사람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시시의 주인인, 아니 시시의 말에 빌자면 자기가 주인이고~ 그는 친구인.. 정신과 상담의 율리아의 옆에서 환자들을 잘 보살핀다는 것, 오히려 율리아보다 더 낫다는 것.. 이런 것들은 매우 억지! 스러운 게 아닌가?
고양이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고 해서, 삐뚤어진 우리네를 완전 비꼬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고양이와 사람의 이루워 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고양이가 말을 하는 판타스틱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