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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 중인 지역에 소재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건 순전이 운이 좋아서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충남 홍성을 부르짖는 라디오 광고를 접하며 아침 저녁 통학에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이들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겼다. 하지만 서울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드넓었다. 넉넉잡아 한 시간 반씩, 하루에 세 시간을 이동한 끝에 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과 통학시간은 정확히 겹쳤는데, 이 또한 내겐 고통스러웠다. 지하철 아닌 지옥철에 몸을 실을 때마다 난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하데스와의 결투를 벌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은 커녕 인터넷도 이제 막 보급되던 시점이다.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학내에 설치된 몇 안 되는 컴퓨터에 긴 줄이 형성됐다. 필기는 당연 연필, 펜 등으로 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노트북부터 장만하는 요즘 세대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일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막상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파고 들면 허무해진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무거운 노트북을 짊어지고 지옥철을 탄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의 변화는 이토록 더딘 걸까. 얼마 전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 있던 스마트워크 센터가 문을 닫았다. 볼 때마다 문이 닫혀 있을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했다. 집이 먼 이들에겐 편리할 듯도 했지만 동시에 이용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명확했다. 얼굴을 보고 일하는 조직 문화를 지닌 우리에겐 아직까지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던 것이다. 우린 실패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재택 근무를 하는 이들은 급증 중이다.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가 증가한 데엔 통신 기술 등의 발달이 큰 영향을 행사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는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우리가 이 분야에서 만큼은 앞서가고 있지 못함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인프라의 구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인식의 전환임을 디지털 노마드 문화의 결핍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나만 해도 재택 근무에 대해 완벽히 신뢰치 못하는 편이다. 컴퓨터만 켜 놓은 채 대부분의 시간을 업무 아닌 다른 것에 할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한 편이다. 학창 시절 각종 사이버 강의를 수강함서 경험한 폐해 탓이다. 물론 당시에도 성적을 적잖이 신경 써야 했지만, 직장인의 업무 집중도는 생계와 직결된다. 실적도 올리지 못한다면 해고를 피할 수 없는 게 이 세상의 법칙임을 감안했을 때 나의 우려는 어쩌면 지나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사무실 아닌 것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일을 수행 중이다. 임대료 높은 사무실을 굳이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은 직원 복지라는 파생 효과로 이어졌다. 일 년에 얼마 간은 직원들이 모여 얼굴을 마주보고 아이디어를 나눈다. 개별 직원들에게 어디서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트북 등을 지급하는 회사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손해를 보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삶에서 윤택함이 느껴졌다. 그러잖아도 오랜 시간 동안 일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한국인들은 일 년에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을지라도 번아웃을 피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원격 근무를 기본으로 삼은 디지털 노마드들은 업무에 결코 지배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과 가정을 오가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고, 일부러 시간과 돈을 투자해감서 여행할 필요도 없었다. 디지털 노마드라 하여 이상적인 무언가는 아니었다.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 말고 노트북을 바라보는 게 진정한 의미의 근무는 아니다. 일을 할 땐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고, 그런지라 무엇보다도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인터넷 속도를 보장 받아야 했다. 책상의 높낮이 등도 많은 이들에게 고려 대상이었다. 순간의 선택이 나의 능력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무실에 얽매인 삶에 비해 부담도 컸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원웨이티켓One Way Ticket‘으로부터 비롯됐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는 도중에도 디지털 노마드적인 삶을 실천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방식의 삶이 앞으로 보다 널리 퍼질 것임을 예견했다.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말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았던 까닭은 더디지만 이미 몇몇 기업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변화를 어찌 바라보면 좋을까. 점점 더 격화되고 있는 생존 경쟁의 일환으로 이를 해석할 수도 있겠다.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인건비 삭감만을 고수할 수 없으니 말이다. 동시에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가 부디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이 독특한 사고를 하는 혹은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었으면 한다. 우린 모두 소중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