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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My Typewriter』
폴 오스터의 글과 샘 메서의 그림이 들려주는 수동식 올림피아 타자기에 대한 70여쪽 분량의 짧은 에세이다. 1974년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로 지금까지 폴 오스터와 함께 하고 있는 타자기에 바치는 헌사랄까, 그림 감상까지 느긋하게 하면서 읽어도 30분은 넘기지 않을 아주 가벼운 글이다. 폴 오스터의 시집과 시나리오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소설과 산문집의 한글번역본을 갖고 있다. 나의 '폴 오스터 컬렉션'에서 빠져 있던 이 책(2003년 초판)을 우연히 발견해 잽싸게 채워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폴 오스터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고물 타자기로 타이프 쳐진 거라 생각하면서 이 얇은 책을 읽다보니 나 또한 타자기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다.
고장난 타자기를 대신해 새 타자기를 살 만한 여유가 없던 시절, 폴 오스터는 친구네 벽장에 처박혀 있던 타자기를 40달러에 사들인다. 그 이후 폴 오스터는 이 타자기와 함께 한다. 시대는 전동식 타자기를 거쳐 매킨토시와 IBM으로 옮겨갔지만 폴 오스터는 고물 타자기를 고수했다. 어느 순간 멸종 위기 종의 종말을 직감하며 타자기 리본을 그러모으기 시작했고, 어렵게 구한 50개의 리본은 찍힌 글씨가 흐릿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최대한 아껴쓰고 있다고 했다. 물론 폴 오스터가 그 때 문구점 주인에게 부탁해서 구한 리본 50개가 아직도 버티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공급이 중단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선고가 이미 내려지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 이 수동식 타자기는 단지 작가의 일을 돕는 도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보니 타자기에 대한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화가에게 은근히 이 타자기에 대한 얘기를 했고 화가 샘 메서는 이 타자기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어느 날에는 폴 오스터없이 타자기를 독대하기도 했다. 타자기로부터 영혼을 드러내도록 설득했다고 믿을 정도로 이 기계에 생명과 품격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내고 말았다. 샘 메서의 타자기는 회색 몸체 인에 갇혀있는 심장이 뛰는 소리까지 들리는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지게 했다. 폴 오스터는 단지 내 손이 그 타자기 위에 놓여 있고, 타자기가 한 글자 한 글자씩 단어들을 치는 것을 지켜본다고 했다. 타자기와 반평생을 함께 해온 작가의 지고한 경의의 표현이다.
이 짧은 글에서는 폴 오스터의 낡고 오래된 고물 타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폴 오스터는 최종 원고를 이 책의 주인공 수동식 올림피아 타자기로 작성한다. 최종 원고 전의 작업은 만년필이나 연필을 사용해서 손으로 직접 쓰고 고치는 작업을 거친다고 한다.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공책에 한 땀 한 땀 새겨넣는 기분이 든다. 내게 글쓰기란 늘 그런 손맛을 느끼는 일이며, 육체적인 경험이다.' 라고 폴 오스터는 말한다. 김훈 또한 한평생 연필로만 글을 쓴다고 한다.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는 김훈의 글을 좋아한다. 이런 아날로그적 글쓰기가 출판물로 글을 접하게 되는 독자인 나에게까지 감동을 더해서 전달될 리는 없다. 출판물은 그저 결과물로서 평가받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정제된 간결함과 힘이 느껴지는 글 뒤에는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작가의 노고가 묻어나 있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현란한 서사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매력적인 글 뒤에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한 땀 한 땀 새겨넣은 작가의 진정성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슬픔과 기쁨, 고난과 희망을 챙겨서 끌고 간다. 디지털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튀어서 간다. 그래서 디지털은 앞서가고 아날로그는 시대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나는 아날로그가 끌고 나가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의 고난과 희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라면을 끓이며』,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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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시절 학교로 찾아 왔던 아저씨에게 도장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난 그 가격도 기억한다.1900원이었다 그 가격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저씨의 기억력 부족으로 내가 낸 돈을 한 번 더 낸 쓰라린 기억이 있기때문이다.
그 빨간도장은 그렇게 그 1900원이란 기억과 함께 나의 세월을 함께했다.
