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이 난해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이라 할까?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으로 창조해 가는 것”,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인지를 엿보게 해주는 이 작품에서 깨달은 이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충만한 생명력으로 눈이 환히 열리고, 왠지 모를 가슴 뿌듯한 만족감이 휘감아 도는 감동에 젖어든다. 장학사와 교장이셨던 할아버지, 그러나 주변 이들의 시선에는 비천하기만 해 보이는‘염장이’로 죽은 이들을 씻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손자‘상호’는 베트남 어머니를 둔 절름발이 고3 소년으로 아이들로부터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한다. 이렇게 보면 소설의 축을 구성하는 이 두 사람에게서 사랑과 희망, 삶의 가치와 같은 미덕을 발견 할 수 있기나 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빚에 쫓겨 도피한 부모를 대신해 소년 상호는 이렇게 할아버지와 단 둘의 생활을 이어간다. 할아버지의 고물자전거와 그 뒤에 항상 실려다니는 꽹가리, 기력을 잃고 아픈 독거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침과 뜸을 떠주기도 하고, 나무 그늘아래 노인들에게 소리를 들려주며, 손수 마련한 쑥물로 주검을 정성으로 씻기는‘우주의 청소부’, 할아버지 안교장은 미래가 확보되지 않는 모든 존재를 소멸시키는 시간의 잔인함을 이해한 자이다. 그래서 줄곧 하여왔던 교육계에서 졸업을 하자 다른 새로운 일, 즉 자신만의 미래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새내기로서 실천의 길을 걷는다.“나는 낙엽이다. 떨어져 내려 어린 나무들의 뿌리를 덮어주고 있다가 점차 썩어 거름이 되어”주는 길.... 손자 상호에게 그런 염장이 할아버지는 짓궂은 아이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이유이며, 신체의 취약성과 피부색의 차이는 반복되는 괴롭힘의 대상이 되고, 이들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무력감은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의 삶을 매개하며, 또한 인생 덕목의 가치를 상징하는 억불 바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억불산 자락아래에 있는 그네들 집에서 바라보는 자비로운 성상의 얼굴을 한 바위의 성스러움과 의기는 이들에게 의지이자 꿈과 희망의 가르침이다. 만인을 구제한다는 억불(億佛 ; People Buddha), 억불을 닮고자 하는 소년에게 할아버지의 모습, 무언의 삶의 행위에서 억불과 닮은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한 때 부와 권력을 가진 뭇 남성들과의 편력이란 사람들의 몰이해로 외면당하는‘송미녀’라는 노파의 병든 몸에 뜸을 떠주며 방치되고 포기된 그녀에게 사랑을 통한 삶의 의미라는 연민을 선물하며, 제자들과 베풂의 덕으로 모인 돈은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소용하는 염장이의 삶은 억불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소년 상호의 세상에 나가기 위한 홀로 섬의 과정에 스며든 이야기들, 그리고 할아버지 안교장의 우주의 시원, 생명력의 본질에 대한 거침없는 철학적 담론들이라 할 수 있다. 악동들의 해코지, 인생 진로의 선택, 빙충맞은 자신을 응원해주는 2년 후배인 누님같은 순영과의 풋풋하고 순박한 사랑으로 설레는 모습이나, 억불바위를 오름으로서 의지와 삶의 목표를 확인하고 마침내 괴롭히던 녀석과 맞장을 뜸으로써 유약한 소년시절을 졸업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로 나아가는 일련의 성장기는 손자의 우물 속으로 자신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할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후원의 손길과 결합하여 인간의 성장에 대한 우리네의 관점을 한층 성숙시켜 준다. 더구나 우주 성장의 시원(始原)으로서 여인의 배꼽이 의미하는 원초적 유혹과 인간성의 유지에 있어서 성적 쾌미의 가치, 산난초 꽃의 적갈색의 음험한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던 연꽃, 혹은 환혹의 구멍, 그 젊은 날의 송미녀의 허방 노릇에 대한 찬양은 여신(女神), 아니 숭고한 억불의 경지에까지 올려놓는다. 하~아, 미녀의 허방은 억불의 자비라! 그리곤 염장이라는 죽음을 씻는 이의 허무의 마주함은 생명력을 더 자유롭고 헌걸차게 키워나가는 것으로서, 죽음의 이해가 곧 성숙한 삶의 요소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처럼 염장이 할아버지의 모습은 억불의 현신(現身)이며,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습으로 읽히기도 한다. 또한‘알베르 카뮈’『페스트(흑사병)』의 주인공 의사‘리외’처럼 각박하고 쓸쓸한 세상을 치유하는 사랑과 희망, 자유의 화신(化身)이기도 하다. 한편, 자신의 성장을 확인키 위해 상호가 떠나는 다산 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무전여행의 여정에서 백련사 방장스님과의 조우 장면은‘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중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의 오마주가 아닐까 하는 재미를 주는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었다는“그 늙은 스님의 갸름한 얼굴 윤곽, 쌍꺼풀 진 눈매,...”, “혹시 그 스님이 내 외할머니를 버린 그 한국군인 아니었을까”하며 ‘사랑과 배반의 슬프면서도 오묘한 역사’를 떠올리는 것은 이 소설의 사유가 달리는 그 폭과 깊이의 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승원 선생의 그 어떤 작품보다 관능적이지만 또한 그 어느 작품보다 숭엄함과 경외를 느끼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은 결국 한 길이며, 한사코 느긋하게 무늬를 따라 순조롭게 풀어내야 하는 것이 삶의 순리이며, 줄곧 하던 일을 졸업하면 반드시 새내기가 되어야 한다는, 정말 “찬란한 슬픔의 봄”같으며, “고귀한 순정의 눈물 같은” 인생교본의 결정체라 하여야 할 것이다. 오묘하게 가슴을 저리게 하는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
