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바베트의 만찬(원제목은 '운명의 일화'로 번역된다)은 디네센이 좀 ' 작품을 써 달라는 청탁에 쓴 대중적인 작품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 모음에 담긴 작품들 모두 책으로 엮이기 전에 미국의 유명 대중 잡지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디네센이 기껏 '아웃 어브 아프리카'의 작가 정도로만 소개된 한국의 상황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작품집이 번역되어 나온 것은 우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한국어로 번역된 그녀의 작품은 아웃 어브 아프리카가 유일했는데, 그나마 오역과 누락이 된 그 책들마저 지금은 절판 된 상태다. 이렇게 작가의 일부분만이 소개 된 상황은 자칫 작가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디네센은 회고록이나 쓰는 풍속 작가도 아니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규방 작가도 아닌, 생존 당시 덴마크의 문화계를 대표했고 젊은 문인들 뒤에서 새로운 문학 운동을 이끌기도 했던 거목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통찰력 깊은 인생관이 녹아든 우화다. 풍부한 인용과 상징으로 채워진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해석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어서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작품집에서도 '진주잡이'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자기 자신과 젊은 작가들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타와 경고로 이해되어져야 한다(일부 평자들은 자신의 평소 스타일에 반하여 쓴 '천사 복수자'에 대한 일종의 자조적 비판으로도 해석한다). 즉, 꿈을 포기한 젊은이가 들려주는 물고기의 '지혜'는 역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베트의 만찬'과 '폭풍'은 작가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깊게 드러난 작품이고, '불멸의 이야기'는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꼭두각시의 비유가 보이며, 가장 짧은 작품인 '반지'는 인생의 이면을 보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을 맞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재미있게 읽어야 겠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이야기 꾼은 그 속에 더 깊은 무언가를 숨겨 놓기 마련이다. 그것을 찾아내고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독자의 자세가 아닐까(바베트의 마지막 대사를 상기해 보라!)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마치 '어린 왕자'처럼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전하는, 평생을 두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인 것이다. 디네센의 보다 진지한 작품들 '일곱 고딕 이야기'나 작가 자신이 가장 아꼈다는 '겨울 이야기' 등이 출판 될 날을 고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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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는 자비로운 목사의 두 딸과 함께 사는 가정부다. 베를레보그 마을의 사람들은 두 딸의 목사를 기억하고 그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일에 힘을 쏟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목사는 세속의 쾌락을 거부하고 두 딸과 마을 사람들에게 신실한 믿음을 강조하며 하느님의 길을 가기를 바란 사람이었다. 목사가 죽고 노란 집에 남은 두 딸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자선을 베풀어 살아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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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와중에 금욕적인 청교도공동체에 숨어살다가 복권으로 당첨된 거금을 한 번의 만찬에 쏟아부음으로 맛있는 음식이 주는 쾌락의 의미를 알려주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공연하기 위해 뱃길로 이동하다가 실제 폭풍우를 만나게 되자 극에 너무 몰입되어 있어서 현실에서도 연극과 같은 영웅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신인여배우. 육체의 물기가 싫어서 피는 보는 것도 싫고 땀은 역겹고 눈물은 구역질이 나는, 사람의 뼈를 녹이는 사랑의 감정이 싫어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기에 알고있는 오직 한가지 이야기가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거짓말이라는데 실망해서 그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하여 재산을 아낌없이 쓰는 노인...
세헤라자데가 날이 밝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왕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처럼 이국적이고 알레고리가 가득한 다섯 편의 소설이다. 회고록으로 쓴 '아웃 어브 아프리카'와 이 책에 나오는 '바베트의 만찬'과 '불멸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 것을 보면 영화와 같은 삶을 살면서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썼던 작가임에 틀림없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지만 극중에서 카렌이 두 남자 친구에게 난롯가에서 자신이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목걸이를 뒤로 확 돌려감으면서 주인공의 죽음을 이야기 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하지만 기억의 왜곡이 심해지는 나이이니 잘못된 기억이라도 나를 이해해주세요.) "인간은 평면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고 땅에 묶여있지요. 땅은 인간을 받쳐주고 있지만, 두 발 아래의 좁은 공간만을 지탱해줄 뿐이에요. 인간의 자기의 무게와 그 무게에 담긴 근심을 스스로 지탱할 수 밖에 없어요...인간은 고생고생하며 땅 위로 솟은 산을 오르지만 언제나 다시 굴러떨어지게 되고, 그럴 때 인간을 받아주는 것은 딱딱한 땅이지요" (내 몸에 미치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며 고생고생 등산하는 일이 떠올라 헛 웃음이 나오네요)
참고로 바베트의 만찬의 메뉴. 아몽티야도(식전주로 마시는 셰리주), 바다거북수프, 블리니 드미도프(빵에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얹은 러시아요리), 1860년산 뵈브 클리코(마담 클리코가 17세기초에 만든 유서깊은 샴페인), 카유 엉 사르코파주(메추라기를 페이스트리로 싸서 여섯가지 이상의 소스를 끼얹어먹는 요리), 과일(포도, 복숭아, 무화과)... 가능하다면 시도해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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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i4rKTDyXw3s
이번 책은 [바베트의 만찬]입니다. 저자는 이자크 디네센입니다. 저자가 죽기 5년 전, 72세 때 쓴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저자 사후 25년 만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저자와 관련된 또 한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저자 나이 50세 무렵에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아웃 오브 아프리카’입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에는 일정 부분 저자의 모습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은 파리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가 노르웨이 외딴 산골 마을 만찬에서 베풀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정성이 담긴 식사를 함께 한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다정다감해집니다. 요리가 가진 신비한 힘입니다. 소설은 요리가 ‘혁명’이 되고 ‘예술’이 되고 ‘종교’가 되는 경지를 펼쳐 보여줍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작은 마을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회색, 노란색, 분홍색 등 갖가지 색깔의 목조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마치 장난감 마을을 보는 듯했다. 65년 전, 이 마을의 한 노란색 집에는 나이 많은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마르티네와 필리파 두 자매의 삶에는 유행이 파고들 구석이 없었다. 그들은 평생 단정한 옷차림만 하고 다녔다. 자매에게는 집안일을 돌보는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자가 있었다.
