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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팬티로 세상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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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내에 소개된 <마녀의 한 다스>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감칠 맛 나는 문필과 기발한 발상 그리고 문화인류학에 해박한 지식을 엿 본 국내 독자라면 그녀만의 남다른 매력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비록 故人이 되었지만 마리여사의 글들은 지금도 일본내에선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고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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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국내에 소개된 <마녀의 한 다스>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감칠 맛 나는 문필과 기발한 발상 그리고 문화인류학에 해박한 지식을 엿 본 국내 독자라면 그녀만의 남다른 매력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비록 故人이 되었지만 마리여사의 글들은 지금도 일본내에선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고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녀의 유니크하고 시크한 문체와 더불어 유년시절 유럽과 러시아에서 생활한 관계로 흔히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일본스럽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리여사의 글들은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보더라도 그동안 서양학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의 오리엔탈리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팬티 인문학>이라는 책 또한 역시 마리여사가 아니면 가히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하는 어쩌면 가장 저자다운 상념의 표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우선 책표지에 나온 볼세비키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의 근엄한 모습 그리고 대조적으로 하체는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에서부터 이번 책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저자는 팬티 즉 속옷에 대한 메타포를 거침 없으면서도 적나라하게 또는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던 프로파간다에 대해서 문화 인류학적인 지식과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극히 사적인 영역을 지상밖으로 끄집어 내고 있다. 팬티에 무슨 인문학적 의미가 담겨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팬티의 역사와 그 기원 그리고 지금의 팬티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서술하면서도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는 저자만의 필력으로 인해 절로 수긍하게 만들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주요부위를 가렸던 무화과 나무의 잎, 십자가나 성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 그의 하체를 가리고 있는 것은 팬티일까 아님 그냥 옷일까? 또한 유물에서 보이는 북방기마민족의 의상에서 팬티의 기원을 찾아야 하는걸까? 등등 문화인류학적인 저자만의 접근이 눈에 띄는 책이다.

 

고쟁이,훈도시,드로즈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온 속옷의 변천은 산업화 현대화를 거치면서 팬티라는 것으로 대체되어 왔고 지금 현대인들에게 출장이나 여행등 집을 잠시라도 떠날때는 어김없이 가장 먼저 챙기는 필수품이자 현대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팬티이다.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하반신의 속옷은 개인들에게는 최후의 자기 방어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으로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일 것이다. 이러면에서 저자는 속옷에 대한 그 어떠한 사회적 미학적 정치학적인 담론을 걷어내고 보통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왔던 사안에 대해서 흥미롭게 팬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가능한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가 오히려 심각한 역사적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라는 거대한 강에서 개인의 사소한 영역은 그저 묻히기 마련이지만 개인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지금의 역사라는 거대한 강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속옷에 대한 저자의 담론들은 그저 흥미거리로만 치부하기엔 많은 점들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l******e 2010.10.05.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이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드는 손길...
"당신이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드는 손길..." 내용보기
인간의 의복 중 가장 작고 가장 은밀한 부분에 있는 ‘팬티’.   늘 입고 다니면서도 인간이 어쩌다 그것을 입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팬티 같은 것은 매일 갈아입어야 한다고 더러 잔소리를 들을 때는 누가 이리 귀찮은 것을 만들었을까 정도는 툴툴거리면서 생각했던 것 같지만 그것도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원망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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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의복 중 가장 작고 가장 은밀한 부분에 있는 ‘팬티’.

   늘 입고 다니면서도 인간이 어쩌다 그것을 입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팬티 같은 것은 매일 갈아입어야 한다고 더러 잔소리를 들을 때는 누가 이리 귀찮은 것을 만들었을까 정도는 툴툴거리면서 생각했던 것 같지만 그것도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원망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입고 있고 또 계속 입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입어야 되나 보다 생각했지 왜 입어야 하는지, 아니 왜 입어야 하는 따위는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어째서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속옷이야말로 참 독특한 존재인 것 같은데 말이다. 당연히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특별히 속옷 같은 것을 왜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을 나눈 적은 없다. 혹 내가 그것을 궁금해 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내 어깨를 툭 툭 두드리며 이런 말을 했을 것이 뻔하다. “녀석, 오지랖도 넓지? 그런 것까지 알아서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냐?” 분명하다. 아마 나라도 그렇게 말해주었을 테니까...

 

   그런데 누구나가 다 쓸데없다고 치부하는 그런 의문을 40년간이나 가슴에 품고 살아오다가 급기야는 한 권의 책으로까지 펴낸이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요네하라 마리요, 그 책이 바로 ‘팬티 인문학’이다.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내심 그리 대단한 내용이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물론 대단하다는 입소문은 있었지만 솔직히 그 작은 팬티 하나에 뭐 그리 대단한 것들이 들어있겠느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으로는 고대 기마민족으로부터 현대까지 횡으로는 아프리카로부터 동토의 러시아까지 그렇게 광범위한 시간과 공간속을 종횡무진하며 엮어내는 팬티에 대한 이야기가 실로 가볍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저 '작고 얇은 팬티 한 장'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깊은 사연들과 내막들이 깃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햇기 때문이다. 새삼 내가 수면 위의 뻬죽 솟아난 작은 빙산 조각만 보고는 코웃음 치며 지나가려다 그만 그 밑에 잠겨있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빙산에 부딪히는 바람에 좌초당한 타이타닉호의 선장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팬티는 그냥 팬티가 아니었다. 내 손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려 세탁기 속으로 던져지기 일쑤였던 그 팬티는 오랜 세월 켜켜이 그 나름의 역사를 간직하고 그 수많은 시대와 사회를 거치면서 온갖 문화적 가치관들이 집약되어 표현된 나 보다 더 거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팬티는 한 사회에서 어디까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를 결정했던 척도였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디까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지 보여주었던 지표였다.('금욕과 화려함'부분) 거기다 개인을 길들이려는 체제와 거기에 맞서 자신의 개인적 취향을 주장하려는 개인이 극렬하게 다투는 전장이기도 하였다.('무화과나무 잎은 왜 떨어지지 않았나'부분) 또한 서로 다른 문화권이 서로의 문화권을 알아보는데 있어서의 통로였고('경찰제복에서 할렘 팬츠까지'부분) 보이지 않는 부분이면서도 가장 자신을 자신답게 표현할 수 있는 근원적인 패션이기도 하였다.('알고 보면 흔하지 않은 것'부분)

