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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 두 권의 책을 통해 알아가는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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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책을 읽다보면 <명상록> 과 <도덕경>에 나오는 내용이 자주 인용되고는 한다. 전부터 한 번쯤 본 책을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다가 이 번에 두 권의 책 내용을 현대적인 해석을 곁들여, 새롭게 집필한 책을 만나 명상록과 도덕경의 내용을 깨우치게 되어 도움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다.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집필한 <명상록>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개개인의 마음상태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처세술을 비롯해서 세상의 이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서양에서 '성경' 외에 외국어로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이라는 사실은 이 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도덕경에 대해 이렇게라도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반가운 마음이었다.
두 책 모두에 대한 가장 큰 가르침은 결국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혜에 대한 끈임 없는 물음과 답을 주는 내용이다. 갈수록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들을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왼손에 명상록'에 해당하는 부분 중에 특히 마음에 와 닿은 한가지는 '본성 속에서 답을 찾다' 중에 나오는 회계사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대로 체계적인 장부정리를 하고 있는지를 묻는 아들에게 '출발지 에서부터 일정한 속도로 오랫동안 걸어와서 당연히 도착해야 할 위치에 도달했는데, 만족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 라고 답하는 내용이다. 이미 수확에 만족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더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답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에 대한 지혜가 담겨있는데, 지금의 현대인의 입장에서 무엇이든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최대한의 이윤을 남겨야 한다는 사고에서는 받아들이기는 힘든 내용이지만,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교훈이 담고있다.
'오른손에 도덕경' 중에서 '어려움은 본디 큰 은인이라.' 는 부분의 '나폴레옹'이야기나 명나라 재상 '장거정'에 관한 이야기도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한다. 갈수록 만족을 모르고 쉽게 포기하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실패를 해 본 사람만이 더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내는 힘이 생기듯이 어려움을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지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 위에서, 당신은 때로는 객관적인 환경으로부터, 때로는 타인으로부터, 때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어려움과 마주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당신의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다. 어려움의 뒤에는 종종 놀라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 본문 중에서 -
상.하편으로 나누어 <명상록> 과 <도덕경>에 나오는 심오하면서 지혜를 담아낸 많은 구절들은 고전이 주는 깊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자기계발서나 처세, 행복 등과 관련된 책들이 나오고 있고, 여러가지 책을 읽어보았지만, 결론은 그런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기본서를 만난 마음이었고, 오래도록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급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 뒤돌아보고 쉬어가면서 살아가라는 교훈과 타인이 아닌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삶에 대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를 조언하고 있다. 두고 두고 가슴에 새길 지혜가 가득한 책이었고, 누구에게든 삶이 힘들 때, 지혜를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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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은 로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책이고, 『도덕경』은 고대 중국사상가인 노자의 책이라는 것은 대다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명서 중의 명서들을 면밀하게 살펴볼 기회가 흔치않아 냉큼 주워들었다. 이 기회에 동서양의 사상을 한번에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명상록』은 금욕과 극기를 중시하는 스토아 철학의 사상이라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 사상과 아주 흡사했다.