자매의 아버지는 마을의 목사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는 마을의 어르신 역할을 수행했던 아버지를 대신하면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몇 명 남지 않은 노인 신도들과 함께 자매의 노란집에서 성경 공부를 이어가면서 말입니다. 성경 공부를 계속하는 신도들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베트는 장차 이들을 만찬에 초대하게 됩니다. 바베트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바베트가 외딴 산골에서 자매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자매에게 프랑스인 가정부는 분명 어울리지 않았다. 목사의 딸들은 몇 푼 안 되는 수입과 시간을 모두 자선을 베푸는 데에 썼다. 슬픔과 괴로움을 안고 자매를 찾아온 사람들 중에 헛걸음하고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베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12년 전 자매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비탄과 공포에 떨며 갈 곳 없이 해매는 도망자 신세였다.
바베트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죽음을 피해 노르웨이 산골로 숨어들었던 것입니다. 바베트는 왜 하필이면 자매의 집을 찾아 왔던 것일까요? 바베트는 왜 만찬에 사람들을 초대했던 것일까요? 바베트가 마련한 만찬의 위상과 격조를 알아차리게 해주는 상류층 두 남자가 있습니다. 그 두 남자는 고고한 두 자매의 연인이 될 뻔했던 인연이 있었습니다.
열여덟 살이던 언니 마르티네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젊은 장교가 있었습니다. 방탕아로 살던 로렌스 로벤히엘름을 아버지가 고모집으로 내려 보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자매의 이웃마을이었던 것입니다. 젊은 장교가 읍내 장터에서 마르티네를 처음 본 순간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작별을 고하는 장면을 옮겨보기로 합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장교는 자기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그의 눈앞에 번쩍하고 나타난 것은 빚쟁이나 독촉장, 부모의 잔소리를 멀리 날려버릴 만큼 순수하고 고결한 삶의 희망이었다. 자신을 이끌어주고 토닥여줄 상냥한 금발 천사를 만난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서걱이던 앙금이나 근심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고모 집에 머무는 마지막 날, 장교는 마침내 마르티네에게 자기의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이전에는 예쁜 여자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달콤한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잘 나오지 않았다. 장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떼려다가 마지막 순간, 마르티네의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절규하듯 작별을 고했다. 장교는 고모집을 떠나 부대 주둔지로 돌아갔다. 장교는 자신을 추슬렀다. 충실하게 변한 장교는 자신이 속한 상류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되었다. 장교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쩌다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장교는 마침내 여왕을 모시던 여관과 결혼도 했다. 장교는 사교계에서 품위와 여유를 지켜야 할 때면 외딴 산골 마을 목사의 집에서 보고 들은 언행을 써먹었다.
로렌스 장교에게 마르티네는 너무 먼 당신이었을까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생 회색이나 검은색 옷차림만 하고 다니는 마르티네를 가까이 하기에는 말입니다.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은 장교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자매의 집이 너무 궁색하고 초라하게 여겨졌는지 바람둥이 로렌스는 감히 마르티네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작별을 고합니다. 작별 앞에서 마르티네는 도도하고도 초연합니다.
마르티네는 젊은 장교의 노리갯감이 되고자 비굴하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마르티네에게서 풍기는 평민의 자존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외딴 산골의 자연 풍광 때문이었을까요? 신실한 종교적 일상 덕분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비록 작별하였지만 외딴 산골 마을을 닮은 마르티네의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이후 장교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마르티네의 검소함과 순결함은 장교의 기억 속에 함께 하며, 방탕한 행실을 차츰, 저절로, 스스로, 바로잡도록 이끌어줍니다. 젊은 장교는 마침내 멋진 장군으로 승승장구합니다.
비굴하지 않은 도도한 평민다움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어 상류층의 성찰에 기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존감을 가진 평민만이 상류층을 상류층답게 고양시킬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이 소설은 계층을 뛰어넘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를 성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런 일깨움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치가 아닐까,싶습니다.
동생 필리파 역시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마을에 잠시 들른 파리의 유명한 가수 아실 파팽을 만납니다. 마흔이던 아실은 필리파의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천상의 음과 목소리에 그만 넋을 잃고 맙니다. 작은 마을 교회에서만 빛나기에는 필리파의 목소리가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실은 대도시 파리를 뒤흔들어 놓을 걸작을 계획합니다. 그는 필리파가 고금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디바로 떠오를 것을 꿈꾸며 다음과 같이 흥분합니다.
내가 늙었다는 건 괜한 생각이었어.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 바로 내 앞에 있잖아! 그녀와 내가 함께 노래 부르는 그날, 세상엔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날 거야. 황제와 황후, 왕자, 귀부인, 파리의 예술가들이 모두 그녀의 노래에 눈물을 흘릴 거야. 평민들도 그녀를 추앙할 거야. 억울하게 고통 받고 억압 받는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에서 위로와 힘을 얻게 될 거야. 스승인 나의 팔짱을 끼고 그랜드 오페라 극장을 나서면, 사람들이 필리파를 멋진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유명한 ‘카페 앙글레’로 앞다투어 모실 거야.
아실은 잔뜩 꿈에 부풀었지만 필리파의 거절은 담백합니다. 미련 없이 순수하게 거부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교회에서 그녀의 귀한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운을 알아채고 있을까요? 필리파는 어쩌면 외딴 산골 마을에 꼭 필요한, 그러면서 충분히 빛나는 아름다운 평민 디바였습니다.
