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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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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 <이방인> 앨런 파커, [데이비드 게일]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는 이 시대 법치주의의 그림자를 비추는 굴절이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된 법치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관음에 의해 변형되고 부서졌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은 이유로 가혹한 법정심판을 받는다. 단지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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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이방인>

앨런 파커, [데이비드 게일]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는 이 시대 법치주의의 그림자를 비추는 굴절이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된 법치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관음에 의해 변형되고 부서졌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은 이유로 가혹한 법정심판을 받는다. 단지 태양이 눈부셔서 맞은 편에 걸어오는 아랍인에게 총을 쐈다는 이유만으로 내려진 '사형'은 어째서 부조리한가. 아마 당연하거나 마땅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포인트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조문이 아니라 죄를 집행하는 이들의 일관적이지 못한 시각에서 찾아야 한다. 

 

1999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휴머니즘과 정의로 반칙없이 정주행한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침묵과 양심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던 한 기자의 끈기와 용기가 죄 없이 희생될 뻔한 남자,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를 살려낼 기적을 만든다. 세상이 못한 일이다. 다수가 합리적이라 믿는 '제도'가 세상에 뿌리박힌 이후, 세상은 한 톨의 변화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트루 크라임]은 사실상 4년 뒤에 나온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영화에서 반복된다.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 사형만이 정답이라는 이들에게 질실로서 대항하는 기자의 고군분투라는 점에서 역시 같은 주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 얘기를 쓸 수밖에 없고 이 영화들이 계속 먹히는 이유는 그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고, 제도에는 언제나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현실에 가까운 묘사는 화면 바깥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나를 원망케 한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밝혀지지 않을 진실이 없으리라는 어이없는 확고함이 이 시대 법치주의를 견고히 받드는 한 피해자는 계속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뫼르소가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듯 비첨이 도망쳤다는 이유로 피의자가 되었다면 논리는 잘못되었다. 훗날 여러 번의 확인재판이 이뤄졌지만 최초 굳어진 도망자의 이미지는 그를 피고인으로 굳히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비첨은 흑인이었고, 죽은 백인 여자로부터 받아야 할 빚이 있었다. 정황에 대한 진실확인 없이 목격자의 확신치 못한 증언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강도를 당해 쓰러진 여자에게 인공호흡을 시도하다 몸에 피를 묻혔고, 낯선 자가 편의점에 들어오자 살면서 당해온 일련의 피해와 편견이 두려워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불우한 어린시절과 그에게 쭉 가혹했던 세상의 시선이 죄를 묻지도 않은 채 벌을 내렸다.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 않는 안일한 태도로 비첨을 가해자로 낙인찍어 약물을 주입해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만이 이 사회의 유일한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인 양. [트루 크라임] 속 비첨이 우연히 편의점에서 백인 여자의 살해범으로 몰리기까지의 정황은 그가 사건장소에 있었고 도망쳤고 흑인이라는 것과 빌려준 돈을 받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잘못된 방식으로 흐르는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 언론(기자)과 공안(검찰,경찰) 담당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유일한 교훈이 '사형제도 존속과 폐지'라고만 여기는 이와는 논할 이유가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사형제 폐지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통해서만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이유로 들 수도 있지만 이 영화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수사와 재판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수사와 재판의 이유는 법치주의 실현과 정의사회 구현에 앞서 진실을 파헤쳐 죄를 벌하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트루 크라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력인 휴머니즘과 진지한 감동이 극에 달한 영화이다. 게다가 겨울영화이기도 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엔딩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가득한 추운 길에서 끝난다. 딸의 선물을 사기 위해 인형가게에 들른 한 아빠의 행복한 얼굴에서 끝난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길이다. 모든 것이 시작될 수도 있는 곳에서 끝난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바로잡힌 사회 안에서는 이방인도, 사형제도 찬반론도 나올 틈이 없을 것이다.  



s*****d 2012.12.1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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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안에 사형수의 무죄를 입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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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러다간 조만간 이거 읽지않나 싶다. 그리고 분명! 충격받을거다.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책읽고 약간 정떨어진 며칠 이후 난 다시 애정을 더 듬뿍 얹어 회복했다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고있으면 왠지 아빠가 생각난다. 나이들고 주름살생기고 흰머리에 살이 빠져 호리호리해졌지만 걱정안생기게 무지 강한 사람.       2002년 [블러드워크 (테리 맥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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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러다간 조만간 이거 읽지않나 싶다. 그리고 분명! 충격받을거다.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책읽고 약간 정떨어진 며칠 이후 난 다시 애정을 더 듬뿍 얹어 회복했다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고있으면 왠지 아빠가 생각난다. 나이들고 주름살생기고 흰머리에 살이 빠져 호리호리해졌지만 걱정안생기게 무지 강한 사람.

