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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중국의 패권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이제 세계는 Pax Americana에서 Pax Sinica로의 이동을 점쳐지면서, 그런 세계는 어떤 세계가 될지에 대하여 설왕설래하고 있다. 2001년 하이난섬 부근에서 미국첩보기가 중국전투기와 충돌 후 중국영토에 착륙했을 때, 부시는 첩보기의 무조건적 반환을 주장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결국 중국은 첩보기를 낱낱이 분해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후 미국의 사과를 들으면서 돌려주었다. 그것이 비록 베이징에 있는 자신들의 체면을 위한 것 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세계에 대응할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종군기자 출신의 저자가 중국팽창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징기스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침공한 13세기 초(1218년) 부터 현재, 미래에까지 이어지는 제국을 향한 중국의 역사를 기록했다고 한다. 중국은 우리를 섬뜩하게 만들면서도 매혹시키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대중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권이었고, 로마제국보다도 더 오래 지속되었으며, 그리스보다도 더 많은 철학자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민족, 제국, 문명과 문화, 이 모든 것들은 역사 속에서 각기 한때의 전성기를 갖는다고 한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각 문명은 비록 짧은 기간 일망정 지배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중국만은 그런 지배적인 지위를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오랫동안 누렸다고 한다. 또한 전쟁에 나선 중국은 참으로 무서운 존재라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이길 때나, 질 때나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지금까지 인류사에 있어 학살된 그 어떤 사건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한다. 1218년 투르크맨의 병사들은 사마르칸트 부근 실크로드 위에서 450명의 몽골과 타타르 상인들로 구성된 대상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포로로 잡아 중앙아시아 셀주크 투르크족 샤에게 데리고 갔으며 샤 술탄은 이들을 참수한다. 대상의 참살에 분노한 칸은 페르시아의 멸망을 명한다. 서쪽으로 진격하는 몽골군앞에 거칠 것은 없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초토화 되어있을 뿐이다. 도주한 술탄을 잡기 위해 서쪽으로 나아가던 몽골군은 호라즘 제국을 만난다. 몰골은 호라즘 제국 모스티슬라프 대공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지만, 대공은 중원의 그 누구도 자신에게 도전해온 적이 없음을 노려 사절단을 죽인다. 이때부터 서양은 숨가쁘게 서쪽으로, 서쪽으로 줄행랑을 쳐야 했다. 대량살육과 파괴를 일삼으며 그들 몽골 기마군단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와 죽음만이 남았다. 폴란드 하인리히 2세와 최후의 기사단이 1241년 레그니차전투에서 도륙 당했고, 사요강에서는 헝가리의 벨라4세가 그들의 말발굽에 짓밟힐 수 밖에 없었다. 레그니차 전투는 샤를마뉴 대제로부터 십자군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하며 이루어 왔던 유럽의 모든 군사적 업적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렸으며, 사요강 전투는 몽골군의 우수성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 하였다고 한다. 하루에 200Km를 달릴 수 있는 군대로 구성된 몽골군은 징기스칸의 지휘아래 1214년 만리장성을 넘어 송나라를 멸하고 중국 중원에 이미 원나라를 건국한 후였다. 규율위반은 사형, 약탈은 전투의 보상으로 허용된 그들을 막을 군사는 당시 동서양 어디에도 존재할 수가 없었다. 1258년 바그다드가 함락됨으로써 이슬람의 아바스 칼리프 왕국이 종말을 고한다. 기독교계 사람들이 550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몽골기마군단은 한달 만에 끝내버렸다. 이렇게 13세기는 몽골인들의 세기였다. 세계는 그들 앞에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온전히 그들이 세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13세기를 넘긴 서구는 1348년 또 한번의 재앙을 맞이한다. 실크로드를 타고 찾아 든 흑사병은 당시 유럽인구의 1/3을 죽이고서야 멎은 것이다. 7세기가 지난 오늘날 그런 재앙은 어렴풋하게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고 한다. 조류독감이란 이름으로.. 15세기 정화제독이 이끄는 거대한 용의 함대는 아라비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6차례에 걸쳐 항해한다. 그들은 황금을 찾거나 땅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명나라 영락제의 영광과, 중원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영원한 꿈을 추구하기 위한 출정이었다. 어느 나라도 정화제독의 대함대 앞에 나서지를 못했고, 만약 유럽함대와 부딪혔다면 유럽은 다시 한번 2세기전의 치욕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영락제가 죽고 새로 등극한 황제는 정화의 업적을 질투하며 모든 항해를 금지시키고 중국을 죽의 장막 안으로 가두어 버린다. 16세기 포루투갈과 에스파니아가 중국과 무역을 시도하며 문을 두드린후 17세기가 되자 영국이 합세한다. 19세기가 되자 서구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거대한 용의 나라를 유린하기 시작한다. 이미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던 강대국이 되어버린 영국은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통하여, 프랑스는 청불 전쟁을 통하여 그리고 일본은 청일전쟁을 통하여 수탈에 들어간다. 왕조의 무능과 관리들의 부패, 그리고 서구인들의 탐욕에 찌들린 백성들은 태평천국의 광기에 휩쓸리기도 하고, 의화단을 조직하여 그들에 맞서 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의 총칼 앞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어나갈 뿐이다. 