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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생. 열다섯 살에 자신의 연극 발표, 열여섯 살에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 그리고 열일곱에 소설 발표. 천재 소녀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은 헬레네 헤게만. 내가 열다섯 살때는 뭘 했지, 하고 생각해 보니 이 소녀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내가 지금 헬레네 헤게만의 또래라면 그녀의 엄청난 천재성에 질투라든지 동경을 가지고 있겠지만, 지금 그녀보다 약 두 배정도 나이를 더 먹은 어른의 입장이다 보니 참 대단하다, 라는 감탄만 나온다. 어른의 넓은 아량? 혹은 난 지금껏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절대 이루지 못할 이런 성과에 대한 질투를 감추기 위한 알량한 자존심? 뭐, 어느 것이라도 좋다. 어쨌거나 그녀가 '대단하다'란 것은 분명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아홀로틀 로드킬은 미프티란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열여섯 살. 어릴때는 알콜중독자인 엄마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살았고, 열세 살 이후에는 베를린에서 이복 오빠 에드몬트와 이복 언니 아니카와 함께 살고 있다. 미프티는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늘 약물과 마약에 쩔어서 지내며 그 영향으로 때로는 환각을 보기도 한다. 미프티의 주변에는 어른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미프티가 마음을 여는 여자 어른 둘이 있다. 한 명은 알리스, 또 한 명은 오펠리어. 미프티는 알리스에게서는 자신이 갖지 못한 다정한 엄마의 모습과 그 사랑을 갈구한다. 오펠리어는 미프티의 영리함과 예술성을 알아봐 주는 인물로 미프티가 마음을 연 대화가 가능한 거의 유일무의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열여섯 소녀의 무절제하고 파괴적인 삶을 따라가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또한 약물을 남용하는 소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성때문인지 때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잘 파악되지 않기도 하고, 우리들이 잘 쓰지 않거나 잘 모르는 용어나 단어들을 들먹이면서 선을 그어 버리는 바람에 미프티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또한 거의 매문장마다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이름과 그들의 노래 제목들은 절대 어른인 너희는 이해하지 못할 세계야, 라고 못박고 있는 듯 하다. 시퍼런 날이 선 언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사회의 규범에 몸을 맞추고 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로서는 미프티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열여섯 살의 미프티에게 있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반항이란 의미와 동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십대의 특권쯤으로 생각되는 반항. 하지만 반항이란 것으로 일축하기엔 그 정도가 심각하다. 물론 그 나이 또래에서는 어른들의 세계가 불합리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미프티처럼 똑똑한 데다 예술성이 있는 아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미프티가 엄마에게 받은 학대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어른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을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열여섯 살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잃지 않은 채 나를 학교에 다니게 하고 짓눌린 감정으로 끌고 가는 이 사회와 그 어떤 관련도 맺지 않고 스스로를 지탱해 나가기를 소망하는 것, 그것뿐이다. (32p) 하지만 미프티의 한계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프티는 언젠가는 자신이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이 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지만 미프티는 그렇게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보면 억지를 부리는 어린 아이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또 한편으로 미프티는 자신의 아버지를 거부하고 있지만, 미프티가 약을 하면서 쓰는 돈, 레이브 파티에 다니는 돈은 결국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란 것이다. 그렇게 질색하는 아버지이면서 스스로 돈을 벌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반항을 위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린다. 이 또한 미프티가 가진 열여섯 살이란 나이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미프티는 기존의 세상을 거부하고 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알리스에게 갈구하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큼은 아니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오펠리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오펠리어가 자신에게 줄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해 떼를 쓰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자꾸만 현실과 동떨어지고, 점점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 뿐임에도 불구하고. 미프티는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프티의 날카로운 말과 과격한 행동때문에 주변 사람을 점점 자신에게서 떨어뜨려 놓고 있기도 하다. 