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리에게 익숙한 헨리 8세와 앤 블린의 이야기를 낯선 시각에서 풀어낸 아름답고도 섬득한 이야기,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고 문장의 아름다움과 사실적인 표현에 소름 돋는 느낌을 오랜만에 경험한다. 사실 이름도 생소한 수상작들과 베스트셀러에 적잖은 실망을 맛보았기에 그닥 기대를 가지지않고 펼쳐든 책이였는데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재미있게 읽었다. 시대적 배경과 그 당시 정치, 종교에 관한 지식을 갖고 읽으면 한층 더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가 교과서로만 듣던 인물들이 음모와 배신으로 가득 찬 역사적 현장속에 생생하게 살아나 우리 앞에 등장한다.
이야기는 난폭한 대장장이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피투성이 된 한 소년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소년의 얼굴은 가족들 조차 몰라볼 정도로 붓고 상처 투성이지만 몇번의 실신을 거듭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그소년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 비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헨리 8세의 최고 고문관이 된 토머스 크롬웰의 어린 시절이다.
자신의 생일도 모른 채 아버지의 발길질에 피 흘리던 소년은 살기위해서 안해 본 일이 없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있을 장소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구별 할 줄 알았으며 어두운 그림자속에 완벽하게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를 알아 본 왕의 주요 고문이자 영국의 실질적 통치자인 울지 추기경 밑에서 세상을 알게된 그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법률의 초안을 작성하고 금융과 교역에도 능했으며,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했다.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모두 암기하고 있어 추기경과 대수도원장들이 갈팡질팡할 때도 언제든지 성경 문구를 인용할 수 있었으며 매를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길거리 싸움을 말릴 수 있었고 배심원을 포섭할 줄 알았다. 이제 그는 사람들이 경외하거나 두려워하는 인물이 되었다.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염탐하며 음모와 계략 속에 권력을 향한 욕망이 꿈틀대는 궁정 안에서 그만의 영특함과 계산적이고 빈틈없는 일처리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가기 시작한다.
종교개혁 운동이 한창이던 16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이 변화와 개혁의 급물결을 타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 크롬웰은 울지 추기경이 못 이룬 헨리 8세와 앤 불린과의 결혼을 성사시키며 헨리 8세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되어 권력의 핵심인물이 된다. 경제적 투명성과 법적 지식을 토대로 보수주의와 부패한 종교적 권위에 맞서 교회와 수도원을 개혁하고 법률을 제정하여 위선과 기만, 나태함에 안주한 낡은 귀족세력을 넘어 그가 꿈꾸던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선다. 귀족들은 미천한 출신의 그를 싫어하고 경멸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그를 필요로 했다. 권력의 한복판에 신분이나 태생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를 바라던 그, 크롬웰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나 <천일의 앤>에서와는 달리 이 책은 토머스 크롬웰의 시각으로 바라본 왕위계승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비록 유토피아의 저자이며 친구이길 바랐던 토머스 모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도 그였고, 온갖 궃은 일 가리지 않던 그였기에 때론 비열하고 악마와도 같은 차가움을 지녔지만 관대하고 명민한 두뇌로 천재적인 정치 감각을 지닌 매력적 인물임에 틀리멊다. 거침없는 그의 성격뒤에 숨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 사회의식을 지닌 그의 내면의 갈등과 외로움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뛰어난 문장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불같은 성격의 헨리 8세와 권력을 향한 야망의 화신 앤 불린, 지성의 상징 토머스 모어와 에라스므스 등 역사속 인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앤 불린은 불행히도 여자 아기를 낳았지만 이 아기가 바로 사십여 년 동안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여왕이니 앤의 못다 이룬 꿈을 그녀의 딸이 이루게 된다. |
|
이 책 '울프 홀 Wolf Hall'의 주인공은 크롬웰이다. 고교 시절 배운 세계사의 한자락에서 들은 청교도 혁명의 주인공, 왕당파를 물리치고 공화국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그 크롬웰인줄 알았더니 다른 크롬웰이다. 헨리 8세 때의 인물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엄청 얻어터지는 내용으로 책장을 연다. 아버지를 피해 바다로 떠난 그는 세월이 흐른 후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나타나 당시 권력의 핵심인 요크 대주교 울지추기경을 아버지 같은 존재로 보좌하게된다. 그는 프랑스 병사로 이탈리아 전쟁에 참여하였고, 은행가에 고용되어 재무회계에 눈을 뜨며, 여러국가의 언어에 익숙하며, 힘과 변호사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국왕 헨리 8세가 아들을 얻기 위해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추기경은 권력에서 밀려나지만, 그는 의리를 지키면서도 반대편에게 인정을 받아 권력의 중심부인 국왕 자문회의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1권은 끝을 맺는다.
