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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속에서도 보존된 자료들, 감탄과 비감을 동시에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전란 속에서도 보존된 자료들, 감탄과 비감을 동시에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내용보기
지금 남아있는 우리 문화재와 서적들은 숱하게 생사의 고비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용감한, 아니 운이 좋은 생존자나 마찬가지다. 전란으로 소실되거나 반출되거나 붕괴되거나 사라지거나한 문화재가 워낙 많다보니.특히 종이로 만든 책들은 잿더미로 변하거나 다른 나라로 약탈되는 운명에서 비껴갈 수 있었던 책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
"전란 속에서도 보존된 자료들, 감탄과 비감을 동시에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내용보기

 

지금 남아있는 우리 문화재와 서적들은 숱하게 생사의 고비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용감한, 아니 운이 좋은 생존자나 마찬가지다. 전란으로 소실되거나 반출되거나 붕괴되거나 사라지거나한 문화재가 워낙 많다보니.

특히 종이로 만든 책들은 잿더미로 변하거나 다른 나라로 약탈되는 운명에서 비껴갈 수 있었던 책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는  살아남은 책들과 자료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리고 이곳의 자료만큼이나 규장각의 변천사 역시나 관심이 가는 사항이었다. 규장각은 원래 숙종대 설치됐다. 그 때는 역대 왕의 글씨나 쓴 책을 모아 보관하는 정도의 기능이었는데, 정조가 그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세종대의 집현전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며 나랏일을 의논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것이었다. 도서관 겸 박물관 겸 연구소라고 할까.

하지만 정조 사후에 규장각의 역할은 도루묵이 됐다. 전처럼 자료만 보관하는 역할로 대폭 축소됐고  그나마 일제시대에는 폐지되고 말았다. 이곳에 있던 자료는 경성 제국대학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해방과 함께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로 바뀌면서, 이곳 자료는 서울대 도서관으로 이송됐고,2006년에는 우리나라 역사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역할까지 더해졌다. 지금은 약 26만 가지 책, 문저, 지도와 정부기록물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학  자료와 연구에 없어서는 안되는 심장부 중 한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서관에 박물관, 연구소의 역할까지 이렇게 규장각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 책 표지를 보면 특이한 것이 신병주 저, 이혜숙 글이라고 돼 있다는 점이다. 저(著)와 글의 차이는 무엇일까. 신병주가 쓴  '규장각에서 찾는 조선의 명품들'을 어린이 버젼으로 펴낸 책인 듯 모양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놀라운 기록문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규장각 자료를 보면 조선시대의 기록문화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임금들의 어필과 어진, 의궤, '혼일강리역대국지도''대동여지도''중국어 교재인 '노걸대' 일본어 교재인 '첩해신어''열하일기' 등등 다양한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의궤와 지도는 기록성이나 실용성도 실용성이지만 미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의 원저라고 할 수 있는 '규장각에서 찾는 조선의 명품들'이란 책은 오래 전에 읽어서 어린이 책은 어떨까 싶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인데, 이 책의 사진자료를 들여다 보면서 명품, 보물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인데도 자료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가 느껴졌으니.

동시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이 자료 외에도 외국으로 반출되거나 사라진 수 많은 문화재들이 떠올라서.

규장각이라고 온전할 수만은 없는 법. 강화에 있던 외규장각, 그곳에 보관돼 있던 '직지심체요절'과 의궤를 비롯한 값진 자료들이 병인양요때 프랑스에 반출됐고, 전란을  간신히 모면한 자료들이 또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자료의 반환을 두고 프랑스와 힘겨운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라가 존망에 처할 때면 고단한 처지로 내몰리는 건 백성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규장각의 자료를 보면서 또 규장각이 겪어야 했던 굴곡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비감 또한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e****0 2017.03.31.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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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안에서 보물찾기
"규장각 안에서 보물찾기" 내용보기
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압둔 시점에서 규장각도서가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이제 규장각도서가 모두 반환되지만 이 책이 만들어진 시점이 조금 앞서있기에도서의 반환에 대한 열망 또한 내포되어있었습니다.왕실도서관이었던 규장각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기록유산 속에서우리의 역사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조선의 임금님과 신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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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압둔 시점에서 
규장각도서가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제 규장각도서가 모두 반환되지만 이 책이 만들어진 시점이 조금 앞서있기에
도서의 반환에 대한 열망 또한 내포되어있었습니다.