그렇게 잠을 자던 중국은 20세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일본의 약탈과 학살, 장제스의 국민당, 마오쩌둥의 홍군이 얽히는 가운데, 장제스의 국부군을 타이완으로 쫓아낸 마오쩌둥은 중국본토를 차지한 마오쩌둥은 자신들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주변과 끊임없는 갈등국면을 조장한다. 그것이 그들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책략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그들은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길이 어떤길 이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깨우쳐 가고 있었다. 1949년 타이완앞의 작은섬인 진먼섬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면서 해군의 필요성을 느끼고, 1950년 한국전쟁에서는 공군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가하면 미국과 소련이 그들에 대해 핵공격을 계획한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그것을 비웃듯 자신들의 의지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1958년 44일간 계속된 진먼섬 포격이나, 1969년 소련과의 우수리강 전투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침내 1964년 중국은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1971년에는 미국대통령의 중국방문으로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긴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19세기는 그들에게 치욕의 시대이었으며, 20세기는 그 치욕으로부터 탈출하는 회복의 시대, 그리고 21세기는 자신들의 우수성을 떨치는시대가 될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어냈는가 하면, 우주선발사로 그들의 위상은 어느때보다도 높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중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들의 경제력이다. 어느덧 G2에 자리한 그들은 그들이 세상을 호령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란걸 우리에게 그들의 역사를 통하여 알려주고 있다. 전쟁과 피바다로 점철된 천년의 혼란과, 대학살 끝에 추구했던 꿈을 이룬 중국역대 황제들, 그리고 이제 아시아와 태평양을 지배하려는 그들의 욕망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중국의 앞날을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앞날이 반드시 밝은 것 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화 된 그들의 빈부격차는 이미 가까운 시일내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서 보듯이 집권 공산당의 이념은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한 왕조가 붕괴할 때마다 농민 반란이 일어나 황제가 부여 받은 천명을 박탈했던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지극히 서구적인 시각에서 천년의 역사를 보고 있다. 천년전 몽골제국도 이민족으로 중원을 정복했지만 결국은 중화될수 밖에 없었으며, 세계 어느 제국보다도 오랫동안 이어져온 문명국가임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알면서도 로마제국이나, 근대 서구의 패권주의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이들이 되풀이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잘못 읽은걸까 사실인지 알수 없지만, 200년전 나폴레옹이 했다는 말이다. 괴물 같은 용이 잠들어 있을때는 세계가 평화로웠다. 그러나 용이 잠에서 깨어날 때 세계는 충돌했다. 그는 용을 경계하라고 한다. 용이 잠에서 깨어나면 세상이 요동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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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에 충실한 책은 최근에 보기 힘들었는데, '용의 유전자'는 서구가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근저가 무엇인지 오랜만에 느끼게 하는 책이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e Said, 1935~2003)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과 서양이라는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사고방식'이자,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제도 및 스타일'로 정의하였다. 서구의 시각으로 볼 때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도덕적으로 타락되었고 상식이 통하지않는 종족들이기에 무시하고 싶으나, 그들 내면에는 이교도 야만족의 무식한 잔인함이 그들을 해할까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기에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힘의 우위에 의한 서양의 전성기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들은 동양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리엔탈리즘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해왔다. 나는 이 책 또한 이런 바탕 위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유럽 지역에는 우리의 곶감 호랑이 이야기처럼 '훈족이 온다'는 말로 아이의 울음을 달래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을 무릎 꿇게 하고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은 중국 고대사에 나오는 흉노(匈奴)족의 일부라고도 하며 몽고족, 투르크족이라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으며, 서구의 입장에서 보면 동양의 기마민족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가끔 나오는 '신의 채찍'은 원래 이 훈족의 왕 '아틸라'를 뜻하며,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훈족의 장수가 바로 그 이다. 그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예술작품에 흐르는 공통적인 느낌은 두려움과 증오로 나타난다. 훈족 이후 중세에 이르러 서양는 징기스칸에게 의해 다시 철저히 유린(특히 몽골의 3차 서정)되었고, 그들의 가슴 속엔 황화(黃禍 yellow fear)가 유전자 처럼 각인되어 오늘에 이르러고 있다.