 

   그렇게 팬티는 그 얇은 천 하나가 수많은 실오라기로 이루어져있듯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진 거대한 보고였다. 요네하라 마리가 그 실오라기 하나하나를 풀어헤쳐 주지 않았다면 난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진귀한 사실들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남들에게 감춰야만 할 것, 그렇게 벗자마자 빨래 통으로 향해야만 할 귀찮은 물건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요네하라 마리 덕분에 이제 팬티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요네하라 마리는 어쩌다 이렇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팬티의 이면에 숨겨진 그 무진장한 이야기들을 파헤치게 되었을까? 그건 앞서도 얘기했듯이 40년간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그런데 그 호기심이라는 것이 40년이라는 세월동안 간직할 만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다는 게 또 흥미를 끈다. 그것은 그녀의 어린 시절 급우 프란츠가 우연히 자신에게 보여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동독에 온 소련의 고위 간부의 부인들이 속옷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이었다. 도대체 왜 저 사진속의 부인들은 속옷만 입고도 저렇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내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일까? 바로 그 의문이 40년 동안 그녀의 가슴 속에 지속되어진 의문이었으며 ‘팬티 인문학’은 바로 그 사소한 의문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렇게 역사 문화 언어 다종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는 팬티에 대한 고찰은 모두 그녀의 어린 시절이나 혹은 여행을 하면서 때로는 친구를 만날 때 우연히 가지게 된 사소한 의문들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팬티 인문학’이 가진 그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은 그냥 무심히 넘겼을 그 아주 사소한 의문들을 천착했던 결과였던 것이다.


   사소한 물건에다 그 시작으로서의 사소한 의문...
 
   이것은 내게 팬티를 넘어 인문학 그 자체에까지 어떤 깨달음을 가지게 한다. 도대체 인문학이란 뭘까? 요네하라 마리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내 그 의미에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내게 인문학이란 ‘팬티 인문학’을 읽기 전에 내가 팬티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비슷했다. 즉 팬티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위가 인생사에 별 소용이 없듯, 인문학 역시도 인생사에 별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마리의 이 책을 읽은 지금 나는 새삼 인문학에 대한 관점을 전혀 달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리의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그 전까지 그저 하나의 단순한 사물에 불과했던 팬티가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 아주 놀랍도록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한 전혀 새로운 존재로 내게 다가왔듯이, 인문학이란 다름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물을, 그렇게 나를 둘러싼 세계를 그리고 거기에 속한 나를 전혀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고. 인문학은 무엇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들에 감춰진 이야기를 발굴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그 하나하나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내재된 이야기들로 저마다 생명력 넘치고 있음을 알려주는 존재이며 거기다 내 세계 역시도 마치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를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처럼 눈부신 생명의 사물들로 가득 차 있음을 황홀하게 깨닫게 해 주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을 통해 인문학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새롭게 바꾸는 마력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마도 '인문학'이란 말을 탄생시켰던 저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들도 요네하라 마리와 같이 않았을까? 그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가치 없다고 널리 여겨지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들을 연구했다. 아마도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그 따위 낡은 것을 연구해서 어디다 써 먹겠느냐고?” 지금 우리가 인문학에 대해 말하듯이, 팬티가 ‘어떻게 입게 되었는지’란 물음에 대해 말하듯이.

   하지만 그들은 요네하라 마리처럼 아무리 사소하고 무가치해 보이더라도 심혈을 기울여 연구에 천착했고 결국 그들은 그들이 속한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무가치하고 사소하다고 여겼던 그것들이 그대로 중세시대를 끝장내는 파국의 망치가 될 것이란 걸 당시 사람들은 짐작이나 하고 있었을까? 새삼 내 주위의 사소한 사물, 어쩌다 내가 느끼는 사소한 호기심 같은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알고보면 뉴튼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도 사과가 툭 떨어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이렇게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책이다. 그렇게 무심히 지나치는 사물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새롭게 음미해 볼 것과 문득 드는 아무리 사소한 호기심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흘려보내지 말고 제대로 한 번 천착해 볼 것을 권하는 책이다. 그것들이 사물을, 세계를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얼마든지 새롭게 할 기회를 가지게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는 자주 이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잊는다. 우리가 행여 우리의 일상을 우울하고 비루하다고 여긴다면 그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저 자잘하기만 하고 의미는 없는 것들과 어떤 새로움도 주지 못하는 고인 웅덩이 마냥 퇴색해 버린 것들로 가득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거기에 속한 우리 자신 역시도 초라하고 무의미한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자아란 것은 '타자의 종합'이란 말도 있듯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가치 평가도 늘 타자인 '내가 속한 세계'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때문에 내가 속한 세계의 인식은 그대로 나 자신에게도 연결되기 십상이다. 내가 속한 세계가 초라하면 나도 초라한 것이고, 그 세계가 무의미하다면 나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우리들은 이것이 오로지 내가 속한 세계가 문제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니까 바꾸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바깥', 세계였다. 하지만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인문학'은 전혀 다른 해법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문제는 세계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더 있지 않겠느냐고.

