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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TV에서 인기몰이를 하던 시트콤이나 일종의 콩트를 연상케 하는 스토리의 가벼운 소설.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에 '가족의 의미'이라는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메세지를 담고 있어 그저 가벼운 마음만으로는 읽어지지 않는 소설... 그게 이 소설이 나에게 주는 '정체성'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의 수 만큼이나 많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거 같다. 각 구성원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보편성 뒤에는 서로 너무나도 다른 '배경과 생각'으로 인해 절대 '동질의 것'이라 명하기 힘든 '다양성'이 존재하므로. 이 소설에서 보여진 가족의 모습이 우리의 그것과 닮았을 수도,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가족이라는 실체'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스스로가 소속되어 있는 '가족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질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이 소설은 나름대로의 '읽는 의미'가 충분히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겠다.
가족이라는 것은 나에게 '없으면 몹시 허전하고, 있으면 다소 귀찮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게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그래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조금이나마 되새김질을 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물론 '사랑'이라든지,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정'이라든지 하는 것이 나와 아내, 아이들을 묶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자신'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자신보다 먼, 타인보다는 더 가까운 누구'라는 것을 한번도 부정해본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러한 '정의'를 기본적인 생각으로 깔고 가는 것은 조금... 아니, 전혀 다른 문제인거 같다. '금지된 사랑'이나, '잘못된 만남'이라는 말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사람이라는게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기 마련인 생물이라면(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고 가족을 구성하게되는 것은 제법 인생에서 커다란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특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경우 그 '문화적 충돌'은 더 크다. 만일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가족이 매우 느슨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면, 그래서 해체일로에 있었다면 그 경우 '새로운 가족의 결속'이 갖는 부담감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내 경우에는 이 소설의 주인공 소설가 다이조의 선택과 갈등에 많은 공감이 갔다.
개인의 삶이 가지고 있는 개개의 모습과 의미들이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느냐, 아님 가족의 '확고한 정체성'을 위해(또는 간단하게 말해 '화합'을 위해) 약간 덜 존중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지 싶다. 더구나 '가족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의 입장과(당연히 자신의 삶의 모습과 의미를 가족의 그것에 많이 투영시켰을 것) 그러한 '정체성'을 객관적 실재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자신의 삶의 모습과 의미와 무관한 환경을 다소 일방적으로 수용해야하는)의 입장을 하나로 묶어 '나는 이게 당연한데 넌 왜 그렇지 않느냐... 너는 너무 이기적이다' 라는 상처있는 말을 던지는 건 어쩜 무책임하기까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처를 깊이 숨기고 사는 '가족지상주의자'의 삶의 모습에 우리는 박수를 쳐줘야 할까? |
| 요즘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가족이란 것이 있다. 일찍이 2차 대전을 전후로 한 시절에는, 이 대가족이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극히 평범한 가족형태였다는 사실은 역사책에서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어 잘 알고는 있는 일이다. 2차 대전 전에는 장남이 그 부인과 함께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히 도리라 여겨졌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핵가족이 우세한 요즘, 이 대가족이라는 집단은 그야말로 전래동화에나 나옴직안 신기한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더군다나 어느 누구보다도 고독을 사랑하고 어떠한 신념이나 정책, 금전에 조차 거리를 두면서 냉정히 주위를 관찰해 왔다고 주장해 왔던 한 사람의 글쟁이가, 이 대가족이라는 화석과도 같은 집단에 휩쓸려 들어갈 줄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니, 꿈속에서도 상상을 못해 본 일이었다.. 주인공 다이조는 필명 하야미 타쿠야를 쓰며 활동하는 소설가로 지극히 평.범.한 남자이다. 정형화된 핵가족의 일원으로 부모님과는 일년에 밥 한번 같이 먹을까 하는 아들로 가논이란 여자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고있다. 헌데.. 이 가논의 가족에는 약간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가족이라는 것이다. 다이조는 그게 무슨 문제나며 오히려 부럽다며 가논을 안심시키지만.. 다이조는 몰랐다. 이 가논의 대가족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지를 말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모두 다섯명의 자매로 이루어져 있는 가논의 가족은, 각각의 언니들(가논은 막내)의 아이들과 남편을 포함하면 손으로도 다 꼽을수 없으며 거기에다 하나같이 개성이 강해 한명이라도 무시할수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떠밀린 격으로 다이조는 가논과 결혼을 하게 되고 하물며 21세기에 데릴사위가 되어 성까지 바꾸게 된다. 그럼으로써 다이조는 가논의 집의 대를 잇게 되지만, 잘난 가논의 집에서 대표작도 없는 글쟁이 다이조는 은근히 무시를 당하며 대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서 적응해 간다. 그러나 다이조는 아들의 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그동안 쌓여있었던 가족에 대한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집을 나와버리는데........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자유로운 남자가 대가족이란 울타리에서 겪는 생활과 대가족이라는데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의 심경을 1인칭으로 풀어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보통의 가족이 아닌,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판타스틱 미스테리 어떨땐 호러스럽기도 한 상황에서도 서로가 엇나가지 않고 끝까지 뭉칠수 있는것인지.. 그건 아마도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나의 짧은 생각으론..