작금의 우리는 중국과 몽골을 다르게 인지하고 있지만 서양의 입장에서는 훈족, 몽골, 중국은 그냥 같은 동양의 카데고리로 보며, 지그프리트가 두려움과 경외의 용을 물리친 것 처럼 현재 떠오르는 용 '중국'을 경계하자는 것이 이 책 '용의 유전자 :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의 골자이다. '용을 경계하라! 용이 잠에서 깨어나면 세상이 요동친다'는 말의 이면에는 불을 내뿜는 중국이라는 용이 세계 연대기 속의 페이지들을 피로 기록한 파멸적 충돌에 대한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그저 조용한 나라로 인식되며 덩 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이 등장한 것이 엇그제 같은데, G20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 최고의 강대국 미국과 맞서고 있는 유일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서양의 우려가 이 책에서 그대로 보여진다. 책은 다섯 장으로 나뉘어 탐욕스러운 '중원(中原)의 왕국'과 나머지 세계사이에서 발생한 수많은 '피의 역사'를 인지하게 한 다음, '용'의 호전적 유전자가 향후의 세계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진단하고 있다. 잠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2부 포함 외교 1405~1911년 (명나라 영락제의 위대함을 전파하기 위한 정화가 이끈 '용의 함대', 신흥해양국가 영국의 등장과 아편전쟁, 태평천국과 중국의 몰락이 드러난다)
"중국인들에게 19세기는 치욕의 시대였고, 20세기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회복의 시대였으며, 21세기는 우리의 우수성을 떨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말했다. 최근의 중국의 놀랄만한 경제성장에 멈칫하던 세계의 시선은 일본과 중국의 센카쿠 열도(한국명 조어도)를 둘러싼 분쟁의 불통이 희토류라는 자원으로 연결되자 본격적인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기치 아래 몸을 한껏 낮춰온 중국이 천안함 후속대응과 일본과의 영토 분쟁을 계기 삼아 이른바 대국굴기(大國堀起)라는 패권주의적 힘의 외교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세등등하게 힘으로 몰아치는 대외전략인 돌돌핍인(咄咄逼人)으로 강대국의 길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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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 부쩍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거대한 대국으로 성장하였고, 중국 역시 공산화로 정치적 안정을 되찾고, 경제근대화로 세계 경제를 모조리 잡아먹으려는 듯이 무서울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지금은 어마어마한 인구만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거대한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거대하게 성장한 두 세력이 맞부딪치는 것은 이제 시간만 남은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국가>와 <자본주의국가>로 나뉘어서 어느 한쪽에만 속하면 각각의 맹주들이 나머지 국가들과 연합하여 보호하듯 해주니 알아서 두 세력 가운데 하나에 낑기든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라고 <제3세계국가>로 빠져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념과 힘의 균형으로 제 식구 챙기듯 했던 냉전시대는 지나버리고 <자국의 이득>이 된다면 '어제의 남편도 오늘의 내편'이 되어 버리는 시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 나라는 해방이후로 남북으로 갈라져서 남쪽은 계속 미국편을 들었는데, 이제 보니 시대가 변해서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중국편을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란 말이다.
