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에 전교생이 60명 정도 되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학생수는 점점 줄어만 간단다. '떠나지 못해 남은 아이들'과 '밝힐 수 없는 사연을 가진 아이들' '엄마아빠에게 버려진 채 친적집에 맡겨진 아이들'이 대부분이란다.
그 곳에서 전병호는 5년 넘게 선생님으로 갔던 그 곳에서 전병호는 그만 시인이 되고 만다. 어쩌면, 그 어떤 사람이라 해도 그 곳에서는 시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곳 '들꽃 초등 학교'에서라면. 그만큼 들꽃 초등 학교의 이야기들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생일>
안 가겠다고 해도
바람이 자꾸 들길로 나를 불러냈어요.
머리 위에서
파랗게 열리는 하늘
콩새들이
떼지어 날아오르는
들 끝까지
바람이 자꾸 같이 가 보자고
등을 밀어요.
저것 봐.
꽃다지가 볼에
밥풀을 가득 달았잖아.
민들레는
꽃으로 징검다리를 놓고.
오늘 혹시 들 끝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집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엄마.
엄마.
<선생님의 고백>
1.그 날은 깜빡
너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가족과 가정' 단원이라
난 가족 사랑을 이야기했지
갑자기 참새 소리도 뚝 그치고
조용해진교실
창 밖 하늘은 서럽도록 파랗게 빛나는데
아이들 등뒤에 고개 묻고 너는
돌보다 무거운 눈물 뚝뚝 떨어뜨리는 것을
소리 내지 못하고 우는 너 보며
내 마음은 얼마나 아팠던가
평소 조심했는데 그 날은 깜빡,
너는 항상 웃는 장난꾸러기라서 그걸 믿고
내가 그만 오래도록 가족 사랑을 이야기했구나
3.세 가지 소원
내 첫번째 소원은 아빠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내 두번째 소원도...아빠..엄...마와 함...께
행...보...ㅎ........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네가 책상에 엎드렸을 때
판사 화가 슈퍼 주인이 될 아이들은 입 꾹 다물고
나도 엄마가 없는데, 용현이도 울고
선생님도 할 말 잃고 서 있고
네 울음 하늘에서 듣고 아빠도 울었을 거다
네 울음 산 너머에서 듣고 엄마도 또 눈물 뿌렸을 거다
네가 끝내 말하지 못한 세 번째 소원
무엇인지 다 안다
어른이 되어서도 평생 가슴에 담고 살 말인 것을
<야영날 밤>
5학년 여선생님이
술 취해서
큰 소리로 밤새 노래 불렀대.
5학년 여선생님이
화가 몹시 나서
헛소문낸 아이를 찾는대.
선생님 옆모습 보고
문득 자기 엄마 생각나서
승렬이가 한 말이래.
백합같은 승렬이 엄마는
술 취해 슬픈 노래만 부르다가
작년에 집을 나갔대.
5학년 여선생님이
그 말 듣고
승렬이를 꼭 안아 주셨대.
선생님도 울고 계셨대.
들꽃 초등 학교 아이들의 소원은 구찌 지우개도, 첼로 과외도, 해외 어학 연수도 아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게만 해 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해서 소원일 수도 없는 그런 소원을 가지고 사는 아이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불행하고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녀석들의 욕심이 작고 소박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녀석들 역시 맑고 순수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악수>
은철이가 씩식거리며 달려왔다.
전학 온 아이가
민수를 이겼대.
근정이도 소리치며 달려왔다.
너도 이긴대.
아이들에게 등 떠밀려 나간 뒤운동장에
까무잡잡한 아이가
돌주먹을 쥐고 서 있다.
너도 이긴다고 했어.
정말이야.
옆에서 자꾸
싸움시키는 애들이 밉다.
그 애 앞으로 나서며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나, 태형이야.
친하게 지내자.
한 사람만 빠져도 그 빈 자리가 크기만 하고, 학교방송이 온 동리에 다 울려 퍼지고, 이름만 들어도 누가 누구인지 금새 아는 그 조그만 학교에서 아이들은 쌈박질도 하고, 운동회 연습 땡땡이도 치고,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짖궂은 장난으로 울리기도 하고, 선생님이 다른 아이만 좋아한다며 시샘하기도 하고, 스승의 날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대표자리를 다투기도 한다.
정말이지 이 아이들은 들꽃을 닮았다. 이 책의 책장을 넘기다보면 들꽃이 가득한 들판에 서 있는 듯 하다. 건강하고 풋풋한 들꽃 향기가 듬뿍 배어있는 산들바람을 받는 듯 하다. 그러나 그 바람의 한 구석에는 '슬픔'이 이 짙게 배어 있다. 또래의 아이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그래서 감사할 줄 모르는' 그런 것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절절한 '소원'인 까닭일까.
이 책 '들꽃 초등 학교' 표지에는 '동시집'이라고 분명하게 쓰여 있다. 아이들을 위해 쓴 시를 모아 놓았다는 뜻일 터인데, 아이들 읽으라는 이 시들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끈해지고 말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는지.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로 돌아갔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것인지.
P.S 1 - 이 책을 읽은 '부모님'들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자제들에게 이 책 한 권 꼭 사다주세요. 어쩌면 아이가 '구찌지우개 사달라니까 겨우 이따위 책이 뭐야'라고 투정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아이를 달래서 옆에 앉혀 놓고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같이 읽어 보세요. 그 아이들에게 '건강한 엄마아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축복인지 가르쳐 주세요.
P.S 2 - 참, 구찌지우개가 하나에 14만원이랍니다. 이 책 21권과 아이스크림 9개를 살 수 있죠. 참고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