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과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길이 너무도 비좁아 많은 이들이 망설이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역사적 기록도 부재하고, 그나마 존재하는 기록도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파손되었거나 현재 사용하는 언어와 기록 수단이 다르기에 파악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걸 두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으로선 무엇이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지 파악하는 것조차도 힘겨우니 말이다. 어쩌면 역사를 밝혀내는 일은 특별한 시야를 필요로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금석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돌에 새겨진 글자들을 탁본을 통해 베껴내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 정도라고 해둘까. 추사 김정희도 금석학에 관심을 가졌었다는 정도. 직접 해본 적이 없으니 그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작업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비록 직접 화선지를 대고 조심스레 글자를 탁본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었지만, 제한된 글자, 짧은 글귀 안에서 너무나 많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나의 가슴은 심히 설레기 시작했다. 역사란 그런 것인가 싶다.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한 이들에 대한 꿰뚫어봄이기에, 역사는 실로 흥미로움 그 자체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사소해 보이는 비석 하나로부터 지난 1000년의 역사가 새로이 쓰여진다. 울주 천전리각석의 경우, 남녀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났다는 지극히 사적인 사실 뿐만 아니라 당시 신라 사회에 만연해 있던 근친혼의 풍습, 더불어 신라 사회에서 갈문왕이 차지하던 권력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채로운 내용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익히 잘 알려진 광개토대왕릉비나 칠지도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 세 국가로 하여금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E. H. Carr 가 말했던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한 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존재하는 같은 것을 두고 현재의 존재들이 벌이는 논쟁. 그것은 엄청난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저 오래된 나무 판자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목간(木簡)에 쓰여진 글자를 통해 신라 시대 수취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되었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나, 서로 다른 형식을 지니고 있는 정혜, 정효공주 묘를 통해 당시 발해가 당나라 문화를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지방 토착세력을 어떻게 복속시켰는지를 알아내는 과정 등은 ‘예술’이라는 단어 외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러한 매력 때문에 역사에 자신의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현재를 과거의 영역으로 밀어낸다. 그런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나라는 존재 역시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내 역사를 만들어왔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열심히 써 내려갔던 일기가 몇백년 뒤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20세기 후반을 살아간 한 인물에 대한 고찰로 이어질지도… 문득 나에 대해 좀더 많은 기록들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속에 남기 위한 일종의 발악이라고 할까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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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수사에서 침,혈액,체액에서 DNA를 추출해 범인을 잡는 과학 수사방법이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장기수로 복역하던 사람들이 이런 방법을 통하여 뒤늦게 무죄로 밝혀지기도 한다. 증거와 증인이 불확실했으나 과거의 강압적인 수사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 과학수사의 방법으로 빛을 보게 된다. DNA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권시비가 있지만 수사목적만 보면 요긴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도 이처럼 증거와 증인이 부족한 상황에서 얻은 범인의 DNA처럼 한 조각의 금석문은 역사연구 흐름을 뒤 짚는다. 금석문[ 金石文 ]이란 금속, 도기, 돌 등 다양한 재질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말한다. 저 멀리 반구대 암각화부터 갑골문자를 지나 오늘날까지 새겨지는 비석 글자까지 금석문의 종류는 다양하다. 종이나 비단보다는 후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더 많아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금석문의 연구를 통해 금석문 자체의 연도와 만든 사람 그리고 금석문이 주는 의미까지 다양한 결과를 얻게 된다. [고대로부터의 통신]은 우리 역사에 중요한 금석문들에 대한 이야기, 그 금석문이 어떤 의미를 주는가, 금석문으로 부터 얻은 역사적 사실과 논란등을 이야기한다.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라는 이름의 고대사 연구회에서 나온 책이다. 17명의 고대사 학자들이 18가지 금석문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가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기본 자료는 잘 알다시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 ~~일차 가공하여 기술한 역사책이다보니, 고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금석문은 뒤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생생한 자료이다. 그래서 때로는 문헌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을 전해주기도 하고, 문헌 자료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기까지 한다. 이렇게 중요한 금석문에 대한 연구는 마치 추리소설의 탐정이 단서하나 가지고 범인을 추적하는 것돠 아주 유사하다. 글자, 단어, 문장 하나 하나가 그 다싱이 사회상을 보여주며 다른 사료와 어울려 엄청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우리가 남기는 글 하나 하나가 먼 훗날 역사자료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허튼 소리를 남기면 아니되겠다. 이 책을 구입한 후에 겉 모습만 보고 재미없어 보여 한참 묵혀두었다 얼마전 꺼내서 본 책인데, 추리소설만큼 재미있다. 역사란 역시 상상이다. 모든 단서와 CCTV증거까지 있으면 범인 잡는게 뭐 재미있을까? 단서도 없고 목격자도 없어야 범인 잡는게 흥미롭다. 역사도 마찬가지인가? 학자들은 답답하겠지만 금석문을 통하여 역사의 줄기를 잡는 과정은 너무나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다.