말은 쉽다. 미국편을 들던가, 아니면 중국편을 들던가 하면 되고, 이도저도 아니면 광해군시절처럼 우리의 힘이 완전히 길러질 때까지 균등하게 두 세력에 모두 섭섭하지 않게 처세를 하면 된다. 그러나 이게 어디 보통 힘든 일인가? 광해군이 어디 제가 멍청해서 왕자리에서 쫓겨나며 반정을 당하고, 우리 나라가 외국에게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하게 만들었던가? 시대를 읽지 못하고, 적절하게 처세를 하지 못해서 당한 결과였다. 이제 다시 그런 역사가 되풀이될지, 아닐지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그래서 이 책 <용의 유전자>에 깊은 관심이 갔다. 거대한 용의 힘은 굳이 역사적으로 되돌아보지 않아도 무서운 줄 이미 아는 우리다. 직접 겪어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닐진데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이냐. 다만 한국전쟁 뒤로 남북으로 갈라져 냉전이다 이데올로기다 하며 수틀리는 바람에 우리 나라와 중국의 관계에 확실한 금만 가지 않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이렇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더 심각한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지만...어떻든 지금 우리는 <미국> 아니면 <중국> 가운데 한 쪽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독자적> 행보를 하며 <실리>를 따라서 메뚜기처럼 이러저리 뛰어다녀야 할 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일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작게는 우리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보장하는 방향을 걱정했고, 크게는 온누리에 평화를 이룩하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 나라를 상상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는 이러한 것들을 알 수 없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풀어놓으면 서구열강을 위한 <황색경보>이고, 서구열강이 역사적으로 <중국퇴치하였던 방법>을 나열하였으며, 한동안 넉다운되었던 중국이 다시 일어서려고 하고 있으니 서구열강들이 <대동단결>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나름 유용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글도 퍽 쉽게 읽힌다. 분량이 많아서 그렇지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는 <거대한 중국>을 참으로 부정적으로만 그려냈다. 이를 서구인들이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말 한물간 고리짝 유물이 오늘날에도 이렇게 꾸준히 생명력 넘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그렇다면 서구인들은 아직도 <동양>을 무지몽매한데도 딴에는 높은 정신문화를 엿보여서 신비한 존재로, 허섭스레기같이 조악한 시스템으로 가끔 놀라운 과학기술을 뽐내기에 신기한 존재로 본단 말인가? 아니아니 이 책에서는 동양의 우수함이나 긍정적인 면 따위는 애초에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게임으로 설명하자면, 스타크래프트의 <저그>같은 중국의 인해전술과 물량공세를 테란과 프로토스같은 서구인들이 첨단과학기술의 힘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내용이고, 고스톱으로 설명하자면, 서구인들은 오광이나 고도리, 그리고 청단, 홍단, 초단과 같은 기술적 한방을 노린다면 중국은 오로지 쌍피와 쓰리피, 그리고 뽀나스같은 피박을 씌우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읽힌다.
왜냐면, 온통 <중국과 서구인>의 대결만 나열하여 놓았기 때문에 마치 동양에는 오직 중국 한 나라밖에 없고, 서양에는 유럽연합과 미국과 국제연합 등 다양한 연합세력이 합세하였다는 듯 <편을 가르고> 중국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만을 나열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의 양상을 설명한 대목을 보아도 <한국군과 북한군>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군과 국제연합군의 힘만으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갑작스레 등장한 중공군의 의해 눈물을 머금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도 미군과 국제연합군의 엄청난 화력으로 마오쩌둥의 인해전술을 어찌어찌 막아내어서 결국 휴전으로 막을 내렸다는 내용 뿐이다.
이렇게 이 책은 온통 중국의 힘을 가볍게 보았다가 큰 코를 다쳤다는 내용과 그래도 정신을 차리면 중국쯤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뒤이어나오며, 나아가 세상 어느 나라도 서구인들의 힘을 이겨낼 나라는 없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는 내용 뿐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중국의 편을 들기보다는 서구의 편을 들면 이득이라는 뉘앙스가 읽혀져서 살짝 배알이 꼬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뉘앙스일 뿐이라 뭐라고 딴죽을 걸기도 그렇다.
물론 장점이 없는 책은 아니다. 몽골의 유럽침공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연대기 형식으로 나열하였기 때문에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역사책>으로 손색이 없다. 또 어려운 글투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히는 책이며, 뒤침(번역)도 꽤나 공을 들였는지 어색한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전혀 없는 아주 친절한 책이었다.
다만 친절하고 쉬운 만큼 각각의 설명이 너무 도식화된 감을 지울 수가 없었고, 예를 들면, 칭기즈칸이 포악한 방법으로 세계정복을 꿈꾼 까닭이 어린 시절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명 뿐이라면 단순화시켜도 너무 단순화 시키지 않았나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다른 설명도 모두 이와 같은 식이다. 또 이런 설명들이 모두 <서구인의 관점>에서 서술되다보니 동양인들이 몰입하며 읽기에는 방해되는 요소였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쓰다보니 온통 이 책에 대한 실망만 그려놓은 것 같은데,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을 책 속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리 나쁜 책도 아닌데 궁금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해서 그런 모양이다.
