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북공정에 이은 한글공정, 댜오위타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위안화의 평가절상 압력 등 중국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다. 이 무성한 담론의 숲을 거닐면서 우리는 과연 이 숲 전체를 얼마나 자세히 보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만약 그 숲을 보지 못한 채 우리가 좋아하는 나무만 붙잡고 이야기를 쏟아낸다면 그것은 결국 그 숲에서의 고립밖에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큰 맥락이 있다. 기자 역시 과거 중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촬영금지나 답사금지에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방송된 고구려 벽화의 도난 사건을 보면서 할말을 잊었다. 또 과거 중국의 실효적 지배에 있었던 댜오위타오를 일본 제국주의의 시작때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고 과연 우리가 중국을 비난할 수 있는가다. 그럼 독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 역시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살 노벨상을 결정하는 스웨덴의 왕립과학아카데미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힘과의 유착관계도 수많은 학자들이 번연하게 지적해 왔기 때문에 이번 노벨평화상도 순수하게만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실제로 진행하는 다양한 한반도 관련 작업(만리장성의 연장, 동북공정)이나 패권주의로의 행보(군사나 자원외교)의 지나친 속도전, 민주주의 요구에 대한 압살은 비난 받아서 마땅한 것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한 채 얼마나 공정한가다. 사실 우리의 눈과 귀는 이미 수십년간 익숙한 서방의 시각에 휠씬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단은 자유지만 이런 시각으로 얻어지는 결과도 우리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에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짧은 기간에 중국의 문화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또 그렇게 이해된 문화라고 할지라도 지역마다 다르고, 시시각각 변하는 만큼 예단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내면을 한번 잘 둘러볼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중국 문화평론가 위치우위의 ‘중화를 찾아서’(미래인 간)다. 흔히 위치우위와 유홍준을 비교한다. 하지만 유홍준이 우리 문화계에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위치우위가 중국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휠씬 높다. 그는 공식으로 천만부 이상 발행한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는 점을 넘어서 방송 등 모든 영역에서 중국 문화의 스펙트럼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이 정도의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것은 어떻든 중국 내부에 존재하는 문화의 가치를 그 만큼 정확하게 뽑아냈다는 것을 방증하는 예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처세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중국문화기행’이나 ‘세계문화기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 문화를 설명하는 그의 이번 책은 일반인들이 쉽고 정확하게 중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침돌이 될 것이다. 물론 사전에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많은 이들에게는 이야기의 중복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어떻든 당대 문화평론가이자 학자가 내놓은 이야기들은 신중하게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고대부터의 대외관계도 담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한중 관계를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신중한 문제를 감지하게 해준다. 저자는 중국 문화의 시작점을 황제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신화시대와 역사시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기에 함부로 단정할 수 없지만 그는 실증사학의 고집을 넘어서 황제(黃帝)의 시대로부터 중국 문명의 시작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책은 순차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이 시대를 읽을 때 필요한 후대의 기록까지 잘 정리해놓았다. 우선 하늘과 맞서는 인간을 이야기하며 그가 지진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대지진은 천하에 사는 그 누구도 건곤을 수중에 넣거나 우주를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천지가 약간이라도 화를 내면 조금 전만 해도 시끄럽게 떠들던 무슨 운동이나 비판, 격분 등도 모두 아이들 장난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는 당산 대지진을 보는 보는 소회는 인간과 하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후 하은주 시대를 언급하고 바로 제자백가로 넘어온다. 