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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전야에 옛 생각이 나서 메일함을 열었노라.
"설날전야에 옛 생각이 나서 메일함을 열었노라." 내용보기
어제 두 가족이 합류하여 놀이공원에 잘 다녀왔겠지? 뉴스보니 황사현상이 약간 있었다는데 지장된 건 아니고?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두 형제가 사이좋게 다니는게 무척 마음에 든다.   스스로 하고 싶어 움직이는 일에는 고생스런 마음은 전혀 없이 즐거운 경우가 어제였다. 새벽 4시20분에 알람으로 일어나 밥하고 유부초밥 만들어 도시락으로 지참, 6시 이전에 집을 나서 시외
"설날전야에 옛 생각이 나서 메일함을 열었노라." 내용보기

어제 두 가족이 합류하여 놀이공원에 잘 다녀왔겠지?

뉴스보니 황사현상이 약간 있었다는데 지장된 건 아니고?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두 형제가 사이좋게 다니는게 무척 마음에 든다.

 

스스로 하고 싶어 움직이는 일에는 고생스런 마음은 전혀 없이 즐거운 경우가 어제였다.

새벽 4시20분에 알람으로 일어나 밥하고 유부초밥 만들어 도시락으로 지참,

6시 이전에 집을 나서 시외터미널에서 첫차로 하동으로 갔다.

하동의 유명한 재첩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을버스로 대축마을이라는 곳이다.

지리산 둘레길 13코스(대축-원부춘)의 출발점에서 발을 내디뎠다.

고인이 된 유명한 소설가 박경리 작품인 "토지"의 무대가 되는 평사리를 거치고

공지영의 수필 "지리산행복학교"에 나오는 형제주막을 지나친다.

그런가하면 확실한 등산으로 2시간 이상을 박박 기어 오르는 길도 있는 곳이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면서 옷을 너무 가볍게 입어 춥지 않을까 했지만 웬걸 우려로 그쳤다.

들판과 마을을 스치면서 매화가 만개한 풍경은 엔간한 사람의 무딘 가슴도 부드럽게 치유하리라.

산을 타면서는 완연한 계절은 어느새 여름이다.

땀을 훔쳐도 계속 흐르고 햇살은 따까울 정도에 하늘은 너무 푸르다.

모처럼 접촉하는 맨 흙길은 상쾌하고 거의 사람 없는 주변은 고요해서 좋다.

몇년 전부터 등산을 시작했으되 내가 직접 준비한 도시락-유부초밥 달랑 한 가지이지만

꿀맛이 따로 없었다.

 

날머리 원부춘 마을회관에서 스틱을 접고 옷을 털며 호출한 택시를 기다리고

달려온 택시는 화개장터로 간다.

조영남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화개장터는 오목조목한 느낌이다.

어딘가 풍물시장같고 토속적인 분위기인데 일행이 있었더라면 막걸리 한 사발이 금상첨화였겠다.

 

등산과 트레킹을 합한 시간이 대략 5시간. 교통편 이용한 시간이 6시간 이상.

밖에서 보리밥을 사먹고 귀가하고 씻고 밤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누웠다.

여느 때와 달리 달콤하고 맛있는 잠이었다.

 

나중에

강민이가 좀 더 자라고 난 뒤

그리고 내가 아주 늙기 전 쯤에

너희 식구들과 함께 적당한 곳, 썩 험하지 않은 곳

아마 지리산이나 북한산 둘레길 정도면 되겠다.

민박하면서 1박2일로 다녀 오면 좋겠구나.

원한다면 그때 유부초밥 정도는 내가 말아 준비하마.

 

두고두고 내 딸같아서 예쁜 선화야.

삼월중순 오늘도 식구들과, 또 부모님과 더불어

평화로운 나날들 되어라.

 

 

 

 

 

 




尹 龍植(Yoon Yong Sik)
"사랑하는 억준,효준을 위해!"
 

