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저기서 추천을 많이 받고, 세인트 안나 호의 북극항로 탐험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호기심도 컸던 터라 책을 구하자마자 단숨에 읽어 나갔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자연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낳은 처절한 귀결이었다. 탐험은 부실한 준비과정으로 인하여 당초부터 실패가 예견되었다. 본 항해를 앞두고 다수의 선원을 교체한 것이라든지, 의사도 확보하지 못하여 젊은 여성 간호사를 승선시킨 예라든지, 항해에 필요한 각종 자료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지의 세계로 향한 출발은 마땅치 않은 일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어니스트 섀클턴 경이 준비한 남극횡단탐험의 그 치밀한 준비와 비교할 때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탐험선은 예상했던 바, 빙하에 갇혀 버리고, 이 생존기의 주인공인 알바노프는 10여명의 동행자와 함께 배를 버리고 탈출한다. 도대체 이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2패로 나뉜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급조한 조악한 커누와 썰매를 이용하여 육지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도 우여곡절 끝에 단 2명만 생존하여 목적지에 도달한다. 단순한 생존기일 뿐이다.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쉽에서 기대했던 대로의 리더쉽 같은 것은 별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리더 격인 알바노프는 끊임없이 동행자들의 무지함과 게으름, 무책임함을 비난하고 있다. 섀클턴 경이 끝까지 절제를 잃지 않고 자신의 대원들에 대하여 찬사를 보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알바노프의 저작은 오히려 독자들을 어리둥절케 하는 것 같다. 타율적인 러시아인과 신사도에 바탕을 둔 영국인과의 기질차이 때문인가? 하여간 극지방 탐험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소설이 아니라 실재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기록을 더욱 빛나게 한다. 책에 대하여 한마디 하자면... 이 책이 영미권에 늦게 소개된 탓도 있겠지만 상당히 출간이 늦어진 것은 어쩔 수 없겠다. 이왕에 늦었으면 당초 출간된 원본을 바탕으로 전문 러시아어 전공자를 선정하여 변역하였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때로 문장이 어색한 부분이 더러 보이는데, 중역으로 인한 한계로 느껴진다. 영문판에 붙어 있으리라고 보이는 부록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글이므로 함께 수록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기왕에 지도를 넣으려면 좀 볼만한 지도를 삽입할 것이지 지도 보고 감을 잡기에는 많이 부실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을 인쇄한 종이의 질이 상당히 저질이다.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을 출판하면서 만화책 수준의 용지를 사용했는지 의문이다.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는 책자이지만 책의 상태로 볼 때 2~3년만 지나면 누렇게 떠가지고 보관하기 곤란할 듯 하다. 처음 보는 출판사인데 앞으로는 제대로 만들어 제값 받고 파는 것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
| 이런 종류의 탐험기는 대체로 자연과 인간을 대립항으로 놓고 그들 사이의 긴장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대자연이 주는 혹독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인간, 끈끈한 동료애와 고귀한 희생정신이 그 기록들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그러나 알바노프의 탐험기록『위대한 생존』은 이런 도식성을 벗어나 있다. 가공할 추위와 굶주림,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괴혈병, 시도 때도 없이 갈라지고 떠내려가는 유빙(遊氷)들. 상상력이 조금만 풍부한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몸서리칠 북극해의 고난을 의외로 그는 담담하게 써내려 간다. 어쩌면 동료인간들의 배신과 갈등이 더욱 힘겨웠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어제 건빵 3킬로그램이 사라졌다. 이 사실을 알고 동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모두에게 똑같이 책임을 물어 배급량을 줄이겠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비열한 도둑을 현행범으로 잡는다면 바로 총살하겠다고 경고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팀에서 서너 명은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다.》(124쪽, 6월 10일 일기)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도 없을 정도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다. 동료들이 나를 배신하다니! 이 충격에서 과연 어떻게 벗어날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 동료 두 사람이(그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새벽 4시에 정찰을 나가겠다고 했다…(중략)…그들이 우리 물품을 훔쳐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다…(중략)…배신자들은 우리를 희생시켜가면서 최신장비로 무장하고 가버린 것이다.》(132-133쪽, 6월 17일 일기) 《그(배신자 중 하나)는 달려와서는 흐느끼고 용서를 빌었다…(중략)…처음에는 그의 비겁한 행동에 대한 기억으로 분노에 몸이 떨렸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도둑놈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쏘아 죽이고 말겠다"고 맹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노가 아직도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말 불쌍하게 보였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 같았다…(중략)…결국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몇 시간 전 그를 얼음 위에서 만났더라면 아마 가차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150-151쪽, 6월 28일 일기) 《이 사람들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아주 화가 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곁에 있고 늘 눈앞에 있지만 그것뿐이다. 