유가를 먼저 말하지만 이는 상식적인 측면이다. 다음에 말하는 것이 묵자다. 그는 묵자가 말한 경애나 비공 등의 평화적 사상이 중국 문화의 근간이라며 목숨까지 버리는 묵가의 자세를 옹호한다. 특히 묵가에서 중국 정신중 하나인 협(俠)의 정신이 나왔다고 말한다. 강효백 교수의 ‘협객의 나라’에서 잘 보여주듯 중국에는 의협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 시원이 묵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묵가는 최근에 영화 ‘묵공’에서 류더화가 연기한 ‘거리’(革里)를 통해서도 형상화됐으니 낯설지 않을 것 같다. 다음에 다루는 것이 직하학궁이다. 직하는 일반인들에게 낯선 곳이다. 산둥성 즈보나 린츠에서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의 지식인 집단인데, 지금으로 보면 권력과 관련없는 연구단체다. 그런데 그를 설명하면서 위치우위가 하는 말에 공감이 된다. “중국의 전체 문화구조는 유가와 도가가 서로 보완하고 여기에 불가가 새롭게 진입하면서 상호견제와 융합을 통한 삼각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중국의 총체적인 정치구조는 유가와 법가가 표리의 관계를 유지했으나 병가 또한 나름의 한 부분을 맡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중국 문화라는 학궁 안에 일가의 독패란 불가능할뿐더러 진정으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싸움은 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고 본다. 사실 사화나 당쟁을 겪은 우리와 다른 사상관에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중국인의 정서를 설명할 때 시詩를 중요한 항목으로 본다. “시경은 중화민족이 어두운 밤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와 부르는 비밀스러운 노랫가락이다. 누군가 먼저 부르면 다른 누군가가 화답하며 자신들을 확인한다”고 썼다. 이 부분은 굴원에 관한 부분인데, 그의 자살에 대한 해석도 눈에 띈다. 또 지나친 세속탈피로 인해 비난이 많은 완적과 혜강에 대해 저자는 중국인들의 근본에 있는 정서라며 그들의 관점을 옹호하기도 한다. 불교의 도래로 시작된 외래 사상과의 결합 부분은 상당히 예의주시할 부분이다. 특히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 번성기에 유학생이 3만명에 달했고, 일본 유학생이 1만명이었고, 과거에 급제한 신라 선비가 50명이라는 말에는 최치원이나 김인문 등이 떠오르게 한다. 이후에 관심을 가진 이는 중국 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보, 이백에 대한 인상도 있다. 그런데 그가 당의 문화를 보는 데 있어서 잡종의 문화라고 단정하는데는 나름대로 과단성이 있다. 그는 “당나라가 대당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순수하지 않음 때문이다.... 북위는 순수하지 않은 대당을 위해 가장 열심히 준비작업을 했다. 깨끗하고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드넓은 길을 만들 수 있었으며, 위대한 두 석굴(윈깡, 롱먼)의 주량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 당대 장안의 번성에는 세상 사상의 대부분이 들어와서 교류를 했다는 장면의 강조는 향후 중국의 세계화 전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또 칭기즈칸과 금나라에서 그에게 투항한 야율초재에 대한 그의 관점은 당나라 문화의 복잡성을 보는 것과 같다. 책의 후반에는 ‘청명상하도’의 전시장면이 나온다. 그 줄에서 구순의 노인과 말기암환자를 먼저 들어가게 호의를 배풀었을 때 거절하며 공손한 마음으로 한참이나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할 수 없고, 그것이 그런 마음을 갖는 기회라는 말을 들을 때는 우리가 가진 무질서한 중국의 모습에 대한 편견을 꼬집기도 한다. 필자는 명청의 시대에 대해서는 상당히 각박하게 점수를 준다. 두 왕조 600년에 훌륭한 문화 인사는 왕양명과 조설근 정도 밖에 없다고 한탄할 정도다. 그런 배경에는 두 정부가 가진 ‘문자옥’을 원인으로 든다. 사상을 철저하게 통제해 유가를 중심으로 삼는 것에서 자유로운 문화혼들이 나올 수 없었다고 본다. 이전 책에서 강희, 옹정, 건륭으로 이어지는 청초에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과는 비교된다. 정치의 측면에서 볼때 이 강옹건 성세를 높이 치지만 문화 발전의 측면에서는 부정적으로 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총론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챕터에서 의미심장한 몇가지 이야기를 던진다. “중화문화의 유구한 생명력은 결코 관방의 보살핌이나 총애에 기대는 것이 아니며, 문단의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중국인의 존중과 수호를 통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다”고 본다. 아울러 “문화의 생명력은 깔끔하게 손질된 황가의 정원이 아니라 거칠게 솟아있는 해변의 암석이며, 궁정 연못에 자리한 축복의 분수가 아니라 한밤중 산골짜기에 휘몰아치는 광풍과 폭우 같은 것이다.”라는 문구를 보면 연행 길에 중국 문화의 진수는 고귀한 물건이 아니라 깨어진 기와장과 소똥에 있다고 말한 연암 박지원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공감을 하게 된다. 연암은 깨어진 기와장을 잘 장식해서 담장으로 쓰고, 소똥을 연료 등으로 활용하는 청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큰 공감을 했었다. 