* 요즘도 종종 바위에 낙서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난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반구대 암각화나 천천리 각석도 모두 고대인들이 만든 자연파괴 "낙서" 아닌가? 참 헛소리같은 아이러니다. |
| 고대사는 언제나 논란이었다. 모든게 불확실하기에 시원한 논란마저 없다. 요사이에는 고구려사를 통째로 빼앗길 위기까지 겪고 있다. 문제는 사료인데, 사실 뭐 하나 확실한 건 없다. 고대사 사료의 대명사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어디까지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운 대목이 있다. 많은 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중국 사료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금석문이라는 사료가 추가된다. 하지만 이 역시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풍성한 금석문인 광개토대왕비가 1775자다. 대개는 수십 글자, 기껏해야 200 글자 넘는 예가 많지 않다. 참 뜬금없어 보이는, 앞뒤 맥락없는 이 글자들에서 역사의 진실을 건져내기란 대단한 상상력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상상력은 선입견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인의 상상력과 일본인의 상상력, 그리고 한국인의 상상력이 다 제각각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상상이 얼마나 개연성을 갖추고 설득력을 얻느냐일 뿐이다. 고구려 고분도 예외는 아니다.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은 유주자사를 지낸 진이라는 이름의 사나이다. 휘황찬란한 이 무덤의 주인공은, 그러나 해석에 따라서는 중국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고구려인일 가능성도 많다. 진의 출생지로 기록된 지명이 고구려와 중국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양쪽 다 없다. 그저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르다. 진이 고구려인이라면, 고구려가 한때 중국 땅 깊숙히 있는 유주를 지배했다는 뜻이 된다. 반면 진이 중국인이라면, 고구려는 중국의 강한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뜻이 된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가운데 양측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구려가 어디까지 남하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원고구려비도 알고 보면 허탈하다. 고구려의 강역이 남한강 상류까지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 어느 왕이 그곳까지 내려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가능한 것은 추측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신라의 갈문왕 제도에 대한 기록이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솔직히 명확한 그림이 잡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신라는 부족연맹체의 성격을 가장 늦게까지 갖고 있었다. 때문에 갈문왕도 초기에는 왕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말하자면 경쟁 부족장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갈문왕은 왕의 측근들 차지가 되면서, 수직적인 성격이 강해진 2인자로 거듭나게 됐다는 것이 요지다. 그리고 절대왕권이 확립된 뒤에는 아예 갈문왕 제도 자체가 없어졌다는 것인데... 실제로 학자들 사이에도 갈문왕의 실체는 여전히 안개속에 가려져 있다. 무엇보다 신라 상고 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인듯 하다. 화랑세기의 위서 논란까지 있는 형편이고 보면, 어지간해서는 쉽게 결론날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흥미롭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진실을 캐내는 것이 역사지만, 세상의 그 무엇도 액면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진실을 훔쳐보는 문틈은 언제나 너무나 좁다. 좁디 좁은 시야로 보이지 않는 방안의 풍경을 그려내야 한다. 방 건너편에 거울이 있어 왜곡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방 구석도 그려내야 하고, 거울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참 여럽지만, 재미있는 작업이다. 적어도 옆에서 보기에는.삼국유사>삼국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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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의문투성이이다. 그래서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에 따라 많은 다른 부분들이 존재하게 된다. 한국의 고대사에는 주로 나오는 문서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고려시대에 역사서이고, 일본의 <일본서기>가 있지만 <임나일본부> 문제로 국제적으로 민감하고, 중국의 <삼국지 위지> <신당서> <구당서>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우리의 고대국가인 고구려, 부여, 백제, 신라, 발해 자체의 자료는 하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앞에서 이야기하는 문서가 아니라, 실제 비석이나 묘지 등의 돌이나 철에 새긴 글자인 금석문을 통한 고대사 읽기이다. 이 책은 부드러운 로맨스로 시작하는 울주 천전리의 왕족이 놀러 온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많은 자료를 주고 있는 고대의 가장 큰 비석인 광개토왕릉비를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다. 금석문에 대한 자료가 별 것 없을 것이라고 짐작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금석문이 있었으며, 이 책은 이 것을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잘 요약하여 주는 책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해방 후에 발견된 동수 묘지와, 유주자사 진묘지를 보면서 개인적인 느낌은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지역에 대해서는 4세기 후반까지는 경계가 불분명해 보이는 지역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에 맞추어 고구려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도 억지스러워 보인다. 이 묘들의 의문이 풀리려면 또 다른 유물이 발견되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고대사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 중에 하나가 일본과 신라, 백제와의 관계이다. 여기에서도 칠지도에 대해서도 일본이 어떤 의도로 칠지도를 이용하려고 했는가를 느낄 수 가 있으며, 광개토왕릉비에 대해서의 논란도 여전하다. 글자 몇 자 따위에 고대사가 왔다 갔다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크게 봐서 신민이라는 것에 있어서 광개토왕릉비에서 신민이 고구려의 신민이지 왜의 신민일 수는 없다는 것은 크게 해석해서 틀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너무 글자 한 구절에 연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책의 내용에 공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불교의 도입과 불교를 통한 왕권 강화에 있어 보인다. 특히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가 되는 정신적인 힘, 민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불교로 보인다. 특히 진흥왕과 백제 성왕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롤 모델을 전륜성왕으로 하고 같은 정책을 취한 것이 참 흥미롭다. 여기에 나오는 많은 유물들이 해방 후에 발견된 것들이다. 특히 신라의 냉수리비와 봉평비가 발견되는 사연은 우연이고, 어쩌면 그렇게 버려졌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전에도 문무왕릉비가 조각 일부가 수도 검침원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모르고 버려지고 유실되어 버리는 것도 많겠지만 그 와중에 몇몇 것들은 운 좋게 역사학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유물이 좀더 많이 발굴되어 불투명한 우리 고대사가 좀더 명확해 졌으면 좋겠다. 고대사는 해석의 여지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해석의 여러 여지에 대한 각각의 설명을 달아주어 읽는 사람들이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고 있다. 또 책 내용이 길지도 않아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고, 여러 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지만 일관성을 크게 잃어버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 고대 금석문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역사 교양서로 충실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