|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란 소설을 기억한다.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소년이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닮으려고 노력하다보니 어느 날 큰 바위 얼굴이 되어 있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한승원의 신작 소설 [피플 붓다]는 한국판 [큰 바위 얼굴]이다. 억불바위(Peple Budda)는 인민을 구제하는 부처라는 뜻으로 작가의 고향이자 소설의 배경인 장흥의 억불산 꼭대기에 있다. [피플 붓다]는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운명을 타고난 소년의 성장소설이자 억불바위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았던 안 교장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
시지프스들 한국청년과 베트남 처녀 사이에 태어난 상호는 한쪽 다리를 약간 전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딘가로 떠나버린 상호는 전직 교장으로 현재 염장을 하는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상호는 절름발이에 이국적인 외모, 할아버지가 염장이란 사실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의 대상이다. 게다가 상호는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출생의 비밀까지 듣게 된다. 스무 살도 안 된 소년이 짊어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론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교장은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 상호의 아버지는 누군가 집 앞에 버리고 간 업둥이였다. 이국으로 떠돌던 상호 아버지에게 사업자금을 대주었지만 빚만 지고 도망 가버렸다. 상호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버리자 안 교장은 자신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자 상호를 키우며 살았다. 오순옥은 안 교장과 같은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는 교사였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신체의 비밀이 있던 그녀는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마음의 병까지 얻어 제정신을 잃어버렸다. 상호도, 안 교장도, 돌아가신 상호 할머니도, 상호아버지도, 상호어머니도, 오순옥도 모두 시지프스의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프로쿠르테스의 침대 안 교장의 도움으로 6개월 동안 한문선생을 했던 문시흠은 자신의 허물엔 눈을 감고 자신만의 기준을 최고의 가치로 믿는 프로쿠르테스를 닮았다. 그는 명확한 근거 없이 억불바위를 며느리 바위라고 낮춰 부르며 자신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애지중지했던 외아들에게도 외면 받았던 문시흠에게 이념은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하는 분재처럼 자라지 않는, 아니 자라는 것을 거부한 사람이었다. 박정식은 억불바위를 액자에 가둬두고 매일 백팔 배를 하고 명상을 했다. 박정식은 억불바위를 통해 옳은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억불바위를 프로쿠르테스의 침대에 눕히고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는 억불바위를 숭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던 것이다. 대학입시를 앞둔 상호는 학교가 자신과 친구들을 침대에 눕혀 침대의 길이보다 영혼이 짧거나 길면 죽이는 프로쿠르테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라. 사람은 어느 누구든지 다 자기의 출신내력...... 깊은 뿌리를 재대로 알아야 굳세고 올바르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잔인하고 혹독하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나’라는 존재를, 나 스스로처럼 사랑하고 아끼면서 도와주지 않는다. 나를 참으로 나답게 건설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야.”(45쪽) 살면서 여러 번 프로쿠르테스의 침대에 누웠다. 나는 그것이 타인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동안 그곳에 누웠던 것은 타인의 강요가 아니라 내 의지는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호는 침대에 눕기를 거부했다. 상호는 선생님이 원하는, 수능을 보고 일류 대학에 가는 삶을 버렸다. 억불바위 돌아가신 상호의 할머니는 상호에게 억불바위의 전설을 들려주었다. 상호는 부모가 그리울 때나 한 소녀 순영이 아릴 때, 절름발이와 이국적인 외모로 놀림을 당할 때, 할아버지가 염장이란 사실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할 때 억불바위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상호는 친구들이 수능 시험을 보는 날 억불바위를 등반해 직접 보고 올 계획을 세운다. 마음이 힘든 상호가 찾아가는 사람은 후배 김정순영이다. 순영은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을 해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건강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는 상호에게 다정하지만 매서운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상호는 순영의 도움으로 소설을 쓰고 시를 쓰는 꿈을 키워간다. 억불바위를 바라보며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안 교장은 억불바위를 닮아갔지만 김정순영도 나이는 어리지만 또 다른 억불바위라는 생각이 든다.