경쟁적으로 본다면 중국은 무서운 적수가 되지만 상생적으로 바라본다면 중국의 힘은 슈퍼히어로처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다. 이런 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억눌러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서구인들의 몹쓸 버릇이 또 도진 것은 아닌지..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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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6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용의 유전자>. 제목만 보고도 중국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거대함과 웅장함, 그리고 어마어마한 대민족들. 영화만 봐도 중국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싸우는 장면을 보노라면 섬뜩할 정도이다.
같은 아시아권이면서도 우리랑은 전혀 스케일이 틀린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어떤식으로 그들을 생각해야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 왔다. 이 거대한 책은,, 중국이
1218년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어떻게 커왔는가를 순차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중국의 위대한 영웅 <칸>이야기는 항상 들어도 놀랍고 무섭기만하다. 칸이 죽었다는 이유로 유럽이 죽다 살았다니 그 칸의 존재가 어떠한지 상상도 안된다. 칸이 좀만 더 오래살았다면 그때 유럽은 물론 세계를 지배하고도 남았으리라.
우리는 2008년도에 베이징 올림픽을 티비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직접 본 사람들도 많았지만,, 난 티비로밖엔.) 그들만의 축제를 보면서 난 너무나 무서웠고 그들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용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민족이 앞으로 어떻게 세계를 향해 진출할 것인지가 두렵기까지하다. 우리나라는 용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민족앞에서 어떤 힘을 발휘해야 용을 이용할 수 있을까. 그들이 무서운건 사실이지만, 우리 민족의 우수성도 다른나라 못지않게 높기때문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언젠간 용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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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상당히 오랫동안 읽었다. 책이 두꺼운 것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비슷한 두께의 소설이라면 하루만에 읽고 끝냈을 것이다. 사실 책을 손에 놓지도 못하고, 읽었던 문장을 두 세번씩 읽었던 것은 저자가 너무 재밌게 글을 썼기때문이다! 명쾌하고, 신랄한 그 어조를 읽고 있자면 문장에 빨려 들어가고 싶어질 정도였다.
역주 역시 이에 대해 "저자의 유려한 문장은,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몇 번이나 역자를 감탄하게 만들었다"고 평하고 있는데, 번역 역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준다. 정확한 번역이라는 기치 아래에 번역을 직역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외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지만(할 수만 있다면 책을 우적우적 뜯어 먹어서 내걸로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먹어서 확실히 내것이 되기만 한다면!) 이 책은 전쟁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조망해보는 책이다. 시대별 의복의 특성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다거나, 음식의 특징을 통해 민족성을 재구성 해보는 것처럼, 징키스칸의 시대에서부터 동양으로 대표되는 중국과 서양이 충돌한 역사에 대해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전쟁사이다.
동양과 서양은 상당히 오랜시간 동안 서로의 독자적인 문명을 구축해왔기에, 이 두 문명이 충돌한 일은 여타의 전쟁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두 문명의 첫 충돌은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한 쪽은 기사도를 맹신하여 전투는 등을 보이지 않는 당당한 정면승부를 표방하고 활을 사용하는 것은 비겁한 일로 여겼고, 다른 한 쪽은 활을 사용한 대량 학살을 효율적인 전투의 방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타고난 몽골의 전사들이 매우 잘 싸웠을 수도 있지만, 보다 적은 수로 유럽을 유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가 치명적이지 않았나 싶다.
각주를 보자면,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139년, 로마의 라테란 대성당에서 개최된 카톨릭 제 2차 라테란 공의회는 이교도들과 전투할 경우를 제외하곤 석궁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때의 이교도란 예루살렘 성지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를 의미했기 떄문에, 몽골 군을 상대로 한 전투 현장에서는 석궁이 사용되지 않았다."
유목민족인 몽골군은 전리품에서는 인적자원인 노예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살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거주지가 없이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하는데, 수백 명의 노예를 거느릴 수 없지 않은가! 또한, 유럽 내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해도 농번기를 피해 일으키고, 전투의 중심은 기사라는 유럽인들의 '상식'과도 전혀 달랐다. 전쟁은 일으키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수많은 계율들과 소극적인 태도가 오히려 그들을 옭아매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했고, 몽골군은 그들의 위대한 왕이 승하해 계승을 위해 돌아갈 때까지 신나게 유럽을 유린했다.