아실은 자신의 꿈을 접고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후 ‘카페 앙글레’의 일류 요리사 바베트를 자매의 집으로 보냅니다. 아실은 혁명의 와중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평민 요리사 바베트를 지켜줄 안전한 피신처로 자매의 집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카페 앙글레의 고객이었던 아실과 요리사였던 바베트의 우정이 느껴집니다. 카페 앙글레는 필리파가 파리에서 성공하는 날 함께 가리라 마음먹었던 레스토랑입니다.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우정은 싹틀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아마 바베트는 요리사로서의 명예와 평민의 위엄을 한껏 갖춘 사람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아실과 평소에 충분한 신뢰를 쌓았기에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리라 싶습니다. 바베트가 아실이 써준 편지를 품고 자매의 집을 찾아오던, 비 내리는 그날 밤의 장면을 옮겨봅니다.
문을 연 자매 앞에는 몸집이 큰 거무스레한 여인이 사색이 되어 서 있었다. 짐꾸러미를 낀 여인은 죽은 사람처럼 문턱에 쓰러졌다. 겨우 몸을 가누고 앉은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젖은 옷섶을 뒤져 편지 한통을 꺼내 자매에게 건넸다.
편지는 노년에 접어들고 있을 아실 파팽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편지는 바베트가 코뮌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파리 코뮌은 1871년 3월28일부터 5월28일 사이에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 자치 정부를 말합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바베트가 요리를 할 줄 안다고 간략하게 밝힘으로써, 집안 살림을 도우는 사람으로 써달라는 언질을 줍니다. 편지를 요약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편지를 전하는 사람은 바베트라고 하오. 이 곳 파리의 거리에는 프랑스 민족끼리 서로 피를 흘리고 있소. 인권을 위해 일어선 코뮌 지지자들은 싸움에서 지고 목숨을 잃었소. 바베트 부인의 남편과 아들은 총에 맞아 죽고 말았소. 부인은 붙잡혔다가 가까스로 탈출했소. 부인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고 프랑스에 더는 있을 수 없는 처지라오. 이 부인은 시련 속에서도 재능과 위엄과 절제를 잃지 않을 것이오. 부인을 자비롭게 받아 주리라 믿소. 필리파 양, 지난 15년 동안 나는 당신의 목소리가 파리의 그랜드 오페라 극장에 울려 퍼지지 못한 것을 애석해 했소. 하지만 오늘 밤 화목한 가족의 품에 있을 그대를 생각하니, 한때 박수와 애정을 보내던 사람들에게 잊혀져 외롭고 우울한 지금의 내 처지에 비해 그대가 더 나은 삶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드오. 명성이란 게 뭐겠소? 무덤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하지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무덤이 종착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오. 천국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것 같소. 그곳에서 그대는 하느님께서 그대를 지으신 바 그대로 마음껏 노래할 것이오. 그곳에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오. 아! 그대는 천사들을 사로잡을 것이오.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아오. 한때 그대들의 친구였던 이의 경의를 부디 받아주오.
상류층이 드나드는 ‘카페 앙글레’의 고객이었던 아실이 그곳에서 일하던 요리사 바베트를 돕기 위해 보증하고 추천하는 편지입니다. 편지에서 아실은 두 자매에게 친구로서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부와 계층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존중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가톨릭교도 바베트를 루터교도인 자매가 맞아들여 함께 지내는 모습도 참 보기 좋습니다.
도움을 받는 바베트의 모습을 저자는 당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기죽지 않게 그려가는 저자 또한 참 보기 좋습니다. 저자는 은혜를 입은 바베트를 당당한 정복자로 표현합니다. 바베트가 자매의 집과 마을에 쓸모 있는 유익한 사람으로 정착한 모습을 소설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베트가 자매의 집에 처음 왔을 때는 마치 쫓기는 짐승처럼 불안한 눈빛에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따뜻한 환경에 새로 몸을 담자, 이내 곧 믿음직한 가정부의 자태를 보여주었다. 거렁뱅이처럼 보였던 여인은 알고 보니 당당한 정복자였다. 그녀의 침착한 용모와 그윽한 눈매에는 엄숙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소리 없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바베트가 집안일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는 살림에 드는 비용이 놀랍게 줄고, 이웃들을 위해 준비한 수프와 빵이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살찌우는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바베트의 뛰어난 솜씨를 인정했다. 바베트는 마을에서 제일 짜다는 장사치들과도 훌륭하게 흥정했다. 부둣가와 장터 사람들은 그녀를 존중했다.
존중받는 바베트는 만찬을 기획합니다. 바베트는 자매에게 처음으로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죽은 목사의 백 번째 생일에, 프랑스 만찬을 자기 돈으로 차리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입니다.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되어 수중에 1만 프랑이 있었습니다. 자매는 바베트의 귀한 돈을 먹고 마시는 일에 쓸 수는 없다며 거절합니다. 자매는 공짜면 사족을 못 쓰는 그런 평민이 아니었습니다. 바베트가 단호하고 우아한 자태로 간절하게 부탁하자 자매는 결국 동의하게 됩니다.
바베트는 만찬 준비를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조카를 만나 프랑스에서 사와야 할 물건들의 목록을 전하고 돌아옵니다. 바베트가 만찬의 날까지 상기된 일상을 보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마침내 만찬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초대한 손님 중에는 젊은 장교였던 로렌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장교가 아닌 장군이 되었습니다. 우울감을 달래려고 고모집을 찾았다가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고모집을 다시 찾게 된 심경을 소설은 다음과 같이 전해 줍니다.