a***6 2022.01.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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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가진 한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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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책을 읽기 시작할때는 과연 내가 이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처음엔 에베레스트 산이 가장 높다는걸 밝히게 된일, 이름이 지어지게된 이야기 등이 배경으로 쓰여져 있었다. 조금은 지루한듯 정말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듯 역사의 한장면들이 흘러가는 듯했다. 멜러리의 이야기가 나올때뷰토 흥미진지해지는데 정말 처음엔 평범한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산을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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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책을 읽기 시작할때는 과연 내가 이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처음엔 에베레스트 산이 가장 높다는걸 밝히게 된일, 이름이 지어지게된 이야기 등이 배경으로 쓰여져 있었다. 조금은 지루한듯 정말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듯 역사의 한장면들이 흘러가는 듯했다. 멜러리의 이야기가 나올때뷰토 흥미진지해지는데 정말 처음엔 평범한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산을 향한 마음은 그 누구와 달랐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산을 오르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었다. 멜러리의 열정에 대한 글도 서술적으로 적혀져 있는데 정말 소설과 같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연상이되어 꼭 영화를 보는듯했다. 분멸 멜러리는 멋진 인생을 살다간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멜러리가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이지만 난 믿는다 멜러리는 분명 정상에 닿았을거라고 ... 그의 열정과 산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면 꼭 그랬을거라 믿는다...
s******y 2004.07.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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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러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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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오르는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등산가들에게 불멸의 경구(警句)가 돼 버린 이 말은 영국의 전설적인 등산가 조지 맬러리(1886~1924)가 남긴 말 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모험을 즐겼고. 배수관을 타고 높은 지붕 위로 기어오르는가 하면, 바위 위에 올라가 밀물을 기다리다 익사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한 친구는 이렇게 그를 회상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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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에 오르는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등산가들에게 불멸의 경구(警句)가 돼 버린 이 말은 영국의 전설적인 등산가 조지 맬러리(1886~1924)가 남긴 말 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모험을 즐겼고. 배수관을 타고 높은 지붕 위로 기어오르는가 하면, 바위 위에 올라가 밀물을 기다리다 익사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한 친구는 이렇게 그를 회상하는데., “그는 평생 안전과 위험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살았고, 기차를 탈 때도 늘 5분이 아니라 5초의 여유를 두고 탔으며,” 그는 세 번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는데, 도대체 해발 8800m가 넘는 산이 실제로 존재할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의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924년 6월, 그는 등반대의 막내인 앤드루 어빈과 함께 정상 도전에 올랐고, 그들은 석 달 전 인도 북동부의 다르질링에 집결했는데. 가장 험하다는 북벽 루트로 산을 오르기 위해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데만 몇 주가 걸렸고, 6월 초가 되자 폭설까지 내렸습니다. 맬러리와 어빈은 철수 직전 마지막 기회를 잡았고, 6월 7일 해발 8170m 높이의 2인용 텐트까지 올라, 다음날 오후 12시50분, 그들이 정상을 불과 240m 남겨 놓은 지점에서 계속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동료에 의해 목격됐고. 몇 분 후, 두 사람은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것은 등반 역사의 전설로 남겨 졌습니다. 만약 맬러리와 어빈이 정상을 밟았던 것이라면, ‘첫 에베레스트 정복자’로 알려졌던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의 1953년 등반보다 29년이나 앞선 일이기 때문입니다. 1933년엔 어빈의 피켈이 발견됐고, 1975년 중국인 왕 홍바오는 일본인 하세가와에게 “8150m 부근에서 영국인의 시체를 봤다”고 증언했지만 다음날 눈사태로 사망했습니다. 1999년 영국 BBC의 후원으로 영·미 산악인들과 다큐멘터리 팀으로 구성된 ‘맬러리 어빈 조사단’이 결성되여. 이를 데 없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마침내 산기슭에서 얼어붙은 시신을 찾아 냅니다. “등산복은 손만 대도 부서졌고. 드러난 피부는 대리석 조각처럼 하얗게 표백돼 있었고, 옷깃 근처에 붙은 꼬리표 몇 개가 눈에 들어왔고, …G.L.맬러리.” 그는 하산 도중 떨어진 것이 분명했지만, 정상에 올랐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습니다.
j********k 2004.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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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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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댜.   1924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기 위해 <조지 리 맬러리>와 <앤드루 코민 어빈>은 제 6캠프를 떠나 8000여 미터 언덕을 올라간다. 그 장면이 동료에게 목격된 후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실종된 것이다. 이후 1999년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아 나선다. 영국의 노련한 등반대와 다큐멘터리 촬영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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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는 없댜.

 

1924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기 위해 조지 리 맬러리앤드루 코민 어빈은 제 6캠프를 떠나 8000여 미터 언덕을 올라간다.

그 장면이 동료에게 목격된 후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실종된 것이다.

이후 1999년 에베레스트에서 사라진 이들을 찾아 나선다.

영국의 노련한 등반대와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마침내맬러리의 주검을 발견한다.

 

오래 전 라인홀트 메스너흰 고독 검은 고독이란 책에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엔 8,000미터 급 산이 14개가 있어 14좌로 불린다는 것을, 그 중 최고봉이 에베레스트로 높이가 8,848미터로 알았다.원래 이름은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 티베트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부른다는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최고봉을 확인하고 그 책임자의 이름을 따 에베레스트로 명명했다고 하니 과히 유쾌하지 않다.

 

세계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아우를 즈음 대영제국의 위상은 현재 최강대국 미국보다 더 했을 만한 지위였을 터. 러시아를 위시한 타국보다 먼저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상에 걸 맞는 자국민의 에베레스트 정복이 지엄한 목표였다.

 

맬러리는 소시 적부터 어딜 오르는 걸 즐겨 했다 한다. 그러다 나중엔 크게 다쳐 두고두고 고생했다고 한다. 교사로 재직하다 1차 대전에 지원하고, 1922년과 1924년 두 차례 모두 영국 등반대 일원으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한다. 1922년 등반에서는 세르파 7명의 희생이 있었다. 등반대 합류를 앞두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마음에 망설이기도 한,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캠프에서는 정리정돈을 제대로 못한다, 필수적인 등반도구를 결정적으로 까먹고 등반하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차 원정에서 맬러리가 선택한 파트너는 의외로 어빈, 원정대 막내였으며 높은 산을 등반한 경헌도 없었으나 옥스포드 출신으로 공학기술이 뛰어나고 성실했다.

2차 원정 전 맬레리는 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을 받곤 그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전장에서 군인은 초개 같은 군인정신으로 목숨을 불사하고 조국을 수호하듯 등반가는 산이 있기에 모든걸 불사하고 산에 오른다는 정신! 나를 희생하여 대의를 구한다는 게 말이야 그렇지 쉽지 않은데….목표를 설정하여 나아감에는 후회 없고 결과는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것인가.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복은 1953년 뉴질랜드 등반가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텐징 노르가이, 우리나라에선 1977고상돈 대원이라고 한다.

폭염과 열대야로 범벅 되는 여름 밤에 히말라야를 엿보는 시원함이 없지 않았다.

a***6 2018.08.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