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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다고 우습게 보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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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읽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요약본이나 발췌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어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이것참, 쉽다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원전을 읽는 게 가장 좋다'고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이건 장자를 읽는 안내서 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같은 장자 무지랭이가 덥석 장자를 독파해서 얻는 깨달음이나 친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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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읽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
요약본이나 발췌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어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이것참, 쉽다고 우습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원전을 읽는 게 가장 좋다'고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이건 장자를 읽는 안내서 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같은 장자 무지랭이가 덥석 장자를 독파해서 얻는 깨달음이나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개괄서를 읽고 생각해서 얻는 깨달음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장자는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이다..라고 길안내를 받고 원전을 읽는다면 훨씬 이해가 빠르고 유익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쉽게 쓴 입문서들도 많지만, 장자 무지랭이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입문서 같다.

원문의 한자풀이에 음독도 달려있고, 초보에겐 딱 좋은 장자. ^^

 

w*****a 2009.04.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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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관(達觀)-장자의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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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덮으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은 것 같은 상쾌함을 누린다. 논어,맹자,노자,장자...., 듣기는 참 많이도 들었던 경전들이건만 정작 한 권도, 아니 한 페이지도 접해보지 못한 경전들이었다. 큰 산처럼 감히 다가가기 어려웠던 중국고전을 이번 과제를 통하여서 이렇게 부분적으로나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뿐만 아니라, 억지로 십자가를 지
"‘달관(達觀)-장자의 삶의 방식" 내용보기
- 책을 덮으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은 것 같은 상쾌함을 누린다. 논어,맹자,노자,장자...., 듣기는 참 많이도 들었던 경전들이건만 정작 한 권도, 아니 한 페이지도 접해보지 못한 경전들이었다. 큰 산처럼 감히 다가가기 어려웠던 중국고전을 이번 과제를 통하여서 이렇게 부분적으로나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뿐만 아니라,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 (성경, 마태복음27장32절)이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던 것처럼, 억지로, 참으로 억지로 읽게 된 중국고전을 통하여 겉핥기 정도라도 장자의 호쾌한 사상을 엿보게 되었고, 도전과 삶의 지혜를 얻게 된 것 너무나 감사하다. ‘장자’를 선택한 것은 어떤 특별한 의도가 아니다. 서점에 진열된 책 중에서 상대적으로 읽기 수월하고 가장 저렴한(요즘 뭔 책값이 이렇게 비싼지, 이 책도 9천원이나 함) 책으로 고른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참 탁월한 선택이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은 장자의 핵심 사상을 30구로 간결하게 편집하여 정리하고, 그 구절들을 문자에 매이지 아니하고, 삶의 현장 상황에 맞추어서 경쾌하고 평이하게 해석해 나가는 저자 이인호님의 성실한 해석이 자칫 지루하기 쉬운 장자를 쉽게 조명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의 사상을 한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달관(達觀). 이것은 도달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는 뜻으로 어떤 것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요. 또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장자를 저자는 ’분방한 자연주의자‘라고 칭하고 그것을 이 책의 부제(副題)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가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이다. 저자는 그의 자연주의를 논어와 견주어서 아주 재미있는 비유를 한다. 바로 떡의 비유이다. 논어가 반듯하게 잘라놓은 인절미라면, 장자는 손 가는 대로 마구 주물러 놓은 주물럭 떡이라는 것이다. 논어가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사회적인 질서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장자는 어떤 인위적인 삶도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순리를 따라서 제 때에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 그만인 것이다. 억지로 무엇인가에 매여 있을 필요도 없고, 또 무엇인가에 욕심을 내거나 두려워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또한 분방하다. 저자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공자와 장자를 또 비유하고 있다. ’공자를 잘못 따르면 위선자가 되고, 장자를 잘못 따르면 미치광이가 된다‘. 장자의 사상과 그의 고민은 제쳐두고 그의 분방한 언어와 삶만을 쫒아가다 보면 미치광이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자명해 보인다. 장자가 그렇게 직접적인 독설과 절대로 평이하지 않은 분방한 삶을 살았어도 미치광이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분방함이 무지함이나 천박한 객기에서 나오는 분방함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달관의 경지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의 달관의 정신을 아마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해 주는 것이 포정해우(庖丁解牛)의 비유가 아닌가 싶다. 백정의 입을 빌려서 장자는 달관의 경지를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 백정이 문혜군에게 소 잡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다. ‘지금은 눈으로 소를 보지 않고 정신으로 대합니다. 이목구비의 감각적인 기능을 정지시키자 정신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소인은 그저 소 몸속의 결을 따라 빈틈으로 칼날을 놀리고 사이 사이로 길을 내는데, 모두 원래 소의 구조를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일반 백정은 1달에 한 번 칼을 가는데 반해 고수급 백정은, 다른 말로 하면 달관의 경지에 이른 백정은 1년에 한 번만 칼을 갈아도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 백정은 칼로 억지로 살점을 찍어내는 것이지만, 달관의 백정은 칼로 자연스럽게 베기 때문에 칼날이 무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억지로’라는 단어와 ‘자연스럽게’라는 단어가 강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점을 얻기 위해 억지로 칼로 찍는 것이 일반 백정이라면, 관절과 힘줄과 살점의 틈 사이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것이 달관의 경지라는 것이다. 이 비유 속의 살아있는 소의 복잡한 관절, 난해한 힘줄과 근육, 그리고 얽히고 설킨 살점 등은 험악하고도 복잡다다한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장자의 달관사상은 새로운 길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포정해우 비유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는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라면, 오리다리, 학다리 비유는 인생의 실존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오리 다리가 숏다리라고 늘이려 하지 말라. 학 다리가 롱다리라고 줄이려 하지 말라. 짧은 놈은 짧은 까닭이 있고, 긴 놈은 긴 까닭이 있다.’ 학으로 태어났으면 학의 자신감으로 오리로 태어났으면, 오리의 자존감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길고 짧게 태어난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부질없이 늘리고 줄이기만을 시도하는 오만함에 대한 일침(一針)인 것이다. 일관적으로 장자가 말하고 있는 자연주의와 절묘하게 맞물리는 비유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비유말로 그 유명한 장자의 ‘나비의 비유’보다도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장자가 오늘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통탄할 것이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손을 댄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산을 갈아버리고, 강을 막는 것도 모자라서 바다를 막아 땅의 지형을 바꾸어 왔다. 그런 인위적인 조작이 결코 인간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계속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연을 배신하고 장자를 거스르면서 오만하게 계속적으로 자연에 손을 대어 왔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급기야 스스로에게도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놀라지 않는 삶을 살았던 장자도 아마 이렇게도 많은 이 땅의 성형외과들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용도와 특색은 다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시작이다. 그런 이해가 나와 다른 모든 존재를 존중하게 하며, 그런 자신감이 이 난해한 시대에 ‘분방한 자연주의자’ 장자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세우기 백덕기 목사
y****u 2005.03.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