왕실도서관이었던 규장각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기록유산 속에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의 임금님과 신료들이 기록한 수많은 책과 의궤로 인해
우리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기록해 놓아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했다.
딱딱하게 느껴질 한자어가 많지만
친숙한 어조로 차분히 설명해 놓은 듯한 글들로 인해
이 책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딱딱한 설명이었지만 끝을 향해 읽어 내려갈 수록
선조들이 기록해 놓은 유산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또 그 시간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역사인지
재미도 있고 가슴벅차게 느끼게 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규장각에 남겨진 역사적 보물인 기록유산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많은 책들이 우리의 곁에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가와 줬으면 좋을 책들도 많았다.
한문으로 된 우리의 역사지만 학술적인 의미로만 남지 말고
한글화 되어 우리의 역사를 자세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k******0 2011.05.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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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 문화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 문화" 내용보기
우리는 보통 드라마를 통해서 혹은 박물관 견학을 통해서 역사 속 우리나라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 시절의 옷, 집, 먹거리 등이 드라마 속에서 재연됨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를 엿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그 시대의 생활상은 어떤 근거를 통해서 재연되고 있는 걸까요? 지금처럼 카메라나 비디오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 문화" 내용보기

우리는 보통 드라마를 통해서 혹은 박물관 견학을 통해서 역사 속 우리나라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 시절의 옷, 집, 먹거리 등이 드라마 속에서 재연됨으로써 우리는 그 시대를 엿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그 시대의 생활상은 어떤 근거를 통해서 재연되고 있는 걸까요? 지금처럼 카메라나 비디오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걸까요? 
우리 어린이들은 분명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글과 그림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책과 그림을 통해서 역사의 모습을 엿보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또 하나, 역사의 모습을 기록한 귀한 자료들은 어디에 보존되고 있는 걸까요?
드라마 <이산>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정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정조는 왕들의 글이나 책 들을 정리하고 연구하며 나랏일을 의논하는 중요한 곳인 <규장각>을 지었고, 바로 우리의 기록문화는 이곳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정조는 왕위에 있는 24년 동안 규장각 학자들과 함께 151종류, 3960권의 책을 펴냈단다. 정조와 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 수 있지. 직접 책을 펴낸 것 말고도 중국이나 외국의 귀한 책들을 모아서 보관하기도 했어. 그래서 규장각을 조선의 보물창고라고 하는 거야. (본문 11p)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에서는 조선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규장각에 보관된 역사의 귀한 자료를 고스란히 옮겨 담은 책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작은 규장각이라고 이름 지으면 좋을 듯 싶어요. 규장각에 보관한 왕의 어필과 의궤 그리고 지도, 기행문, 다양한 서적들을 들여다보면 어려운 역사도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다가, 구어체로 기록된 이야기는 친절하게 설명하듯 담겨져 있어서 읽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답니다.

1부 왕이 쓴 글씨와 기록화
2부 왕실 기록의 꽃, 의궤
3부 우리 땅을 생생하게 담은 지도와 지리지
4부 전통과 세계의 만남

얼굴이 주름 하나하나, 수염 한 오라기, 흉터 자국, 코가 빨간 것까지 자세하게 그려진 초상화, 홍수 위험을 막기 위해 청계천 바닥을 파낸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준천사실>, 임진왜란 때 치열하게 싸운 모습을 그린 <임진전란도>, 무기 정보를 담은 하나 밖에 없는 의궤 <화기도감의궤>, 조선 시대 왕실의 결혼을 가장 꼼꼼하ㅔ 기록한 영조와 정순 왕후의 결혼식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조선 시대 의궤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것으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 무덤이 있는 화성에 다녀온 기록이 담긴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은 조선 시대 왕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 하나하나 소홀함이 없이 그려진 의궤는 우리가 역사를 알아가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잇었습니다.
허나,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와 가져간 의궤들 중 297권이 파리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네요.
돌려 달라는 여러 번의 요청에도 아직 대답을 피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프랑스 정부가 야속해집니다.