졸업 그리고...... commencement에는 시작과 졸업이란 뜻이 있다. 우리가 익히 경험했듯 졸업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상호는 자신을 놀렸던 친구들과 한판 붙는다. 그것은 자신과 친구들이 제대로 졸업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억불산 위의 억불바위가 얼마나 어질고 자비롭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가, 그 바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과 태도를 배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야.” (219쪽) 인용문은 억불바위와 억불바위를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는 [피플 붓다] 속 인물인 소설가 선우길의 말이지만 작가 한승원이 [피플붓다]를 써야했던 간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지프스의 운명을 가진 인간들에게 삶은 빠져 나오려고 버둥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일지도 모른다. 조정래는 소설 [인간연습]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시행착오를 통해 상호가 할아버지를 닮은, 억불바위를 닮은 사람으로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은 등단 42년의 노작가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혹은 견디고 있는 시지프스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책이다. 케세라 세라! 이뤄질 것이 이뤄질 것이다.
|
|
세상살이가 힘든것은 다같은데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것 같습니다.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처럼 남들이 뭐라든 자신의 길로 꼿꼿히 걸어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만 남들과의 경쟁속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게 그려집니다. 풍족하지만 만족할줄 모르고 남을 꼭 이겨야만 살아가게 아이들을 만 들고 있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잔잔한 감동의 스토리였습니다. 오해, 갈등, 미스터리, 집착, 질투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이 소설속에 등장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은 마치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들여다 보게합니다.
세상에 버려진 아이라는 가려린 이름을 가진 아이 상호는 교장직을 퇴임하고 염장일을 하는 할아버지와 살아갑니다. 그리고 상호의 이야기속에는 "억불바위"이 등장합니다.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처럼요. 친구들에게 요즘말로 왕따를 당 하는 상호는 학교가 정말 싫습니다. 아니 세상이 너무 싫습니다. 염장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 들이 자신과 할아버지를 무시하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억불바위를 바라보며 세상눈에 맞춰 살필요도 없고 최소한의 의식주와 자신의 신념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결국 상호는 불편한 몸으로 산에 오르게 되고 할아버지는 상 호를 말리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힘든 일이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그 산을 헤쳐나가 평지를 찾는것은 자신의 몫이겠죠. 제가 상호의 처지였 다면 아마 포기가 더 빨랐을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최소한의 필요한 부분만 가지고 살아갈수 있을까요. 욕심은 끝없 는 것이고 채우기에 바쁜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요. 돈을 쫒아 아니면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보다는 다해주고 나중에 보상을 바라는 모습을 아닐까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가 참 고달프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에 수십번씩 왜 왜 왜 합니다. 이소설에서 꼭 무언가를 얻기 보다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라는 소중한 말을 새깁니다. 내가 타인에게 하는 손가락질 그리고 내가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그걸 왜 몰랐을까 하구요. 격한 감정이 생길거라는 기대와 달리 인생의 뒷면을 씁쓸하게 생각되는 소설입니 다. |
|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두개의 축으로 소개한다. 하나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한국청년과 베트남 여자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성장, 다시 한국남자와 혼인을 해서 태어난 아들 상호의 이야기와 존경받던 직교장이었지만 퇴임 후 독거노인들의 벗이 되어주고 남들이 다 꺼리는 염꾼 노릇을 하며 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참으로 안 어울릴듯 하면서도 묘하게 이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향에 빚을 갚는 심사로 이 소설을 썼다는 노년의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삼각함수를 이용 바위의 높이를 실측하기도 하고 광주지방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은어를 수집하기도 하였다니 참으로 많은 것을 조사하고 준비한 듯 싶다.