아마도 나에게 있는 물건중에 가장 오래된 물건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자신의 반평생을 함께 한 타자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차도 수없이 바뀌고, 가전제품도 여러번 바뀌었음에도 유독 타자기는 작가의 분신처럼 따라 다니고 있었고 그 타자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다양한 타자그림들과 함께 마치 타자예찬론 같은 느낌을 준다.
책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고 글과 그림의 비율이 거의 같아서 20분도 안되서 다 읽을 정도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이라 말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이렇게 반평생을 자신의 분신처럼 간직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래서 난 나의 그 사연많은 빨간도장을 앞으로도 내 분신처럼 생각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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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일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불거져 나온다. 그러니까 폴 오스터의 새로나온 소설인가? 제목이 타자기를 치켜세움이라니? 정말 재미있겠는 걸? 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청한 책을 열어봤다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80쪽 안팎에 180g 이상의 아트지로 만든 책은 외근을 나와 역삼역에서 지하철에 오르고 도착지인 을지로입구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는 성수역 쯤에서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책의 내용은 조금 긴 에세이 정도이고, 그 틈을 샘 메서라는 사람의 그림이 메꾸고 있다. 내용은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간단하다. 1974년 폴 오스터는 자신이 쓰던 소형 헤르메스 타자기를 여행 중에 망가뜨렸다. 그래서 대학시절의 친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1962년에 졸업선물로 받은 타자기를 40달러에 주겠다 하여, 그 타자기를 얻었는데 바로 그 올림피아 포터블 타자기로 지금까지 글을 써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그 타자기는 간혹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작은 수리와 부품의 교체만으로도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의 타자기에 대한 애정이 찐하게 묻어나는 글은 우직해 보인다. 그것이 글을 쓰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말 타자기를 아끼고 아껴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는 느낌이다. “유라눈 지금까지 4반세기 이상의 시간을 같이보냈다. 내가 어느 곳으로 가건, 그 타자기도 나와 함께 갔었다. 우리는 맨해튼, 뉴욕 주 북부, 그리고 브루클린에서 살았고 캘리포니아와 메인으로, 미네소타와 매사추세츠로, 그리고 버몬트와 프랑스로 함께 여행했다. 그 기간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연필과 펜으로 글을 썼고, 몇 대의 자동차들과 몇 대의 냉장고들, 그리고 몇 곳의 아파트와 집들이 나를 거쳐갔다. 또 나는 수십 켤레의 신발을 닳아 해지게 했고 수십 벌의 스웨터와 재킷들을 입다 버렸고 수많은 손목시게와 자명종과 우산을 잃어버리거나 내버렸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낡아 못쓰게 되어서 결국에는 그 용도를 잃게 되지만 내 타자기는 지금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내가 26년 전에 소유했고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물건은 그것 하나뿐이다. 몇 달만 더 지나면 그것은 정확히 나와 반평생을 함께 한 셈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게도 혹시 그런 물건이 있나 찬찬히 둘러본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 십오 년쯤 된 책상(그나마 다행이다. 난 이 책상을 88년도에 내 것으로 받아들여 처음엔 책만을 올려놓는 것에서, 다음엔 컴퓨터를 함께 올려 놓고, 이제는 미니 오디오까지 올려놓는 용도로 발전시켰다, 대신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이다. 반평생을 같이 한 물건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를뿐더러 난 책상을 끔찍이 아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담 뭐가 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구입한 책들이 몇 권 남아 있기는 하지만, 누렇게 뜬 그것들을 보면서 너희들을 사랑하노라, 라고 말할 염치도 없다. 십여 분을 생각하고 돌아다니고 서랍을 뒤지고 야단법석을 떨며 집안 구석구석의 물건들을 훑어보지만 어림없다. 하지만 뭐... 불현듯 사라지는 것들 그 흔적조차 말끔히 지우는 것, 낙오한 낡은 것들이 풍기는 불쾌한 기분을 맡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야 이 밤 잠들 수 있으니... ps. 절대 사서 보려 하지 말고, 서점에 들러 서서 볼 것. 그게 현명한 행동이다. |
