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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집에 틀어박혀 은둔하기를 즐기던 내가 집 밖의 세상에 머리를 내민 계기는 아주 사소하였으나 놀라운 것이어서 혼자 서울에 가서 놀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고,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삼청동 오르막길을 오르게 했으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광화문 거리를 정처없이 걷게 만들었다. 친구와 함께 몇 번이고 놀러간 곳들이라 익숙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혼자 오롯이 마주한 장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길을 잃었다. 출력한 약도에 주변 건물 이름까지 세세하게 써놓은 종이가 손 안에서 눈에 젖어 축 늘어질 때까지 광화문 거리를 하릴없이 걸을 수 밖에 없었다.(여기서 나의 타고난 길치 본능이 얼마나 뿌리 깊고 위대한가를 엿볼 수 있다) 걷는 동안 내 옆을 지킨 동행은 길을 찾아야겠다는 조급함과 불안이 아닌, 이유 모를 후련함과 목구멍을 간질이는 자유였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돌아다닌 그 날 이후 나는 조금씩 ’혼자’걸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혼자 다니는 일은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쉽고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더 쉽다. 다만, 혼자이기 때문에 경로를 비롯하여 교통, 식당, 각종 비용 등을 혼자 알아보고 혼자 계획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무작정 여행도 좋지만 이왕이면 계획을 짜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편인 나는 식당부터 시작해서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있자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놀려고 계획하는 일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나를 힘들게 하다니!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여행 관련 서적이다. 요즘 나홀로 족이 많아지는 추세이니 만큼 그들을 위한 다양한 테마의,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나 홀로 여행>도 그 중 하나인데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혼자 다니는 여행자를 위해 박물관 및 미술관, 공원 및 산책길, 민속마을, 사찰, 산, 재래시장으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박물관 및 미술관 대부분은 건물 외부에 잘 조성된 공원을 끼고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고 하면 전시품을 둘러보러 한 바퀴 빙 돌고 나오는 걸로만 알기 쉬운데 이처럼 공원을 끼고 있는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는 건물 안에서 예술과의 조우를 한 뒤 바깥으로 나와 혼자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공원 곳곳마다 벤치가 있다고 하니 책 한 권 가져가서 읽는 것도 좋겠고, 햇빛을 쬐며 광합성을 하는 것도 좋겠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작가의 취향이 반영되어서인지 책에 소개된 장소들은 주로 자연과 근접해 있거나 자연 속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이 많다. 다른 책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산이 나온 것만 봐도 작가의 '자연과 하나 되어 걷기'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등산에 대한 두려움이 살짝 없어지긴 했지만 역시 아직도 등산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므로 눈물을 머금고 패스. 내가 매력을 느낀 부분은 민속마을이었다. 한국민속촌 밖에 아는 게 없던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도 근사한 민속마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선만 잘 짠다면 당일치기도 가능해 보이니 날씨가 풀리면 꼭 가볼 예정이다.
인생의 꽃은 죽을 때 피우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피워야 한다.
여기서 꽃은 성공이나 돈이 아니다. 만족이고 여유이다. 인생에는
쉼표가 필요하고 그 쉼표는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 '도시인을 위한 휴식 같은 문화공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테마별로 나누긴 했지만 책에 나오는 여행지들은 자연, 걷기, 여행, 예술이라는 공통 분모 아래에서 하나로 묶여 있다. 어느 한 군데를 가더라도 네 가지 공통 분모 중에 두 가지는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한 마디로 일석이조라는 얘기다. 거창하고 특별하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든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내가 나를 위해 여유를 얻고 만족할 수 있는 곳이라면 혼자 떠나는 여행길은 늘 설레고 즐거울 테니.
나홀로 여행은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다.
혼자 길을 찾고 혼자 걸으며 그렇게 면역력을 키운 이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왔을 때 적어도 방황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다.
- '피로회복제 같은 산책길 아차산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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