마지막까지 남는것은 역시 가족 뿐인것 같다. 방황하고 뻐기며 불만도 많이 하지만 사실 우리가 돌아갈수 있는곳은 집이고 가족뿐이다. 그리고 아직 서로의 화가 풀리지 않아 사이가 냉냉해도 항상 하는말.. "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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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을 몇 권 읽었는데, 그중 가장 좋아 보였어요. 핵가족 출신인 주인공인 딸이 다섯이나 되는 대가족의 데릴사위가 되면서 겪게 되는 대가족의 혼란, 갈등, 그런 것을 아주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소설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풀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어요. 가족 문제 백과사전이라고나 할까요? 심지어는 인공수정 문제까지, 가족에 대한 모든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것 같아 더 흥미로웠습니다. 츠지 히토나리가 왜 그토록 높게 평가되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까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생각날 만큼 이 작가가 좋아졌어요. 그런데 제목에 왜 <안녕, 방랑이여>가 되었을까요? 원제 그대로 <다섯째딸 가논>이 더 놓을 듯한데요? 아무튼 좋은 소설 읽게 되어 기쁩니다. |
| 작가가 츠지 히토나리라는 이유로 단순히 선택하여 보게 된 책. 그러나 그 속에는 점점 핵가족화되어가고 개인화, 단편화, 비인간화 되어가는 일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뜻밖의 문화체험의 기회를 갖게 되었던 책이었다. 주인공 나는 전형적인 핵가족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물로,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과의 왕래조차 뜸한 무심하고 개인적인, 고독을 즐기는 소설가이다. 그런 그가 가논과 결혼하면서 엄청난 대식구인 구리하라 가족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고, 그 새로운 사회에 편입해 살게 되면서 겪는 소동과 사건들이 줄줄히 펼쳐진다. 나는 처음엔 그 환경적 변화의 충격으로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가논이 임신을 하면서, 뱃속의 아이를 직접 만져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면서 가족의 중요성과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새롭게 깨닫는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믿음직하다거나, 생활력이 있다거나, 자신의 주장을 잘 내세울 줄 하는 그런 당찬 인물이 아니다. 가논과 결혼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줄곧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또 그로인한 스트레스를 풀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어중간한 인물이다. 가족의 기대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리키야를 선뜻 돕지도 못하고, 자신이 아버지로서 갖게 되는 책임과 의무로부터 끊임없이 도피만 꿈꾸고, 또 생활력의 부족을 탓하는 가족들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가출을 행하는 그의 어리숙한 면모는 그가 결코 사회가 원하는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그가 주인공이기에 이 책은 더 현실적이다. 그의 모습은 곧 현실 속 우리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이고, 가족해체의 위기에 처한 일본 현대인의 모습이고, 언제나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생활인의 모습이다.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현실 속의 자아가 갖게 되는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안에서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구리하라 집안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우등생만을 추구하는 고지식한 아버지 가즈오(이데올로기). 그 목표에 충족되지 못하고 좌절하며 방황하는 리키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고나츠, 오직 가족만을 위해 고생하며 집을 일으킨 가족지상주의 미치코, 그리고 가족애와 자신만의 삶 속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다이조. 이들의 모습은 일본사회가 가진 일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구리하라가족 안에서도 가족화되어가는 혼돈의 일본상이 가진 근대와 전근대가 혼재되어 있고, 그 사이의 혼합물처럼 끼이게 된것이 바로 주인공 다이조인 셈이다. 정체성의 혼돈으로 인해 방황하던 다이조는 점차 아버지로서, 또 한 집안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면서 힘들었던 방랑과 이별을 고하며 가족애가 있는 대가족 속에 합류하게 된다. 작가가 원하고자 했던 길이 자신만이 잘 먹고 잘사는 고독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세상임을 암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나 역시 작가의 그런 공동체적 사상에 동조하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깊이 공감했다.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가 단순히 글만 잘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새로이 하게된 책이었다. |
| 츠지 히토나리의 언어구사력을 보면 정말 화려하다. 이 작품도 예외는 될 수 없어서, 사랑후에 오는 것들과 같이 샀지만, 생각하면서 읽는라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주인공의 감정선을 이겨내기가 어려웠기에 그럴까? 결혼적령기에 든 미혼의 남자가 앞서간 선배인 다이죠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다보면 된다. 아직은 신출내기인 작가인 주인공 다이죠가 자신이 의도했던 속도보다 빠르게 결혼을 하게 되고, 더구나 더 빠르게 아버지가 되는 모습이 안쓰럽게 이어지는데 시종일관 나의 내면적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가상의 생활이지만, 치열한 자기고통을 지닌 아버지란 존재, 예전에 뜬 소설 아버지속의 주인공과는 다른 연령대의 아버지를 정말 예리하게 심리적으로 짚었다고 보고 싶다. 미혼 여성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런 감정,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교감했다. 여자들이 비겁하다고 말하고 싶은 캐릭터인 다이죠는 내 친구였고 나의 모습인 것 같아 이 책은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 물론 언젠가 결혼전에는 다시 읽으면서 작가가 그린 캐릭터를 웃으면서 이해하겠지만, 지금은 넘어야할 내 자신처럼 느껴진다. |
|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되었구,,,,,,,,, 갠적으루 에쿠니씨의 레드도 좋았지만 츠지씨의 블루가 더 인상깊었던 지라,,,,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접해보구 싶어 읽게된 책이었는데~~~~ 무지무지 실망이다.. 뻔한 스토리의 정말 지루한 서술이 ,,,,,, 책을 읽는 내내~~~~ 이게 정말 같은 작가의 작품일 수가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낳았다.. 만약 나와같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이책을 접하시는 분이 있다면,, 무조건 말리구 싶다,,, 정말 끝까지 읽느라 무지 고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