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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가 뭐 이래,가 솔직히 이 영화를 처음 대할 때 느낌이었는데 보면서는 제목이 왜 이래,가 됐다가 끝나고 나서는 특이하면서도 환상적인 매력을 지닌 러브스토리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어요? 라고 물으면 끄덕끄덕, 하진 못하겠는데 볼까요? 물으면 보세요,라고 대답할 것 같고, 물론 어느 정도의 시대극과 판타지 소화능력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해주겠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시대사조가 중세와 르네상스라 시대극을 좋아하는 편이고, 판타지도 그럭저럭 거부감 없다. 그리고 당신은 진짜 사랑을 해봤느냐고도 물어봐야지. 실은 더이상 영화리뷰를 안쓰려고 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 영화들을 계속 봐왔고, 극장에 더이상 가지 않고, 남들 다 보는 영화 리뷰쓰기는 좀 꺼려져서. 박스오피스 순위를 점령한 한국영화를 보니 할리우드 영화가 침체기라는 것도 알겠고, 평소라면 좋아할 듯한 어떤 영화를 봐도 감흥이랄지, 재미랄지, 그런 게 한동안 사라졌었다.
자본이 독점한 문화산업이라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내가 해야 할 고민은 아니지만 늦든 빠르든 상투적이고 진부한 시스템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돈만 많이 쏟아부어 번듯하게만 만드는 게 관객을 사로잡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 잘못된 환상이다. 최근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어떤 신간 에세이에서 저자가 그렇게 마음 먹는 걸 봤다. 같은 작가 두 번 이상 고르지 않기, 읽은 책은 반드시 리뷰쓰기 등등. 내가 맨날 마음 먹기도 하는 거였다. 오버 좀 해서 듣는 음악, 보는 드라마까지 쓰고 싶었는데 영화쯤은 당연한 거였는데, 내가 아무리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 쓰고 싶어도 배운 게 뻔하고 그걸 매일 끄집어내는 한, 뭐가 됐든 뻔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쓰기에 비하면 읽고 보는 건 더 쉬워서,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것도 있는 법이라, 들어가는 게 더 많으면 좋겠다고 채찍질 아닌 몰아치기를 시작하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화부문 파워블로그로 뽑혔다. 세상에, 계속 쓰라는 거지? OK.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그러니까 2전 3기라서 나가 떨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되면 또 기분이 좋아져서 처음에는 막 들떠서 장르별 목록도 쟁여놓고, 꼭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 중심으로 작은 계획도 세웠는데 그것도 어느새 증발됨. 미안, 이런 나여서. 다시 쓰고 싶어졌다. <레이디호크>는 요즘 뒤늦게 빠져있는 반전영화 보는 재미보다는 덜 해도 확실히 명작이다. 다른 세상으로 관객을 몰고가는 집중력과 인류 불멸의 법칙, 사랑. 그걸 방해하는 요소가 주교의 신탁이라는 것이 어찌 사소하겠는가. 나는 사실상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신탁에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들의 신봉자다. 영웅적 탄생신화와 어려움을 거쳐 왕이 되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것까지. 내가 좋아하는 우연과 운명에 기인하는 이야기는 거의 이 신화 텍스트에서 거의 다 설명 가능했다. <레이디호크>에서 서로 사랑하는 남녀 나바르와 이자보의 훼방꾼은 이자보를 사랑하여 질투하는 추기경의 신탁이다. 본인이 못 가지므로 남도 갖게 하지 않겠다는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이 추기경을 지배하여, 악마와 손잡은 그는 나바르를 밤에 늑대로 변하게 하고, 이자보를 낮에 매로 변하게 하여 둘을 영원히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서로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되는, 각자가 늑대와 매로 변하기 전의 짧은 시간 뿐인데, 그마저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게 비극이다. 편집과 CG가 세월을 반추하는 건 어쩔 수 없되, 서로 변하기 직전 아쉬움으로 응시하는 눈빛이 아련하고도 슬프다. 그저 한 번 만날 수 있다 해도 인간으로 돌아가면 동물이었을 때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나바르는 낮동안 매가 된 그녀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항상 함께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비극적 신탁을 받은 남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음악은 1986년도 영화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고 세련되었다. 