책은 문화대혁명까지 다루면서 중국인들의 심중에 있는 진짜 중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거대한 인구와 땅은 수많은 문화적 흐름과 갈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최소한 우리가 선입견과 편견에 빠져서 볼 가능성은 약간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2000년대 초반기 중국에 관한 글을 쓰면 그 아래 달리는 부정적인 댓글로 인해 너무나 복잡한 심사가 든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한중 역사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볼 몇 부분이 있다. 그는 “초기에 황제와 염제를 시조로 하여 서서히 전개되었던 하, 상, 주 3대의 화하華夏 집단은 물론이고 태호, 호소, 치우, 우예, 백익, 고요 등이 등장하는 동이東夷 집단도 기본적으로 황하 유역에서 활동했다”고 묘사한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를 동이족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실제로 민족사학을 하는 이들은 이 논의를 더 진행한 경우도 있다. 자칫 이런 논의를 잘못하면 우리를 중화라는 범주에 집어넣으려는 시도도 생길 수 있다. 고대에 어떤 은원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5천년 넘게 중국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 자칫 두루뭉수리한 중화주의에 휩쓸려가는 것을 막는 현명함을 가져야 한다는 타산지석의 효과도 있는 책이다. |
|
『중화를 찾아서』의 저자인 위치우위余秋雨는 1946년 중국에서 태어나 계속 중국에서 활동한 문화학자이다. 원래 희곡을 전공했던 그는 대학 입학과 함께 문화대혁명 기간을 겪으면서 관심 분야를 문학에서 문화로 확대하였다. 이후 상하이 희극학원을 졸업하고 이곳의 교수를 지내면서도 문학 분야 이외에 사론史論 및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하는 수많은 저술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학문적 성과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는 저자로서 ‘현대의 루쉰’으로까지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중화를 찾아서』는 내가 재난 시절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찾기 시작한 중화문화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중략…) 이제부터 내가 쓰는 문화 산문은 모두 이 책의 문자와 표제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이 중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2009년으로, 2000년대 초반의 절필 선언 이후 8년 만에 펴낸 것이다. 평생을 중국 문화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 온 60대 후반의 학자가 비로소 스스로 내세울 수 있는 글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계 고등학생으로서, 공대생으로서, 건설업 종사자로서, 게다가 개인으로서도 문학과는 거리가 먼 푸석푸석한 삶을 살아왔다. 내가 인문학 분야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역사 분야였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통사적인 관점으로 중국 역사상 문화적 성취를 남긴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을 짚어가는 내용이려니 여겼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인물과 상황들을 풀어낸 것은 분명하나 당초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다. 전 세계의 어떤 문명과 어떤 국가에서도 중국에 대해 논할 때 아무도 감히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또한 함께 이룩해 온 문화적 성취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장대함으로 인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명료하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토대에서 출발한 서양문화권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관점에서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의 문화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경우를 접하기도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밖에서 바라본 외부인의 시선이므로 썩 공감 또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이 책은 중국인이 집필한 것이므로 분명 스스로의 성취를 한껏 자랑스러이 여길 것이라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임한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읽기 시작하기도 전부터 품었던 이러한 나의 예상이자 선입견은 책을 읽어가면서 기분 좋게 부서져 나갔다. 