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말은 너무 많은 반례를 허용하며, 사실 예외가 지나치게 많은 법칙은 이미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 어떤 면에서 운에 좌우되는 바도 적지 않은 흥행 결과에만 과하게 눈을 주다 보면, 확증 편향 비슷한 손쉬운, 그러나 부당한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경우도 적잖게 보는 바다. 깔끔하긴 하나 아무 생각 없는 팝콘 판매 촉진용 스릴러인 전편 '도망자(The Fugitive)'에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면,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넉넉한 잣대로 순전히 흥미 위주의 감상을 두어 시간 남짓 들여 행하면 그만이다. 내 보기엔 전편에 비해 그닥 떨어지는 솜씨가 아니며, 감독(물론 다른 사람이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균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층을 유난히 배려한 듯 친절한 스토리텔링을 최우선에 두고 작품을 만든 인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내용이 이해 안 된다는 푸념, 자괴에 빠지는 이도 이 영화를 보고서 두뇌에 피로를 느끼는 좌절은 하지 않겠다 싶게, 영화는 전편의 스릴링과 해피 엔딩에 덧붙여 '쉽고 친절한' 내러티브를 컨셉 중 하나로 잡은 양 자상하기까지 하다. 친절한 것도 좋고 허세 안 떠는 것도 좋은데, 영화는 이로 인해 전개가 느려지고 맥이 풀리는 느낌 지울 수 없다. 내 보기엔 결말에 이르러 반전도 좋고, 이런 추격전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진부한 설정과 뻔한 공식도 잘 피해가는 성의가 있었으며, 최소한 그런 노력이 전편만 못할 바야 하나도 없었다. 들인 성의를 논하자면 전편은 상대가 안 된다. 캐스팅을 보라. 이미 앞선 이야기에서 사실상 주인공의 카리스마로 시종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타미 리 존스를 이제 구차한 연막 걷어 치우며 아예 히어로로 전면 부각했고, 달갑잖은 훈수꾼격 연방 요원에 (아직 슬럼프에서 회복 못 할 시절이긴 하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기용했다. 여성 캐릭터들은 또 어떤가. 내가 보다가 깜짝 놀랐는데, 이 영화에는 마크 로버츠(웨슬리 스나입스 분)의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여인 역으로 무려 이렌느 야곱이 출연하여,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만든다. 물론 그녀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 칸느 여우주연상을 받고, 또 '세 가지 색:레드"에 나와 한국의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차분함과 섹시함을 겸한 바로 그 배우이다. 이런 영화에 더군다나 이런 시덥잖은 역을 맡길 만큼 제작측의 섭외 능력이 탁월했지 않나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이의 또다른 확증은 바로 연방 정(正) 집행관이자, 샘 제라드(타미 리 존스 분)의 여성 상사 역으로 나온 케이트 넬리건의 등장이다.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지 않은 이도, "저 유머러스하면서도 터프하고, 그 와중에 제 할 일 다해 주고 들어가는 이목구비 단정하며 나이에 비해 멋진 균형의 얼굴 윤곽을 유지하는 이쁘장한 부인이 누구인가?" 싶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980년대 한국 TV에서 많이 틀어 주던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 그녀가 아직 젊은 시절 비운의 메르세데스 역으로 나온 모습을 기억한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에 주로 히로인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하던 당찬 미인이었는데, 기회가 되면 다른 포스트, 리뷰에서 이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 영화의 패인을 굳이 꼽자면 대놓고 말해 마크 로버츠 역의 설정이 잘못 되어서이다. 물론, 처음부터 미스테리 속에 제시된 캐릭터의 진실이랄까 숨은 내력은, 이후 영화 전개를 통해 천천히 드러나며, 이는 독자에게 스릴러용 두뇌 회전의 계기도 제공하는 순기능을 행하고, 결말에 이르러는 극상(劇上)의 모든 의혹에 대한 깨끗한 해명까지 완수한다. 논리적으로야 나무랄 데 없으나, 문제는 관객이 러닝 타임 동안 어떤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심한 동요와 불안감을 뜻하지 않게 제공했다는 사실에 있다. 영화와 소설은 다름 아닌 이 점에서 극명한 차이점을 드러내며, 지면상에서 비교적 냉정한 입장에서 여러 인물과 캐릭터를 우월적 입장에서 관찰하기만 하면 되는 독자와 달리, 영화의 청중은 극중 어느 인물에게건 신뢰 혹은 적대/경계의식을 일관하여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감독과 각본가는 치밀한 대본을 짰으나, 막상 그 영상 결과물은 지켜 보는 입장에서 일종의 배신이나 혼란 비슷한 감정만을 초래했다. 이미 이 시점 거물 배우로 위상을 다진 웨슬리 스나입스의 연기는 바로 이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낳았으며, 그의 표정이나 수심 가득한 목소리는 종전 출연작에서의 상투적 장기 발휘 외에 아무것도 아니어서 이런 부정적 결과를 빚는 데에 적잖게 한 몫을 했다. 이 역이야말로 미묘한 진상을 서서히 관객 앞에 드러낸다는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이기에, 설득력 있고 해석에 노력이 투입되어야 극을 살릴 수 있었는데, 그의 연기는 최소한 이 작품에서 흑인 노예의 그것처럼 수동적이고 진부했다. 어떤 이는 타미 리 존스가 지나치게 부각되어 영화를 망쳤다고 하나 오해이며, 배우가 오버액션을 하지 않는 한 연기에서의 분투가 욕 먹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제라드 집행관이 필요 이상으로 전면에 드러난 건 마크 로버츠가 제 할 일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며, 그 외에 높이 사 줄 구석이 많은 이 영화의 단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에는 독특한 물리력 행사 사법 기관이 있는데 그게 이 영화에도 나오는 (아예 제목으로 쓰였지만) 연방 집행관, US marshal이다. 캐릭터 제라드의 직책은 deputy marshal인데, 통칭으로 이 기관, 조직에 종사하는 모든 이를 marshal이라고 부르지만 실상 좁은 의미, 혹은 공식 명칭으로 네임카드에 marshal이라 자신을 지칭할 수 있는 이는 극소수이다. 현장에서 실력 행사를 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 marshal을 대리하는 신분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deputy(대리) marshal이다. 제라드 역시 deputy marshal일 뿐이나, 다만 경력과 연령, 실적상 이미 senior의 클래스에 올라 있으며, 영화에서처럼 굳이 현장에서 젊은 후배들과 뛰어야 할 의무는 없는, 관리직이 그 본분이다. 영화 제목은 무슨 공익 홍보물처럼 US marshal이라 붙었는데, 미국 개봉 당시에도 'The Fugitive part II'로 통했으며, 이 '도망자2'가 얄팍한 상업적 계산이 깔린 '낚시성' 번역 제목은 아니다. 게다가 내용의 흥미도가 전편만 못한 바 별로 없다면 공연한 매도는 삼가는 게 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