이 책은 2009년, 영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며,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 부커 상 The Man Booker Prize'을 받았다고 한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은 영국 연방에서 영어로 쓰여진 문학 작품 가운데 최고에게 수여되는 상이라하니, 당연히 이 작품을 접하는 기대감이 마치 가을하늘 같다. 제목도 야성적이다. 울프 홀!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탐욕의 장, 울프 홀. 먼저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한다."는 카피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1권에서 울프 홀이란 단어는 407쪽에 지역명으로 딱 한번 나온지만 제목과 연결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이것은 아마도 2권을 읽은 후에야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한 인간의 가파른 상승세를 따라 펼쳐지는 대서사를 담고 있다는 이 책은 사실 긴 호흡의 독서가 필요하다. 1권이 470쪽인데 200여쪽을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무엇보다 낯선 이국의 수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적응이 어려웠고 - 다행히 이 책은 이를 감안한 듯 등장인물의 소개가 앞에 있다 - , 문장이 건조체에 가까워 쉽게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면서 인물에 익숙해지자 그제사 책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줄거리에 빠져든다.
종교적 왕조 시대에 왕권(국왕)과 신권(교황)를 둘러싼 권력의 속성과 애증, 덧없는 전쟁, 전염병으로 아내와 아이가 죽어가는 중세에, 운명처럼 권력의 중앙부로 걸어가 결국 버림받아 참수형에 처해진다는 주인공의 파란만장 인생사가 '맨틀 특유의 기품 있고 섬뜩한 묘사로 권력과 인간 본성에 관한 격조 높은 통찰'을 보여준다고 한다. 하지만 1권에서는 그렇게 큰 감명을 받기는 힘들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 책을 놓기도 하였다. 특히 333쪽 안셀마가 누군지 한참을 생각했다. 국새장관에서는 국세가 맞는지 국새가 맞는지 헷갈려했다. 찾아보니 국새장관(國璽 長官)이라는 직책이 맞기는 하지만 뭐하는 자리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해 했다. Lord privy Seal 인거보니 최근 말썽을 빚은 국가문서에 도장찍는 우리의 국새와 비슷한 관련 자리인가 보다. 책의 초반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그래도 번역 탓을 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등장인물에 적응하니 읽는 재미가 솔솔하기 때문이다.
아~ 대법관으로 나오는 토마스 무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토피아'의 저자! 바로 그 분이다. 탁월한 식견으로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1529년에는 대법관에 임명되었으나, 왕의 이혼에 끝내 동의하지 않고 1532년 관직에서 물러난다. 1534년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1535년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동네는 심심하면 단두대나 참수형... 어쨌거나 2권의 재미는 왕의 신임을 얻은 권력의 정점에서 어떻게 혼인문제를 처리하는지, 그 과정에서 종교개혁을 어떻게 하는지, 그의 몰락은 어떻게 일어나고 그 최후가 어떠한 지가 관건일 것이다. 일단 한 호흡을 돌린 뒤 2권 읽기에 들어가야겠다. (To be continue... )
|
![]()
[리뷰] 힐러리 맨틀 <울프 홀>
중세 유럽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헨리 8세, 앤 불린, 토머스 크롬웰 등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니 굳이 역사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이들의 이름을 접해보았을 가능성이 많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마지막 희곡으로 <헨리 8세>를 썼고, 이들의 이야기는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 등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헨리 8세 시대의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여러 편이다.
그만큼 헨리 8세 시대의 주요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사연과 운명이 드라마틱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헨리 8세는 장미전쟁을 끝내고 잉글랜드의 권력을 잡은 튜더 왕조의 두번째 왕이다. 그는 평생 여섯 명의 왕비를 두었던,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왕이기도 하다.