늘 놀림을 받는 혼혈아이지만 담순이(여자담임선생님)이 sky반에 넣어 명문대에 입학시키고자 할 정도의 월등한 성적을 내는 상호다. 하지만 상호는 기본 어른들의 가치관에 대항하며 수능시험보기를 거부한다. 이때 큰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 바로 할아버지다. 교육자이었기에 더욱 고지식하고 완고하며 정해진 길 이외에는 모를 것 같을 분인데 늘상 상호에게는 큰 버팀목이고 응원군이다. 할아버지는 상호에게 억불산에 있는 억불바위처럼 아무말도 없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게 존재하기에 학교라는 조그만 사회에서도 무시받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헤쳐나가고 이겨나갈 것 같은 용기와 희망의 끈이 되어주신다. 소설 속의 억불바위는 상호에게 할아버지인 듯 세상에 큰 바위얼굴로 묘사된다.
시골길이 보이고 너른 들판도 보이고 뒤로 산도 보인다. 토속적 냄새가 듬뿍 담겨 있는 문체와 저절로 그려지는 풍광은 오랜만에 가슴속에 따스함을 선사한다. 어쩌면 열기가득한 아스팔트 도로들과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져 어느곳에서도 사람냄새를 찾아볼 길 없는 빌딩들과 아파트의 숲 속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요란스럽지 않고 조용하며 여유만이 그득한 할아버지와 상호의 일상은 색다름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가운데에서도 다른 이들을 먼저 보살피고 분명 돈이 되는 일이 아닐진데 땀을 뻘뻘 흘리며 염을 하는 할아버지의 일상속에서도, 주변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도 오랜시간 몸에 배어버린 삶의 철학을 느낄수 있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옳곧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찡하게 다가온다.
"하늘의 별은 그냥 별이 아니고, 내 눈빛이 별빛을 만드네.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야..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감싸안으려 했던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몸안에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혈기 상호는 억불산에 있는 억불바위에 오르고자 한다. 언젠가 부터 억불바위는 그를 향해 잘 될거야 라고 말하며 희망을 주고 그런 억불을 탐색하기 위해 몸을 만들기 위한 역기를 들고 운동을 하고 등산장비를 구비한다. 친구들이 수능을 보는 날 안교장의 든든한 믿음을 뒤로 한채 드디어 상호는 억불산에 오른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좀 있기는 했지만 줄자와 각도기를 이용해 길이를 재고 삼각함수를 이용해 높이를 잰다. 1미터 30센티의 오차가 나기는 했지만.... 그 때 상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저자도 언급을 했지만 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미국 소설사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얼굴>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억불은 "피플 붓다"이고 인민을 구제하는 부처라는 말... 우리의 토속신앙속에 있는 따스함과 인자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
|
아직 검증이 안된 신인작가 작품이기에 약간은 저어하는 마음에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작품에서 기대 이상의 감동을 맛보게 되는 그런 의외성과 놀라움도 좋지만 이미 전작을 통해서 재미와 감동을 검증받은 중견작가의 신작을 만나는 즐거움도 꽤나 쏠쏠하다. 그만의 독특한 문체와 필력을 다시 맛볼 수 있고, 전작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어떻게 들려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절로 가지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연인은 신선함과 설레임을 주지만 오래전 연인은 다시 만난다는 반가움과 함께 저절로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고 할까? 그래서 오래전 읽은 <아제아제 바라아제>와 <추사>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한승원 작가의 신작인 <피플 붓다(랜덤하우스 코리아, 2010년 10월)>는 그런 반가움과 아련함과 함께 그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에 묘한 흥분마저 느끼게 되었다. 다 읽고 나니 젓갈이 잘 숙성되면 짠 맛은 덜해지고 특유의 감칠 맛이 지극한 미각의 행복을 준다고 하더니, 제대로 곰삭은 작가의 노련한 필치를 맛보는 즐거움과 이제는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삶에 대한 더욱 따뜻해지고 깊어진, 그리고 한결 여유로워진 작가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감동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하는 행복한 책읽기였다.