미프티의 앞날에 희망의 빛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끝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한숨이 쉬어졌다. 결코 희망이라 말할 수 없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아홀로틀 로드킬의 본문 중에는 아이렌이란 사람의 블로그, 다양한 책, 개인 이메일 등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고 가져온 글들이 많다고 한다. 몇 쇄를 걸치면서 지금은 인용문의 출처를 밝혀 두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물론 이 세상에 완전하고 새로운 창조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듯 출처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도용한 것에 대해 작가 스스로의 언급이 없다는 것은 나같은 사람에겐 놀라운 일이다. 지금은 단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저작권이 어떻니 저떻니 하는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이는 십대 소녀의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고, 작가의 말대로 실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인용이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책은 무척이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쓰레기 같은 소녀의 넋두리로 볼 수도 있고,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자신의 표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틀림없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 읽어본 나로서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섣불리 단정하기엔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한다. 아홀로틀 로드킬은 헬레네 헤게만의 첫 소설이며, 아직 십대인 소녀가 쓴 글이기 때문이며, 이 다음에도 소설을 펴낼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예술이란 것에 도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홀로틀 로드킬은 기존의 문학에 대항하는 일종의 실험으로 보이기도 하고, 기존 사회와 문학에 대한 도발로도 보이기도 한다. 헬레네 헤게만의 작품이 실험이란 것으로 꾸준한 성공을 거두게 될지, 아니면 도발로 끝나게 될지는 시간이 더 흘러 봐야 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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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학교 생활이 어땠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156)
헬레네 헤게만의 [아홀로틀 로드킬]을 읽다. 읽는 내내 떠오르는 인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앨리스. 토끼굴에 떨어져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즐길 건 다 즐겼는데 소설의 주인공 미프티 역시 그랬을까. 얼마나 불쌍한 아이인지. 일생에 단 한 번 겪는다는 사춘기를 살아가는 내내 겪어야 한다면?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나는 차라리 죽고 말지요- 란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프티처럼 처절하고 가련한 사춘기를 보냈던 거냐고 또 물을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야 사춘기 시절의 나는 있으나마나, 존재감이 흐릿하다못해 존재감 제로에 도전해도 성공할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다. 그렇다면 속내는 어땠을까? 미성년임에도 불구하고 섹스와 폭력과 마약에 찌든 생활을 하는 미프티 저리 가라- 가벼이 손짓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게 바로 사.춘.기. 라는 것이다. 미프티는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강간을 당했고 가장 사랑을 많이 주는 존재인 엄마에게 학대를 당한 상처투성이 어린이였다. 그러나 알코홀릭 엄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자유는 미프티를 파랑새들이 활개를 치는 핑크빛 세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극단 너머의 극단까지. 저 끝까지-를 계속 고집하는 미프티는 결국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사랑을 주고받지 않았다 뿐이지 가족이란 허울 아래 관계하는 아빠와 언니, 오빠에게도 버림을 받는다. 아니 그들을 버린다. 여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본 오빠 에드몬트는 미프티에게 말한다.
"You write like a roadkill." "Like what?" "납작하게 깔려 죽은 짐승 말이야." (282)
완벽하게 죽었다. 이미 죽음을 맞았다. 더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납작하게 깔려 죽는 짐승처럼. 그리고 아홀로틀, "아홀로틀은 도룡뇽의 일종이며 변태를 하지 않으므로 일생 올챙이의 상태로 살아간다." (333) 역자 배수아는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미성년의 상태란 필연적으로 상처투성이이며 과격하다. 혁명은 사라져도 미성년은 사라지지 않는다." (333) 열 일곱- 더구나 상처로 얼룩진 미프티에게 간절하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일부러 하지 않겠다. 자신의 열 일곱을 떠올려보면 그 답은 형편없을 정도로 일상적이고 단순한 것이기에.
미프티는 다른 이들이 일생에 단 한번 겪는다(두 번 겪는 이들도 있다)는 사춘기를 살아가는 내내 겪는다.
마약과 동성애 이야기는 윌리엄 버로스의 [정키]와 [퀴어]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했다. 열 일곱이란 나이와 무관하게 약에 취한 장면과 동성애 대목은 자연스럽게 그려졌지만 그 암담함과 숨이 컥컥 막히게 하는 그늘은 윌리엄 버로스에 못 미친다는 생각 또한 해본다.