음악 듣는 재미, 신탁이 풀려 사랑이 이루어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중세라는 배경이 주는 그로테스크함이 삼박자로 맞물려 돌아가서 아름다운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단과 전개, 절정과 결말이 지극히 전통적인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고전영화임을 속이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 앞에 모든 것이 부질없다. 추기경의 행차를 막아 그를 치려는 나바르의 계획 중 추기경의 호위병이 쏜 화살에 맞은 매로 변한 이자보가 죽음의 위기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추기경의 죽음이 목표가 아니라 마법에서 풀려나는 것이 목표인 나바르는 추기경을 물리치고 신탁을 풀기 위해 영웅적 행보를 걷는다. 나바르는 풀려날 방법을 알려주며 도와주려는 신부와 아퀼라 성의 끔찍한 지하감옥에서 불가능한 탈출에 성공했지만 위기에 처해 도움준 적 있는 필립의 지원으로 이 신탁에서 벗어날 길을 마련한다. 이쯤하면 이 영웅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사랑의 결말이 어떠할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통.적.이라는 한 마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사랑은 상대가 어떤 모습이어도,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지더라도 변하면 안되는 것. 변할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 아마 교훈은 이런 뻔한 해답에 있을테고, 나는 늘 시대극의 판타지를 보고싶음 이 영화를 봐, 하면서 <레이디호크>를 추천할테고, 그렇지만 이 포스터는 계속 용서가 안돼, 이러기도 하겠지. 아, 그리고 미쉘 파이퍼가 나오는 <천 에이커>(A Thousand Acres, 1997)로 그녀를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청순하고 매력적이다. 항상 생각하지만 배우들은 좋겠다. 젊고 예쁠 때 모습, 우린 고작해야 사진 정도로만 간직하는 게 다인데, 그들은 영상으로 이토록 생생하게 담겨 시절과 느낌으로 자신을 회상할 수 있으니, 참 아름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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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기 말이다. 우리 때에는,... TV의 열풍에 밀려 영화라는 예술은 곧 사멸할 운명에 직면할 거라는 예언 아닌 엉터리 잠꼬대가 시대의 상식으로 통하기도 했었다. 그것과 꼭 닮은 이야기가 바로, 스마트폰이 완전한 대중화를 이루면 PC를 밀어낸다는 헛소리겠다. 형식적 개연성으로만 따진다면 차라리 영화의 멸종 타령이 더 그럴싸하지 않은가? 물론 이도저도 모르고 천한 출신에 배운 건 얄팍한 된장질이라 알바나 다름 없는 임시직장에서 커피,복사심부름이나 하던 인생이 어디서 주워 들은 명언을 뜻도 모르고 복창해대는 꼴불견에 비하면 두 눈 딱 감고 넘어가 줄 아량이 절로 생기는 오류들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잠꼬대가 상식으로 통할 만도 했던 것이, 이 1980년대란 대체 주류가 뭐고 비주류가 뭔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영상 문법의 기초가 흔들리고, 일말의 수치스러움도 없는 도색물, 아동포르노가 판치던 참상이 빚어진, 그야말로 영상의 아노미가 따로 없었던 그런 이상한 시대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문란 퇴행의 아우성 속에서도 창의와 자유의 싹이 완전 죽은 것은 아니어서, 이 시대 폭발적으로 양산했던 B급 영화의 트렌드는 이후 주류의 한 거대 흐름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분명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상한 시대, 그나마 거물급 배우들이 어울리지도 않은 역을 맡아 줄줄이 출연하고, 그 툭수촬영의 질이란 게 지난 시대의 산물보다 퇴보한 수준으로 초라한 이발소 그림마냥 배경을 장식한 이 영화를 구경할 때마다, KINKY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곤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떠올림에 있어 또 하나의 잊혀지지 않는 심상은, 주말 남친과 함께 으슥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와선 시원찮은 입담으로 자기 나름의 감상을 침 튀겨 가며 설파하던 그 주일학교 여교사의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얼마나 책을 읽지 않고 문화적 소양을 쌓을 기회가 없었기에 고작 이런 초딩물을 보고 그토록 감동을 받았을까? 이런 빈약한 작품성을 기를 쓰고 camouflage할 방도란 진정 블루레이로의 복각 말고는 없을 듯하며,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그 월리티가 아닌 개인적 추억의 환기에 있는 층이라면 단연 이 삼류물을 골라 아득한 과거로 향하는 자신만의 부귀열차 특실에 몸을 맡길 좋은 미디어가 되지 싶다. 무려 루트거(룻거) 하우어와 미셸 파이퍼가 나온다는데, 설사 이들 배우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무식하다 한들, 근래 이상과대평가되고 있는 리처드 도너가 메가폰을 잡았다던데(이 감독이 누군지 몰라도 역시 무관), 그 예전 뭔 말인지도 못알아먹는 수업 빼먹고 남친하고 으슥한 극장을 찾던 아지매들, 이 블루레이타이틀을 집어 그 칙칙한 시절로 추억여행을 떠날 유혹에 어찌 저항할 수 있으리오? 아니 뭐 다 필요없고 오밤중에 남성도우미 대기 중인 노래빠나 가겠다고? 에라이 순. 주일학교 교사의 자질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