이 둘의 사상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본성’이란 ‘자연법’과 일맥상통하는데, 우주에 존재하는 지배적인 잣대로써 사람의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보편법을 말한다. 이 ‘자연법’은 현대 철학의 ‘자연 규율’과 유사하며 고대 중국 철학의 ‘도’와도 같다. 그러니 로마와 중국의 두 사상가의 중심 사상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벗어나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번뇌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인간이나 번뇌를 겪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대로 우리의 본성을 가만히 놔두면 그리 슬퍼할 일도, 분노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우주에 존재하는 보편법, 자연법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순 없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의 생각이 진실이라고 치고 가정해도, 인간이 제 본성대로 행동하는 순간 모든 어려움은 끝이고, 행복 시작일 수 있을까 싶다.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모든 범법 행위들이 실은 제 ‘본성’대로 저지른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어느 누구도 그 말에 반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이,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반성하고, 진정한 수확을 똑바로 보는 방법으로 번뇌에 빠지지 않도록 즉, 본성대로 행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스스로 그런 모든 방법대로 행했다고 하며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이중인격자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섭리’처럼 우주에는 인간이 거스를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어떤 보편 법칙이 존재하고, 인간도 그런 우주 속의 한 일부분이기에 인간에게도 밑바닥에 깔려있는 성품이 그런 보편법을 따르고 있을 거라 여겨, ‘본성’이란 단어로 자연법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 말은 상당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기독교도라서 스토아 철학에 딴지를 걸거나 금욕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의 사상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상도 평소 내가 보고 싶었고 흠모했던 책 목록에 들어가있었고,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이 책을 냉큼 골랐던 것이니 이런 위대한 사상가들이 나쁘다고 말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나쁘다니? 그렇게 말할 자격도 내겐 없다.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게 딴지를 걸고 싶게 만드는 것은 ‘본성’이란 단어 때문이다. 매 순간 끊임없이 내 안에 존재하는 욕망과 거짓과 추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 단어가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일 뿐 다른 것은 하등 문제되지 않는다. 과연 다른 사람들은 이 단어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서유럽 근세철학의 전통을 집대성하고, 비판철학을 확립시킨 임마누엘 칸트는 우리가 가장 확고하다고 흔히 생각하는 ‘이성’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하며 그 유명한 『순수이성비판』을 썼는데, 하물며 ‘본성’을 따르며 살라니~. 이것이 과연 말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칸트가 말하는 ‘이성 비판’이란 바로 이것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이 이성을 잣대로 두고 일궈왔던 모든 역사들이 사실은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우매하고 광기에 빠져있던 일밖에는 하지 않았다는 것. 독일 유대인 학살 사건도 그렇고,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전쟁도 그렇고, 기타 등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건들이 실은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되지만, 그 이면에 ‘이성’이란 욕망과 권력의 포로가 되어 있을 뿐이란 것이다. 그나마 머리로 판단하는 ‘이성’이란 놈이 그러할진대 감정으로 좌지우지되는 ‘본성’이란 놈을 믿을 수가 있을 것인가. 우주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규칙이고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놈이라지만, 그것이 제가 가진 틀로만 세상을 보는 인간이 비교하지 않는 것만으로, 반성하는 것만으로, 똑바로 수확을 보는 것만으로 분별할 수 있을지는 가히 의심스러운 바이다. 아마 이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겠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는 이런 답변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내용이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중국인 저자가 저술한 특성이 그대로 살아있어 읽기에도 쉽고 재미있으며 유익하다. 특히 서양의 『명상록』을 설명할 때, 노자의 사상, 불가의 사상, 다른 중국 문헌들에서 발췌한 이야기 등 여러 생각할 거리, 읽을 거리들로 풍성하고 즐겁게 해준다.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게 조목조목 열거한 것을 보고 있으면 아우렐리우스나 노자가 하지 못한 어떤 것을 저자가 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싶다. 적재적소가 맞게 여러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도 능력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꼭 서양의 『이솝우화』처럼 간단히 예화 같은 이야기를, 그것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날라다주니, 가만히 앉아 꼭꼭 씹어 먹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저자가 했던 말처럼, 은은하게 영혼으로 느껴지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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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보는 책들마다 너무나 좋은 책들이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서,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아진 것인가?' 하고 자문해 봤지만, 그럴리는 없고, 인문 고전을 볼 때마다 마음을 울려대니,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인문 고전이 아닌 경우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을 보니, 작년에는 운이 매우 좋았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인문 고전을 많이 읽어보지 못하여, 올해의 목표로 인문 고전을 가능한 많이 읽는 것으로 했는데, 마침 괜찮은 책이 있는 것 같아서 집어 들었다.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노자의 "도덕경"을 한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 <명상록>을 남김
노자 도가(道家)의 창시자. 실존 인물은 아님. <도덕경>을 남김.
사족이지만, 노자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이런 책들은 사실 리뷰를 쓰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원작의 내용들이 너무나 뛰어나고, 저자들도 그 내용을 바탕으로 사례를 덧붙인다던지 하는 정도의 가공만 하기 때문에, 평가할 필요 없이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문에도 나와 있다.