    일상속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팬티인문학'은 근본적으로 바로 그것을 호소한다.
   '사소한 것이 보이는 그대로 사소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당신의 일상이 가진 풍요로움 속으로 이끄는 손짓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책은 우리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눈을 가지게 될 것을 원한다. 그렇게 눈을 바꿔서 세계를 달리보게 만들고 결국엔 나 자신 마저도 전혀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은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가지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고 정채봉님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태초에 신은 사람들은 행복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삶에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행복으로 인해 콧대만 더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그들의 무기력과 오만방자함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신은 그래서 행복을 인간에게서 빼앗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도대체 그 행복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 게 문제였다. 어디에 두어야 사람들이 찾기 어렵게 만들까 하고 말이다. 높은 산 정상에 두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인간의 개척정신은 그 높은 곳을 금방 정복해버릴 것이다라는 반론이 곧 제기되었다. 깊은 바다에 두자는 말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묵살되었다. 결국 신과 참모들은 오랜 회의 끝에 사람들 마음 가장 깊은 곳에다 행복을 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늘 바깥만을 바라보는 족속들이니 그렇게 자신의 내부에 행복이 이미 주어져있음은 결코 쉽게 보지 못할것이라고. 이러한 그들의 결론이 현명한 방법이었음은 지금의 우리 모습이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도 역시 인간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은 그 자신의 '시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늘 바깥으로만 빠져나가는 시선을 돌려 스스로를 헤아려 보면 의외로 스스로를 건져낼 열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알고보면 인문학이란 이렇게 '시선을 바꾸는 힘'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거나 아니면 서 있는 자리 자체를 바꾸어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사실 알고보면 모든 인생의 진리들이란 참 간단했던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앞서 인용한 얘기 역시도 마찬가지다. '네 마음속에 행복이 이미 있다.'라는 말은 얼마나 진부한가. 그렇게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언제나 해법이란 알고서 보면 참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경로'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경로'를 모른다면 그 때 콜럼부스 앞에서 달걀을 세우기 위해 이리저리 전전긍긍했었던 귀족들 처럼 우리 역시도 여전히 오리무중 가운데 헤메이게 되리란 건 자명한 이치이리라. 말하자면 '팬티인문학'은 그렇게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행복이 간직되어 있다는 그 자명한 진리를 쉽게 찾기 위한 '경로'를 열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진부하고 자명한 이치이더라도 일상을 살다보면 쉽게 잊고 아예 그것을 모르는 양 힘들게 살게 되는데 그것은 그게 그저 지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이란 단순한 앎이 아닌 늘 생생한 체험 가운데 열리는 법이니까 말이다. 단순한 앎은 늘 짓눌러오는 일상의 힘에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면허시험에서 성적이 좋다고 올바른 운전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게 '사소한 것의 중요성'은 우리로 하여금 그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 그것으로 부터 자유롭게 만들지만 일상의 중력이란 참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그런 일상을 극복하고 진정 자유롭게 되기 위해선 그렇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들과 부단하게 마주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란 바로 그러한 '부단한 마주침의 순간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당신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 또는 당신이 당신을 떠나 다른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과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가져다 줘서 진정으로 당신의 일상과 당신을 새롭게 만드는...
   당신이 만일 그 '마주침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싶어졌다면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인문학'은 그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1 2011.06.30.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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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로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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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이 과하지 않은가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팬티로 인문학을 논하는 게 맞았다. 적어도 인문학 열풍에 편승하기 위한 제목 선정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훈도시를 보고 가볍게 시작했다고 하는 칼럼은 어느새 동서양의 팬티 문화사까지 확장되어 속옷의 문화인류사를 다루고 있었다. 아마, 저자 본인도 가볍게 고구마를 캐려고 했다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 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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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이 과하지 않은가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팬티로 인문학을 논하는 게 맞았다. 적어도 인문학 열풍에 편승하기 위한 제목 선정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훈도시를 보고 가볍게 시작했다고 하는 칼럼은 어느새 동서양의 팬티 문화사까지 확장되어 속옷의 문화인류사를 다루고 있었다. 아마, 저자 본인도 가볍게 고구마를 캐려고 했다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 줄기가 끝나지 않아서 당황하지 않았을까.

 

저자 본인은 이 테마에 모든 인생을 걸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난소암이 재발되면서 삶의 마지막에 책마감을 함께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마리 여사의 지적이고 유쾌한 저작을 볼 수 없다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어린 시절을 소련에서 보내고, 러시아-일본어 통역가로 활동하던 저자의 이력이 책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외국인으로서 그 당시에도 비밀스러웠던 소련의 얘기를 풀어놓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일본의 문화를 풀어 동서양을 함께 다루는 것이다.