전라남도 장흥 억불산(億佛山) 자락 마을에서 살고 있는 18세 소년 상호는 사연 많은 아이다. 상호의 어머니는 라이 따이한(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으로 베트남에 장사하러 온 상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 한국으로 와 상호를 낳았다. 상호의 아버지는 이것저것 사업을 한다고 집안 돈을 거덜내더니만 결국 실패를 하고 달아나버렸고, 상호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가버려 상호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나게 된다. 상호는 불편한 다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할아버지가 시신을 염하는 “염장이”라는 것 때문에 급우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그러나 상호는 심지가 단단한 아이다. 수능시험과 명문대 진학이라는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예술 대학으로의 진학을 맘먹고 친구들이 수능시험 보던 날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억불바위를 직접 오른다. 또한 자신들을 괴롭혀온 친구들을 혼내주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가 하면,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동네 여자 후배와 풋풋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호를 옆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 안인호는 그런 상호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한다. 전직 장학사이자 교장이었지만 정년 퇴임 후 염장이로 생계를 잇고 있는 안교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우주를 청소하는 쇠똥구리라는 마음으로 염장이 일을 계속하고 한편으로는 몰래 동네 외로운 노인들이나 불우한 이웃들을 침과 뜸으로 치료하고 먹을 거리를 도우면서 살아간다. 그는 삶의 희망을 놓으려는 한 많은 여인 송미녀를 사랑으로 치유하려 하고, 예전 같이 근무하던 동료 여교사였지만 심한 정신적 충격에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자신에게 매달리는 오 교사를 주변의 만류와 시선에도 불구하고 거두어 보살핀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안교장에게서 만인의 부처(People Buddha)인 억불바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 졸업식 날 상호는 할아버지 가르침대로 “제대로”된 졸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3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급우를 불러 세운다. 자신의 고향에 빚을 감는 심사로 이번 글을 완성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전라남도 장흥 억불산 억불바위 아래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향에 바치는 헌사(獻辭)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등단한지 42년이라는 이력이 말해주듯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경지에 이르렀을 작가의 단단한 내공으로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삶에 대한 사랑과 감성을 과장되지 않고 담백한 필치로 풀어낸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동화되어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는 그런 감동이 느껴져 다 읽고서도 금새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여운이 오래 느껴졌다. 남다른 출생배경으로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상호가 좌절하지 않고 점점 단단해지는 성장 모습과 정형화된 사각형의 삶이 아니라 오각형의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읽으면서는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게 된다. 그리고 미륵부처의 형상인 억불바위를 점점 닮아가는 상호의 할아버지 안교장의 삶은 일종의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젊었을 때 장흥의 뭇 권력자들과 사내들을 쥐고 흔들었던 여인 송미녀 할머니가 팔순의 나이가 되어 인생에 대한 회한에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자 그녀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식은 지 오래되었던 사랑의 불꽃을 다시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보듬고 안아주는 안교장의 모습은 세속의 애욕을 넘어선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읽은 "사랑은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의 대답 - 책 첫머리 작가의 말 제목도 "사랑 그리고 구원, 그 영원한 우리들의 화두"이다 - 을 바로 억불산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호와 안교장,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 단지 눈에 보여지는 형상이나 또는 자신의 머릿속 아집에 집착하여 그릇된 시선으로 행복과 불행을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뜻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 뜻을 실천해 옮길 때 비로소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뜻이 바로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안교장의 삶이야말로 인간 세상에 현신하여 민중을 구원한다는 구세주 억불바위 미륵불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전남 장흥에 가면 낡은 자전거에 꽹과리가 들어있는 가방을 뒤에 싣고 좁은 논길을 달리는 안교장을 ,그리고 집 툇마루에 앉아 억불바위를 바라보고 있을, 더 단단한 모습으로 바르게 성장한 상호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이 있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가의 장흥 고향 마을 억불바위는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에게는 이제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을 넘어서는 더욱 큰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이제 전남 장흥에 있다는 억불바위는 장흥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닮고 싶어하는, 그리고 닮아가야 하는 그런 상징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년초에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금강스님/불광출판사)를 읽고는 가고자 맘 먹은지 오래전이지만 아직도 떠나지 못한 남도 여행길에 볼거리가 하나 늘었다고 좋아했었는데 이제 그 여행길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상호와 안교장이 살고 있는 억불산 아래 마을과 그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억불바위를 말이다. 갈수록 풍성해지는 남도 여행길, 꿈꿔보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행복해진다.