1402년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600여 년 전에 그려졌으며 세계에서는 이 지도를 옛 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손꼽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와 비슷하게 그려진 <천하도지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국경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요새를 중심으로 그린 군사 지도 <요계관방지도> 등으로 그 시대의 역사와 지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지도 못지 않은 세심한 그림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뿐 아니라, ’미스터 중국인’이라는 뜻을 가진 중국말을 배울 수 있는 회화 책 <노걸대>, 일본 말을 배울 수 있는 <첩해신어>, 조선에서 가장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 민영환의 <부아기정> 등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기 위해 세계로 눈을 돌렸던 조선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조상들이 지나간 시간을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우리는 조선을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상들의 자세한 기록이 있기에 그들의 모습을 알게 되고, 배우고 깨우칠 수 있었던 것이죠.
이 기록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일본은 이 기록을 담고 있던 규장각을 없애 버렸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규장각은 2006년에 우리나라의 역사, 정치, 문화같은 여러 가지 학문을 연구하는 기능이 보태져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책을 통해서 둘러볼 수 있었던 규장각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옛 모습과 문화를 알아갈수록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어요. 어린이들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역사가 남겨놓은 기록들을 통해서 배우는 역사의 이야기는 한층 재미있었고,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게 해주는 듯 합니다.
정조의 혜안이 없었다면,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보고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우리 어린이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빛을 발하지 못할 거예요.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는 그 어느 역사책보다 우리 옛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역사에 대한 흥미를 느끼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와주고 있답니다.

(사진출처: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본문에서 발췌)



s*****2 2010.11.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시대의 놀라운 기록문화
"조선시대의 놀라운 기록문화" 내용보기
한국 전통문화, 문화재, 역사에 관심은 많으나 그 관심만큼 많이 알고 있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때문에 이런 책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보물이라니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만큼 책 안에는 놀라운 사실들이 있었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마라 규장각은 숙종 때 처음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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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문화, 문화재, 역사에 관심은 많으나 그 관심만큼 많이 알고 있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때문에 이런 책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보물이라니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만큼 책 안에는 놀라운 사실들이 있었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마라

규장각은 숙종 때 처음 만들어졌지만 그때는 역대 왕들이 쓴 글이나 글씨를

모아두는 용도로 사용됐는데, 정조가 왕위를 계승한 후 왕권 강화를 위해

규장각을 다시 지어 인재들을 모은 후 왕들의 글이나 책들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한다. 이때 규장각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

분명히 밝혀 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매우 흥미롭다.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 일할 때는 공적인 일이 아니면 마루로 내려가지 마라,

규장각에서 공부하는 학자가 아니면 아무리 높은 관리라 하더라도 규장각에

올라갈 수 없다, 일할 때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해라.” -page.10

학자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렇게 조선의 입지를 굳건하게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한 규장각은

정조가 죽은 후 예전처럼 자료를 보관하는 정도로 빛을 잃었다니 안타깝다.

조선 후기 일본이 규장각을 없애버렸는데, 일본이 물러간 후 다시 빛을 보며

현재 규장각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재탄생했다니 무척 다행한 일이다.

이곳에 26만 가지나 되는 옛 책, 문서, 지도, 정부 기록물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에는 약 30만여 점이라고 돼 있는데

그동안 자료가 늘어난 걸까? :) 하여튼 규장각을 들어보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직접 발걸음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우선

어떤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책으로 만나보자.

 

조선 시대의 놀라운 기록문화

기록문화가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당시의 역사가

세밀하게 자료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왕이 쓴 글씨나 그림은 물론이고 왕실의 행사가 그림에 세세하게

표현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재밌는 건 원로가 된 각료들을 위해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김유신 장군이 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났을 때

의자와 지팡이를 선물로 받은 것도 그림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애쓴 각료들을 극진히 대접하던 조선왕실의 마음이 잘 드러났다.

 

몇 가지 주목을 끄는 자료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계천이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을 다스리기 위해 태종 때 팠던 청계천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자 영조 때 청계천 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랏일을 위해 백성들에게 일을 시킬 때엔 품삯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영조는 일한 백성들에게 일일이 품삯을 지불했다는 것도 놀랍다.