 

늘 그랬듯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요네하라 마리의 균형감각이 담긴 책으로, 마지막 문장이 매력적이다. 팬티가 먼저다.



a***a 2012.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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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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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가까이 하며 언제부터인가 특정한 분야에 편중되지 않도록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나 인문서를 가장 좋아하는 나에게 요네하라 마리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마녀의 한 다스, 발명 마니아를 통해 예상치 못했던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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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가까이 하며 언제부터인가 특정한 분야에 편중되지 않도록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나 인문서를 가장 좋아하는 나에게 요네하라 마리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마녀의 한 다스, 발명 마니아를 통해 예상치 못했던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거침없이 쏟아내던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그녀의 신간이 기다려지던 찰나, 드디어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그 어떤 작가의 책보다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조금은 기발하고 엉뚱한 주제로 우리 곁을 찾아오던 그녀였지만 이번에 출간된 인문서 역시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고 앞서 읽었던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는 책이기도 했다.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


팬티 인문학이란 다소 부끄럽고 민망한 책의 제목을 보면서 어쩌면 팬티 인문학이란 제목처럼 조금도 숨기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은 모습이야말로 가장 요네하라 마리다운 모습의 책이 아닐까란 생각도 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속옷을 두고 이렇게나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 그녀의 생각이 더욱 궁금해졌다. 속옷의 문화인류사란 특별한 주제로 펼쳐질 그녀의 언변이 더욱 기대되는 마음으로 만났던 이야기들은 이제껏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조금은 특별한 내용들의 이야기였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악의 화신인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성애와 지혜를 알게 된다. 아마도 무화과나무 잎은 인류 최초의 팬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은 여러 나라가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으로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까지는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요네하라 마리의 궁금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으로 일반 서민층, 특히나 여성들의 사생활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속옷의 역사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수요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여성은 팬티를 직접 만들어 입어야 했는데 그런 이유로 소련과 프라하에서는 가정 과목의 필수 과제가 팬티 만들기였고 프랑스인의 청결 의식에 대한 오해는 요네하라 마리를 통해서만이 풀릴 수 있는 수수께끼란 사실에 그녀의 기발함에 다시 한 번 놀라웠던 부분이기도 하다. 인류가 몸을 가리기 시작한 이유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시작으로 예수의 몸에 걸쳐져 있던 것을 훈도시로 봐야할지, 팬티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 뿐만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통해 속옷으로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책이 특별한 또 한 가지의 이유는 주제와 해석은 달라도 결국 사람에게로 향하는 인문학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조금의 거리낌을 느낄 수 없고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사고와 가치관을 보여주었던 저자이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쏟아냈던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역사서를 읽다보면 인류의 커다란 사건이나 인물을 통해 역사의 큰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지만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그런 의미의 역사가 아닌,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팬티 하나만으로도 인류 문화와 삶의 본질에 대해 명확한 시선을 보여준 요네하라 마리는 이번에도 특별하고도 색다른 이색적인 세상과 문화를 보여주며 한층 의미있는 작가로 각인되었다.

y******5 2010.10.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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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문화, 어디까지 파헤쳐 볼까.
"속옷 문화, 어디까지 파헤쳐 볼까." 내용보기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을 읽기 위해서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인데, 책 제목을 이렇게 지어 놓으니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얼굴은 학자처럼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듯 심각하게, 손에는 펜이라도 하나 잡고 책장을 넘겨야 할 것 같다. 밤에 읽는다면 더 없이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책(?) 아니, 아니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그다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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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을 읽기 위해서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인데, 책 제목을 이렇게 지어 놓으니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얼굴은 학자처럼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듯 심각하게, 손에는 펜이라도 하나 잡고 책장을 넘겨야 할 것 같다. 밤에 읽는다면 더 없이 집중이 잘 될 것 같은 책(?) 아니, 아니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가지 살짝 귀띔하자면 그녀의 책들 중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책이었다는 것은 말해줄 수 있다.

 

속옷은 개인의 위생을 위해, 미를 위해 입는 것이지만 하나의 학문으로 다뤄도 될만큼 그 존재 의미가 깊다. 이를 '역사'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우리네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누구나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팬티 인문학"이라, 속옷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를 물어보기 전에 그보다 속옷 문화에 대해 떠올려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나도 후자에 해당되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속옷 문화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저자가 요네하라 마리인 것을 보고 "역시, 그녀 밖에 이 책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요네하라 마리가 누구인가.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지 않은가. 유치원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상을 보며 "저 아저씨가 입고 있는 것은 훈도시"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미 그 때부터 그녀의 손 안에서 "팬티 인문학"에 대한 글은 시작되었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팬티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시대에 태어난 나는 휴지가 없이 화장실을 오가며 볼일을 끝내면 그대로 바지를 올리고 나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데 문화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여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상상속에서 도저히 그려낼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그래도 가까이에 일본이 있어서 '훈도시'에 대해서만은 그 이미지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으나 이 '훈도시'의 종류도 여러가지여서 타인의 은밀한 곳을 보지 못하는 답답함은 책을 덮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팬티 인문학'을 읽으면서 책 속에 언급한 속옷들 모두를 자세하게 그림으로 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도저히 달래지지 않는다.