첫 만남이 동양의 승리로 끝난 반면, 동양은 그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땅이 너무 넓어져, 관리구획을 정리하고 또한 변방의 오랑캐들의 문명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쇄국정책을 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유럽에선 수많은 전쟁이 이어지고, 이는 화약의 발전을 가져왔다. 중국은 항해를 통해 전 세계를 유람하며 '무역'을 했었다. 세계를 다 보고 돌아온 중국은 보다 흥미진진한 황궁 내 암투로 인해 항해를 접게 되었다. 이에 반해, 출발은 늦었지만 서양이 항해를 시작했을 때 이는 '식민지 전쟁'이 되어버렸다. 처음 본 이민족들에게 대포로 위협을 가하고, 노예로 삼았으며, 강제로 금품을 착취했다.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몽골인들에게 당했던 일이 DNA에 조금쯤 남아서 죄책감을 휘발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세계를 조금씩 분할해 나가던 서양은 결국 중국에도 그 손길을 미치게 되었다. 이 전투는 화력과 인력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기관총과 대포는 1당 수백을 날려대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중국을 삼켜 버렸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백씩 날려도 중국에는 정말로, 정말로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고립된 지역에서 매일 수천명씩 몰려드는 적군과 싸우게 되는 비상식적인 전투가 생기게 된다. 물론 지키는 쪽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매일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공격하는 쪽은 아무리 많은 희생을 치루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싸움은 때때로는 인해전술이 승리하고, 대부분의 경우는 기관총이 승리했다. 이 시기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전쟁이 계속 되었고, 결국 전 세계가 두 번에 걸쳐 전쟁을 치룬 이후에야 진정되었다. 다른 말로는 핵폭탄을 실제로 사용하고 나서야 조용해 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너무 강력한 무기의 발견(핵무기와 수소폭탄)에 의해 실제로 벌어지는 전투가 아닌 물밑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외교전쟁인 것이다. 자국의 체면을 지키면서도 제 3차 세계대전은 일으키지 않게끔 미묘한 균형이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부딪힐 때마다 다른 한 쪽에게 경기를 일으키게 했던 동서양의 만남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될 일이다.
인문서는 그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아서 (실제도 책도 두껍다) 아직 에릭 듀르슈미트의 책을 본 적이 없었는데, 국내에 나온 세번째 번역서라고 하니 앞의 나온 두 권도 구해봐야되겠다 싶다. 요즘은 책이 너무 쉽게 출간되서, 사실 거의 잊어버리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사실 책이라는건 철저한 조사와 방대한 지식을 하나의 주제로 꿰뚫는 작업이 아니었던가. 오랜만에 눈이 시원한 책을 봐서 너무 반가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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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나의 관심 정도는 중국 고전과 현대작가들의 유려한 소설을 읽는 것이였다. 몇 개월 전에 [시인의 죽음] -다이허우잉을 읽고, 얼마 전 [마오의 제국]을 읽으면서 긴 역사를 가진 중국의 깊고 넓은 영토에 복잡한 생각이 엇갈렸었다. 이 책은 그 복잡함에 날실과 씨실을 켜켜히 더 얹어놓았지만 그 많큼 내 지식도 깊어졌으리라 위안을 삼는다.
'징기즈 칸'이라는 유명한 팝이 있다. 우리 나라에선 한때 금지곡이였지만 흥겨운 가락은 운전할 때 들으면 그만이다. 그 몽골의 피를 가진 칭기즈 칸이 엄청난 괴력으로 유럽의 기사단을 파괴하는 것으로 중국의 '피'의 혈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 부분때문에 작가는 필립 판과는 (마오의 제국의 저자) 전혀 다른 시각으로 중국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당연히 그래서 더 흥미롭겠구나..싶었다.) 어느 나라이던지 자국이 '피의 나라'라고 불리우는 건 끔찍할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이라는 대제국을 송두리째 용의 피로 일축하나 싶어서 도대체 그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정말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칭기즈 칸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오랜 전쟁 역사를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와 탄탄한 자료를 밑바탕으로 짚어가는데 또 놀라웠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3회 가본 적이 있는 대만과 홍콩의 이야기였다. 대만(중화민국의 진먼 섬)으로 도주한 장제스의 '피난 정권'을 격멸하기 위해 중국 본토의 공산주의자들. 하지만 해상전투에는 잼뱅이였던 그들은 결국 타이완을 손에 쥐지 못했다. 그리고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일지(?)도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위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였겠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이허우잉의 [시인의 죽음]을 재미로 시작하여 읽고 [마오의 제국]과 [용의 유전자]를 읽어 나간 후 중국을 여행하거나 기타의 목적으로 방문한다면 그야말로 뜻깊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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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중국과 현재와 미래의 중국을 가늠하게 하는 책으로써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미래시대의 중국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가지게하였다. 또한 중국의 과오를 통하여 공산당지도자들의 사상도 공부할수 있는 기회였던것같다.