내가 백성이었어도 정말 신나서 더 열심히 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자리를 만들어 백성도 돕고 청계천도 살렸으니 영조는 센스 있는 왕!

공사 책임자인 홍봉한에게 청계천이 몇 년이나 버티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100년은 갈 거라고 했다는데 지금도 서울에서 청계천이 흐르고 있으니

공사는 대성공이다.

 

그리고 아직도 신기하고 놀라운 조선시대의 첫 세계지도가 있다.

현대에 비하면 기동력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그 시대에 대체

전국지도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 시대에 나라 밖으로 나가서 여행하며 기록을 했다는 것도.

단순히 지리를 알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지도를 통해 나라를 지키는 군사용

지도까지 만들었으니 옛날이라고 절대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아니 더 대단하다. 시대의 한계를 극복했으니.

 

마지막으로 박수치며 즐겁게 봤던 부분이 있는데 세상에!

조선시대에도 외국어 교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와하하하.

<노걸대 老乞大> 상대를 높여 부르는 노(우리말로 치면 ‘씨’ 영어로는 미스터),

걸대는 몽골 사람이 중국 사람을 가리키는 말. 한마디로 미스터 중국인정도 된단다.

상, 하 두 권인 노걸대 책속에는 요즘 배우는 외국어 교재처럼 예문이 실려 있다.

노걸대는 여행하면서 쓰는 중국어인 반면 비슷한 박통사(박씨 성을 가진

통역사)라는 책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

또 일본어책도 있으니 조선시대가 외국과의 교류를 중요시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으며 빼앗겼던 우리의 소중한 자료들이 반환된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반가운 일이지만 반환이 아닌 인도 혹은

대여를 해준다며 반환을 거부하는 프랑스 등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입장을 바꿔 자신들의 문화재를 누군가 강제로 가져가 돌려주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반환을 위해 애쓸 것이 아닌가.

속히 우리의 소중한 보물들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를 위해선 우리가 더욱 우리의 것을 잘 알고 아껴야한다.

나부터 우리의 문화재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아보고 공부해야겠다.

 

얇은 책 한 권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느꼈는지 모른다.

그리고 꼭 직접 눈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올 겨울엔 아이들과 규장각으로 나들이를 가볼까.

빛나는 조선시대의 기록문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뜻 깊은 계절이 되겠지.



k*********5 2010.11.25.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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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 책과함께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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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조선시대의 왕실도서관이면서 정조시대엔 그 문화를 꽃피운 학문 연구기관이기도 했다죠. 정조대왕의 치적 중 하나가 규장각을 통해 문치를 하려했다는 점에서 규장각은 우리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과 더불어 규장각은 예전처럼 그저 왕실의 자료를 보관하는 기능만 하다가 고종에 이르러서 규장각을 되살리려했지만 일본에 나라를 빼앗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 책과함께어린이" 내용보기

규장각...조선시대의 왕실도서관이면서

정조시대엔 그 문화를 꽃피운 학문 연구기관이기도 했다죠.

정조대왕의 치적 중 하나가 규장각을 통해

문치를 하려했다는 점에서 규장각은 우리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과 더불어 규장각은

예전처럼 그저 왕실의 자료를 보관하는 기능만 하다가

고종에 이르러서 규장각을 되살리려했지만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그 뜻을 이루지못했다합니다.

일본이 규장각을 아예 없애버리고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책을 지금 서울 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겼다합니다.

아..그래서 서울 대학교에 규장각이 있었던 거로군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책을 통해 또 깨닫게 되네요.

이런게 바로 책의 힘이 아닌가 싶군요..ㅎ

조선은 찬란한 기록문화를 남긴 나라입니다.

500년에 걸쳐 내려온 사직동안 쭉 이어져온 실록만 봐도 그렇죠.

뿐 아니라 왕실의 중요한 일들은 꼭 그 기록을 남겨두곤 했답니다.

외규장각에 보관하다 프랑스로 반출된지 145년만에 우리 나라로 되돌아온

조선왕조의궤가 바로 그 대표적인 기록문화지요.