|
|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많은 삶의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뭐 그것을 108번뇌라고 해도 되겠지만 말이죠. 그 옛날 석가모니는 무엇을 찾아 고행을 하고 수행을 했을까요? 그리고 또 얻은 것은 무엇이고 또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또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한 그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랑과 구원의 모든 삶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는 하나의 소재로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작가의 고향에 있는 장흥의 억불산이에요. 억불산은 대략 500미터 정도의 작은 산이지만 천문과학관도 있고 또 전설을 간직한 바위가 하나 있기도 하죠. 며느리바위라고 하는데 옛날 한 스님이 시주를 청했지만 못된 인색한 시아버지가 스님을 쫓아버리는데 며느리에게 큰 비가 와서 마을이 잠긴다고 억불산에 피신하라고 하면서 당부의 말을 하게 되죠.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건데, 항상 그렇듯이 금기는 깨어지라고 있는 건가 봐요. 시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며느리가 돌아보게 되고 등에 업은 아이와 함께 바위가 되어버렸다는 전설이에요. 명산인만큼 그 곳에 문학을 꿈꾸는 소년이 한 명쯤 없으면 이상할 것 같기도 해요. 아마 장흥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억불산이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네요. 억이라는 뜻이 만민을 뜻하고, 억불이 만민을 구제하는 부처인 까닭이겠죠. 피플 붓다는 이런 억불산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 삶을 바라보고 있는 억불 바위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어떻게 만민을 구제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때로는 힘들고 좌절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지만 희망이 있기에 행복을 찾아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억불 바위 밑에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비록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인생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모습 속에서 우리들은 힘든 인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요? 언제나 우리 곁에는 억불 바위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을 테니 말이죠. 마음 속에 누구나 억불 바위와 같은 존재가 하나씩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치 아이에게 든든한 아버지처럼 말이죠. |
|
피플 붓다. 이 말이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억불산의 억불을 영역한 것이 바로 피플 붓다다. 억은 만민을 뜻하고, 억불은 만민을 구제하는 부처를 의미한다. 이 억불산에는 억불바위가 있다. 소설은 바로 장흥의 억불산을 소재로 두 노손을 등장시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노손의 내역이 흔한 것이 아니다. 안 교장은 실제 낳은 아들이 없고, 주운 아들을 입양해서 키웠다. 그 아들이 바로 손자 상호의 아버지다. 상호의 엄마는 월남전 당시 참전한 군인과 베트남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다. 이 구성원들은 어쩌면 점점 많아지는 한국의 다문화 가족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것은 상호와 안 교장이다. 상호가 고3으로 과도기를 넘어가는 과정으로 다루고 있다면 안 교장은 삶의 조그마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단계에 있다. 상호의 이야기가 혼혈이 겪는 어려움과 괴로움을 다루고, 안 교장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산다. 그래서인지 두 노손의 이야기 분위기는 다르다. 손자 상호는 왕따 등의 괴롭힘으로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는 반면 안 교장은 노년에 얻은 삶의 깨달음을 조용히 실천하면서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 노손의 행동은 그래서 더욱 안정적이고 여유와 힘이 느껴진다. 상호의 생활을 따라가면 우리 교육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하나씩 드러난다. 상호의 저항이 약간은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학교가 바라는 것이 아이들의 장래가 아닌 몇 명을 서울대 등에 보낼 것인가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수험에 매달린 아이들의 정확한 적성을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방법만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예전부터 변함없이 내려온 일이다.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때문에 왕따나 은따 같은 문제는 그냥 묻혀버린다. 상호의 성장은 바로 이런 제도권(상호 표현으로는 프로쿠르테스의 침대다)을 거부하고 넘어서는 것이다. 안 교장은 전직 교장이자 장학관이었다. 은퇴 후 아내의 죽음부터 염장이가 된다. 소설 속에 드러나는 그의 인품과 깨달음은 높다. 그가 염장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이 그만두길 바라고 조금씩 돈을 보태는 것도 바로 과거 때문이다. 한 싸움꾼의 이야기는 안 교장이 어떤 선생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말과 행동을 가려하고, 학생을 배려하고, 나 자신보다 학생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과거 말이다. 물론 그의 행동 때문에 손자 상호가 놀림을 받지만 그는 인간은 결국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준다. 당사자인 상호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간에 정성을 다해 시체를 닦는 모습을 보고 나름대로 깨달음은 얻는 장면은 아주 인상 깊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로도 구도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상호가 성장하는 모습에선 성장소설이, 안 교장의 행적을 따라가면 구도소설이 된다. 이 둘을 모두 잡으려는 것은 사실 큰 욕심일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양쪽 모두를 강하게 부각시키기보다 자연스럽게 섞으면서 무난하게 풀어내었다. 상호의 성장이나 마무리가 성장소설의 전형을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좀더 고민해야 할 안 교장의 행동이 너무 자유롭다. 염장이 일이나 송미녀나 오순옥 선생과의 스캔들로 어느 정도 고민이나 행동에 제약이 있을 법한데 말이다. 이 한 권의 소설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다문화 가족, 교육문제, 왕따, 정체성, 성장하지 못하는 학문과 사람, 일방적인 맹신의 부작용, 노인문제 등이 담겨 있다. 조그마한 마을 무대로 하여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담겨 있는 이야기가 풍부해 머릿속에서 계속 이야기가 꿈틀거린다. |
|
