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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무명씨께서 벽오동을 심은 뜻이 이제 좀 짐작이 되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 시조를 나름대로 풀자면 봉황은 당시의 권력자인 임금 쯤 될 것이고, 벽오동은 자신의 재능이나 학식을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런 은유를 빼더라도 이 시조는 풍경을 찍어내는 화소(話素)들이 뿌연 달빛과 어울려 사뭇 고즈넉하고 소소(蕭蕭)하다. 오동나무에 대한 추억의 보따리들이 먼저 풀려나와 버렸다. 하지만 첫 귀절에 내가 벽오동을 심은 뜻은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함이었다. <오동동타령>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노래 하나를 따라가며 아주 차분하게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었던게 생각의 실마리였다. 아마 대학 시절 쯤이었을 것이리라.
난 오동동타령을 들으면서 그 노랫말이 사뭇 감칠 맛이 있고 문자향(文字香)마저 느껴진다는 생각을 얼핏 하면서 언젠가 이 노래를 소재로 글을 한번 써 봐야지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벌써 26년이 흐른 지난 가을의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아주 지긋하신 선배 한분이 열창하는 이 노래를 듣고는 옛 마음이 되살아났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한자를 잘 이해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에는 <오동추>가 어떤 사람의 이름인 줄 알았다. 당연히 <오동추야>는 오동추를 부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하하하 그런 오해가 나 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우스개이긴 하지만 이런 노가바(노래가사 바꿔부르기)가 있었다. <오동추야 대머리 깎아서 오동통이냐>. 하지만 오동추야(梧桐秋夜)가 오동잎 지는 가을밤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마음의 거문고(心琴)가 울었다.
매화나무 한 가지에 깃든 봄밤의 그윽한 마음을 <일지춘심(一枝春心)> 이라 표현했던 이조년의 풍류에 훌륭한 댓귀가 될 만한 가을밤의 시상(詩想)이 아닐 수 없다. 오동나무 가을밤에 달이 너무 밝아 오동동(梧桐動)이냐. 오동동이란 오동나무 잎새가 미세한 동선을 그리며 흔들리는 것을 말하거나 혹은 실바람도 없는데 커다란 잎 하나가 툭! 떨어지는 풍경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달이 밝기로서니 달은 빛일 뿐인데 오동나무를 움직인단 말인가? 옛 사람들 특유의 허풍을 빌려온 것일까? 어디선가 읽은 햇살돛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주선의 동력으로 햇살을 사용하자는 어느 과학자의 제안을 소개한 것이었다. 즉 우주공간에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미세한 에너지로도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단다. 그러니 햇살을 흡수하는 돛을 우주선에 설치하여 태양광선을 동력원으로 이용하자는 얘기였다. 이 햇살에너지는 무한하고 품질도 좋으며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어 우주선의 동력원으로는 안성맞춤이라는 의견이었다. 이런 기발한 생각을 오동동타령을 지은 가객도 하였을까? 달빛이 너무 밝아 오동나무를 움직였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게 겉문자 대로 해석할 일이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르는 가객의 마음 속에 일어나고 있는 섬세한 생각의 전이를 따라가보자. 가을밤 달이 너무 밝으니 내 마음 속에 깃든 사모(思慕)의 염(念)이 더욱 사무치는구나. 그러니 그리운 사람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달덩이처럼 커지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갈 수는 없다. 저 달빛은 그의 하늘도 역시 비추리라. 한 하늘 같은 달 아래서 우린 왜 이리 헤어져 있어야 하는가? 가고싶은 욕망과 가고싶은 마음을 막아서는 거리와 질곡이 간절함을 덧없이 키우기만 한다. 그러니 어찌 한숨이 나오지 않겠는가? 아~아! 그 한숨소리가 너무 간절하고 커서 오동나무 잎새를 흔드는 것은 아닌가? 이런 마음의 동선이 <달이 밝아 오동동>이란 간략한 문자에 한숨처럼 배어있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소리를 나름대로 두 가지로 분류해보는 버릇이 있다. 귀를 채우는 소리와 귀를 비우는 소리가 그것이다. 세상에 나도는 대부분의 소리는 귀를 채우는 소리다. 뜻이 만들어지고 느낌이 들어가고 생각이 엮어지는 말들. 그 모두가 귀를 채운다. 그러나 가끔 어떤 소리들은 귀를 씻고 비운다. 머리가 떠들썩하고 헝클어진 마음으로 어느 시골을 찾은 날에 대숲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대바람(竹風)은 귀를 씻는다.
이른 새벽에 어둑한 산에 올라 약수를 한 사발 마시노라면 목 뒤로 불어오는 송풍청음(松風淸音)도 귀를 씻고 생각을 맑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오동잎 지는 소리도 귀를 비우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비워도 너무 많이 비워버리는가? 오동잎 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허허(虛虛)로움이 지나쳐 쓸쓸해진다. 오동동타령은 이 지나친 쓸쓸함에 주목하고 있는 노래다.
다음 구절로 넘어가보자. 달을 바라보고 있는 외로운 마음은 갑자기 밖에서 유쾌하게 들려오는 술집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가을밤 흥취에 젖은 목소리들이 들떠있다. 아까는 달빛 때문에 오동잎이 흔들리느냐고 묻더니 이번엔 노랫소리 때문에 오동잎이 흔들리느냐고 묻는다. 빛으로 나무를 흔드는 것보다야 소리로 흔드는 것이 좀더 그럴 듯 해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큰들 노랫소리일 뿐인데 정말 오동나무를 흔들기야 하려구? 여기에도 노랫소리를 듣는 마음의 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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