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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급격한 산업자본주의화의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반(反)작용으로 태동한 것이 사회주의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사회주의'라 하면 마르크스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미 4세기 전 「유토피아」를 저술하여 아무데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토머스 모어 이후 프랑스 혁명을 통해 등장한 바뵈프(F.N Babeuf)와 쌩씨몽주의를 주창한 쌩씨몽(C.H Saint-Simon)이 토머스 모어가 그린 이상향을 더욱 구체화 하는 사회주의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책의 저자 '와다 하루끼'는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의 원인을 찾던 노력 중 마르크스주의가 결론적으로는 15세기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그리던 이상향을 구체화 시키지 못했음을 발견했다.
권력의 지향점이 어디로 가있나? 라는 문제는
100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세계사적 변화와 전환이 이루어졌다. 혹자는 사회주의의 종말을 문명의 사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주의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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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책은 와다 하루끼가 사회주의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탄생했을 때부터 만들어진 아니 그 이전부터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지던 "유토피아" 사상부터 그 사회주의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최초의 사회주의자인 듯한 착각을 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 이전부터 사회주의가 있었으며 어찌 보면 마르크스는 그 이론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은 왠지 인정하기 싫은 것이었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공상적 -작가는 절대로 공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솔직히 말하면 유토피아의 모습은 이루기 어렵다 찾기 어렵다는 의미 이외에는 사회주의와는 상관없는 것이며, 사회주의자체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에게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다. 자본의 발달 이전에 나타난 그것에서는 사회주의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마치 사회주의의 모습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그 이후에 많이 거론되었던 추상적인 사회주의의 모습조차도 다 알고 있지 못하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놀란 것은 "사유재산의 폐지와 화폐제도의 폐지"등의 모습이었다
이 글에서 또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마르크스가 제시한 "유토피아"라는 것이 빈약했다는 작가의 지적이었다 이번 기회에야 알게 된 것인데 마르크스가 실제로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과 제반 , 그 과정, 그 필요성들을 이야기했지만 혁명 이후의 하나의 유토피아로서의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나에게 상당한 실망을 주었다.
나에게 실망감을 주었던 또 한가지 사실은 이제까지 '사회주의'라고 꿈꾸어왔던 체제는 전쟁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었지 평상시의 인간본성에 합치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하였기에 소련의 탄생과 멸망에서 보여지듯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상황에서 사회주의는 탄생하였고,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역유토피아'(스탈린체제)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전쟁상황과는 다른 조건에서 소련과 같은 일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유토피아 사상(그것이 사회주의라 불리우건 말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을 읽고 필자처럼 실망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자신만만하게 '사회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지론을 확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적이고 한 번 살아볼 만한 사회냐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역사'로서의 사회주의의 몰락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유토피아를 완전히 실현할 때의 위험성은 이미 명백하다. 그러나 이 지상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꿈꾸지 않고서는 본격적인 개혁운동이 성립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역시 유토피아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유형의 유토피아라야만 한다. 그 실현이 역유토피아를 낳는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유토피아는 한 나라만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본래의 성격에서도 벗어나야만 한다. 새로운 유토피아는 전지구적인 것으로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 생산력의 발전에 관한 새로운 구상이다. 선진국의 욕망과 소비의 무한한 증대를 억제하면서 저개발국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구제체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