저자는 일단 근대 초기에 중국 내부에서 분분했던 ‘의고사조㽈古思潮’나 ‘화하문명 외래설’ 등 중국 역사의 기원에 대한 논의들을 실증과 논리적 입증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정치의 영향을 받는 학문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승자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를 매우 완곡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록에 남아있기 마련인 모든 승자는 위대하고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으며 모든 패자는 극악무도하고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단선적 평가를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단지 승패의 역사적 사실 만을 놓고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이 사뭇 신선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세상의 모든 전쟁을 충간忠奸, 시비是非, 선악善惡으로 개괄하는 것이 얼마나 협소한 관념인지 알 수 있다. 세상에서 비교적 큰 전쟁은 때로 문명을 창조한 이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만약 싸움의 상대가 간사하거나 악하다면 오히려 해결하기가 쉽다. 오랜 세월 동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그들 나름으로 각기 장엄한 이유, 지켜야할 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p32) 이와 같이 저자는 시종일관 냉엄한 이성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역사 문화적 성취 자체보다 그것을 가능하 도록 하는 상위의 정신 가치를 짚어내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 문화의 사상적 기틀을 구축한 춘추 전국시대의 발전을 동시대의 그리스 철학의 발전과 견주면서도 사상체계 자체 뿐 아니라 이것을 가능하게 한 ‘존중’과 ‘중용’의 미덕에 주목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는 자유롭지만 정교하고 치밀하지 않고, 반대로 정교하고 치밀하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하디만 직하학궁은 존중을 토대로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통일시켰다........和而不同” (p142) “이후 역사에서 중국의 전체 문화구조는 儒家와 道家가 서로 보완하고 여기에 佛家가 총체적인 정치구조는 儒家와 法家가 표리의 관계를 유지했으나 兵家 또한 나름의 한 부분을 맡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중국문화라는 학궁 안에 일가의 독패獨覇란 영원히 불가능할뿐더러 진정으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싸움은 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언제나 원활하게 기복을 이루고 중용으로 조화를 따랐다. 때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극단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았으며, 곧 중도로 되돌아왔다.“ (p147) 이러한 관점은 주저 없이 중국 문화의 절정기라 말하는 당唐 시대를 평하는 데 있어서도 적용된다. 저자는 일반적인 중국 역사에서 이민족, 야만족이라 치부하는 유목민족을 보다 입체적인 관점으로 평가하고 대범하게도 이들을 불교와 함께 중화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간주한다. 그는 당唐 문화의 궁극적 우수성을 문화적 개방성과 흡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효문제 탁발굉의 한화漢化 정책이 단순히 한족 문화에 대한 숭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p295)........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문화에 이입된 호방한 기질이다 (p296) (…중략…) 대당大唐 제국 황가의 구성원들인 李氏가 바로 선비족과 한족의 혼혈 결정체라는 점이다.”(p297) “장안은 다양한 문명에 대한 경건한 숭배자였다. (…중략…) 진심으로 다른 문명을 감상하고 추종했다. (…중략…) 장안은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외래 문명에 의해 자신이 묻혀버릴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중략…) 성당聖唐의 번영은 무엇보다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대당大唐이 위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심리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p343) “당대에는 ‘국가철학(국가 이데올로기)’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p345) (…중략…) 당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일부 제왕들이 한때 편향적인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들은 사회의 신앙에 대해 넓은 도량을 보여주었으며 종종 유가와 불가, 도가를 모두 존중하는 방침을 시행하였다.” (p346) 이어서 저자는 송宋대 이후에는 중국문화의 진정한 발전은 없었다고 단언하면서 중화주의의 오만과 폐쇄성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 중국인들이 고대 문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주로 명청明淸 양대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언제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중국문화의 구조와 기상이 명청 양대에 이르러 이미 약화되고 작아졌으며, 흩어지고 낮아져 거의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p459) “15세기 초 정화鄭和(1371 ~ 1433?)사 서쪽으로 먼 곳까지 항해하였으며, 16세기 말에는 유럽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왔다. 