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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치려했다. 리뷰로 정리하기에 답답하고, 무섭고, 괴로운 내용이었다. 결국 모호한 해피엔딩이지만, 조경란이 풀어놓는 죽음은 너무나 아프고, 숨이 막혔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글을 쓰게 된 순간부터, 이 소설을 쓰게 되기를 기다려왔다. 나로서는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이라 말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의미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실마리는 자전소설 2에 실린 그녀의 단편 '코끼리를 찾아서'에서 발견했다. '복어'가 그녀의 자전적 소설임을, 가슴 아픈 가족사를 담고 있음을 말이다.
자살은 유전되며, 선택받은 자의 몫이다?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설치미술가 정도로 파악된다. 그는 건축가이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살'을 택한 가족이 있다는 것. 그녀. 참 복잡하다. 그녀의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이 보는 앞에서 복어국을 마시고 자살했다. 그 충격에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악몽 속에 살다가, 끝내 목을 메 자살한다. 그녀를 둘러싼 친척들도 병으로, 교통사고로 줄줄이 사망한다. 그녀 역시 줄곧 저주받은 가족사, 그 질긴 유전자를 품었던지, 시시때때로 자살을 꿈꾼다. 가장 의미있는 자살을 고민하며, 도쿄로 향한다.
한편, 그는 명망 있는 건축가다. 유복한 집안에서 구김없이 자랐지만, 어느날 그의 형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마지막 통화에서 불길함을 인지한 그가 집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그의 형은 바닥에 온몸이 해체된 채로, 핏빛 덩어리로 죽어있었다. 그 충격으로 그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우연히 일본 도쿄에서 형의 마지막 얼굴(자살하려는 자의 모습)을 한 그녀를 발견한다. 그리곤 그녀에게 빠져든다. 형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되살아나 어떻게든 그녀를 구하고자 한다.
복어, 죽음의 오브제를 탐하다 일본으로 건너온 그녀. 그녀에게 '복어'는 할머니가 택한 자살의 오브제였다. '오브제가 신기했던 건, 그 앞에서 뭔가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시장을 헤매다가 복어요리집을 발견하고, 주인인 아베상을 매일 같이 찾아간다. 자살보조용으로 '복어'를 택한 것이다. '가장 까다로운 생선도, 마지막에 맛있는 생선도, 만질 때마다 항상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생선도, 난자에 가장 많은 독이 들어있는 생선도 모두 복어였다' 결국 아베상에게 복어손질법을 배우게 된 그녀. 무심히 해체된 복어를 내려다본다.
아베상이 가게를 비운 사이, 그녀는 복어를 한마리 잡아 해체하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곤 천천히 그것을 먹고 잠이 든다. 유품정리인(비중이 약하지만, 그녀는 또다른 남자인 유품정리인을 통해 자신의 자살 후 정리를 부탁한다.)을 통해 그녀의 집을 알게 된 그는, 쓰러져 있는 그녀를 구해낸다. 결국 두 사람은 오랜 후에 재회한다. 죽음에 대한 치유도, 극복도 아닌 삶이지만,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존재로서 조우한다.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라 이 소설을 읽으며, 그가 걸었던, 그녀가 바라봤던 공간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광화문 거리, 내가 3년을 줄곧 출퇴근하던 성북동길, 그녀만큼이나 가슴아팠던, 누군가에 의해 전소된 여수의 향일암. 비록 소설의 주무대가 일본이었지만, 이또한 자살을, 죽음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 혹은 그녀의 마음이 향한 길(공간)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소설보다는 그녀의 자전소설인 '코끼리를 찾아서'를 통해 훨씬 큰 충격을 받았다. 1996년 문단 데뷔 이래, 그녀가 왜 꼭 한번은 써야 한다고, 주술적인 다짐을 했는지 이제야 짐작이 된다. 누구보다 가슴 아픈 가족사를 간직한 그녀다. '코끼리를 찾아서'에서 등장하는 그녀. 눈에 띄지 않고, 쉽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녀지만, 지금은 여전히 옥탑방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 이 작품 '복어'에 대한 평가나 감상이 어떻든 간에, 난 이 작품이 그녀의 글쓰기에 있어 하나의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오랜도록 가슴 깊이 쌓아놓은 핏빛 한숨을 이제야 토해낸 것이다.