| 폴오스터 세트중 가장 얇은책 이길래 가장먼저 읽어본..10분만에 읽었나.. 작가 폴오스터에게 타자기의 의미.오래된것의 의미를 담은책. 원본은,초기 타자기의 타자체로 표지와 내용을 인쇄하였고,종이는 일본 무광택 어쩌고.. 종이를 사용했고..한정판에 한해서는 미니어쳐 타자기와 작가의 싸인이 곁들여져 있다고한다. 내 생각에 이 책의 의미는 타자기로만 글을 써온 작가의 감수성을타자기의 글씨체와 오리지널의 복사체인 미니어쳐 타자기를 이용해담아내어, 복사본으로 읽혀지고 있는 책들 사이에서의 차별성을 주었다는 것인데.물론 어짜피 그것도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읽게된 책은 그 책을 번역해 한국에서 인쇄하였으므로..글씨체도 당연히 한글이므로 그 타자체를 사용했을리도 없고 한정판이 아니니, 미니어쳐나 싸인이 들었을리도 만무하다. 그나마 복제되고 복제되는 과정에서 가지게되는 '많은 양의 정보'라는 메리트도 없는 오리지널의 복사본의 복사본의 복사본.. 이라는.. 결국엔 '아니 이걸 왜 돈받고 판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다 읽고 '신탁의 밤'을 읽고 있는 지금은 '이끌리듯 글을 쓰게만드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신탁의 밤'과의 내용과 연관되는 부분도 있긴하지만, 게다가, 누군가 그림이 있자나~ 라고 말한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아무렇게나 턱턱 올려놓은듯한 혹은 짜놓은듯한. ㅡ,.ㅡ 칼로 잘라 단면을 보면 속엔 마르지 않은 물감이 차있고, 두께는 5~6센티정도 될것같은. 그리고 너무 많은 색을 가지고 있어서,거무튀튀한.. 회화작품엔 선천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어쨌든.돈아까움. 아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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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소설들, 혼자 쓴 것이 아니었다?
어느 가수가 미술작품을 깊숙한 생각에 잠겨 한없이 바라봅니다. 곧 작품 속에서 영감을 얻어 미술작품을 소재로 곡을 만들게 되는데요, 올드팝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곡, 빈센트Vincent가 태어납니다. 이 노래는 유명한 화가였던 빈센트 반 고흐의 Starry Night이라는 작품을 보고 돈 맥클레인이 만든 노래입니다. 작품 Starry Night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당시에 그렸는데요, 밖을 볼 수 없는 고흐가 기억속에 있는 별들이 빛나는 밤을 자신의 감정을 더해서 그린 것이죠. 작품을 보면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격정적인 그림이 나왔나 하는 궁금증도 갖게 합니다. 돈 맥클레인의 곡 빈센트 역시 반짝이는 별처럼 열정적이면서도 약간은 우울한 느낌이 들어 외롭다는 기분에 젖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외로운 영혼,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지만 세상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고흐의 마음을 떠오르게 하죠. 미술작품과 음악이라...어울리지 않습니까?
The Starry Night ( La Nuit Etoilee) Vicent van Gogh, 1889 Oil on canvas 73.7 * 92.1cm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City
출처: 그녀의 고양이 시즌 하나 | 샤니파워
<The Starry Night; 왼쪽 하단>
<The Starry Night : 오른쪽 하단>
<The Starry Night 오른쪽 상단>
<그가작품을 그리기 전, 펜으로 드로잉한 작품>
오늘 또 다른 어울림을 찾았습니다. 하나의 타자기typewriter 로만 저술활동을 고집하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습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워드 프로세서가 나오고 컴퓨터가 나왔는데도, 여행을 하면서도 이 무겁고 소리나는 타자기를 들고 다니며 창작을 했다네요. 소설가 김훈 님이 아직도 원고지에 펜으로 원고를 쓰시는 것처럼요. 작가의 머릿속 이야기는 마치 혈액처럼 글자들이 팔을 타고 내려와 타이프를 치고 펜을 붙잡는 손에 쏠려서 종이에 옮겨지는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타자기를 고집하는 소설가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어느 미술가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곧 타자기에 반해 버립니다. 왜 반했을까요?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미술가는 타자기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그 훌륭한 소설을 그려낸 기계가 너란 말이냐?“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미술가는 타자기를 자신의 작품소재로 그려 넣었습니다. 마치 초상화를 그리듯 화면 가득히 타자기를 그렸습니다. 미술가는 타자기를 줌인을 하기도 하고, 줌아웃을 하기도 합니다. 정면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내려다 보았습니다. 곡선미를 보이듯 옆으로도 틀기도 하고, 타자기에게 입을 크게 벌려 웃어보라고도 하는 듯 합니다. 졸지에 제 삼가가 되어버린 소설가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타자기가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하기에 자신에게는 ‘함께하는 유일한 밥줄이요, 영원한 친구’인 타자기는 ‘나’만 알아보는 줄 알았는데, 또 한 사람이 늘었으니까요. 게다가 타자기는 글을 토해 놓아야 제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제 모습만으로도 주인공이 되었으니, 제 삼자로 밀려난 화가는 소외된 기분도 얻게 됩니다.
