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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폴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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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요나손과 버지니아 울프가 만났다. 혹시 왜 우리나라에서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오베라는 남자』 혹은 조금 다른 감흥이긴 해도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와 같은 소설이 없을까 했다면, 아니면 왜 우리나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 소설이 손으로 손꼽을 정도도 안 되는지가 궁금했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가 ‘너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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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요나손과 버지니아 울프가 만났다.

 

혹시 왜 우리나라에서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나 『오베라는 남자』 혹은 조금 다른 감흥이긴 해도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와 같은 소설이 없을까 했다면, 아니면 왜 우리나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 소설이 손으로 손꼽을 정도도 안 되는지가 궁금했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가 ‘너무’ 많이 쓰이고 그 때 마다 TV에서는 ‘정말’로 자막처리 하다 못해 급기야는 ‘너무’를 부정의미로 해석하지 않아도 틀린 어법으로 보지 않게 한글문법의 외연을 넓힐 정도가 되었고 (영문법에서는 too ~ to 용법으로 부정어와 연결되어 쓰는 것이 여전히 건재하다), 평론가가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 못하고, 교수는 ‘가르키다’와 ‘가르치다’를 구분 못하고, 국회의원은 ‘X의원님은 Y라는 견해가 계십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세상이라 치과 코디네이터들의 ‘비용은 25만원 되십니다”와 같은 어법파괴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거나 공중파 방송에서 ‘우리나라’ 대신 ‘저희 나라’가 리포터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신경을 건드려 세종대왕께 종종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면, 그래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많은 거짓말과 위선이 폭력적 언어와 합세해 민주주의의 지향점으로 난무하여 편안하게 호흡할 수 없다면 제2의 창작으로 수십 년간 한국 소설을 영어로, 영어권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며 남은 한 번도 타기 어려운 번역상을 다섯 번이나 타며 시집 한 권 ‘아무리 아니라 해도 혹시 그리움이 아닐까’를 빚어내 시인이 된 전경자가 73세 할머니가 되어 세상에 내놓은 『바이폴라 할머니』를 읽어볼 일이다.

 

까칠하지만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로 당참과 파격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나’는 바이폴라가 아닐까 하여 정신과 의사에게 물었더니 노년에는 조증과 우울증이 왔다갔다하는 조울증(躁鬱症)이 아니고 우울증일 뿐이라 한다. 그럼에도 ‘나’를 양극성 장애인 바이폴라로 드러낸다. 그러나 바이폴라 할머니가 모노폴라(?) 70대 할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중년 혹은 청년의 대화보다 질 높은 quality를 지닌다. 70이 넘었어도 감정과 감성이 조증과 울증을 담아낼 여유가 있는 capa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아낼 여유가 있다고 그것을 편안해 하지는 않아 스스로 탐침한다. ‘미친 사람이 자기가 미쳤다고 하면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미치지 않은 사람이 자기가 미쳤다고 하면 미친 사람인가?’라는 의문을 ‘자기가 미쳤는지 미치지 않았는지 모르기는 미친 사람이나 미치지 않은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며 스스로 풀어낸다. 언어적 감수성으로 동네사람들이 ‘재는 천재’라고 하는 까칠하고 예민한 소녀가 할머니가 되고도 그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기에는 세상은 ‘미치고 싶다고 해서 미치는 게 아니듯이 미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1에 묘사되는 지옥과 천당은 이 소설이 단순한 줄거리를 지닌 에피소드가 아님을 시사하고, #3에서 ‘나’가 키우는 개와 ‘나’가 닮았다고 하는 편의점 매니저의 말 때문에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에 대해 정리한 것은 마치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s)’ 이론을 더욱 세분한 것 같으며, #4의 시베리안 허스키가 ‘나’를 밀어 손목뼈가 부스러져 반 깁스를 하게 되어 기억난 ‘월간교통’의 ‘부러진 손목’ 칼럼의 표준편차 내용으로 ‘혹시 국과수에서? €> 설마 국과수에서? €> 차마 국과수에!’로 의견이 모아지고 대학생들에게 ‘서베이타이거 여론 조사’를 벌였다는 내용과 록펠러 재단에서 ‘International Ulhwabyong Research Institute’를 세웠다는 얘기에서 급기야 이 소설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로 당황케 하여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보게도 한다. 이쯤 되면 소설의 줄거리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7의 ‘제 3회 아시아 7성 종합병원 특실보조간호사 단합대회’에서 41개국을 대표하는 6개국 간호사들의 개최국의 언어가 공식언어가 되어 한국말의 어법파괴가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한국 변호사가 절도범도 ‘그분’으로, 한 가닥 한다 하는 패널들이 나와서 토막살인이나 연쇄강간범에 대해서도 ‘그분’이라 칭하는 것에 어처구니 없어하는 ‘나’는 독자들의 줄거리에 대한 관심을 사회의 일그러진 비정상 상태로 돌리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나름 자유의지로 liberal한 삶을 산 유학파 인텔리 독신인 ‘나’, 50년 전 친구 누나와의 불장난으로 인해 ‘평생을 독신으로 산 ‘눈깔사탕’ 할아버지’가 나누는 푸른 감성적 대화, 그들의 날 선 대화 속에 따스함을 간파하고 그 사이에 슬며시 스며드는 40대 여인은 가난에서 도망치는 수단으로 20년 연상과 性生活 없는 결혼계약을 하고 지금은 미망인이 된 100억 거부이다. 병실에서 만나게 되어 이름이 ‘병실 메이트’인 ‘병메’가 된 그녀로 인하여 새삼스레 겪게 되는 되돌이표 감정은 반가운 신선함과 두려운 생경함으로 겹쳐지던 끝에 ‘나’와 ‘눈깔사탕’은 삶과 죽음에 대해 신경세포가 전달해주는 느낌 그대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며 인정한다.

 

70 노인으로 시작한 소설이 73세에 마무리 될 때까지 라스콜리니코프, 스메르자코프도 보이고 베토벤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중 협주곡도 들리고 기르는 개 ‘모모’의 면역 매개 용혈성 빈혈도 검진되고 그 외에 High Level 감성의 소유자들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cynical하게 거론된다. 70대 할머니가 조울증인지 우울증인지는 여전히 성욕을 느끼는지 아닌지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의사를 아리송해 하는 ‘나’. 만사에 정신적인 규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통 부재인 듯 몹시 어색해 하는 ‘나’. 무의식과 전의식의 것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어 응시하며 침묵보다는 아픈 진실을 택하여 쏟아 내는 냉소와 아이러니는 창문 밖을 넘어 세계사 속으로 쳐들어온 행동파 100세 할아버지와 의식의 흐름을 쫓아다닌 의식파 버지니아 울프를 닮았다.

t********0 2017.06.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