이러한 일련의 일은 중국문화의 소양을 높이고 더욱 강건한 방향으로 중국을 이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중국 문명은 전통의 역량이 지나치게 막강했다. 농경문화에 유목문화까지 곁들인 중국은 해양문화를 만나 짐짓 못 이기는 척 질질 끌려가다가 끝내 유럽 문명과의 조우를 잃고 말았다. 거의 필연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명과 청 양대는 보수와 낙후의 진흙탕에 빠져 중화 문명의 생명력에 큰 손해를 끼치고 말았다.” (p472)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자부심보다 더 깊은 애정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후 상商 (B.C 1600 ~ B.C 1046)의 마지막 수도였던 은허殷墟(B.C 1300 ~ B.C 1046)가 20세기 초반에서야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저자는 그 이전까지 기록과 구전으로만 존재했던 상대商代가 실체화되는 과정을 책의 한 장章을 할애하여 상세하고 비장하기까지 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발굴기록에 의하면 YH127 갑골생을 발굴하여 엄청난 갑골을 상자에 넣어 안양 기차역으로 옮길 때 돌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은허 인근의 원하에서 돌연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더니 수증기가 흰 구름으로 변하자마자 다시 검은 구름으로 변했다. 잠시 후 검은 구름이 은허에서 기차역 상공까지 길게 퍼지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p78)” 이와 함께 발굴한 갑골문은 공자와 사마천도 직접 본적이 없다는 대목에서 당시 중국 사회 전반의 흥분 뿐 아니라 저자 자신의 격앙됨이 전해지는 듯 했다. 저자는 이 역사적 사건을 중화문화의 저력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다. “갑골문 해독, 백화문 보급은 고대와 미래 중국문화에 대한 믿음을 배가시켜주었다 (…중략…) 이 두 가지 작업은 오랜 역사의 양 끝에서 중국문화의 맥을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중략…) 중국문화가 아직 자신의 거대한 변혁을 지탱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p482) 냉엄한 이성과 따듯한 애정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성숙하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때에서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중화문화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 즉 문화적 DNA를 감성적이고 서사적인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영웅들과 정치적 사건 중심이 아니라 철학가와 문인의 생애와 그들을 둘러싼 역사의 격랑을 묘사함으로써 승자의 관점과 중심을 벗어난 시선으로 중국 문화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은 새롭고도 탁월하다. 이는 저자 자신이 희곡을 연구하는 문학인으로 출발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거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찰로 저자는 문화의 발전과 개인에게 있어서의 문화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한 왕조가 상하 모든 이들이 합심하여 문화 건설에 이바지한다면 대략 20~30년 정도면 얼추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다 고차원적인 성과는 적어도 100년이란 오랜 시간이 과해야 비로소 단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준비 기간이 긴 것에 비례하여 이에 따른 성과 역시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란 조급하게 서둘러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416) “한 사람의 문화적 배경은 그의 출신 민족이나 지역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p446) (…중략…) 혈통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선택의 책임이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문화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혈통보다 더욱더 생명의 본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p453) 이는 어느 사회, 어느 문화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우리 문화 역시 유구한 중화문화와 따로 혹은 같이 발걸음을 계속해 온 동반자임이 분명한데, 우리 자신도 과거의 어느 시절에 혹은 현재의 어느 때에 오만과 폐쇄성으로 자신을 가두었는지, 그를 또 되풀이할 수도 있는지를 반성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정치와 경제에 비해 이룩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 지속성과 영향력은 훨씬 강력한 문화라는 정신의 산물을 가꾸어 나가는데 지금의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근대의 혼란기를 막 벗어나고 있는 지금은 문화의 본질에 대해 반드시,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하는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