 

이 책에는 여러 책들에 실려 있는 글을 인용하거나 타인의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글들이 많은데 처음에는 책 속에 언급된 타인의 글들이 요네하라 마리, 그녀의 경험을 적어 놓은 글인줄 알았다. 책 속에 담겨진 글 중에서도 특히 내가 가장 유심히 본 글이 있다면 처음에 나오는 '40년 동안 품은 수수께끼'였는데 속옷의 은밀함은 알몸에 대한 수치심을 가리는 기능도 하지만 화려한 속옷을 입었을 때 '성'에 다한 자유로움을 발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지금 시대에나 옛 시대에나 공통된 사항인 모양이다. 인류 최초의 속옷인 무화과나무 잎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리기 시작한 이래 속옷은 남녀의 사랑에 결코 소월히 할 수 없는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은밀한 곳을 가려주는 속옷이기에 발달과정을 밝혀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내 앞에 놓여 있는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을 대하고 보니 그녀의 세상을 아우르는 지식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그 방대함에 당장 무릎 꿇게 되고 만다. 그녀의 책을 대할 때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늘 가슴 아프게 했으나 이 책은 특히 나의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에필로그에 담겨진 그녀의 글을 보면서 글을 더 쓰고 싶은, 삶에 대한 애착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팬티 인문학"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는 점에 안도하는 그녀의 글은 독자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다.   

y*****6 2010.09.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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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티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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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에 얽힌 문화속옷에는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라고 정의를 내렸던 저자 요네하라 마리아 팬티 하나로 세계 문화를 재조명해낸 [팬티 인문학]은 소재나 내용, 풀어나가는 면에서 다소 특별한 도서였다. 어린 시절, 배트맨과 슈퍼맨의 차이가 팬티를 옷 위에 입고 옷 안에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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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에 얽힌 문화

속옷에는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라고 정의를 내렸던 저자 요네하라 마리아 팬티 하나로 세계 문화를 재조명해낸 [팬티 인문학]은 소재나 내용, 풀어나가는 면에서 다소 특별한 도서였다.

어린 시절, 배트맨과 슈퍼맨의 차이가 팬티를 옷 위에 입고 옷 안에 입고의 차이라고 말하던 유머 시리즈가 인기가 있을때나 한참 언급되던 "팬티"라는 단어.속옷의 이름이기에 겉으로 불려지기 보다 금기 아닌 금기어처럼 사용해 오던 속옷에 대한 궁금증을 이토록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의 화려한 이력에 붙여진 짧은 생애를 보고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56세. 멋지고 화려하게 살던 여성이 죽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게다가 그녀는 고댠샤 에세이상, 요미우리 문학상을 탄 유명한 에세이스트인 동시에 도쿄 출신의 러시아어 동시통역사가 아니었던가. 글 속에서 보여지던 유머마저 그녀를 세상에 붙잡아 두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그녀를 떠나게 한 난소암이 새삼 무섭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똑똑한 한 여성이 세상을 떠나기 전, 2001년 8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치쿠마"에 연재했던 글들의 모음집인 [팬티 인문학]은 팬티 하나를 위생이 아닌 문화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참 재미있게 읽혔다. 물론 소설이나 유머집처럼 완전한 재미가 아닌 지식을 충족시키고 앎을 형성해나가는 똑똑한 재미이기는 했지만.

40년간 품었던 수수께끼를 풀다

매일 팬티를 갈아입습니다! 라고 굵은 크레용으로 써 놓고 지켜야 했고, 성경 속 아담과 이브의 부끄러운 부위를 가려준 무화과 나무잎인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접착제로 붙여서 라고 생각해 직접 실험해본 이야기라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이상한 팬티"를 입은 아저씨로 오해했던 유치원 시절의 엉뚱함이나 프라하 이주 시절 겪은 복수형에 대한 헷갈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풀어낸 경험들은 다양한 속옷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또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메리야스 타이츠의 역사나 인용된 러시아, 일본의 여러 문헌들은 생활과 밀접된 역사를 알려주기 충분했는데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포유류 중 용변을 본 다음 엉덩이를 닦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직장이 변을 항문으로 밀어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구조로 살아가는 동물들과 달리 꼭 닦는 것으로 뒷처리를 해야하는 인간들 중 종이로 닦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진국 국민을 중심으로 세계 인구의 1/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물, 모래, 해조,나뭇조각, 대나무 주걱등을 이용한다니 어찌보면 상식적이지만 그 누구도 속시원히 알려주지 않았던 부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팬티를 손으로 만들던 시절을 지나 요즘엔 위생은 물론 아름다움을 위해 착용하게 된 또 하나의 패션, 속옷. 우리는 매일 걸치는 이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속옷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이 그녀의 죽음과 함께 단절된 듯 했지만 언젠가는 그녀처럼 호기심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이야기의 뒷 권들을 써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던 팬티에 관한 지식들은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i*****i 2011.05.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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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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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은 왜 입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고 있는 속옷. 신체의 일부를 가리는 역할을 하고, 보호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패션의 한 아이템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속옷을 입고 있었고, 왜 사람들은 속옷을 입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 ‘발명 마니아’의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이러한 속옷의 기능적, 시각적 측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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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은 왜 입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고 있는 속옷. 신체의 일부를 가리는 역할을 하고, 보호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패션의 한 아이템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속옷을 입고 있었고, 왜 사람들은 속옷을 입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 발명 마니아의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이러한 속옷의 기능적, 시각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시사적인 관점에서 속옷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팬티인문학은 이제는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속옷을 통해 인간과 우리의 사회를 바라보는 인문서입니다.

요미우리 문학상’, ‘고단샤 에세이상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에세이스트로 명성을 떨친 요네하라 마리. 국제학교를 다닌 유년시절과 일류 동시통역사로서의 직업적 경험을 통해 그간 세계 문화를 인류학적으로(‘마녀의 한 다스’), 음식문화사적으로(‘미식견문록’) 고찰해온 그녀가 이번에는 속옷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저자는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고 말합니다. 속옷을 시대상과 문화적 특성을 담은 특별한 소재로 본 것이죠. ‘팬티 인문학은 무경계 지식인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색다른 문화사를 보여줍니다.