아직, 깨달음을 얻을 만한 정도의 독서량과 느낌은 없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진정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러가지 삶의 지혜들이 담겨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3분 고전이라는 책을 읽고도 느꼈던 기분이지만, 주옥같은 문구들은 단순히 읽고 끝내면 안되고, 몸에 체화 될 때까지 또 읽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규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는 나의 삶, 내 삶의 가치, 그 가치를 높힐 수 있는 교과서를 또 만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 상선약수 > 上 윗 상 , 善 착할 선 , 若 같을 약, 水 물 수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 사상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는 이 세상(世上)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 물처럼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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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정말 긴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를 읽게 되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행복하면서 평화롭고 균형 있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기술한 책으로 유명하다. 얼핏 들으면 도덕경이라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행동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서양의 고전인 '명상록'과 동양의 '도덕경'에서 핵심적인 내용들만 골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중국 고전철학과 서양 기업문화 연구를 토대로 두 고전에서 주장하는 처세술과 삶의 해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 하고 있는 '명상록'은 주로 개인의 마음가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도덕경'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처세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상편에서는 '명상록'에서 찾아 낸 인생의 지혜, 하편에서는 '도덕경'의 뽑은 처세의 지혜를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이 지어진 때는 오래전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현재에도 적용된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지혜가 많이 부족했거나 현실의 막막함으로 인한 미래의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제대로 담고 있는 듯 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책에서 전하는 지혜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기본적인 지혜와 적을 만들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처세의 노하우들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평온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자족하라’고 말하며, 깨어 있는 지혜를 지키고 싶다면 ‘의견을 버리라’고 말한다. 노자는 인간관계의 환경을 개선하고 싶다면 ‘조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며,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우리에게 두 현자는 기본에 충실한 삶의 원칙과 함께 사는 세상의 단순한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정말 깊은 깨우침을 받게 되었다. 너무 욕망에 사로잡히다 보면 될 일도 않될 뿐더러 최악의 순간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해야 진정한 삶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삶에 대한 목표가 일정치 않고 삶을 허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배움을 터득했으면 한다. 이 책이 올바른 삶으로 가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나 또한 많을 것을 배우고 깨우친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지혜들을 잘 실천하여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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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 개발서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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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사기]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참으로 좋은 말이 적혀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꼇다. 그 책으로 인해 고전에 관해 읽고 싶어졌고 그러던 중에 명상록과 도덕경 두 가지를 볼 수 잇는 책이 올려져있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지은 인생의 지혜에 관련된 것이고 [도덕경]은 성공적인 인생, 인간관계에서의 처세술에 관해 풀어 놓았다. 인간의 인생살이를 전부다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꼭 짚어서 알면 좋은 것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아서 읽기가 좋았다. 다른 책에서도 인용한 부분도 있었고 내가 살면서 놓쳤던 부분이 나오니 고개가 끄덕여 졋다.
[명상록]에서 맘에 드는 구절은 실현될 희망이 없는 일에서도 스스로 훈련을 게을리 하지말라인데 실현된 희망이 없는 낙담함 속에서 꿈이 있다면 그 꿈을 향해 끓임없이 노력하게 될거라는 뜻과 같았다. 이 부분은 다른 책에서도 늘 다루는 부분이었다. 요즘 같이 힘들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힘든게 무엇이 있겠으며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한다. 다른 부분도 마음에 와닿은 말이 있지만 또 하나 있다면 그건 때로는 약간의 고집도 필요하다라는 부분이겠다.
우리나라는 외모 지상주의라 남을 따라가기 바쁘고 귀가 얇은 사람은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면 상대방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집착하다 남의 생각대로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 거 같다. 상황에 따라 처신을 하되 자기 자신의 일에선 자신만이 결정권이 있고 자신의 느낌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한편 노자가 말한 [도덕경]에선 타인을 고치려 들기보다 자신을 개선하라라는 말과 사랑하는 마음을 상처로 변하게 하지 말라 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후자의 가르침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귀중한 교훈이 아닐까 한다.