우리 나라에 영구반환된게 아니라 임대형식으로 되돌아온거라니

반쪽의 기쁨이긴 하지만 우리 품안에 돌아온 의궤들을 보며

우리 조상들의 꼼꼼한 기록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답니다.

규장각에는 의궤 뿐 아니라 왕이 쓴 글씨와 기록화,

우리 땅을 생생하게 담은 지도와 지리지 등 다양한

조선시대의 기록문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책읽기가 아직은 역량부족인 초등생 우리 아이가 읽기엔

조금 지루한 면은 있습니다만

아이와 페이지를 번갈아 읽거나 그마저도 지겹다면

각 페이지마다 수록된 사진으로만 책장을 넘겨가도

우리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는 거같습니다.

이런 훌륭한 기록문화를 남긴 조상의 후예답게

우리도 일상의 작은 기록부터 부지런히 적어보는게 어떻겠냐고

책장을 덮으며 아이에게 슬쩍 일기쓰기를 종용했더니

입이 댓발로 나옵니다.

너무 훌륭한 조상을 둬서 피곤해진다고요..ㅋㅋㅋㅋ

w*******1 2011.09.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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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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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신병주 저 / 이혜숙 글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한국사편지, 엄마의 역사편지등 아이들이 넘 좋아하는 역사책을 만든 책과함께어린이 출판사.. 이곳에서 새로운 형식의 책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최근에 역린 영화를 보고 나서 정조임금에 대한 걸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왕실 도서관 규장각은 바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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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신병주 저 / 이혜숙 글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한국사편지, 엄마의 역사편지등 아이들이 넘 좋아하는 역사책을 만든 책과함께어린이 출판사..

이곳에서 새로운 형식의 책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최근에 역린 영화를 보고 나서 정조임금에 대한 걸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왕실 도서관 규장각은 바로 정조임금이 지은 거랍니다.

 

책을 읽으면서 규장각에 대한 비밀이 해결되면서

정조는 왜 규장각을 만들었을까?

지금 규장각은 왜 거기에 있는걸까?

하는 의문점을 풀어 주었답니다.

 

 

 

 

 

우선 이 책은 4개의 큰 목차로 나뉜답니다.

1부 왕이 쓴 글씨와 기록화

2부 왕실 기록의 꽃, 의궤

3부 우리 땅을 생생하게 담은 지도와 지리지

4부 전통과 세계의 만남

 

 

1부 왕이 쓴 글씨와 기록화에서 영조가 쓴 글씨에서 힘을 느끼고 사도세자가 여덟살때 쓴 글의 일부는

어찌 그나이에 이런 글을 쓸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얼굴과 똑같이 그린 초상화부터 청계천이 만들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2부 의궤에서는 왕실의 모든 행사가 그림으로 다 나왔답니다.

영조의 결혼식부터 정조의 수원화성 행군 그림...정말 유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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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지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를 소개해 줍니다.

우리 땅의 박물관 대동여지도...이곳에 지리의 모든것을 담았답니다.

 

4부에서는 세상은 넓고 배울건 많다...일기로 남긴 왕실의 기록부터 다양한 조선시대의 기록문화를 보여줍니다.

 

순식간에 책을 읽고 나서 규장각은 정조가 지은 조선 시대 기록의 보물창고라는 말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 이해가 됩니다.

 

규장각 아이들과 몇번 다녀왔는데요 이 책 다시한번 읽고 이번방학때 또 한번 가봐야 겠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y*****0 2014.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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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록의 가치를 알려주는 규장각 체험
"우리 기록의 가치를 알려주는 규장각 체험" 내용보기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이야기책도 아닌 책을 이처럼 재미나게 읽어 본 것도 매우 드문 일일것이라 생각됩니다.    규장각에 대해서 조선시대 도서관이라는 사실만을 알뿐 전혀 무지했었는데 정조대왕이 창덕궁내에 세워 손님이 와도 일어서지 말고 공부에 열중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처음부분부터 고개를 끄덕이며 아하~ 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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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이야기책도 아닌 책을 이처럼 재미나게 읽어 본 것도 매우 드문 일일것이라 생각됩니다. 