엄마란 존재에게서 가장 먼저 세상 밖으로 가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미프티가 자신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열 일곱, 여자의 인생 중 꽃봉오리에 비유(참고로 이 비유 참 마음에 들지 않지만) 되는 그 열 일곱에 세상에 줄 건 엉덩이를 높이 치켜세우고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것뿐이라는 미프티의 자그마한 가슴 안에 있는 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책을 덮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 세상의 모든 미프티들에게, 그리고 한때 미프티였던 어린 자신에게 보내는 애도의 눈물이다. 딸이 달려온다. 울고 있는 내게 입을 맞춘다. 위로의 입맞춤이다. 미프티에게도 기꺼이 입을 맞춰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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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서평처럼 <확실히 완전히 개운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Ctrl +C>와 <Ctrl +V> 만으로는 세상만사가 탈 없이 흘러가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이기주의적이고 무신경한> 열일곱의 작가는 본문에서 이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혹은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기서 가차없이 빼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줄거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왜 이다지도 극찬을 받고, 미프티는 (맙소사!) 세상의 모든 원죄를 혼자서 짊어진 얼간이가 되었는가에 대한 감흥은, 책 겉표지의 새빨간(혹은 핏빛의) ㅡ <핑크색>이나 <분홍색>으로 묘사하는 것은 죄를 짓는 기분이다 ㅡ 아홀로틀로 대신하자. 나는 죽었다 깨도 미프티처럼은 될 수 없다. 심하게 탈골된 언어를 구사하며 마치 카타콤catacomb에 갇힌 로마 병사처럼 기는 그녀의 삶은, 당최 이해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프티는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限りなく透明に近いブルㅡ』의 미군기지 근처에 사는 소녀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ㅡ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처럼 읽었다면 과장일까?(그렇다, 고 나는 생각한다) 미프티의 트라우마가 진짜이든 그렇지 않든 그녀를 설명하는 모든 단어 앞에는 수식어로서 <탈脫>이나 <반反>을 붙이는 것도 좋겠다. 『아홀로틀 로드킬』은 성장 소설보다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들>의 성장을 저해하는 불온서적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이렇게 일관되게 악마적일 수는 없다!) ㅡ 이것은 다양한 의미로 그렇다는 얘기다.
ㅡ ㅡ 본문 p.43
그래. 우리(나)는 <너(미프티 혹은 헤게만)의 염병할> 시야에 단 한 발짝도 들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좀처럼 진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는 인간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다(조르주 바타이유의 『문학과 악』)는 말처럼. 알 수 없는 어긋남, 통찰력을 잃고 더쳐가는 상처들. 이것들은 작위성이나 상투성, 비개연성이란 말로는 쉬이 해결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봉합>이 안 된다는 거다. 헤게만의 연출력은 평면적이지만, 붕괴, 그 직전이다. 그래서 미프티에게 유토피아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우주적으로 변할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보편의 문턱을 넘어 버린, 착한 어린이는 될 수 없는, 반추상의 구어체로 이야기하는 미프티만 남는다 ㅡ 나는 분명 『아홀로틀 로드킬』이란 <책>을 읽었음에도, 에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게다가 미프티는 좀먹은 행려병자 꼴을 하고 <자동 응답기의 부재중 전화 표시를 보고서, 언젠가 죽으면 자신의 일부도 이렇게 남아 있게 되리라(p.300)>는 것을 알고 있다(물론 우리도 안다). 상당히 불쾌하고 조금은 위악적이며, 동시에 순수하고 쉽사리 로드킬 같은 건 당하지 않을 미프티 ㅡ 시속 120km로 달리는 차에 스스로 뛰어들었으면 뛰어들었지. 헤게만의 실험은 텍스트를 그러모으는 것에 더해 그녀 자신을 해부하는 실험을 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덮는 순간 내 귀에 이명이 일며 어디선가 블러드하운드 갱bloodhound gang의 「Foxtrot Uniform Charlie Kilo」가 들려오는 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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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논란이 참 많은 책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