토머스 크롬웰은 헨리 8세의 오른팔이었던 인물이고 앤 불린은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였다. 앤 불린이 왕비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앤의 몰락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바로 <천일의 앤>, <천일의 스캔들>이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상류사회로 나아가는 크롬웰
힐러리 맨틀도 자신의 2009년 작품 <울프 홀>에서 헨리 8세와 그 주변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울프 홀>의 주인공은 당시 2인자였던 토머스 크롬웰이다. 시골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크롬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무수한 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다. 크롬웰은 자신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자신의 생일이 며칠인지도 모른다.
크롬웰은 이런 가정폭력을 피해서 10대 중반에 집을 떠나 유럽을 떠돈다. 프랑스 군대에 입대해서 전투를 치르고 이탈리아에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외국생활을 하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변호사가 된다. 작품의 도입부인 1527년에, 크롬웰은 요크의 대주교이면서 추기경인 토머스 울지의 실무 변호사이자 최측근으로 등장한다. 크롬웰의 나이는 마흔을 약간 넘긴 상태다.
이때 국왕 헨리 8세의 왕비는 캐서린이었다. 원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인 아서의 부인이었다. 그런데 아서가 젊은 나이에 죽자 헨리 8세가 국왕이 되면서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한 것이다. '남자는 죽은 형의 아내와 결혼해야 한다'라는 구약성서 신명기의 구절을 근거로 한 결혼이었다.
헨리 8세와 캐서린의 애정문제는 둘째치고 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다. 캐서린의 나이 때문에 더이상의 임신도 힘들다. 국왕은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을 원하고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캐서린과 이혼하고 다른 젊은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 마침 왕의 눈에 띄었던 앤 불린이 강력한 후보자다.
문제는 로마교황청에서 이 부부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당시 국제정세의 미묘함 때문에 이혼이 쉽지 않다. 토머스 울지 추기경과 토머스 크롬웰도 캐서린을 몰아내고 국왕을 재혼시키려고 한다. 헨리 8세도 자신과 캐서린의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싶어한다.
결국 이 혼인의 유효성을 조사하기 위해서 교황 특사의 권한으로 사문위원회가 열린다. 국왕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크롬웰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래서 국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면 크롬웰의 앞길도 창창하게 열리는 것이다. 그렇게 크롬웰은 조금씩 권력의 정점을 향해서 나아간다.
저자가 묘사하는 16세기의 잉글랜드
30년에 걸친 장미전쟁이 끝났지만, 당시 잉글랜드는 서민들에게 그리 살기좋은 곳은 아니었다. 여름이면 전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침밥 잘 먹고 나가서 점심때 보니 죽어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전염병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은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질병과 굶주림과 전쟁, 전염병의 온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 때문에 아이들은 죽고, 지난해와 올해에 일어난 것 같은 흉작 때문에도 죽는다. 크롬웰의 자식들도 전염병으로 죽는다. 크롬웰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자신은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고 했지만 그런 노력도 소용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실감 때문에 크롬웰은 더욱 권력의 상층부를 향해서 나아갔는지 모른다. 헨리 8세는 결국 로마 교황청에 등을 돌리고 자신이 직접 영국교회의 수장이 된다. 영국 성공회가 이렇게 해서 탄생한다.
작가는 <울프 홀>을 통해서 격동기 잉글랜드의 왕실과 상류사회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헨리 8세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의 말년은 대부분 불행했다. 토머스 크롬웰도 마찬가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곁에 머물면서 그 권력의 일부라도 행사하려면 많은 위험을 담보로 해야한다. |
|
자신의 권력을 여성편력에 아주 잘 이용했던 여섯 명의 왕비를 두었던 절대 군주 헨리 8세, 많이 졸렸던 세계사 시간에 드물게 제정신으로 끝까지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준 왕, 이 책이 헨리 8세때의 이야기라고 해서 당연히(?) 나는 그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연극에 많은 영감을 주었고 수없이 재생산 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니란다. 적어도 이 책의 주인공의 그의 심복이었던 그러나 나중에는 어처구니없게 토사구팽당하고 마는 토머스 크롬웰이 주인공에 더 가깝다.