 

규장각에 대해서 조선시대 도서관이라는 사실만을 알뿐 전혀 무지했었는데

정조대왕이 창덕궁내에 세워 손님이 와도 일어서지 말고 공부에 열중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처음부분부터 고개를 끄덕이며 아하~ 하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의궤 반환등으로 매스컴에도 나오고 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까지 하던 일을 떠올리며 그 유래에 대해서도 다시금 알게되는 게기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외규장각이 강화도에 있던  외 규장각이라는 것까지 그랬구나~’ 할 정도였으니 우리 역사와 문화에 무지해도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규장각에 보관된 자료를 구분하여 목차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왕의 글과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다합니다.

8세의 사도세자의 글씨는 어린 나이임에도 반듯하게 힘찬 획을 보이고 있었고 흥선대원군의 글씨는 추사체로 매우 달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과 청계천 공사 관련의 기록화 등 여러 기록화들이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다합니다.

 

그 다음에 기록의 꽃이라 불리우며 최근 반환되어져 더욱 유명세를 탄 의궤 관련 부분이 나옵니다. 영조대왕의 결혼식 광경이라든지 정조대왕의 화성행차 등 왕실의 행사가 모두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정말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한 귀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 외에도 한반도 주변을 비롯하여 세게 여러나라를 아우르는 지도와 여러나라의 언어학습 기록들이 남아있다합니다.  소장된 자료들의 다양함과 가치에도 놀라지만 그 상세한 기록에도 더욱 감탄하게 됩니다.  학자들의 철두철미한 직업정신이 배어있는 기록에 우리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정신과 가치로 인해 우리 민족의 자부심까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왕종실록에는 영조대왕이 사냥터에서 살짝 부상을 당했으나 큰 부상이 아니므로 이 것은 기록하지 말라라고 일렀는데 심지어는 기록하지 말라라고 이른 것까지 기록하였다하니 얼마나 철저한 기록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녹음기, 카메라가 없는 시절에도 이렇게 쓰고 그려서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여 보관하고자 했던 노력이 현세에도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어느 날 청탁성 봉투를 건넨 사실은 기억이 안난다라든지 모르는 일이다라든지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s*******1 2011.09.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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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서평)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내용보기
얼마전 학습만화 <뉴질랜드에서 보물찾기>를 읽으면서 우리나라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대해 신문을 보며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스크랩해봤습니다. 조선시대 정조는 나라 문화를 위해 여러모로 공을 들이신 임금이신데 규장각뿐아니라 외규장각을 설치하여 여러모로 문화부흥에 힘쓴 임금임이 틀림없는 일이지요. 당시 신문을 읽으며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마치 돌여주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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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

 

얼마전 학습만화 <뉴질랜드에서 보물찾기>를 읽으면서 우리나라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대해 신문을 보며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스크랩해봤습니다.

조선시대 정조는 나라 문화를 위해 여러모로 공을 들이신 임금이신데 규장각뿐아니라 외규장각을 설치하여

여러모로 문화부흥에 힘쓴 임금임이 틀림없는 일이지요.

당시 신문을 읽으며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마치 돌여주는 양 생색내면서

실제 5년마다 갱신하는 장기대여 형식의 프랑스 자세가 참으로 어의 없었지만 당시 힘없는 국가의 국력을 생각하면서

우리 문화가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생각을 해야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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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는 도서가 제 눈에 띄여

아이와 가볍게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책을 펼쳐들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역사에대해 논하기 이른 나이이지만 엄마인 저또한 모르는 게 많은지라 저부터 알고자하는 목적이 더 강했지요.^^

 

 

 

 

조선은 기록하는 역사였다하는데 우리 선조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였다할 수 있겠네요.

실록이라는 방대한 기록을 남겼기에 당시 사회상을 수백년이 지난 21c에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기록으로 남긴 흔적덕에 당시 영조의 결혼풍경이라던지 우리나라 옛 지도, 글씨체를

책장 넘겨가며 편하게 볼 수 있었답니다.

폭군으로 일축되고 있는 광해군의 또 다른 모습도 지켜 볼 수 있고

단순 역사서라기보다 과거에 진짜 있었던 일이 기록된 책이기때문에 아이에게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듯 하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항상 아이들은 "진짜있었던 이야기예요?"묻잖아요.