장군은 인생에서 원하던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장군은 자신의 화려한 삶을 후벼 파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장군은 행복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장군은 어딘가 깊이 박혀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를 찾듯이 자기의 내면을 찬찬히 살폈다. 장군은 어느 때부턴가 자기의 영혼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럴 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장군은 도덕적인 사람이었고, 왕과 아내와 친구들에게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도덕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었다. 나이든 로렌스 장군은 작은 꿈 하나를 소망했다. 세상 물정에 밝은 노인이 된 그가 젊은 시절의 순진했던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장군은 만찬을 하는 저녁에 젊은 자신에게 확실히 인정받고 싶었다. 30년 전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자매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장군은 승마대회에서 우승하던 날, 파리에서 제일가는 레스토랑 ‘카페 앙글레’에서 베풀어졌던 만찬이 떠올랐다. 길 위에서 갑자기 그 순간이 떠올랐다.
30년 전 장교였을 적에 마르티네에게 반했던 로렌스가 이제 연로한 장군이 되어 마르티네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는 바베트가 베푼 만찬에서 파리 레스토랑의 그 맛을 고스란히 느끼게 됩니다. 먹고 마시면서 그는 거듭 놀라고 거듭 의아해 합니다. 파리에서의 만찬으로 돌아간 듯,다음과 같이 추억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정성스럽고 맛있었던 그곳 요리들, 그는 함께 식사했던 갈리페에게 요리의 이름을 물었었다. 갈리페는 파리 코뮌군을 공격하여 탄압했던 육군 장군이었다.
바베트는 장차 자신의 남편과 아들을 죽이고 코뮌을 탄압할 장군을 위해, 또 유명한 배우와 가수를 위해, 또 왕자와 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요리를 했던 프랑스의 일류요리사였습니다. 그 요리 솜씨를 그대로 온전히 발휘하여 노르웨이 외딴 산골에서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당첨금 1만 프랑을 고스란히 바치면서 말입니다. 인색하지 않은 통 큰 바베트의 모습에서 의연한 평민의 위엄과 품위를 느끼게 됩니다.
바베트가 베푼 만찬에 계층을 가리지 않고 초대된 열 두명의 사람들은 서로 어우러져 함께 축복을 누립니다. 바베트의 전 재산과 온 정성이 바쳐진 만찬이 빚어내는 신비한 분위기는 경이롭습니다. 요약 변용해 봅니다.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을 틔웠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한때 서로 욕했던 두 늙은 여인은 앙숙 같은 사이가 되기 훨씬 이전으로 돌아갔다. 둘이 함께 손을 맞잡고 끝도 없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니던 소녀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한 늙은 노인은 사내아이들이 치고받듯이 옆의 친구 옆구리를 툭 쳤다. 그리고는 목재 거래 때 왜 자신을 속였냐며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들은 친구는 거의 고꾸라질 정도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래 그때 내가 그랬다며 솔직하게 시인하고 눈물을 흘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정직한 선장과 얼굴에 주름이 팬 신앙심 깊은 과부는, 젊은 시절 과부의 남편이 살아있을 때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당시 끔찍한 죄의 대가를 영원히 면치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상대에게 잘못을 미루고 시선을 피하며 냉랭하게 지내왔다. 이제 그들은 비밀스런 사랑에서 도망치느라 못다 나눈 긴 입맞춤을 했다.
만찬을 마친 후 장군과 마르티네가 헤어지는 모습은 참 소소합니다. 감미로운 그 부분을 옮겨봅니다.
장군은 말없이 마르티네의 손을 붙잡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매일 당신과 함께 했었소. 그랬다는 것을 아오? 내게 남은 나날 역시 당신과 함께할 거요, 오늘 밤처럼, 매일 저녁 나는 당신과 저녁을 먹겠소. 육신으로가 아니라 영혼으로 그렇게 하겠소. 오늘 밤 나는 세상에서 그 무엇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소.“
만찬을 준비하면서 바베트의 당첨금이 한푼도 남김없이 쓰였다느 사실을 알게 된 필리파가 ‘가진 돈을 우리를 위해 모두 써버리다니, 평생 가난하게 살면 어쩌려고,’ 하고 걱정합니다. 바베트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요리 솜씨를 가졌기에 두려울 게 없어 보입니다. 예술에 버금갈 정도의 실력을 갖춘 바베트가 부럽습니다. 필리파의 걱정에 바베트의 대꾸를 전하며 책을 덮습니다.
