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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하느님! 모든 것에 감사 드리옵니다!
제가 아름다운 란디 나무로 태어나게 해주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인디오들이 저를 찾게 해주신 것도 감사 드립니다! 그들이 저를 아름다운 쪽배로 만들게 해주신것도 감사 드립니다! 이제는 눈이 멀어 해가 기우는 것을 못 보게 해주신 것도 감사 드립니다! 늘 큰 파도가 이는 강물에서오랜 시간 동안 견딜 수 있게 해주신 것도 감사 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라구아이아 강에서 지내게 해주신 것도 감사 드립니다! 제가 마음으로 섬긴 꾸루마레와 마음으로 사랑한 제 오로꼬, 그 두 주인만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신 것도 감사 드립니다! 오랜 세월을 건강하게 살게 해주신 것도 감사 드립니다! 그 모든 것을 감사 드립니다! 늘 원하는 대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죽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사랑하는 하느님! 그 무엇보다도 삶이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호징냐, 나의 쪽배中 / 이광윤 옮김] 나에겐 종교가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나에게 종교는 의심스러운 존재였고, 동화 속 이야기처럼 미사여구로 가득한 불확실한 세계였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의심해본 적도 없다.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절박하거나 터져오를만큼 행복한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기도의 말을 입에 담았다. 내가 가졌던 신앙이 신에 대한 것인지 운명에 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내 의지를 넘어, 보다 커다란 무언가가 내 앞에 놓여져 있음을 강하게 느끼곤 했다. 한 때는 나의 신이 어디에 계신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세상엔 모래처럼 많은 종교와 율법이 뿌려져 있지만 나는 그 무엇에도 나의 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났고, 내 존재를 온전히 내어주고, 받아들여주는 두터운 관계 속에서 나는 나의 신을 보았다. 내가 믿는 신은 사랑이었다. 나는 오직 사랑 앞에서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의 신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것에게 이름을 붙인다. 애인에겐 애칭을, 친구에겐 별명, 심지어 아끼는 곰인형에게조차 사랑이 넘치는 이름을. 시인 김춘수도 말하였듯, 무엇이든 이름을 갖는 그 순간부터 그 존재는 특별해진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들이, 이름과 함께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이름 붙이고, 부르고, 말을 나눔으로 인해 우리는 상대방의 존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호징냐, 나의 쪽배'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바스콘셀로스의 초기작이다. 호징냐(Rosinha)는 작고 사랑스러운 장미라는 뜻의 브라질어. 그저 장미라고 부를 수 있는 단어에 애정과 존경을 담은 또 다른 이름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름 붙일 수 있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한껏 머금고 있는 아름다운 책이었다. 삶에 대한 사랑, 예찬, 감사로 넘쳐흐르는 맑은 강 속에 두 손을 담그고, 신선함을 맛볼 수 있는 책이랄까.
- 호징냐, 나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장미.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호징냐가 있어야 한다. 이름 붙이고 사랑과 생을 부여할 존재가.
혹은 반대로 내가 호징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사랑을 받아마시며 살아갈 힘을 얻는.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는 순수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그저 가볍고, 단편적이다. 나 자신의 순수함도 그저 일회용 컵처럼 쓰이고 구겨진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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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가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보다는 처지지만 그래도 읽기를 권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제 오로꼬가 마을을 방문한 의사에게 호출되어 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의 쪽배인 호징냐와의 대화가(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가장 찡했던 장면은 니닝냐가 홍수로 떠내려가기 직전 그렇게 무뚝뚝하던 란디 나무가 이겨내라고 외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 란디 나무가 마침내 바라고 바라던 배(주요 화자인 호징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제 오로꼬에게 전달되는 것이고요.
제 오로꼬가 처한 상황은 지금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만 아마도 3-40년대의 북미(어쩌면 선진국 대부분)를 휩쓴 복지국가 정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브라질이면 중진국에서 선진국 사이였으니 그럴 수 있지요. 사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시설에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확한 소개 없이 이야기가 그리 진행되는 바람에 발표 당시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특히 멀리 있는) 독자들은 당혹스러울 따름입니다.
서울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과 서울집에서 다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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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대화하는 것이 허용된 시골 마을. 도시에서 온 의사는 나무와의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 이 얼마나 큰 불행의 시작인가. 나무와 대화를 한다는 죄로 정신병원에 갇히는 제 오로꼬. 비인간적인 대우에 오히려 미쳐가는 제 오로꼬. '나무는 나무일 뿐이다'라는 말을 수백번은 반복한 후에야, 해방이 된다.
그러나, 그가 서게 된 곳은 도시 한복판의 허름한 셋방. 방세를 내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전에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하는 제 오로꼬. 그는 어느 친절한 사람의 도움으로 호징냐가 기다리는 시골 마을로 간다.
그의 오두막은 다 쓰러져 가고 있고, 호징냐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여물통은 되기 싫다던, 호징냐는 결국 불에 태워진다.
새로운 여행을 하기 위해 구한 말. 그 말이 또 말을 걸어온다. 말에게도 호징냐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큰 줄거리는 어느 정도 읽어줄만한데, 중간중간 들어간 옛날 이야기는 읽기가 너무 힘들다.
[인상깊은구절] 저는 태어난다는 것이 무척 두렵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