 

조선의 왕실문화도 지켜볼 수 있고 덕분에 읽는 내내 신분상승(?)된듯한 느낌을 갖을 수 있었네요.

요즘 사극이 TV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함께 보면 더욱 재미가 배가 될 듯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y****2 2011.09.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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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도서관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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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에게 규장각이 어떠한 곳이었는지 한눈에 알수있는 책이었습니다 왕실 도서관으로 든든한 자태를 뽐내며 멋지게 서있는 규장각을 보면서 우리 선조 왕들에게 어떤 깊은 뜻이 있었는지를 짐작할수 있을것 같았습니다.역대 왕들의 글과 그림들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일제의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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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에게 규장각이 어떠한 곳이었는지 한눈에 알수있는 책이었습니다 왕실 도서관으로 든든한 자태를 뽐내며 멋지게 서있는 규장각을 보면서 우리 선조 왕들에게 어떤 깊은 뜻이 있었는지를 짐작할수 있을것 같았습니다.역대 왕들의 글과 그림들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일제의 수많은 침략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데요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였던것 같아요 잊을만 하면 일제침략 이야기와 정말 소중한 우리의 보물들을 갈취당한 느낌을 또 다시 아픈 곳으 건드리듯이 그렇게 바라보게 되네요 왕이 쓴 글씨들을 하나씩 바라보기만 해도 그 왕의 성품이나 기품 그리고 파워에 가까운 힘까지도 간음할 정도로 느낌이 오는것 같습니다 왕이 떠난 이후에 왕의 기록을 적어둔 기록화들도 그렇고 숙종이 썼다는 편지글도 상당히 새롭기만 합니다. 규장각에 이런 나라의 보물들이 준비되어 있고 또 이렇게 우리가 책으로나마 만나볼수 있다는것이 너무 신기합니다.인현왕후의 한글편지는 켬퓨터로 쓴것처럼 아니 자로 재면서 쓴것처럼 똑같은 크기로 흔들림 하나 없이 잘 적어 두었기에 눈길을 확 사로잡고 있습니다.왕후의 성격과 인품이 그대로 묻어난 편지같았습니다.

조선시대 초상화들을 보면서도 살아있는 인물들처럼 섬세하게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진 모습에 놀랐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카메라가 없었기에 사진을 찍어 자료를 남긴다는것이 불가능하던때로서 이렇게 있었던 일들이나 인물에 대한 초상화를 가장 근접하게 그리려고노력을 했던가 봅니다 초상화만 보고서도 어느정도 그 사람을 알아볼수 있도록 아주 잘 그려놓은것 같습니다.서울의 중심에 있는 청계천 공사장면을 그려놓은 그림에서도 그 옛날 이런 훌륭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분명 시대의 인물이었음을 증명하는듯 합니다.세세하게 그려진 장면들을 보면서 당시 상황을 재연한것처럼 우리가 보고 느낄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왕실의 행사들이 그림으로 보여지고 있어서 바로 바로 이해가 쉬워진다는것이 참 대단하다고 봅니다 특히나 명성황후의 장례식 행렬을 이렇게 그림으로 만나보니 다시 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하지만  우리나라 의궤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을 읽고서 정말 마음이 아픈데요 하루빨리 돌려받을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이렇게 잘 그려놓은 그림도 보게되고 중국까지도 그리고 만리장성까지도 그리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림으로 사진 못지 않은 작품들을 얼마든지 가능케 한다니 정말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젠 우리가 이런 소중한 보물을 잘 지켜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선시대 규장각과 그 안의 보물들을 잘 지켜서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것이라 여깁니다.