6.25가발생하기전 중국은 과감히 티벳트를 침범한다. 그리고 무차비한 살인과 만행을 저지른다.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그래서 중국은 또다른 모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6.25전쟁의 참전이다. 또한 타이완 정벌에 대하여서는 정보의 부재와 주민들의 환영만 기대한 공산당 지도부의 오판으로 실패를 하게 된다. 또한 타이완 정벌의 실패는 미국의 타이완 사수로 이어져 현재까지 미중국관의 미묘한 갈등이 흐르기도 한다.
과거 중국은 수많은 종족들이 정복을 하였지만 그들의 문화에 동요되었다. 그래서 수천년 아니 수만년 그들의 문화는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국은 가깝지만 경계하여야 할 대상이다. 천안문사태를 통하여 중국의 젊은층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다. 아직은 잠잠한듯이 보인다. 만약 이러한 젊은층의 열망을 억압한다고 결코 민주주의가 사라지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현대의 수많은 문명의 이기등이 그들의 중심에 침범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주화는 세계적으로도 크나큰 변화를 분명히 가져올것이다. 최근에는 자원의 점유로 이어져 일본이얼마전 국토분쟁에서 어부를 풀어준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넓은 땅과 수많은 자원과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중국이 아시아에서의 맹주역할을 넘어서 전세계로 확장하려는 그들의 야욕을 간접적으로 볼수가 있다. 당당히 미국과 맞서며 과거의 과오를 멈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의욕을 책을 통하여 살펴볼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강대국으로 우뚝선중국은 정말 놀랍고 우리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중국의 역할과 우리의 나아갈방향등을 미리대비한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발전할것이다.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기회와 위기를 살펴본다면 내일또한 알수가 있는 것이 역사라고 믿는다. 드넓은 중국문명과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이책을 서양인의 눈으로 정확하게 본 저자의 날까롭과 예리한 언필은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할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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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유전자 에릭 두르슈미트/세종서적 어제와 오늘 서울 코엑스에서는 G20 정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회의는 세계 20개국의 정상들과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역사적인 시간이다. Shared Growth beyond Crisis, ‘위기를 넘어 다함께 발전하자.’란 이번 회의의 주제는 미국, 유럽, 개발도상국 등 현재 세계경제의 위기와 이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노력이 담긴 것 같다. 이 캐치프레이즈처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성공적인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 뉴스 등 언론에서 이번 회의에 대한 평가가 곧 나올 것이다. 특히 이번 G20을 소개하는 뉴스 중 자주 들었던 이슈 중 하나는 ‘중국과 미국의 환율전쟁’이다. 모든 나라는 항상 보이지 않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매일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지만 지금 유럽, 미국 등 서양에서 주목하는 나라는 바로 ‘중국’이 아닐까. 종군기자이며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용의 유전자,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는 제목과 부제는 마치 미이라 3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진시황의 병마용의 진흙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악의 세력들을 응징하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힘 앞에서 느끼는 전율처럼, 서양인들에게 중국은 그런 이미지의 나라인 것 같다. 이 책은 13세기 초부터 현재까지의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칭기즈 칸의 유라시아 정복 전쟁, 15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서양 문명과의 충돌, 중국의 공산화, 민주화 운동, 홍콩 반환, 2008 북경올림픽까지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는 중국의 거의 모든 굵직한 사건들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다른 나라 중 유일하게 중국을 여러 번 여행 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그의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베이징에서, 시안에서, 중국의 우뚝우뚝 솟은 거대한 아바타의 배경이 되는 그 산들 앞에서의 그가 말한 그 중국의 힘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저자 에릭 두르슈미트는 1930년 오스티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사춘기 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는 28살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쿠바의 산속에서 ‘미지의 반란군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그 기사를 씀으로서 종군기자로서의 그의 최초의 경력이 시작되었으며 그 후 BBC와 CBS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1959년 장제스 총통을 인터뷰 했고 마오쩌둥 시절 중국에 초대받았다. 1985년 그는 ‘은둔의 왕국’이라고 표현한 북한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종군기자로 전쟁 저널리스트로 세계 분쟁의 시한폭탄과 같은 현장 곳곳을 누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는 직접 발로 사건의 현장을 누빈 예리한 형사처럼, 한 분야에서 오래 지성의 상아탑을 쌓아온 학자처럼 이야기한다. 내가 보는 이 책의 매력은 그 놀라운 지식과 그의 경력을 넘어 쉽고 명확하고 재치 있는 그의 문장들이다. 물론 이 대단한 책을 보다 잘 읽어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나라 중국의 어느 한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할 때 이 책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실패로 끝난 마셜의 임무는 서구 민주주의가 아시아라는 한 대륙을 깔보느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기에 발생한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이다. 그날 중국은 “서양의 손을 떠났다.” -37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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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Discovery나 내셔녈 지오그래픽 채널 좋아하시나요? 에전에는 정말 보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우리 나라 유선 방선에도 진출을 해서 많이들 보시잖아요??