 

 

 

2002년 [블러드워크 (테리 맥케일럽의 핵심을 파악하고 자신의 카리스마로 완전 멋진 모습을 보여준 클린트 이스트우드 짱!)]의 주인공 테리 맥케일럽을 클린트 이스트우드화하였던 것처럼, 1999년도 이 영화에서도 그는 주인공 스티브 에버렛을 자기화하였다. 마이클 코넬리의 [블러드워크]에서 그의 영화 테리와의 거리보다도, 영화 [블러드워크]의 테리와 1999년도 [트루 크라임]의 스티브 에버렛이 서로 더 많이 닮았다.

 

몇주전에,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않았지만 무지많은 작가들이 영향을 받았으며 많은 작품속 등장인물이 읽는 작가 Jame Lee Burke의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중 하나를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서도 토미 리 존스가 캐릭터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 것을 보면,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도 온전히 영화속 인물로 스며들기는 어렵나보다. 아니, 뭐 그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캐스팅된 이유이므로 남아있는게 그닥 단점이 되지는 않기도.

 

 

 

 

 

여하간, 아마존에 가보니 평가가 무지좋은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클라이븐의 1997년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1999년 제작발표되었다. 이 주인공 캐릭터는 위에서 언급했든, 알게되면 충격받을 그의 womanizer 기질을 담뿍받았다. 심지어 이 작품 속에선, 빨간머리 숏커트 검사로 출연한 프란시스 피셔는 그의 연인이었고, 딸로 등장한 범상치않은 손놀림의 여자아이가 그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사이에서 나온 실제 딸내미 프란체스카 피셔 이스트우드이다.

 

 

 

 

 

(프란시스 피셔, 이 분 기억나시는지. 많이 나오는 분이지만 결정적으로 최근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범인의 부자엄마로 마지막 한방을 날려주셨다. 오른쪽이 영화속에 각각 나왔던 친딸인데, 왜!!! 이 여자아이를 눈여겨보게되었냐면, 아빠로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칭얼대면서 얼굴을 막 때리는데 얼핏 저게 연기일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촬영장에서 연기하는거 치곤 정말 너무 연기같지않게 생생해서 찾아보니...헐, 자기 딸이었다. 그러니까 자기 얼굴 떄리고 전화하는데 옆에서 엄청 짜증부려도 가만히 있지. )

 

스티브 에버렛은 뉴욕에서 잘나가는 신문기자였다. 그러던 그가 바람피우고 알콜중독으로 사고를 치고 또 결정적으로 (처음부터 알려진게 아니라 그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때 알려준다. 타이밍 굿~~!) 강간범의 무죄를 입증하려다 그가 결국 진범임을 실토하는 바람에 완전 바보되어 좇겨나 오클랜드로 오게된다. 하지만, 아직도 그 버릇중 알콜중독만 고치고서 딸내미벌되는 여기자 미셸에게 추근대는데 (그게 아주 재섭는게 아니라 농던지고 아님말고 하는 식).. 미셸은 다음날 예정된 사형수 루이스 비첨의 인터뷰를 하게되었다면서 그녀의 기사를 편집장이 거부한것에 불만을 토로한다. 뭔가 구린데가 난다며..하지만, 그날밤 그녀는 차사고로 죽게되고.

 

다음날, 지를 싫어하는게 뻔한 편집장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스티브는, 그녀와 있는 것을 알고 전화한 편집장의 전화에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게 바로 오전 11시경. 그는 미셸의 인터뷰를 대신하게 되고, 여러 자료를 받는 가운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를 고쳐준 100달러도 안되는 돈을 갚지않은 편의점 여직원을 만나러간 비첨이 화가 나 임신한 그녀를 쏴죽였다는 죄목인데, 결정적인 목격자가 아무리 봐도 그 총소리도 그가 총을 든 것도 볼 수가 없는 것같은 것이다.