미술가는 작가도 물론 그의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는 정신없고, 산란하며, 불안정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다크써클이 그득하고, 담배연기도 그득한 정신없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그에 반해 늘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타자기에게서는 아우라마저 느끼게 작품으로 묘사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묘한 만남의 주인공들은 현대미국문학의 거장이 된 폴 오스터paul Auster와 샘 매서Sam Messer입니다.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묘사하는 폴이 그냥 있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타자기와 어쩌면 나보다도 더 타자기를 사랑하는 듯 한 샘과의 만남을 한 권의 책으로 꾸몄습니다. <타자기를 치켜세움the Story Of My Typewriter>입니다. 70 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은 타이핑된 활자(아쉽게도 한글입니다. 원작은 폴의 타자기의 활체가 그대로 뭍어 있다네요? 갖고 싶어집니다)와 샘의 그림들로 가득합니다. 폴만이 갖는 짧은 문체의 맛과 샘이 그려내는 타자기 그림들이 잘 어울려 있습니다. 폴의 작품이라면 작품이고, 샘의 도록圖錄이라면 도록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우선 하나는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친구같고 동반자같은 소품이야말로 나만의 명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해에 ‘생활명품’을 이야기한 책도 있었는데요,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모아 사서는 잠깐 쓰고 고이 모셔두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명품 말고요, 내 손때와 추억이 뭍은 나만의 명품을 생각해 봅니다. 곰곰이 따져 생각해 보니 제게는 ‘검정색 세컨드 백’이 있더군요. 7-8년 년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작은 가방인데 제 애인은 ‘사채업자 가방’같다고 놀리는 조금은 낡은 보퉁이입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는 터라 담배와 라이터 그리고 지갑, 때때로 손수건까지를 모두 넣으려면 항상 주머니가 꽉 차서 가뜩이나 퉁퉁한 몸이 영 맵시가 나지 않았는데, 모두 털어낼 수 있어서 고마운 녀석이죠. 조금 구겨넣으면 단행본 한 권도 들어가니 꽤 신퉁한 녀석이죠? 여러분은 없어서는 안될 소품, ‘나만의 명품’이 무엇인가요?
두 번째는 폴을 생각했습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폴의 타자기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요, 제 마음을 온전히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폴의 능력과 고맙고 소중한 것 만큼 아껴주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아마도 폴은 자신의 오랜 타자기 앞에 서면 처음 소설을 쓸 때를 기억할 겁니다. 숱한 밤을 함께 하얗게 지새우며 타자기와 씨름한 시간을 기억할 겁니다. 폴이 타자기와 함께라면 북극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추운 곳에서도, 타지마할의 여명을 느낄 수 있는 더운 곳에서도 글을 쓸 준비가 될 겁니다. 폴은 타자기고, 타자기는 폴이 될 겁니다. 몰입을 생각합니다. 삼라만상의 세상사를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몰입은 인간이기에 갖는 기쁨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몰입을 합니다. 그 기쁨을 익히 알기에 몰입할 꺼리가 없고, 몰입할 수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하거나, 약물에 취하기까지 하니까요. 어떤 행위를 통하든 몰입의 기쁨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인 것 같습니다. 위험한 몰입을 빼고는(사실은 위험한 몰입을 전 잘 모릅니다) 뿌듯한 보람이 있습니다. 시간을 보낸 즐거움이겠죠. 그래서 나중엔 ‘사는 맛’을 느끼게 됩니다. 폴에게는 타자기와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이 몰입하는 시간이겠죠? 우리는 소설을 읽은 후에 소설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소설가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죠. 소설가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은 소설가의 수필을 읽는 겁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낼 때는 창조자여서 경외로움을 느끼지만, 수필 속에서 만나는 소설가는 ‘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위안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죠.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읽고 나니 폴의 소설들이 더욱 읽고 싶어집니다. 이젠 폴의 소설도 읽지만, 소설 속 활자 속에서는 타자기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아서요. 소설가는 못됐습니다. 어린이집에서도 가르치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그리고 그럴싸하게 책으로 마구 늘어놓으니까요. 사람들은 멍청합니다. 이 허가받은 거짓말쟁이들의 거짓뿌렁을 익히 알면서도 기꺼이 돈을 주고 사서는 아까운 시간을 쪼개 읽으며서 웃거나, 눈물지으니까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 했던가요? 