 

s****2 2011.06.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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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삶을 엿볼수 있게 하는 규장각의 보물같은 책들
"조선시대의 삶을 엿볼수 있게 하는 규장각의 보물같은 책들" 내용보기
우리는 선조들이 기록한 글과 그림을 통해서만 그 당시의 생활상등을 알수 있다. 만약 기록의 중요성을 몰랐다면, 우리는 상상으로만 조선시대를 유추할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선 시대의 왕들은 왕실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게 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1층엔 역대 왕들이 직접 지은 글이나 글씨들을 보관하고, 2층엔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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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조들이 기록한 글과 그림을 통해서만 그 당시의 생활상등을 알수 있다. 만약 기록의 중요성을 몰랐다면, 우리는 상상으로만 조선시대를 유추할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선 시대의 왕들은 왕실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게 했는데 그 중에서도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1층엔 역대 왕들이 직접 지은 글이나 글씨들을 보관하고, 2층엔 학자들을 공부하도록 배려했다. 24년동안 학자들과 함께 151종류, 3960권의 책을 펴냈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지금은 규장각에 보관된 책들이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되어 있어 연구에 활용되기도 한다.

 

규장각에 있는 수많은 책은 우리의 흥미를 유발시키는데 왕과 주요 관리들의 초상화가 그중 하나이다. 지금은 사진이 초상화를 대신하지만 그 당시엔 직접 그림으로 그려야 했다. 또 초상화는 그 사람의 특징이나 성격을 정확하게 알고 그리려 했기에 미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척기의 빨간 딸기코 도, 진한 쌍커풀과 거무스름한 얼굴빛 때문에 매서워 보이는 이천보의 얼굴도, 마마를 앓은 자국으로 이마에 흉터가 난 오재소의 얼굴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정조때까지 일한 높은 관리들의 초상화는 '선현영정첩'에서, 영조부터 순조까지는 '진신화상첩'에서 볼수있다.

 


 

 

왕들의 성품을 엿볼수 있는 글씨(어필)를 모은 책도 있고, 피부병을 앓던 왕들이 치료를 위해 떠난 온천 여행을 담은 책도 있다. 온양행궁을 세세하게 그린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왕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릴수 있다. 그 외에도 홍수 위험이 있는 청계천을 공사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왜구의 침입으로 일어난 임진왜란의 아픔을 느낄수 있는 지도 도 있다. 왜구의 선진 무기와 엄청난 병사에 맞선 조선의 장군과 시민들의 방어를 그린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일어난 전쟁의 참상을 엿볼수 있다.

 

나라의 잔치와 왕의 결혼식도 그림을 통해 알수있는데, 왕세자와 친한 사람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그 모습을 그린 '서연관사연도'가 대표적이다. 왕세자의 입학식, 높은 벼슬을 한 사람 가운데 일흔 살이 넘은 노인들을 위해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잔치인 기로연을 통해 그 당시 벌어진 잔치는 어떠했는가도 알수 있다.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궤'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엔 왕실 행사가 무척 많아서 의궤도 많이 발행됐다. 행사를 그림과 글로 꼼꼼하게 기록한 의궤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독특한 것이기에 유네스코에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궤가 프랑스군이 가져갔고, 이런 문화재들을 돌려받기위해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완전히 돌려받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것 같다. 무력으로 가져간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으려는 프랑스가 과연 문화의 나라라고 할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1420년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 지도'는 원본이 없고 필사본 지도가 몇부 있는데 그 가운데 남은 지도를 일본이 가지고 있다. 현재 규장각에 있는 지도는 이찬 교수가 무려 15년만에 힘들게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문화재임에도 다른 나라의 소유로 있는다는게 참으로 가슴아프다.

 

지도 하면 김정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대동여지도'말고도 다양한 지도들이 그 당시에 많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목판본 지도인 '팔도총도', 조선시대 군사지도인 '요계관방지도' 등이 있었다. 중국,일본 언어를 배울수 있는 책자인 '노걸대' '박통사언해' '첩해신어'를 통해 이웃 나라와의 관계의 흐름을 알수있고,  세계여행을 한시로 남긴 김득련의 '환구음초'를 통해 세계문명을 알게 된 조선 사람의 놀라움을 느낄수 있다.

 

자료가 풍부하고 설명도 쉽게 되어있고, 중요한 부분은 확대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재미있는 역사를 공부하기에 좋았다. 기록을 통해 왕과 조선시대 사람들이 더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지금과는 다른 삶, 다른 고민을 하고 살았을테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기에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역사공부를 할수있게 하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준다.

s******5 2010.11.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