 

교도소. 한 흑인죄수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날의 일과를 매우 자세히 관찰되고 기록된다. 그가 바로 루이스 비첨, 그날밤 12시 1분에 사형될 예정이다. 오늘 그가 교도소장, 신부,아내와 딸를 만나고 그리고 신문기자의 마지막 인터뷰, 목사, 저녁식사 그리고 사형될 것이며 세 방의 주사로 어떻게 죽을지 매우 자세히 라디오와 TV로 계속 리포트되는데, 이와 함께 스티브의 고분고투가 교차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12시경 눈으로 레이저를 쏴대는 편집장, 그의 화를 누그러뜨리지만 스티브에게 화가 난 사장 (제임스 우드인데 어찌나 샤크스러운지.ㅎㅎ) 앞에서 은근히 눈치보는척하지만 전혀 눈치보지않으며 자료를 조사하던 그는 전화를 받는다. 별거중인 아내가 어린 딸에게 동물원데려간다고 한 그의 약속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4시에 인터뷰를 가기전 그는 번개처럼 딸내미를 동물원구경을 시켜주려고 하고 사고를 친다.  

 

 

 

(목격자와 전화로 약속을 잡는 와중에, 아빠 얼굴을 치고 공중전화 흔들고 ㅎㅎ, 이 딸내미도 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 이제 그는 12시간 동안 딸내미와의 약속, 목격장 면담, 검사미팅, 사건자료 조사, 사형수와의 인터뷰를 하며, 또 완전 믿어버린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라진 목격자 소년을 찾아내야한다. 근데 테리 맥케일럽처럼 그는 꽤나 부드럽다. 자신이 얻고자하는 것을 위해 그는 자기이야기만을 하거나 추궁하지않는다. 수그릴때 수그린다.

 

이 영화에서 그보다 사실 더 눈에 띈 것은, 교도소소장. 버나드 힐. 이분 [반지의 전쟁]에서 아들 차별하던 테오돈왕으로 나왔는데 필모보니까, 영국연극배우출신으로 은근 꽤 연기파이다. 이 작품에서도 참 은근한 인격을 보여주셨는데.. 사형수지만 안되보여서 매우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비첨의 딸이 교도소 올때 아빠 그려준다고 크레파스가져오다 녹색을 잃어버려서 마구 울자 직원들 데려다가 차 밑에서 그거 찾아서 갖다주고...또, 사형집행과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도 묵묵하고..그러다가 재섭는 신부가 괜히 그가 유죄시인했다고 해서 (그때문에 라디오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만 수사포기할 뻔 했잖아!!!!) 그거 아니라고 발표할거라고 화내주고 (그럼, 아무리 그래도 아닌건 아닌거지).. 

 

 

마지막 세 방의 주사가 주입되는 것과 결국 진실을 찾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운전하며 달려오는 것이 교차되는데...음, 사형수 입장으론 꽤 잔인한 편집.

 

여하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자랑하려고 없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던 목격자, 원래 소년원들락거리면서 자라서 그냥 그 와중에 도망을 갔던 비첨을 보고 또 그의 거짓말탐지기 결과 때문에 하나있던 목격자를 더 조사하지않고 확신하던 검사의 작은 방심이 정말로 무고한 생명을 죽게만들 수 있는 것을 보면서, 10명의 범죄자를 놔줄지언정 1명의 무고한 희생은 만들어선 안된다는 게 왜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님이 이해가 된다.

 

사형수를 받은 이사야 워싱턴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연기, 슬퍼하는 아내의 연기 (흑, 연기를 너무 잘해서 막 눈물이 났음). 등장하는 인물들 다 좋았다.

 

크레딧 자막 흐를때의 재즈곡이 정말 좋다 (네이버의 모바일음악검색앱, 정말 구리다. 제대로 찾아낸 적이 거의 없다) 아참, 맨마지막에 깜짝 루시 루 출연했다. 영화, 미국내에서는 흥행 성공했다고.

 

p.s: 이 영화에서 두번 좀 뜨아한 장면의 대사 : 자고있는 딸내미의 상처를 보러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고 "아빠, 여긴 왠일이야?" 쯧즈, 얼마나 안왔으면...

 

또하나, 사형수 아빠가 마지막이라고 (나중에 볼거라고 안하고 확실하게 클로징을 해준다. 좀 딸에게 잔인하지않을까 했지만, 커서 딸이 후회없게 해주려고 한듯) 하자 6~7살짜리 딸이 울면서 나가면서 "여기있는 사람들 다 죽이고 우리 같이 집에 가자" 헉, 너 어쩜 그런 생각을!!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k*****k 2012.04.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