저자의 속옷에 대한 고찰은 팬티의 기원이 남방인가 북방인가, 기마민족인가 농경민족인가, 기마가 먼저인가 팬티가 먼저인가, 하는 기원의 문제는 물론이고, 시대별 생활상을 보여주는 데까지 이릅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의 여러 나라가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간 다음에는 팬티의 수요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여성은 팬티를 직접 만들어 입어야 했는데 그런 이유로 소련과 프라하에서는 가정 과목의 필수 과제가 팬티 만들기였다고 합니다. 저는 팬티 인문학을 통해 인류가 몸을 가리기 시작한 이유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시작으로 예수의 몸에 걸쳐져 있던 것을 훈도시로 봐야할지, 팬티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뿐만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통해 속옷으로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요네하라 마리는 속옷이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대한 역사나 경제를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포착해볼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심각한 역사적 사건과 사소한 이야기를 연결하는 접점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소하다고 치부할 법한 속옷 하나로 역사를 뒤집어보고, 문화를 새롭게 분석하는 저자의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p*****5 2016.0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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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팬티가 먼저다, [팬티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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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하트, Braveheart, 1995>라는 영화가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가가 대립하던 시절, 스코틀랜드 저항군을 이끌던 지도자 윌리엄 월레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자유'를 외치며 처형당하던 윌리엄 월레스의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잉글랜드 군대 앞에서 치마(?)를 들고 맨 엉덩이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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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하트, Braveheart, 1995>라는 영화가 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가가 대립하던 시절, 스코틀랜드 저항군을 이끌던 지도자 윌리엄 월레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자유'를 외치며 처형당하던 윌리엄 월레스의 모습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잉글랜드 군대 앞에서 치마(?)를 들고 맨 엉덩이를 보여주던 스코틀랜드 군대의 엉덩이모습이다. 얼굴에는 무시무시한 전투화장을 한 상태에서 뒤로 돌아 치마를 들어올리니 맨 엉덩이가 보였다. "엥? 대체 팬티어디간거지?"

 

사춘기 소녀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스코틀랜드 남자들의 복장에 대해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그들이 입고 있던 치마는 킬트(kilt)라고 부르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남자용 하의다. 킬트의 무늬나 색은 가문을 나타내며, 양털로 직접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유사시에는 펼쳐서 이불대용으로 사용하고 전투복으로 이용하는 등 다양하게 쓰였다. 하지만 '그 속에 왜 팬티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이런 의문이 풀린 건 스코틀랜드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 나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니란 걸 알고 반가웠다. 요네하라 마리는 유치원에서 보았던 그리스도상을 보고 의문을 품는다. '저 사람이 입은 건 대체 뭘까?' 하고 말이다. 호기롭게 '훈도시'라고 말했지만 친구들은 다른 '것'이라 말한다. 그런 의문은 급기야 팬티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어진다. 누가 요네하라 마리 아니랄까봐.

 

요네하라 마리의 '저 사람이 입은 건 대체 뭘까?'에서 시작한 의문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고서적을 들추게 만들며, 각 나라의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녀답게 집요하게 거슬러 올라가고 자료를 찾아 헤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미도 있다.

 

가랑이를 감싸는 형태의 팬티를 입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던 어린 시절, 팬티가 아닌 고쟁이를 입었던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이런 결론에 이르는 게 어렵지 않다. 속옷을 입지 않는 문화에 대해 '에잇! 그건 말도 안돼'하며 손을 내젓기보다는 왜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탐구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요네하라 마리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런 자세는 그녀의 책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미덕이다. 다른 문화를 손가락질하는 간단한 방법보다는 보다 넓고 열린 시각으로 포용하려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일전에 읽었던 <나의 이슬람>에서 '체복'(인도네시아에서 하는 뒷물을 말한다)에 새롭게 알게 되고 이 부분을 발췌해 게시글로 올린 적이 있다. 대부분 '놀랍다'와 '더럽다'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팬티 인문학>에서도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소련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이슬람>의 저자는 종이로 닦아내는 문화가 앵글로 - 색슨 문화라 말한다. 그리고 세계는 앵글로 - 색슨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니 손을 사용하거나 닦지 않거나 물로 씻는 건 '발전하지 않은' 문화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다른 문화에 한 발만 내밀면 금세 '이해하지 못할 것'내지는 '발전하지 않은 것'이 되버리는 아이러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팬티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팬티의 형태에 대한 추론, 속옷 문화, 바지가 발생한 기원, 훈도시와 민족주의 등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든다. 요네하라 마리는 '속옷이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는 매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이야기를 연결해 흥미롭게 풀어냈다. 자신의 일생을 걸어야 할 정도로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한 '속옷과 문화'는 그녀가 세상에 없기에 더이상 이어지질 않는다. 아직도 풀어야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라고 말했던 만큼 '최후의 물리적 장벽'을 우린 아직 다 알지 못한다. 누군가 요네하라 마리를 이어 속옷 이야기를 풀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수많은 속옷 중에서도 '팬티가 먼저다!' 