한승원님의 신작소설 출간소식에 반갑게 찾아든 책 <피플 붓다>. <피플 붓다>는 한마디로 한국판 <큰 바위 얼굴>이라 생각하면 될것 같다. 이 소설은 작가의 고향 장흥땅의 진산인 억불산(億佛山)의 꼭대기 부근에 우뚝 솟아 있는 억불바위에서 힘을 받아 쓴 것으로 억불은 '피플 붓다(People Buddha)'이고 인민을 구제하는 부처라는 말이다라고 작가의 말에서 하고 있다.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상호와 죽은 사람의 염을 해주는 전직 교장 할아버지의 살아가는 모습이 두 축을 이루고 있는 '피플 붓다'는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 딛으려는 상호의 이야기와 죽음의 그림자를 따스하게 정리해 나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다문화가정의 아픔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베트남계 혼혈아 상호와 전직 교장으로 장학사까지 지냈지만 지금은 염장이로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고등학생 상호는 틀에 짜여진 어른들의 가치관에 대항(?)해 수능을 거부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상호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마치 억불바위처럼 상호를 보듬어 안고 지켜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명문대라 말하는 소위 SKY를 거부하고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소설과 시 쓰기를 꿈꾸는 상호는 작가의 젊었을 적 모습과 닮아있다. 작가또한 법대에 진학하길 원하는 부친의 뜻을 거역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 귀향한 적이 있다고하니 말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노력하는 상호는 억불바위에 오르기도 하고 무전여행을 하기도 하며, 자신을 따돌리던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는 등 자신의 존재를 걸고 나름의 방법으로 대항한다. 상호가 첫 발을 내딛고 헤쳐가야 하는 험한 세상의 등대같은 역활을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를 빼닮은 억불바위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안교장은 장흥바닥에서 명망이 높은 분이었으나 은퇴 후 염장이를 하며 상호를 돌보고 있다. 그 의 모습에서 모든것을 보듬어 품어주는 넉넉한 마음의 억불바위 모습을 본다. 굳이 염장이를 택한 것도 그 속에서 안교장의 구도자(?)적인 모습을 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세상은 참으로 잔인하고 혹독하다.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나'라는 존재를, 나 스스로처럼 사랑하고 아끼면서 도와주지 않는다. 나를 참으로 나답게 건설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야. (p.45)
할아버지 안교장은 늘 말씀하신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는데 나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직 내가 개척해 나가야만 된다. 옳은 말씀이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살아주지 않는 한 내 인생을 누구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내 인생은 어차피 내 인생인데... 상호가 기성세대에 대항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잠재해 있는 모습이 아닐까싶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을 뿐이지...
책을 읽고도 오랫동안 마음이 먹먹하다. 지금 우리네의 모습들을 본 듯하여...
|
|
오랜만에 좋은 책을 한권 읽었다고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은 내 한쪽 가슴이 찡할 정도로 무언가 예리한 것으로 쿡 찔러 놓고 간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다. 또한 이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그 무슨 가치를 위해 이 험난한 세상 속에 이전투구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 것 같기도 하다. 누구는 말하기를 인생은 한번 살아 볼만 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말의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동의를 해줘야 할지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음은, 아마도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과 이를 평가하는 우리의 시선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건데 그 동안 책에서 우리가 배운 대로 세상이 그렇게 흘러온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제대로 배웠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느새 그걸 잊고 세상을 잘못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책의 겉표지를 보면서 나대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문득 생각났던 건, 자연의 조화로 우연하게 만들어진 하나의 바위를 두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이야기 속에서 권력이나 명예 그리고 돈을 위한 삶이 아닌, 주어진 자신의 운명에 겸손하며 항상 낮은 자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온화하게 품고 묵묵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려 했던 주인공의 어렴풋한 모습 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사뭇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작가가 다루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은 호손의 그것과 그리 크게 빗나가지 않을듯해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서두에서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인 억불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설명해놓으면서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지나온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들추어 이 한권의 책에 묶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주인공 상호는 혼혈인으로 태어나 자신을 버린 부모를 대신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내성적인 성격의 고등학교 입시생이다. 그는 온전치 못한 한쪽다리와 한때 장학관과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홀로 말년에 쓸쓸하게 염장이로 지내는 가난한 집안 배경의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학교와 사회의 제도에 스스로 얽매이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꿈꾸고 희망하는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에 할아버지는 그에게 집에서 훤하게 내다보이는 억불산의 억불이 의미하는 뜻을 알려주며 소소한 것에 개의치 말고 앞으로 그가 갈구하고 희망하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퇴임교장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거노인과 부모를 잃은 학생들의 위해 남몰래 후원금을 전하면서 마치 살아 있는 억불처럼 말년의 인생을 가치 있는 삶으로 채워가며 살아간다.