복국으로 함께 해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이래로 근 10년만에 만난 조경란 작가. 그녀를 응원하며,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또한 연이은 죽음을 목도하며,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었다. 가끔씩 과음으로 고생할 때, 자연스럽게 복국을 해장삼아 먹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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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 아니, 죽음을 실천하고 싶은 여자라고 해야 겠다. 그 여자의 죽음을 막고 싶은 남자도 있다. 독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복어>는 죽으려는 여자와 그녀를 살리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들려준다. 조각가인 여자와 건축가인 남자는 자살로 죽은 가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과 자식 앞에서 복어국을 마시고 자살한 여자의 할머니,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투신한 남자의 형. 여자에겐 죽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악몽을 꾸는 아버지가 있었고, 남자에겐 아들의 죽음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가 있었다. 죽음이라는 그늘에 속한 삶이었다.
조각가인 여자는 자살 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혼자서 깔끔하고 단정하게 삶을 마무리 하고 싶어서다. 여러 방법을 생각한 끝에 복어를 선택한다. 모임에서 여자를 본 남자는 그녀의 눈에서 죽음을 본다. 형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여자에게로 향했던 것일까. 남자는 여자와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어떤 계기라도 있나요? 그냥 끌린 거예요. 복어한테. 자연스럽게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분명한 목적도 없이요. 오른손이 왼손을 이끄는 것처럼요. 그럼 복어는 오브제 같은 것이로군요. ……오브제요? 그렇죠. 자연스럽게 끌리면서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요. p.170~171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죽음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 변명하고 싶다. 조경란 특유의 감정을 배제한 건조함과 섬세함으로 심리를 묘사하고 있으나 죽기 위해 살고 있는 여자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직업으로 인해 등장하는 공간과 예술에 대한 부분도 형상화 시키기 어려워 힘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지 찾을 수 없었다. 타고난 기질, 운명이었을까. 우울했고 침울했다.
간질을 앓는 여자의 친구 사임, 사후 정리를 도와주는 유품 정리인, 주변인물마저 모두 쓸쓸하고 어두운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와 달리 생에 대해 강한 애착을 지녔다. 예고없이 닥치는 발작으로 언제나 죽음을 대비하는 삶, 끔찍한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여자에게 그들은 죽음의 실체가 얼마나 두려운지 보여준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자에게 그들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이가 있을까.
너는 내가 복어로 뭘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 가까이 갔어. 그리고 그것을 만져보지 않고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어. 그 이전에는 결코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 왜냐하면 나를 압박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 밤에. 복어의 뼈가 말했어. 온몸으로 밀고 가야만 하는 삶이 있다고. 복어의 눈이 말했어. 소중한 것이 사라지기 전에 똑바로 봐야 할 게 있다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어. 내가 눈을 떴을 때 본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기다리는거야. p. 331
소설은 죽음을 말하는 동시에 삶을 이야기한다. 아니다, 복어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죽기 위해 매일 복어를 보러 간 여자는 복어를 마주할 때마다 지독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산다는 건 고역이다. 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조경란은 생에 대해 회의를 느낀 여자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해 말한다. 절망의 연속일 때,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 언제나 누군가 있다고 알려준다. 또한 사는 동안 죽음은 그림자처럼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해야 한다. 존재, 그 자체가 생의 이유이며 목적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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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닿으면, 작가의 근래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국자이야기]이후 새 책이 출간될 때마다 관심은 있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 운좋게 만난 이 책을 통해, 그간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책 몇 권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않겠다. 그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만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집안의 이야기. 아버지와 딸, 그리고 고모. 그들이 겪은 아픔들. 누군가의 죽음. 자연사도 있을 수 있고, 병고, 그리고 자살... 그 자살의 흔적들...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상이 깃든게 아님에도, 쉽게 수긍하기 힘든,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다르다는 차이점이랄까.
예술가들이 가끔 보여주고 있는 자살장면, 그런 게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고. 웬지 그런 느낌이 평범한 유전자가 아닌 그들 특유의 무엇이란 느낌도 들면서...