카페 앙글레에서 12인분 저녁 식사 재료비가 1만 프랑이에요. 마님들을 위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할 힘이 있어요. 최선을 다할 때 완벽한 기쁨을 줄 수 있어요. 아실 파팽씨가 저에게 말했어요..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박수를 받는 것만큼 참을 수 없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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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을 알게 된 것은, 현재 열린민주당 비례대표인 김진애의 <여자의 독서>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김진애는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후배 한 명이 그 모임이 '바베트의 만찬'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바베트의 만찬'이 얼마나 극찬인지 알게 되었다. 또한 김진애는 <여자의 독서>에서 <<바베트의 만찬>>의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소개했는데 메릴 스트랩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를 찾아봤는데 감동적인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본 이후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도 봤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기독교영화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영화를 본 이후로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책은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외식을 줄이고 요리를 하나씩 해보고 예쁘게 셋팅해서 사진찍어 지인들과의 톡방에 공유하는게 재밌다. 다들 맛있어보인다고 우리 집에 와서 먹어보겠단다. 이사한지 1년이 다되어가지만 코로나 때문에 집들이를 미루다가 드뎌 이번 기회에 집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함께 먹을 저녁 메뉴와 각종 그릇 셋팅과 집정리와 꾸밈 등을 준비하면서 <<바베트의 만찬>>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참에 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려왔다. 생각보다 분량이 적은 책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영화를 보고나서 소설을 읽으니 소설 내용이 더 잘 이해되었다.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검색해보니 줄거리가 잘 요약된 글들이 많아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줄거리를 간략하게 써놓으려 한다. 노르웨이 베를레보그에 극도로 금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 자매 마르티네와 필리파가 살고 있었다. 두 자매는 젊었을 때 무척 아름다웠고 구애하는 남성들도 각각 있었지만 금욕 때문인지 둘 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필리파의 옛 연인인 파리의 유명한 가수 아실 파팽의 편지와 함께 바베트라는 초췌한 여자가 자매가 사는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바베트와 함께 살면서 두 자매는 집안 살림에 도움을 받고 아버지 목사님의 교인이었던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돌볼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된다. 바베트는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 프랑스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게 되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바베트가 이제 이 마을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는 자매들에게 바베트는 자매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100주년 생일 파티에 만찬을 차리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자매를 비롯한 생일 파티에 초대된 마을 사람들은 매우 금욕적이라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절제하고 바베트가 알아서 준비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바베트가 준비한 음식은 와인과 샴페인 뿐 아니라 바다거북 스프와 메추라기 요리 등 진귀한 프랑스 요리들이었다. 이 요리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노골적으로 감탄한 사람은 마르티네의 옛 사랑 로렌스 로벤히엘름 장군뿐이었다. 로벤히엘름 장군은 마르티네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30년이 지나서야 이 마을을 방문한 사람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놀라운 재료들로 만든 뛰어난 음식들의 맛을 보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돌아가신 목사님을 추억하는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사실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케케묵은 갈등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바베트의 만찬에서 맛있는 음식들에 감탄하는동안 사람들은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이 스르르 녹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파티가 끝났지만 바베트는 떠나지 않는다. 당첨된 상금 만 프랑을 만찬을 준비하는데 모두 썼다고 한다. 자신은 프랑스 유명 레스토랑의 최고 요리사였으며, 정치적인 적들조차 바베트의 만든 요리에 감탄하였다고 한다. 필리파의 옛 연인 가수 바베트는 예술가로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예술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가보다. 이사한지 1년만에 집들이 만찬을 준비하면서 나도 바베트의 만찬을 차려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도 좋지만 같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의 마음 속에 혹시나 있는 응어리들을 풀어내는 '예술적인" 만찬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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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것에 서툰 나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책에서 읽은 이야기죠. 그렇죠. 나란 사람은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며 또 그 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니까요. 그건 그렇다치고 지금 내가 하려는 그 '책' 이야기는 이전에 내가 읽은 그 어떤 책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입을 간지럽혔어요. 그래요. 우습겠죠. 지금 내가 소리를 내지 않고 글자로 이야기 하니 어찌보면 입간지럽힌 게 내 입이 아니라 내 열 손가락일 수도 있겠네요. 서두가 길면 이야기는 지루해지죠.
들은 적은요? 난 없었어요. 다행이죠.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봐버리면 왠지 속상하고 서운하잖아요. 연애없이 결혼부터 한 것과 같은 기분이라면 이해가 될까요? 맞아요. 난 결혼도 안해봤지만요. 암튼 바베트의 만찬은 프랑스 여인 '바베트'와 노르웨이의 나이든 두 자매가 등장하는 이야기죠. 당신도 봤나요? 아, 걱정말아요. 줄거리를 떠벌 릴 생각은 없어요. 바베트는 혁명가였죠. 여성이었구요. 혁명을 통해 남편과 아이를 잃고 도망치듯 노르웨이의 두 나이든 자매의 집으로 들어가죠. 그것도 가정부로. 하지만 보통 가정부가 아니죠. 그녀가 혁명가 였고, 일류 요리집 주방장이라서가 아니라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자체가 보통이 아니란 얘기에요. 뭐라구요? 일본영화 달팽이 식당에 나오는 여자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구요? 좋아요. 그럼 폭풍우 이야기를 해보죠. 솔직히 나도 바베트의 만찬이 타이틀이긴 했지만 썩 감동받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폭풍우에서 내가 골똘히 생각한 부분은 과연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면서 까지 자신에게 솔직해야 만 했던 말리를 이해할 수 있느냐였어요. 저도 그런적이 있었죠. 사랑하는 이를 속일 수도,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이유없이 결별을 말할 수도 없어서 혼자 방황했었던 적이요. 하지만 전 말리와는 달랐어요.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을 그저 '사랑의 힘'일 뿐이라고 생각했죠. 그럼 안되는건가요? 사랑하면 괴로움을 나누는거라면서요? 나를 용서한 그가 괴로운건 날 사랑하기 때문이니까요. 말리를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랑하면 정말 사랑한다면 괴로워지더라도 그 선택을 일단 상대에게 줘야하잖아요! 그리고 그가 거부하면, 뭐, 한마디 욕을 내뱉어주며 헤어져주면 되잖아요! 아님 말구요. 안될게 뭐가 있어요?