작가는 이 책의 이야기에서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인 상호와의 교묘한 결합을 통해 나약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려고 것은 아닐까 싶다. 체면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권력 앞에서 쉽게 무릎 꿇고 굴복해버리는 비굴한 삶보다는 어느 것이 되었던 옳고 의미 있는 일이라면 주위의 무시와 핍박이 있을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부단히 노력해가는 삶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때로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싸우며 마침내 이를 취하여서는 그것이 마치 무슨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고 의기양양해 하며 살아 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어리석었고 바보 같았음을 깨닫게 되는 일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으며, 그때 가서야 알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 많은 물음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자유를 가르치고 말하면서도 통념상 제도의 틀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오늘 우리의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기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익 앞에는 눈이 멀어 버리는 지극히 합리적인 개인들만이 득실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작가는 그릇된 우리의 인식과 잘못 이끌려져 가는 오늘의 슬픈 현상들이 안타까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 속 억불산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삶의 가르침, 그리고 이를 묵묵히 실천 할아버지와 상호의 모습에서 이제 우리도 이쯤에서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있는 양심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도록 귀를 열고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는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
![]()
예전에 한승원님의 "추사"를 읽어서 그런지 "피플붓다'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문체의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아련하다. 그래서 염장이 안 교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작가 한승원과 잘 어울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편안하다. 때로는 먹먹한 감정에 숨을 몰아 쉬어야 할 때도 있지만 모든 것들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안 교장의 시선을 따라가면 마음이 평온해져 온다.
하지만 억불산이 내려보고 있음에도 상호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평온하지 않은가 보다. 자신이 가진 것들이 평범하지 않아서겠지만 스스로도 당당하게 나서지 못한다. 이런 상호에게 할아버지 안 교장은 늘 억불바위처럼 단단하게 그를 보듬어준다. 아이들이 수능을 치는 날, 상호는 억불바위와 마주하고자 한다.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상호에게는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나와 다르다 하여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는 세상이지만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억불산과 억불바위는 그 날 상호를 온몸으로 받아주었을 것이다. 절름발이로 암벽 등반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 알지만 할아버지 안 교장은 상호의 길을 막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물론 상호가 암벽 등반을 잘 할 수 있도록 상호 모르게 힘을 쓰긴 하지만 말이다. 이것이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교장까지 지낸 사람이 염장이로 살아가는 모습은 소설속이긴 하지만 낯설기 그지 없는 일이다. 제자들은 은사님이 이런 험한 일을 하는 것에 마땅찮아 하지만 그 누구도 안 교장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금전적으로 힘이 들어 염장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상호의 학비를 대고, 최소한의 의식주만을 해결한채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타인을 위해 내어 놓는 그의 모습이 억불바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억불바위가 전혀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지지 않고 원래 그곳에 있었어야 할 존재로 느껴지는 이유는 안 교장이 이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격정적인 감정을 가슴에 품고도 풀어내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는 평범한 사람, 한 때 몸을 섞은 여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 안 교장은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릇이 큰 사람이다.
억불바위처럼 단단하게 온 세상을 덮어줄 정도의 넓은 마음을 가진 안 교장, 염장이로 살아가는 그 길이 위태롭고 슬퍼 보이지만 이 길은 누구나 홀로 이겨내야 할 세상살이인 것이다. 안 교장이 오순옥에게 한 말처럼 말이다. '피플붓다'의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의 마음속에 잔잔하게 퍼지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아주,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동화속의 행복한 결말은 아니지만 안 교장과 상호, 오순옥 등이 힘든 세상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