암튼, 죽음과 관련된 아픔을 지닌, 그녀와 그가 조우하게 된다. 건축가인 그는 형의 자살을 통해, 내면 깊이 상처를 떠안게 되었고, 몇번의 만남에서 그녀의 얼굴에서 죽은 형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녀와 그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마지막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예술과 건축이라는 내 문외한의 이야길 만날 수 있어서 신선하기도 했고, 그런 묘사들이 작가를 다시 보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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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죽음 우리를 사로잡는 것과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표제글을 읽었다
이야기 내내 죽음이 묘사된다 죽음에 익숙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두 남녀 할머니는 젊은 시절 어린 아버지 앞에서 독어국물을 마시고 죽음을 맞았고 그것을 목격한 아버지는 내내 악몽에 시달리는 괴로움 끝에 목을 메고 고모들과 삼촌들도 스스로는 아니어도 사고나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한 그녀도 죽음을 준비한다
별 어려움 없어 보이던 가족 그러나 집안에 가족력에 우울증이 내포되어 있는 그남자의 집 결국 형은 5층높이의 건물에서 뛰어 내려 자살을 하고 자신이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
우연히 그녀를 보게 된 그 그녀에게서 죽음을 감지하고 또 다른 형과 같은 죽음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녀를 구하려고 한다
죽음의 도구로 그녀가 택한 것은 복어 자신의 할머니가 아들앞에서 끓여마시고 피를 토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그 복어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위해 복어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의 손질방법까지 배운다
죽음을 준비하는 그녀이지만 죽음에 대한 절실함만큼 삶에 대한 애착도 분명히 공존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부지런히 걸어다녔던 서울의 골목들과 일본의 골목들이 또다른 삶의 애착으로 느껴지는 것은...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한다 그 반대의 의미가 존재하기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기 보다는 그 뒷면에 있는 삶을 택하고 씁씁하지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은 말이다
조경란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번 읽게 된다 식빵굽는 시간이나 불란서 안경원 그리고 혀 내면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내겐 좀 힘들때도 있다 그러나 말로써 풀어나가는 소설이 아닌 묘사의 소설로서는 그녀의 글이 좋다
토요일 늦은 저녁 죽음과 삶에 대해 생각했던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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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들러붙어 있는 죽음의 기운, 죽음에 관련된 생각들, 죽음으로의 충동. 그 모든 죽음의 것들은 그녀를 에워싼 채 따라다닌다. 아주 집요하게. 그녀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 전반부에 그리도 음울한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죽음을 눈 앞에서 어린 나이에 목격한 아버지라든지 자살이 반복되어온 그녀의 가족력이라든지. 남자주인공인 '그' 역시 사정은 다름없다. 그는 자살하기 전에 걸려온 형의 전화를 받아야 했고 형의 죽음 후에는 우울증에 걸린 아버지와 훼손되어가는 어머니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듯 소설은 음울하고 어두운 소재들을 잔뜩 안고 진행되어 간다. 그러나 놀란 것은 무겁지 않았다는 것. 활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는 일이 버겁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경악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고 혀를 차며 불평한 적도 없이 그와 그녀의 가만히 들으며 무리없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에는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어둠의 장치들 속에서도 거부하지 않고 담담히 소설을 읽어나갈 수 있게 하는 힘. 바로 조경란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복어라는 소재와 60번째 이야기의 소제목 ('모든 이야기는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 이 두 가지가 <복어>라는 소설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먹는 것과 죽는 것이 같은 맛의 복어. 복어 자체에서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동시에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소설 <복어> 또한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라고만 명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소설에서 내가 본 것은 삶의 이야기였으니까. 이것은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마지막의 완성한 작품 '숨'과 '그와의 재회'가 그걸 증명해준다.