오! 이말을 도장에 새겨가며 살았던 사람의 딸, 비르지니에 대한 이야기가 또 생각나네요! 비르지니. 멋진 여자지만 어리석기는 말리와 다를게 없죠. 나이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남자를 보내잖아요. 물론 그의 꿈까지 사랑했기에 가능했겠지만 함께 꿈을 이룰 수도 있었잖아요. 그건 비르지니가 안될게 뭐가 있어!란 자신의 아버지말을 새겨듣지 않아서였던 것 같아요. 동업자 클레이로 인해 자살했던 그였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자신의 집에 있는 귀한 보물들을 제손으로 파괴할 만큼 강한 인물이었는데 비르지니는 역시나 정이 너무 많은 여자였던거죠. 하지만 그녀도 엘리샤마가 그랬던 것처럼 진주조개를 통해 유년의 좋은 추억을 상기하며 다시 강해질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도 있을거에요. 진주조개를 귀에 가져가되면 바다가 들리죠. 누구라도 평온하며 호기심 강한 표정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을거구요. 그 진주조개를 맘껏, 부를 축적 할 만큼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아요? 걱정말아요. 내가 알려줄게요. 예쁘고 귀한 조개를 구하려면 바다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려면 거북복어를 만나야 해요. 천사의 존재를 믿고, 그들을 만날 수 있을거란 열정을 품는것도 좋지만 그러다간 사우페처럼 상처를 입을 지 몰라요. 그래요. 난 진주조개를 맘껏 취하지 않는 댓가로 순수함과 상처입는 젊은 날을 포기하고 싶었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겠어요. 거북복어말을 들어봐요. 신이 가장 총애하는 게 물고기라잖아요. 인간은 자신들의 능력과 손과 발로 길을 열고 시간을 계산하면서 스스로 절망한다는데 제가 딱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계를 보고 있다니까요. 당신도 그러니 시계그만봐요. 이제 이야기를 슬슬 정리할 참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요? 당신은 가난한자의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이야기 하다말고 왜 질문이냐구요? 실은 '반지'를 읽고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리세의 마음은 이해가 되는 데...아 그만두죠. 내가 얘기를 다 해버리면 당신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지잖아요. 아니에요.난 리세의 마음을 정말 이해한다구요. 나라도 그 결혼반지를 다시 끼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남자의 눈을 봐버렸잖아요. 리세가 봤을 때 나도 똑똑히 봤다구요. 가난,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 어쩌면 시기스문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몰라요. '불쌍한 놈'이라고 하잖아요. 아. 미안해요. 너무 많이 말해버렸죠. 알겠어요. 시간이 너무 오래지났네요.
다음에는 꼭 당신도 이 책을 읽고나서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해주면 좋겠네요. 난 아직 할 말이 너무 많다구요. 미라 자마의 힘이 좀 대단해야 말이죠.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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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바베트의 만찬'도 처음 들어봤다. '이자크 이네센'도 당연히 처음 들어봤다. 아~! 두편의 영화는 이달내로 꼭 볼것이다. 더불어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도 꼭구매해서 읽어 볼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좋았으니까.. 내가 자주 드나드는 블로그가 하나있는데, 예전에 그곳에서 추천하는 '애도하는사람'을 읽고, 완전 좋아서 '바베트의 만찬'도 바로 주문했다. 역시 베스트셀러도 좋지만, 입소문이 좋은 도서를 읽는 것도 좋다.
이자크 디네센은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번이나 오른 소설가라고 한다. 그것도 한번은 헤밍웨이가 수상했을 당시였고, 또 한번은 알베르 카뮈가 수상했을 당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리 친숙한 소설가가 아니니.. 이번 기회에 마구 마구 사랑해줘야겠다.
바베트의 만찬은 한때는 예술가였던 바베트라는 집안 일을 돌보는.. 가정부?의 얘기이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께서 복권에 당첨되면 뭐할꺼냐고 물어보셔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해야겠다고 했다. 누구누구 초대할꺼냐고 물어보셨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잔치를 열어야 할것같다고 했던 기억이난다. 바베트의 만찬도 바로 복권당첨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결말은.. 만찬만큼이나 따뜻한것들이 가슴 가득차오를 것이다. 아마도 만찬에 초대되었던 사람들이 바뀌었듯 우리도 그녀로 인해 변화가 생길것이다.
폭풍우는 폭풍우가 연극임에 주목해야 한다. 폭풍우라는 연극에 출연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인데, 어디서부터 연극이고 어디까지 연극인지는 결말을 보면 바로 알수있다.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니, 기대하셔도 좋다.
불멸의 이야기는 정말 불멸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학교에 흔히 떠도는 얘기들이있다. 내친구가 겪은거라면서 아이들은 아주 실감나게 얘기를 한다. 그러나 그냥 떠도는 애기일뿐이다. 내가 고등학교시절 내친구가 겪었다던 일은 지금 고등학생들도 자신의 친구가 겪은이야기라면서 나에게 얘기해주곤한다. 불멸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얘기를 진짜로 만들고 싶은 한 노인의 얘기다. 그래서 그 가짜이야기를 진짜로 만들 사람들을 구해 연극을 한다. 그러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책을 통해서 확인하시길..
진주조개잡이는 천사를 만나고 싶은 신학을 공부하는자의 얘기이다. 천사를 만나고 싶어서 날개를 만들어 날아오르는 것도 시도해보고, 날개 달린 새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그를 시험에 들게하는 천사가 나타나니.. 천사의 정체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암튼 그 천사로인해 조롱거리가 되고, 그는 사라진다. 그러다 나이든그를 만나게되는데, 이번엔 하늘이 아닌 물 속 얘기를 한다. 날개달린 새가 아닌 날개도 없고, 팔도 없는 물고기.. 그가 물고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얘기해주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구절이라 표시해뒀다.
반지는 매우 짧지만, 그래서인지 두번이나 읽었다. 매우매우 사랑했던 남녀가 결혼을하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부인은 그런 얘기를 한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도 남편의 것이고, 모든게 남편것이라고, 그리고 그남편은 자신의 것이라고.. 그렇게 모든것을 얻은것같은 여자가 아무것도 없는 한남자와 마주치면서, 반지를 잃고, 무언가 깨닫게된다.
뭔가 잔잔하면서도 확 끌어당기는 그녀의 글들은 맛있다. 사람들이 왜 그녀를 이야기꾼이라고 하는지 알것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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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크 디네센의 글들은 구름이 잔뜩 끼고 일조량이 적은 어느 이국의 느낌이 납니다. 우중충하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엷은 신비감과 우수가 있는 그런 날씨 말이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감상이긴 하지만, 정말로 디네센의 글들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기보다는 두어 겹 베일을 쓴 듯하고, 그런 분위기가 매력입니다.