그렇다면 이 책은 세계가 인정하는 하얀 거짓말쟁이의 동업자의 이야기겠네요? “이 책은 폴 오스터가 쓰고, 샘 매시가 그린 타자기 평전입니다.” 결국 이 한 문장을 쓰려고 저도 뻔뻔하리 만큼 잡설을 늘어 놓았네요. 마음이 넉넉해지는 오늘, 펼치면 좋을 기분좋은 책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Written by Richbo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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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이 책은 가벼워서 선택한 책이었어요.^^;; '달의 궁전'과 '뉴욕 3부작'을 통해 알게 된 폴 오스터. 그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다른 책들도 도전하고 싶었는데, 그 중에 제일 얇은 책을 고르게 되었어요. 최근에 너무 두꺼운 책들에 살짝 치이는터러 요행을 부려본거죠. 그런데, 이 책. 얇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작가로써 25년 넘게 사용한(발행시기를 본다면 지금은 30년이 넘었겠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곧 반평생을 같이했다고 했는데..^^) 수동식 올림피아 타자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지금의 작가들은 대부분 컴퓨터로 작업을 할거라 생각합니다. 아주 간혹 아직까지 손으로 쓰는것을 고집하시는 분들도 있다지만, 폴 오스터는 지금은 단종된 중고 수동 타자기로 그동안의 글들을 써온것이더군요. . 아마 지금쯤은 잉크리본을 구할수 없어 쉬고 있을거란 생각이 드는데, 사용할수 없어도 폴 오스터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책 내용만큼 마음에 들었던것이 있다면 바로, 샘 메서의 유화 그림이었어요. 다양한 스타일의 타자기 그림과 폴 오스터의 모습은 무척 매혹 적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이 책에 생기를 불어 넣은것 같았어요. 약간 미안하지만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책이라기 보다는 샘 메서의 책 같은 느낌이 들긴했습니다. 암튼, 오래도록 이렇게 함께 할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이, 왠지 부러웠어요. 그러자 문득 제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물건은 뭘까? 생각해 보았는데, 다른건 몰라도 10년 넘게 가지고 있는 책들이 있어서 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히 살짝 착각했어요. 이 책의 글도 그 타자기로 썼겠다 생각했는데, 폴 오스터가 미국인이라는 것을 깜빡한것이죠.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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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364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샘 메서 그림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3.12.30. 2년인가 3년 전, 나는 종말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브루클린 문구점 주인인 레온을 찾아가 타자기 리본을 50개 주문해 달라고 했다. 그는 내가 부탁한 사이즈의 리본을 긁어모으기 위해 며칠 동안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야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중 일부는 캔자스시티 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송된 것들이었다. (23쪽) 《타자기를 치켜세움》(폴 오스터·샘 메서/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3)을 읽었다. 글밥이 얼마 없는 책이라 책집에 서서 읽었다. 헌책집에서 만났는데, 펴낸해를 읽고는 틀림없이 판이 끊어졌겠다 싶었다. 책집에서 손전화를 켜서 살피니 참말로 판이 끊어졌고 한참 망설인다. 이 책을 사느냐 다시 꽂느냐, 책집에 서서 다 읽었으니 굳이 안 사도 되지 않느냐 하면서. 마침내 이 책을 사기로 다짐하고서 연필을 쥔다. 마음에 드는 대목은 옆자리에 동그라미를 작게 그린다. 옮김말이 엉성한 대목은 빗살을 그려 손질해 본다. 셈틀이 아닌 타자기로 글을 쓰는 삶을 단출하게 펼쳐 주었고, 글쓴이가 몸뚱이처럼 여기며 늘 함께하는 타자기를 마주한 그림벗이 타자기를 담아낸 그림을 죽 엮어 놓는다. 나는 셈틀로도 글을 쓰지만 연필로도 글을 쓴다. 한때 연필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 적이 있었으나 연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요즘 연필을 옛날하고 대면 매우 안 좋다. 이웃나라 일본은 아직도 연필을 매우 잘 깎는다. 어쩌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연필은 무늬로만 살아남고, 속으로는 다 죽은 셈 아닐까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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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은이인 폴 오스턴이 소장하고 있는 타자기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폴 오스턴이 이 중고 타자기를 가지게 되었고 별 생각없이 쓰고 있었는데 친구이자 화가인 샘 메서가 자신의 타자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자 그 후부터는 타자기가 달리보이고 그 후에는 타자기가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말하는 이야기다.