사실 개인적인 평으로는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독서를 오래 하지 못한 터라 가독성이 매우 높은 책을 찾고 있었던 사적인 입장때문이기도 했지만 내심 <혀>와 같은 부분을 기대한 것이 컸었다. <혀>와 같은 문체, 내용, 그 속도. 그 이유들이 아니라 해도 페이지가 쉬이 넘어가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흥분하며 정신없이 파고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 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3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알았다.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후에 더욱 음미하게 되는 소설이다. 복어 살점이라도 한웅큼 집어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엔딩은 어찌보면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춤을 추는 것 같이 혹은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게, 머리부터 내밀며 공기를 가르고 걸어가는 그녀. 바로 그 곳에서 찾았다, 전율. 오래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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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하였다. 조경란의 신작은 풀리고 있는 빛이다. 이 소설은 쉽게 층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지하와 지상을 갖고 있는 동시에, 그 모든 방과 층계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마음껏 흔들릴 수 있도록, 그러나 무너지지 않도록, 파괴되지 않도록, 마침내 저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어 바람을 느끼고 빛을 만날 수 있도록 내진 설계되어 있다. 혼자만의 605호에서 수많은 밤, 지진을 견뎌내야 했을 작가의 이야기에 오랫동안 귀를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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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면 구룡포라는 지역이 있다. 근대 초까지만 해도 굉장히 큰 항구였던 구룡포였기 때문에 일제 식민시절에는 일본군의 주요 병참항이 되기도 하고 여러 물자와 자원들이 이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이 굉장히 많이 상주하고 있었고 지금도 온전한 채로 보전된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복어탕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집이 하나 있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가면 꼭 1층에는 사람이 많아 2층으로 솟은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에서 복어탕을 먹곤 했다. 시골 할머니 집과 비슷한 바닥과 문을 보고 아버지께 물어보면 일본식 집, 다다미방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포항이라는 곳이 복어와 연관이 많이 되나 보다. 적어도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구룡포 복어탕도 포항 횟집에서 복어회를 먹고 쓰러진 중견 탤런트도 조경란의 「복어」만큼 죽음에 가깝지는 않다. 사실 조경란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몰랐다. 「복어」라는 책의 제목도 어린 시절 그렇게 맛나게 먹었었던 복어탕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내게는 좋은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오늘 날씨만큼이나 우울하고 싸늘하고 불편했다. “아홉 살의 내 아버지 앞에서 할머니는 당신이 끓인 복엇국을 사발째 들이마실 필요는 없었다.” (p.139)
“왜 그녀에게 가지 않니. 자신이 없어. 뭐가. 둘이 걷기엔 턱없이 좁은 길로 그녀를 이끌게 될까봐. 가서말해. 뭘. 네가, 그녀에게 말해. 뭘. 미래는 언제나 닫혀 있다고. 그건 너무 끔찍한 말이잖아, 형. 죽음 앞에서는. 응. 죽음 앞에서는 말이야. 그래, 알았어. 갈 거지. 그래, 갈 거야.” (p.276)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천일의 약속」의 대본 같다. 마치 김수현 작가가 쓴 것처럼 차갑고 냉정하고 자질구레한 여백이 없다. 솔직히 책은 좀 어려웠다. 하지만 문장이 좋았다. 차갑지만 시원하고 냉정하지만 정확하고 여백이 없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무섭도록 흠치르르한" (p.330) “물에 젖은 파이프에서 나는 쇳내 같은 게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 (p.277) 조경란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글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다. 과도하게 절제해 날 선 칼날 끝에 살짝 손을 베인 듯하다. 시큼하지도 매캐하지도 않는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물에 젖은 파이프 냄새를 책의 곳곳에서 맡을 수 있었다. 물론, 저 두 문장이 쓰인 맥락적 의미는 내 이해의 맥락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이 책은 죽음만 바라보고 죽음으로만 향해 가는 여자와 죽음으로 점철되고 유전된 가정사를 뛰어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남자와의 ‘사랑’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완전히 그 둘에게 감정이 이입되지 못한 것은 비슷한 경험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작가의 문체와 문장과 표현들이 낯선 탓도 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기똥차게 맛있었던 구룡포 복어탕만 생각났고 「복어」의 남·녀는 ‘복어’가 주는 죽음만을 음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경란’이라는 작가와 이제껏 접해보지 못했던 그녀만의 문장과 표현을 알게 되어 새롭고 신선했다.