구구절절한 묘사가 절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들은 아름답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진중하지요. 선량하든, 오만하든, 순수하든, 그들 모두에게는 인간적인 무게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지만, 그래도 운명에 휩쓸리는 연약한 인간이기보다는 꼿꼿이 서서 운명을 맞이하는 신화 속 인물 같은 우아함이 있어요.
또한 이야기는 앞뒤가 정확히 맞아들어가서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요. 어떤 인물의 과거가 묘사되었다면, 그것은 지나가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반드시 현재와 연결됩니다. 당연한 인과이든, 혹은 아이러니든. 이런 깔끔한 구조는 은근히 전설적인 느낌이 납니다. 완벽하게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처럼 보이거든요.
사실적인 이야기들만이 선사할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면, 매끈하게 쌓아올려진 구시대 풍의 설화들만이 줄 수 있는 정제된 아름다움은 또 따로 있습니다.
깔끔한 책 디자인도 칭찬하고 싶군요. 요즘 소설들은 상당히 요란한 표지가 많은데, 디네센의 우아하고 과묵한 이야기들에 총천연색의 겉표지가 붙었다면, 안 좋았을 거예요. |
그래, 이것이 끝이 아니야! 바베트, 난 알아, 이게 끝이 아니야..
바베트는 천국에서 하느님께서 바베트를 지으신 그대로 위대한 예술가로 남을 거야! 오!..
처음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때는 낯설었다. 하지만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실제 모델이란 것을 알고 나서는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실은 이 작품은 EBS에서 언젠가 세계명작으로 본 것 같은데 제목을 잊고 있었다. 내용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왜 제목을 잊어 버렸는지.. 그러다 만난 <바베트의 만찬>은 작가의 단편집이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 주듯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책에 빠져 들게 하는 마력이 있음을 알겠다.그녀가 두번이나 노벨문학상을 놓쳤던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번은 헤밍웨이에게 밀리고 한번은 카뮈에게 밀렸다니 대단하고 천부적인 이야기꾼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것 같아 안타깝다.
바베트의 만찬은 노르웨이 한 해안근처의 어느 집, 가난한 노처녀 둘이 사는 집에 어느날 한 여인이 와서 쓰러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노처녀들은 그녀를 하녀로 거두었다. 하녀로 일을 하는 바베트는 무보수로 노처녀들의 식사를 담당했는데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노처녀들은 묻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목사였던 아버지 때문에 청빈한 삶을 사는 두 노처녀들은 지난 사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지만 목사였던 아버지 덕에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도 유지하며 살고 있다.
그런 어느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백번째 생일파티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데 마침 바베트가 프랑스에서 산 복권이 큰 금액에 당첨이 되었다며 그 생일파티를 자기가 차리고 대접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준비하는 그녀를 걱정을 하며 옆에서 지켜보는 노처녀 마르티네와 필리파, 처음 보는 바다거북을 보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이 회개망측할것 같아 미리 경고를 하듯 하기도 하는데 바베트가 들여오는 술과 음식재료들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그릇들을 본적도 없고 오래된 와인을 만나지도 못했는데 끊임없이 들여오는 회귀한 것들에 그저 걱정만 하고 있는 두 노처녀들과는 다르게 바베트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한다.
드디어 돌아가신 목사의 백번째 생일날 초대된 사람들은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말로만 듣던 음식과 술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형언할 수 없는 맛에 매료되어 행복한 만찬을 즐긴다. 음식을 먹는 순간에는 흉측한 바다거북의 생각도 다 잊었다. 그렇게 만찬은 마을 사람들에게 흡족함을 안겨주며 끝이 나고 두 노처녀는 바베트에게 묻는다. 얼마나 들었는지.. 세상에나 자신들은 거금을 현금으로 보기도 처음인데 그 많은 돈이 모두 하루 한끼 만찬을 준비하는데 모두 들어갔다니.. 바베트는 프랑스 제일의 요리사 였던것. 그녀의 지난 과거가 밝혀지고 오로지 복권당첨금은 자신의 제일 행복을 느끼는 음식을 만들면서 다 써버렸다는 위대한 예술가 바베트, 그녀의 만찬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는 <바베트의 만찬>외 <폭풍우> <불멸의 이야기> <진주조개잡이> <반지>등 다섯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모두 재밌다.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인것 같다. 한편 한편이 모두 영화를 보는 듯한 이야기로 단편이지만 짧은 이야기속에 모든것이 다 실려 있듯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읽고 싶어졌다. 오래전에 영화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데 얼마전에 EBS세계테마여행에서 영화의 한 장면인 홍학이 사는 호수를 비행기가 나는 장면이 나왔는데 넘 보고 싶게 만들었다. 실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며 그 이야기를 쓴 '이자크 디네센(본명:카릭 블릭센)' 그녀가 차린 만찬이 점점 궁금해진다.
