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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디로 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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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급격한 산업자본주의화의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반(反)작용으로 태동한 것이 사회주의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회주의'라 하면 마르크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미 4세기 전 「유토피아」를 저술하여 아무데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토머스 모어 이후 프랑스 혁명을 통해 등장한 바뵈프(F.N Babeuf)와 쌩씨몽주의를 주창한 쌩씨몽(C.H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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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급격한 산업자본주의화의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반(反)작용으로 태동한 것이 사회주의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회주의'라 하면 마르크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미 4세기 전 「유토피아」를 저술하여 아무데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토머스 모어 이후 프랑스 혁명을 통해 등장한 바뵈프(F.N Babeuf)와 쌩씨몽주의를 주창한 쌩씨몽(C.H Saint-Simon)이 토머스 모어가 그린 이상향을 더욱 구체화 하는 사회주의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또한 마르크스 이전 화폐와 통화의 폐지를 주장한 로버트 오웬(R.Owen)과 완벽한 공유와 합일, 사회적·정치적 평등을 꿈꾼 에띠엔느 까베(Etienne Cabet)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각자에게는 그 필요에 따라'라는 유토피아적 목표는 욕망의 통제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사회주의 유토피아와 관련한 내용이 빈약했던 점이 맑스주의가 현실 개혁의 급진사상, 근대화혁명의 급진사상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부여했다." (p.54)

책의 저자 '와다 하루끼'는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의 원인을 찾던 노력 중 마르크스주의가 결론적으로는 15세기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그리던 이상향을 구체화 시키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덧붙여 두 차례에 걸친 세계전쟁을 통해 사회주의는 애초의 이상향과는 방법과 과정을 달리한 국가사회주의체제, 전체주의 이상으로 완벽하게 일인 독점 권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농업의 전면적 집단화와 공업화의 강행 그리고 계급투쟁으로서의 문화혁명을 통해서 계획경제화와 경제의 일원화, 당·국가·사회단체의 일체화, 국가사회의 일원화가 실현되었다. 이제 인류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체제, 국가사회주의체제가 완성되었다." (p.94)


"그것은 ‘병영사회주의’의 특징을 띤 것이다. 당과 국가와 사회단체가 일체가 된 공적주체가 정치와 경제 전체를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체제였다. 이 체제는 이른바 전체주의로 불리는 체제 이상으로 완전하게 일원화된 체제(Totally Unified System)였다." (p.96)

권력의 지향점이 어디로 가있나? 라는 문제는
국가의 체제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냉전체제를 위한 완벽하게 일원화된 체제를 수립한 스탈린의 소련은 사실 태생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것이었다.
사회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공산주의는 권력의 지향점이 체제의 가장 밑바닥으로 향해야 했던 것이다. 바로 인민들에게 말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넘치도록 국가 전체의 힘을 냉전체제 유지에 쏟아 붓는 것은 공산주의 체제와는 톱니가 맞물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해체된 러시아 연방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자의 지적대로 70년을 유지해 온 체제의 붕괴는 짧은 기간에 쉽사리 되살릴 수 없는 거대한 전환이기 때문이다.


"세계전쟁시대가 끝나고, 국가사회주의체제가 끝나고, 공산주의운동이 끝났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끝난 것은 아니다." (p.196)

100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세계사적 변화와 전환이 이루어졌다. 혹자는 사회주의의 종말을 문명의 사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주의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와다 하루끼'가 미리 알고 예언한 것은 아니겠지만 수년간 남미 대륙 곳곳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정권이 성공적인 집권과 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사실 하나 만으로 여전히 사회주의가 살아 있고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주의체제와 공산주의운동의 세계사적 현상과 그것이 종말을 맞은 이유를 사회주의 역사와 관련해서 해석한 '와다 하루끼'의 설득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l****h 2011.07.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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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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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책은 와다 하루끼가 사회주의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탄생했을 때부터 만들어진 아니 그 이전부터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지던 "유토피아" 사상부터 그 사회주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최초의 사회주의자인 듯한 착각을 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 이전부터 사회주의가 있었으며 어찌 보면 마르크스는
"'유토피아'는 끝났는가?" 내용보기
역사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책은 와다 하루끼가 사회주의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탄생했을 때부터 만들어진 아니 그 이전부터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지던 "유토피아" 사상부터 그 사회주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최초의 사회주의자인 듯한 착각을 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 이전부터 사회주의가 있었으며 어찌 보면 마르크스는 그 이론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은 왠지 인정하기 싫은 것이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공상적 -작가는 절대로 공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솔직히 말하면 유토피아의 모습은 이루기 어렵다 찾기 어렵다는 의미 이외에는 사회주의와는 상관없는 것이며, 사회주의자체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다. 자본의 발달 이전에 나타난 그것에서는 사회주의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마치 사회주의의 모습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그 이후에 많이 거론되었던 추상적인 사회주의의 모습조차도 다 알고 있지 못하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놀란 것은 "사유재산의 폐지와 화폐제도의 폐지"등의 모습이었다 이 글에서 또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마르크스가 제시한 "유토피아"라는 것이 빈약했다는 작가의 지적이었다 이번 기회에야 알게 된 것인데 마르크스가 실제로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과 제반 , 그 과정, 그 필요성들을 이야기했지만 혁명 이후의 하나의 유토피아로서의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나에게 상당한 실망을 주었다. 나에게 실망감을 주었던 또 한가지 사실은 이제까지 '사회주의'라고 꿈꾸어왔던 체제는 전쟁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었지 평상시의 인간본성에 합치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하였기에 소련의 탄생과 멸망에서 보여지듯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상황에서 사회주의는 탄생하였고,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역유토피아'(스탈린체제)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전쟁상황과는 다른 조건에서 소련과 같은 일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유토피아 사상(그것이 사회주의라 불리우건 말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을 읽고 필자처럼 실망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자신만만하게 '사회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지론을 확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한 번 살아볼 만한 사회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역사'로서의 사회주의의 몰락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유토피아를 완전히 실현할 때의 위험성은 이미 명백하다. 그러나 이 지상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꿈꾸지 않고서는 본격적인 개혁운동이 성립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역시 유토피아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유토피아라야만 한다. 그 실현이 역유토피아를 낳는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유토피아는 한 나라만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본래의 성격에서도 벗어나야만 한다. 새로운 유토피아는 전지구적인 것으로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 생산력의 발전에 관한 새로운 구상이다. 선진국의 욕망과 소비의 무한한 증대를 억제하면서 저개발국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구제체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g***y 2001.04.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