앞서 말한 가르침들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특히 와닿은 부분이지만 나머지 가르침들도읽고 있으니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가르침들이 예나 지금, 동양, 서양 구분없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바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해 지나치기 쉬운 문제를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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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란할땐, 세상이 어지러울때 고전을 읽으라는 말은 고전을 통한 흥망성쇠, 높은 이상을 읽고,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며 보다 바른 처신과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가라는 것 같다. 온고이지신이 단지 옛것을 숭상하는 수구가 아니라 현재에 맞게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최근 본 짧은 고전등을 통해 도덕경의 일부는 본 내용도 있고, 명상록은 이 책을 통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스의 깊은 성찰과 무위자연과 같은 생각을 경험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잘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무엇이란 딱부러지게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지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갑지기 책장속의 책들을 바라보니, 처세관련책이라고는 선배한테 받았지만, 읽지 않은 카네기관련 책이 한권이 있기는 하네요. 처세라는 말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라며, 이 책은 나를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청명한 가을 아침,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명정한 마음을 갖고 거닐다가 잔잔한 호수를 보니, 그 속에 많은 물결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기분입니다. 다시 떨어져 잔잔한 호수를 즐기는 기분이랄까요 블로그에 써놓은 사기 상군열전이 聰(자기 마음에 깊에 귀 기울이는 것), 明(마음속으로 성찰하는것), 强(스스로를 이기는 것)이 다시금 생각나네요. 책에서도 말하는 얇팍한 처세보다 수신이라는 높은 목표가 더 더디지만 바른 처세가 아닌가합니다. 책의 내용은 이해와 소양의 부족으로 정리라는게 어렵지만 작은 포스트잇에 이렇게 써 놓고 독서의 소감을 정리할까 합니다. 여러번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어려울 땐 자성과 성찰을 위해서, 좋을땐 겸손과 옳바른 삶을 위해서 또 소양이 되면 원전을 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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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는 고전 2권을 풀이한 책이다. 반은 명상록에 관한 이야기이고 반은 도덕경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덕경을 읽을때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렇구나~하면서 읽었는데, 시작하는 반인 명상록을 읽으며 꽤 충격적이었다. 왜 나는 저렇게 살지 못했을까? 왜 나는 저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처음에는 읽기에 어려운 책이 아닌가 하여 손에 들기 어려웠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이 책이 끝날까 아쉬운 그런 책이었다. 명상록 까지만... 도덕경에 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지만, 명상록은 정말 대단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로마 시대에 쓰여진 책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 작고 소소한 진리는 바뀌어도 세상을 움직이는 큰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이 책의 내용 중 '한 사람에게 배앗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즉 사람이 오직 현재만을 소유한면, 소유하지 않은 것은 잃을 수도 없다.' 라는 내용이 있다. 한 사람이 순수하게 온전히 내것이라고 소유한 물건들. 나는 많은 것들이 내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옷, 내 돈, 내 신발. 하지만 그런 물질적인 것은 진정한 소유가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것이고 원해도 내것인 유일한 것은 현재이다. 그런 소중한 현재를 왜 이렇게 허송세월하면서 보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비록 이 책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는 명상록과 도덕경을 작가의 입장에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책이지만 진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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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 왼손에는 명상록, 하면, 오른손에는 도덕경.
두 분류로 나뉘어진, 고전 아닌 고전. 간단히 목차를 먼저 살피면서도 왼 편에 든 명상록을 통해 나를 돌이켜보고, 나의 행동과 사고 패턴에 대한 뜨끔함을 통한 반성을 하며 뒷통수가 간지러워지는 느낌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도덕경을 읽도록 고안한 것이 아닐까 싶다. 충분히 명상록을 통해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하고 나면, 도덕경을 통해 사회 생활에서의 다양한 인간관계를 다시 배우게 된다.
너무도 당연히 초등학교 혹은 국민학교 도덕시간 때부터 배웠던 바로 그 도덕. 알면서도 식상하므로, 너무들 다 잘 알고 있으니,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지키지 않기에. 법과 도덕의 차이는 강제성이라는 것을 어릴 적 수업 시간에 배웠듯, 도덕을 어겼을 경우는 양심의 가책은 있으나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강제성과 그에 따른 처벌이 없으므로, 오히려 도덕을 지키는 내가 세상에서 우매한 인물이 될 수도 있는 그러한 풍토가 만연하고 당연시 되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그 기본적인 도덕 마저도 등한시 하게 되는 우리 사화, 그리고 그 사회 구성원 중 하나인 내 자신에 대한 뜨끔함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통해 마치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는 느낌이랄까.
현대 사회에서의 일어나는 다양하고 심각성을 띄는 문제점들의 발단도 이러한 도덕적인 의식의 부재 안에서 이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나부터, 다시 한 번 읽고 "도덕적인" 사회 구성원이 되보자, 라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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