'베를레보그사람들은 잘 차린 음식을 먹을 때면 분위기가 진지했었다. 그런데 오늘 밤은 달랐다. 먹고 마실수록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더이상 자기들이 했던 약속을 일부러 상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음식에 대해 잊는 것뿐만 아니라 먹고 마신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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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은 길지요. 어둠은 너무 빨리 밝음을 흡수합니다. 이런 밤엔 페치카 옆에 앉아 좋은 이들과 보드카 한 잔을 마시는 게 어울립니다. 지금 이곳이 러시아라면 말입니다. 프랑스 어느 마을이라면 갓 구운 쿠키와 따뜻한 커피를 옆에 두고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다 슬며시 잠이 들 수도 있을 거고. 그러나 현실은 옆으로 누워 TV 리모컨을 만지작만지작. 아니면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다 삶의 쓰라림을 토해낼 수도 있겠지요. 『바베트의 만찬』은 덴마크에서 태어난 이자크 디네센(본명:카렌 블릭센)의 5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 소설집입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그녀의 실제 이야기라고 합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과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상공을 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러고 보니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같이 경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 이야기가 옆길로 샜군요. 덴마크에 태어난 이자크 디네센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등을 여행했고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바베트의 만찬』에 실린 단편들에서 모두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라는 사실을 밝힌 후 노르웨이, 덴마크, 이란, 중국 등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꾼이 되려면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해야겠지요.『바베트의 만찬』 속엔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등장하지만 이자크 디네센이야말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지」의 리세는 10년 전 미래를 약속한 남편과 결혼해 결혼한 지 일주일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양을 좋아하는 남편을 놀라게 할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을 만들 생각에 숲의 빈터에 숨는데 그곳에서 양도둑을 만나게 됩니다. 리세는 양도둑에게 애걸하기 위해 반지를 주려다 손수건과 반지를 떨어뜨렸는데 양도둑은 반지를 발로 차고 손수건으로 다친 왼팔을 감싸고는 사라졌습니다. 그때 그녀가 느낀 것은 자유였습니다. 구속받고 있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말이죠. 과거의 시간(사랑)이 현재를 만들지만 과거의 행복이 현재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달콤한 자유를 맛본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김빠진 사이다 맛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폭풍우」의 말리는 쇠렌센 극단의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해요. 평생 숙원이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우 Tempest》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었던 쇠렌센은 말리를 보고 공기의 정령 에어리엘 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말리는 쇠렌센 극단과 함께 떠나는데 기상 악화로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젊은 예비 선원 페르디난드 스케렛과 함께 침몰 직전의 배에서 사람들을 구하면서 늙은 선주의 아름다운 아들 아른트를 만나게 됩니다. 말리는 사랑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아른트를 보며 자신이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자신과 에어리엘을 동일시하고 생을 따라갑니다. 사람들의 삶에 생명을 불어놓은 존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믿었지만 사람들에게 죽음을 불어넣는 존재,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이어 내려온 운명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비탄일 거예요. 그녀는 아른트를 떠나며 자신이 아른트에게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 역시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비로소 그녀가 아버지나 연극, 아른트에 의한 삶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겠다, 싶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폭풍우 Tempest》는 이렇게 또 한 편의 이야기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미라 지마는 이자크 디네센의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의 등장하는 이야기꾼입니다. 『진주조개잡이』는 미라 지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이란의 시라즈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우페는 천사를 만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날개를 만들기 위해 날짐승을 연구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그 일의 성공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일은 자신들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재는 내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인식될 때 더 빛나는 게 아닐까요? 바다 밑바닥까지 잠수하는 이들에게 많은 일이 일어난다. 신비와 모험의 산물인 진주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만 계속 관찰해도 수백 가지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진주는 시다. 아픔이 변해서 투명하면서도 불투명한 사랑이 된다. 바다 깊은 곳에서 품어온 비밀은 여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여인들은 진주를 들여다보며 자기 가슴 속의 비밀을 엿본다.(287-288쪽) 미라 지마는 진주조개잡이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잠수부를 만나 사우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이야기의 주인공 사우페가 잠수부라는 놀라운 사실과 만나게 됩니다. 독자는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을 읽지만 다른 소설 속 인물 미라 지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구성입니다. 미라 지마의 이야기는 전반부, 타인에게 전해 들은 신학도인 사우페의 이야기와 후반부, 잠수부가 되어 성공한 사우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 나뉩니다. 또한 후반부 사우페의 이야기는 바다에서 만난 거북복어가 들려주는 신이 천지만물을 만든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있는 구성인데 그런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아름다운 삶이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불멸의 이야기」는 광둥성에서 차(茶) 장사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경쟁자 뒤퐁을 파산시켜 자살로 이끈 클레이 씨는 뒤퐁의 아름다운 저택을 인수해 살고 있습니다. 매년 장부만 읽던 그는 직원인 엘리샤마에게 다른 종류의 책에 대해 들어봤냐고 묻습니다. 엘리샤마는 클레이에게 폴란드를 탈출할 때 유태인 노인에게 받은 종이쪽지의 글,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어줍니다. 예언이 싫었던 클레이는 그 이야기를 실현해 진짜 이야기로 만들 생각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이용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할아버지의 이름도 폴, 아버지의 이름도 폴인 청년 폴은 비르지니에게 배를 타고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그에게 “저를 기억해주실 건가요?”(262쪽)라고 묻자 그는 그녀에게 “모두 기억할게요. 당신 얼굴을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264쪽)라고 답합니다. 이야기는 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한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이야기입니다. 표제작인 「바베트의 만찬」의 바베트는 자선을 하며 살아가는 나이 많은 두 자매 마르티네와 필리파의 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는 프랑스 여자예요. 코뮌 지지자였던 남편과 아들은 죽었고 그녀는 더 이상 프랑스에 있을 수 없는 처지였어요. 그녀에게 두 자매는, 노르웨이 이웃들은 삶의 행운이었을 거예요. 그랬기에 복권 당첨금의 전부를 그들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일에 다 쓸 수 있었겠지요. 요리는 정성이라고 하지요. 고급재료라 해도 정성이 없는 음식은 맛이 없어요. 정성은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깊을 때 나오기 마련이죠.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는 건, 그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받았다는 뜻일 거예요. 그녀는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녀의 요리는 이웃들과 그녀 자신을 위한 요리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를 알아본 그녀,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 그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행운이었을 거예요.
2011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을 읽으며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맛있는 요리와 와인을 준비해 좋아하는 이들을 초대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군고구마와 군밤을 옆에 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그들과 같이 있는 건만으로 그저 좋았던 10여 년 전 청춘의 어느 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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