 

 

 

 

 

h**********9 2010.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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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 오늘 당신의 빤쮸 색깔은 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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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빤쮸 색깔은 몬가요?   제가 살포시 웃으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절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누구랑 같이 사러 가기도 애매하고, 혼자 갔다한들, 입어보고(?) 사기에도 애매한 패션의 마침표, 속옷! 오늘은 뻔뻔하게 속옷 이야기를 같이 해볼까 합니다. 누구랑? 바로 요네하라 마리여사랑 함께요^^ 폴란드에 화학과 물리학의 대가인 퀴리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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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빤쮸 색깔은 몬가요?

 

제가 살포시 웃으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절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누구랑 같이 사러 가기도 애매하고, 혼자 갔다한들, 입어보고(?) 사기에도 애매한 패션의 마침표, 속옷! 오늘은 뻔뻔하게 속옷 이야기를 같이 해볼까 합니다. 누구랑? 바로 요네하라 마리여사랑 함께요^^ 폴란드에 화학과 물리학의 대가인 퀴리부인, 마리여사가 있다면, 일본에는 에세이와 통역계의 대가인 요네하라 마리여사가 있습니다. 작년에 <수컷은 필요없어>를 통해 알게 된 그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러시아통역사이자 작가입니다. 어릴 때,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체코의 소비에트학교를 다녔고, 일본에 다시 돌아와 공산당에 가입하고 도쿄 외국어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합니다. '일본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러시아인이면서 러시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일본인'으로 알려진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고요.  '밥을 빨리 먹는다고 참견하는 이는 있어도, 책을 빨리 읽는다고 참견하는 이는 없기에 하루 평균 일곱 권씩 읽었다'는 다독가이며, 세계의 맛있는 음식은 거의 다 먹어보았다는 욕심쟁이미식가였고, 강의와 방송, 작가생활을 하면서  30여권의 책을 낸 에너자이저입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고종석과 최성일이 팬을 자처할 정도로 매니아층이 두터운 문필가이기도 하지요.

 

 




 

 

이 책<팬티 인문학>은 잡지 ' 치쿠마'에 연재되던 글을 수정하여 단행본으로 낸 것입니다. 그녀가 악성 난소암으로 죽기 1년전에 출판되었죠. '이 속옷 이야기에 모든 인생을 걸고싶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일정 정도 미완'이라며 아쉬워하는 그녀의 에필로그는 가슴이 짠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초반의 가볍고 경쾌한 에세이가 후반부로 가다보면 스케일이 커지고 역사와 문화,세계사를 아우르는 대 서사시로 변모합니다. 우선 표지를 한번 보시지요. 저 밑의 어르신은 아마도 레닌아저씨인 것 같은데 팬티를 입으신 모습이 비장하시네요.

 


 

볼세비키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이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이 책<팬티 인문학>은 일본과 러시아의 속옷에 얽힌 풍속과 역사를 주로 다룹니다. 그외에도 인류 최초의 아담의 팬티,기독교 예수의 팬티, 팬티를 입지 않고 볼 일보고 휴지도 쓰지않았던 100년전의 러시아, 민족의상을 입을 때에는 속에 아무 것도 입으면 안되는 핀란드와 아일랜드이야기. 영국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그래서 아마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 때, 황태자는 물론이고 두 왕자 모두 스커트 속은 그냥 알몸이었을 거라는 야릇한 얘기도 나오나 봅니다. 이렇듯 이 책은 단순히 개인적인 물건으로 치부되었던 속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시대상과 문화적 특성을 투영하고 이야기로 풀어가지요. 또 <죄와 벌>, <안네의 일기>등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드는 문학작품에서 인터넷의 속옷커뮤니티의 글까지 요네하라 마리가 찾아낸 방대한 자료에서는 마치 고고학적인 향기와 왕성한 에너지를 전해줍니다. 그녀의 발품과 글품, 그리고 그 치열함과 꼼꼼함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요. 덧붙여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발췌해 봅니다. 

 

서양인은 온천에 들어갈 때에는 수영복을 입지만 사우나에 들어갈 때에는 알몸이다. 일본인은 사우나에서는 수건으로 몸을 감싸지만 서양인은 알몸으로 들어간다. ..결국 동성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알몸을 보여도 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일본과 서양 각각 관습적으로 다른 것이다.

 

(프라하에서 일본에 돌아왔을 때) 친구 사이가 되면 함께 화장실에 따라가 준다고 하는 풍습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혼자서 가면, 일 보러 화장실에 간다는게 다 들통이 나 버리지만, 여러 명이 가면, 누가 볼 일을 보고, 누가 따라가는 건지 주위 사람들은 알아 차릴 수가 없다. 웃긴 점은, 일부러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동성에게, 볼 일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극단적으로 창피하게 여겨서, 볼 일을 보는 동안 계속해서 물을 내린다는 점이다.  이 미궁과도 같은 복잡한 일본인 여성들의 수치심에는, 놀라움을 넘어 오히려 감격하고 말았다. 이런 경향은 그 뒤, 더욱 강해지고 확산 돼, 지금은 물을 아끼기 위해서 물 내리는 소리가 나는 장치가 상품화 되었다.  이 제품은 절대로 수출은 불가능 하겠지.