우연한 기회에 없애버린 TV를 몇년 간이나 재구입을 안하고 살게 된 뒤로 못봐서 아쉬운 채널 중 몇개에 속하는지라 가끔 출장이라도 가면 숙박지에서 밤새 Discovery를 보곤 합니다. ^^;;
가끔 Discovery를 보면 '워털루 전쟁사' 같은 것들을 드라마 같은 방식으로 묘사해주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 진진해 하면서 보곤 하지요.
책 애기 안하고 뜬금없지요?? ^^;; 왜냐하면 이 책 <용의 유전자>를 본 느낌이 딱 그런 프로그램을 본 느낌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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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역사서(?)에 속할 거라고 생각을 못하고 현재 동북아의 강자에서 G2로서 아직은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미국과 맞짱(?)뜨는 유일한 국가인 중국에 대한 현 상황이나 세계 시류를 얘기해 주는 인문 교양이나 사회 과학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두가지에 놀랐는데...양장본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무척이나 두껍다는 점과... 예상과 달리 책을 펼쳐보곤 "이건 전쟁사에 대한 책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두르슈미트'는 종군기자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흥미로운 이야기에 끌려서 찾아보니 유난히 전쟁사에 관한 책들을 많이 냈고,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두어권 정도 번역이 되어서 들어오기도 했네요.
그래서인지 역사서이면서도 옆에서 생생하게 묘사해주는 전쟁사가 흡사 소설을 보는 느낌까지 듭니다. 마치 Discovery 채널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물으신다면 흔히 기대를 히신 것이나 다른 분들이 애기하는 것과 달리 주인공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닌 전쟁사에 대해서 종군기자가 쓴 것처럼 서술이 되어 있는 역사서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싫었냐고요? 천만에요... 두꺼운 책을 휘리릭 이틀만에 읽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습니다...ㅎㅎ
그럼 조금은 책 내용을 풀어볼까요?
이 책은 장편서사 대하드라마입니다.
첫장은 몽고의 피바람부터 시작이 되지요. 서양인이 두려워했던 그래서 아직 의식의 한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그 동방으로부터의 대재앙이지요. 기독교 세계가 침략당해서 멸망(?)의 위기를 느꼈던 유일무이한 기억이요.
아무래도 저자가 서양적인 시각을 가져서 그런가봐요. 사실 제 관점에서는 원나라의 지배자는 몽고였고 중국인이 아니었는데...^^;;
여튼...몽고(원)를 시작으로 정화의 해외원정을 거치면서 제국의 팽창욕구가 항상 있었음을 은연중에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는 저자는 청말에 종이호랑이 시기를 거쳐서 공산화를 거쳐 다시 부활한 중국의 역사를 확장과 팽창의 도구인 전쟁을 통해서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엔 역사서 자체로 보기에도 소설처럼 흥미로와서 재미있고, 게다가 몰랐던 중국의 역사를 객관적인 시점에서 묘사된 책(다만, 별수 없이 서양적 시선에서 묘사가 되었습니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가치가 있더군요.
그럼 G2로 이미 군사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팽창 정책을 추구하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시냐고 물으신다면...
한마디로 역사를 통해 반복되는 역사가 보였다고 얘기 드리면 대답이 될까요? ^^;
책이 두껍고, 글씨도 작긴 하지만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으실 것이고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들의 팽창 본능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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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리뷰나 서평, 생각은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전한 다른 의견과 관점 주실 분들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제 개인 블로그를 기본으로 해서,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 혹은 카페 등에도 올라갑니다. 이 글의 원본은 제 블로그 http://blog.naver.com/kbooyang2/50098921579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