때로는 차라리 눈앞에 없었으면 하는 때도 있다. 이 사람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이 될 때가 많고 근거 없는 야망을 가지고 허둥대기 일쑤이다. "혼자일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살아남고자 한다면 힘과 의지가 있는 동안 지금 숨쉬고 있는 이 생명을 위해 싸워야 한다. 혼자일 때에는 너의 싸움을 도와줄 사람도 없지만 너를 밑에서 잡아끌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곁에 아무도 없어야 쓰러지지 않고 서 있기가 더 쉽다" 이제야 이 금언의 심오한 진리를 이해할 것 같다.》(153-154쪽, 6월 28일 일기) 자연이 주는 물리적 고통만도 버거웠을 것인데, 같은 인간과의 불화까지 더했으니 풀기 쉽지 않은 이원일차연립방정식이었을 터이다. 물론 우리는 알바노프의 시선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에게 불화의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탐험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듯이 자연 vs 인간의 구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자연 vs 인간 vs 인간의 3자 갈등 구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유용하다. 북극해 원정대원 23명 중 유일하게 그와 함께 살아남은 알렉산더 콘라드의 일기 이야기도 부록으로 실려있다. 그 일기를 분석한 결과는 자못 놀라웠다. 탐험도중 알바노프와 동료들을 배신하고 달아난 두 도둑 중 하나가 바로 콘라드였던 것이다. 이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는 알바노프의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극심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자신을 죽음에 내몬 인간이 결국 함께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 그를 백 퍼센트 믿을 수도 없고 백 퍼센트 불신할 수도 없는 상황...... 읽는 내내 이 태의 『남부군』이 생각났다. 내게 『태백산맥』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주었던 그 빨치산의 수기와 이 알바노프의 기록은 너무도 닮아있다. 극복의 대상이 가혹한 자연이라든가 이데올로기처럼 외부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바로 곁의 인간이라는 서글픈 직시(直視). 고등학생들이 쓰는 지리부도를 펼쳐봤다. 이들이 개척하려했던(상업 목적이 더 컸을) 러시아 북동항로는 이제 어엿한 뱃길이 되어있다. 항구끼리 연결하는 최단 구간이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고 거리도 상세히 명시했다. 이 숫자를 보고 나는 침묵한다. 얼마만큼의 인내와 동료인간에 대한 애증(愛憎)이 녹아서 이루어진 명확함일까. 그러고 보니 지도책에 숫자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무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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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은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다. 극지문학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세계 속에서의 문학은 그 생경함만으로도 놀라운 책이다. 하물며,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북국에서 사람 하나 없는 얼음을 깨치며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의 일기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경외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은 담담하고 냉철하고 단순했다. 그러나 몰입도는 빨랐고 나는 하루만에 이 책을 읽고 말았다. (평소에는 여유있게 이 책 저 책 읽는 편이다.)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었는데....최근 계속 이 책이 눈에 띄었고 그러다가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리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거대한 자연과 미약한 인간과의 사투. 그러나 그 내면에는 결국 다양한 인간군의 처절한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더 핵심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던가.
끊임없이 저자가 지적하는 의지와의 싸움, 의지를 놓아버려 죽어가는 동료들을 향한 화나고 안타깝고 분한 그 감정들이 너무 정직하게 적혀져 있다.
가장 존경스러운 것은. 그런 혹한의 날씨. 배고픔,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끝까지 일기를 적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기록에 대한 정열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간결하고 단순하기도 하지만 최초 번역을 한 사람의 글처럼 그의 글은 군데군데 문학적 향기를 가지고 있다.
그가 뱃사람이기도 하지만, 문학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절망과 마주하고 있거나, 희망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책을 보기 바란다. 의지가 어떻게 육체를 이기느냐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정신은 육체를 이기는 것이다. 물론 단 두 사람밖에는 생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이 지금 내게 전달되어 읽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생존자 두 사람은 만족해도 될 것이다. 그들은 위대한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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