정말 읽을 책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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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처럼 어려운 데가 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자살이 되물림 된다는 것. 그 시초는 할머니였다. 아버지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다. 아홉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그녀의 딸인 고모 역시 어느날 죽어버렸다. 아버지까지...게다가 그녀는 이제 죽음 앞에 있다.
여자에 이어 남자도 그런 이상한 대물림을 봐야했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 온 아버지, "어서와"라고 전화해놓고 십오분을 못기다리고 창밖으로 뛰어내려버린 형. 이 환경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지도 않을 집을 매일 보러 마실 나가는 어머니. 남자의 집은 그런 상태다.
사로잡힌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음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두려움은 후차적인 문제이며 놓여지지 않는 당면과제 같은 것일까.
모든 이야기는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여서 그녀는 친구 "사임"의 몸으로 [숨]을 완성해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남아 전시회를 열고 남자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소설은 끝났지만 나는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는 좀 더 달콤했으면 좋겠다 싶어졌다. 살아가기 위해서.
물론 자살이 되물림 되는 집안의 두 남녀의 만남에 빛나는 밝음을 기대하는 것이 유치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남겨진 그들에겐 이유가 충분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소설의 사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부여된 것처럼 그 길을 따라 갔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멀미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아닌 그들의 마음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엔 작가의 멋진 글이 남겨져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이 이미 소명이 되어버렸다고 느꼈다면 더 큰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여긴다....라는.단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너무 일찍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의 맺음말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의 이야기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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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건방지게 난 한국소설을 보지 않는다. 꽉 자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작가들이나 전문화된 서양작가들에 비해 너무 차이가 나서. 차라리 김경진이나 김진명의 전쟁소설이나 이원호선생의 무역/조폭소설은 분명하기나 하지...
좀 전 랭보의 바람구두를 신다 에서 처럼 이 것도 뭔가 줄거리를 정리하고 싶은 데 정리가 안 된다. 정리할라면 피곤하다. 나도 정리가 안 되는 데...
화가인 주인공이 일본에 가서 활동을 한다. 그러면서 막내 이모의 죽음, 그 남자의 죽음,다른 살만의 죽음. 복어집가서 복어를 즐기고 배우는 이야기.. 뭔 연관성이 있는 지. 염세주의,우울증인 가..
도꾜 관광안내서인가 , 오모테산도,닛뽀리,모리 미술관,츠기지 수산시장. 도꾜관광은 한 번 해본 거 같다. 뭘 주장하려 는지 알수가 없다. 문장력은 뛰어나다. 문장에 신경쓰다 자기가 뭘 주장하려는 지 딜레마에 빠지고 자가당착에 빠지는 모습, 미우라 시온류... 등단을 시키는 평론가들이 유식을 뽑내고자 어려운 비비꼬는 예기만 잘 쓴다고 하니 전부 비비 꼬는 거 같다. 어디 펄벅의 대지, 톨스토이,어네스트 헤밍웨이 어디 꼬는 게 있나... 재미는 전혀 없다. 다시 일본작가들한테 가야 되겟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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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 1/7~1/12
조경란 님을 너무 좋아해서 별 고민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살을 생각하는 조소가 여자와 자살한 형을 잊지 못하는 건축설계사 남자이다. 여자의 이야기와 남자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접점이 생기고 결국 두 사람이 만나며 마지막엔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스토리.. 어찌 보면 뻔하고 가벼워질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두 주인공 모두 자살이라는 족쇄 앞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 중 여자는 스스로 자살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어 그런지 읽는 내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책의 내용에 마음껏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두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한 아버지의 잠꼬대에 못 이겨 집을 나온 여자와 쌍둥이처럼 가깝게 지내던 형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안고 사는 남자.. 나한테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내 성격상 심각한 고민이나 깊게 생각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사유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부분에선 약간 머리도 아팠다. 한 가지 수확이라면 복어라는 생선에 대해 소소한 것들을 새롭게 알 게 된 것이다. 독을 가진 생선이지만 먹을 수도 있는, 이 신비롭고 미스테리한 생선에 나도 어느정도 흥미를 느꼈나 보다. 제목이 <복어>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한걸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