 

우리나라 여성과 일본 여성의 부끄러움이 닮아있다니 신기했습니다. (물내리는 벨소리 기계는 결국 우리나라에서 수입했어요, 마리여사님~) 속옷과 연결되는 수치심과 체면에 대한 부분이 특히 저에게는 흥미로웠는데 '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며,'부끄럽기 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는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통찰력은 예리합니다. 또, 코스모폴리탄으로 보였던 그녀가 '팬티'라는 기성제품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때문에 일본 전통의 ‘훈도시’ 문화를 파헤치는대요. 일본의 남성 속옷이던 훈도시는 마치 처녀가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해야 할 경우 입술만은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듯, 일본 남성에게는 그런 존재였다네요. 아, 훈도시는 아시다시피 스모선수들이 중요부위만 가린 그 끈이예요. 일본 남성들은 겉옷은 양복을 입더라도 속옷은 훈도시를 해야 남자라는 인식이 많았대요. 웃음이 나오지만 새누리당처럼 훈도시당이 생길 정도였다는 군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치열한 연구끝에 '훈도시가 내셔널한 가치이기는 커녕 팬티보다 더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는 글로벌한 것”이더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그 외에도 팬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살짝 속옷이 보이는 상황에 대처하는 이야기와 애인과의 첫날밤에 입는 속옷이야기, '남자는 바지, 여자는 스커트'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했을 무렵에는 잔다르크가 화형당했을 때,  여자가 바지를 입었다는 죄목도 추가했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조르주 상드가 남장을 했을 때에는 마치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처럼 사회전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 일본에서 여성의 속옷은 치마처럼 밑이 트여있었다는 이야기등등..그리고 여기에서 여성팬티와 뗄레야 뗼 수 없는 생리대 이야기가 펼쳐지죠. 일본이나 러시아나 심지어 중국과 북한에도 제품형태로 만들어진 생리대는 없어서 직접 솜이나 천으로 만들어서 썼다네요. 지금도 전세계의 20%만이 화학섬유의 1회용 생리대를 쓸 수 있는데, 이게 편하긴 하지만 여성의 몸에는 별로 좋지는 않잖아요.캄보디아의 고아원에서는 버려진 모기장으로 생리대를  만들어서 쓴다던데..(얼마전에 제가 쓴 관련 글  http://mypurple.blog.me/70129307737)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남성들이 훈도시만 걸치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여성들은 아예 치마처럼 밑동이 없는 속옷을 입고 다닐 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았어요.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남녀가 모두 큰반바지같은 속옷을 입었네요.'속곳'이라 불리는데 아래처럼요.문화적으로 굉장히 앞서갔던 거 같네요.

 


 

하여간 이 책<팬티 인문학>은 '사회와 개인,집단과 개인,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인 속옷을 가지고 별의 별 질문과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저의 40년 속옷 콜렉션을 다시한번 더듬어보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그녀의 열려있는 시선과 다정다감한 문체, 통통튀는 재치를 음미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 처음에 돌발적이고 음흉한 제 질문에 부끄러우신 분들은 답변 안하셔도 되요. 당신의 팬티 색깔은 그냥 자비로운 제가 나름대로 추측만 할께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오늘 제 팬티 색깔은.........음... 레이스가 달린 표범무늬 프린트예요. 어흥!)

m******e 2012.02.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요네하라 마리와 함께하는 팬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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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아담과 이브가 걸친 무화과 잎사귀가 왜 떨어지지 않나 궁금해하던 요네하라 마리는 소비에트 교육을 받은 그 특유의 이력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팬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문화적 의의를 갖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파헤친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드문 훈도시라는 속옷 하의를 입었던 일본사람답게 일본인들이 훈도시에 대해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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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아담과 이브가 걸친 무화과 잎사귀가 왜 떨어지지 않나 궁금해하던 요네하라 마리는 소비에트 교육을 받은 그 특유의 이력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팬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문화적 의의를 갖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파헤친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드문 훈도시라는 속옷 하의를 입었던 일본사람답게 일본인들이 훈도시에 대해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일본의 정체성과 맞물려 생각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등 제목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우리에게 고작 몇 십 년 앞선 서양의 문물을 전하면서 조선인과 한국인을 상당히 미개한 민족이라고 폄하했던 그들이 일제강점기가 끝난 시기에도 여전히 일본 시골에서는 거의 속옷조차 입지 않고 생활하는 게 당연했다는 풍속사를 상기시키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날씨나 풍습에 맞추어 자연스러운 것들이 문화적이라거나 비문화적이라는 등의 재단을 거치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이 마땅한 듯 받아들여졌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자유로움 뒤에는 74쪽에서 만주국 관리였다는 것을 그리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저자의 태도-사실 우리도 만주군관으로 칼 차고 돌아다니던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대통령이 있었지-를 보며,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이라는 글귀에서는 덥고 습한 섬나라인 일본의 특성상 자주 씻을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하며 야빠리 니혼진데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98쪽부터 99쪽까지 에피소드를 보며 하녀에게는 속옷을 입지 않고 대해도 되는 식의 사고방식이 메이지유신 무렵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쩌면 미국에서 백인 여성들이 흑인 남자 하인 앞에서는 마치 개나 고양이 앞에서 하듯이 옷을 훌렁훌렁 갈아입었다는 걸 어디선가 읽었던 게 떠올라 사람의 신분에 따라 마치 인간이 아닌 듯이 대할 수도 있는, 인간의 인간임에 대한 정의조차 사회경제적 지위를 따라간다는 인간사회의 씁쓸한 자명한 진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196쪽 아래부터 보면 사회 최하층이었던 소방수는 벌거벗은 채로 성문 안을 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소방수가 신분이 낮았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하층민들은 벗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따라가다보면 186쪽에서 최초의 편물기계에 대한 이야기, 235쪽에서 고구려 무용총에 나온 그림까지 정말 많은 다양한 지식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오자나 탈자가 없어 좋다.

 

j***1 2018.10.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