장황하게 '이 타자기는 현대사회에 반기를 드는 나의 어떤 상징이며 뭐시기며'하는 글이 아니라 나는 그냥 타자기가 좋다, 컴퓨터로 글 쓰다가 날려먹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컴퓨터 쓰기가 더 겁난다,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때 내 타자기의 리본을 50개나 사두었었다 등의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말들을 형식없이 써놓은 글이다.
글만 보면은 이런 글로도 책을 낼 수 있구나 싶지만 이 책을 빛나게 해주는 건 샘 메서의 삽화다. 낙서하듯이 그려놓은 스케치부터 꼼꼼하게 마무리한 그림. 샘 메서의 그림 속에서 타자기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삽화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타자기 자판의 올록볼록한 느낌이 책을 두드리면 정말 글씨가 써질 것 같다.
'타자기를 치켜세움'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봐야한다. (책은 모두 작품이지만) 글로써 그림으로써 '타자기를 치켜세운' 책이 아니라 책이 '폴 오스터만의 타자기', 그 자체다.
전산화 시대, 정보화 시대에서 타자기를 추억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깨우는 책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은데 젊은(?) 나한테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건 타자기가 아니라서 그런가. 아날로그 어쩌구 하는 것에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나한테 타자기는 추억이 아니라 역사고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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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들른 시내 교보문고. 평소에 서점에서 책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것저것 책을 둘러보다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관계로.. 열린책들 출판사 책 중에 폴 오스터 아저씨의 가장 얇은 책(이책! ^^)을 한권 꺼내들고, 책을 보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곳에서 컴퓨터 서적에 몰두해 있는 남자친구 옆에 가서 읽기 시작했다.
두번째로 만나는 폴 오스터 아저씨의 책. 이 책 말고도 이 아저씨의 얇은 책 한권이 더 있었는데, 그건 시였다! 시? 왠 시? 이 작가가 시도 쓴 작가였나? 라는 생각에 뒷편을 읽어보니, 원래 처음엔 시로 시작한 시인이었는데, 글쓰는 소설가로 전향하셨다는.. 또 몰랐던 새로운 점.. ^^
이 책은 폴 오스터 작가가 25년동안(그당시 글을 쓸때 25년이었는데, 지금은 더 긴시간이 되었겠지..) 함께 해온 타자기에 관한 글이었다. 책 속 글은 느낌에 맞게 타자기로 타이핑된 글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의 친구 화가가 그린 타자기의 그림을 군데 군데에서 엿볼 수 있다. 책은 얇고, 그래서, 30분 정도면 충분히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폴 오스터 아저씨는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 타자기를 치켜세웠다. 자신이 지금까지 이런 작가로서 명성을 떨쳐온 것은 이 타자기 덕분이었다는 듯 말이다. 뭐든지 기계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래 쓰지 못했던 작가에게 이 타자기는 그만큼 특별했었나 보다.
나와 오래된 물건은 사람만큼이나 뭔지 모를 느낌이 깃든다. 그래서 버리기가 쉽지만은 않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물건들이 무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타자기에 대한 폴 오스터 아저씨의 이런 저런 생각들을 들을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기뻤다.
나는 기계들과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그리고 만일 누르게 되어 있는 잘못된 버튼이 있다면 결국 그것을 누르고 말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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