물론 그의 이름은 들은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오래전 수업시간이나 책에서 보았던 그는 워낙 화려했던 삶을 살았던 헨리 8세에 가려졌던 탓일까? 의외로 정보가 별로 없었다. 작가는 중산계급 태생의 그가 헨리 8세의 신임을 얻게 되어 수석장관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던 그를 일생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공백을 멋지게 재창조시켰다. 검색해보면 달랑 몇 줄로 경력이 일단락되는 그는 책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로 다가왔다.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헨리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이혼에 혈안이 되어 신성로마제국 황제로부터 이혼허락을 받으려 했으나 결과는 이혼 불허, 이미 마음은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의 재혼쪽에 기울었던 국왕은 한시가 급했다. 이 때 그의 충실한 해결사 노릇을 한 이가 바로 크롬웰이다. 왕의 이혼을 지지하고 결국 혼인 무효를 성사시킨 그는 더욱 더 왕의 신뢰를 얻었으며 이윽고 궁정에 들어가 왕의 심복이 되어 왕실의 각료, 재무대신, 국왕 비서, 공소법원 판사, 총감독 대리 등 출세를 거듭하게 된다.
이야기가 이런 방향으로 끝까지 갔으면 어쩌면 크롬웰에 대한 기록이 더 많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죽을정도로 구타를 일삼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처 나와 순순히 혼자 힘으로 최고 권력자의 충신이 되었던 그는 그러나 말년의 운이 참으로 불행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뜻을 거스르면 가차없이 목을 베어버리는 헨리 8세의 괴팍함에 그도 무사할 수 없었다. 그 몰락은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 앤 불린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이 죄라면 죄였는데 첫번째 부인과 혼인무효소송까지 벌이면서 열렬하게 결혼을 추진했던 국왕이 언제 나몰라라 내뺄지는 그도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실수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첫번째 부인과 마찬가지로 두번째 부인과 이혼하려 했던 국왕은 그의 이혼요구를 앤 불린이 들어주지 않자 그녀에게 간통혐의를 뒤집어 씌워 처형시켜버렸고 한 때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심복인 크롬웰에게도 가차없이 참수형을 내렸는데 헨리 8세의 명령에 따라 그의 사형 집행인은 아직 미숙한 젊은 풋내기로 결정되었고 그의 참수는 도끼로 무려 세 번의 내리침으로 고통스럽게 끝이 났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무시무시한 권력의 롤러코스트 같은 이야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권력자의 자리란 매력적이면서도 모순이 가득한 곳 같다.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혹은 앉으려고 하면 먼저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한다는 긴장감으로 어쩌면 잔인함은 필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이용할 인간과 버릴 인간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적인 논리만이 존재하는 냉혹한 궁정에서의 광기어린 헨리 8세와 인생 기복이 파란만장한 크롬웰의 이야기는 무려 천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듯이 흘러간다. 소설인지라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가 중간중간 개입하지만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별이 안갈만큼 완벽했다. 그런데 살짝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크롬웰이 몰락하는 과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의 인생 그래프가 있다면 그가 권력의 클라이막스까지 도달하는 장면까지 나오는 셈이다. 소문을 듣자하니 조만간 속편이 나온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내친김에 나오면 천 장 더 읽어보기로 한다. 아마도 나는 속편이 나올때까지 목을 빼곰히 내밀고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
권력과 인간의 길 - 『울프 홀』/ 힐러리 맨틀 헨리 8세와 앤 불린에 관한 이야기들은 전문적인 역사서뿐만 아니라, 문학과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하여 수없이 다루어져왔다. 영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인데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다루기 쉬운 역사는 아니다. 지나칠 정도로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기 때문에, 자칫 동어반복으로 보이기 쉽다. 『울프 홀』은 그러한 난관을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파고들어, 성공적으로 타파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울프 홀』은 헨리 8세와 앤 불린을 중심적인 소재로 다룬 역사소설이지만,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반대로 인물적인 배경으로만 등장시킨 작품은 아니다. 작품에서 두 사람은 분명히 중심에 위치하지만,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작가가 『울프 홀』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람은 토머스 크롬웰이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결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영국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는데도 역시 중심이 된 인물이다. 특이한 점은, 그가 역사적인 의미에서는 중대한 역할을 맡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울프 홀』은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방향성에서 차이를 보인다. 작가는 미천한 태생의 그가 한 국가의 정점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권력과 본성에 관한 깊은 사유를 보여주려 한다.
저자인 힐러리 맨틀은 전문적인 역사 소설가는 아니다. 물론, 몇 편의 역사소설을 집필하기는 했지만, 작가의 관심사항은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문학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울프 홀』은 작가의 그러한 노력이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작품이며, 2009년에 맨부커상을 수상하여 이를 입증했다. 특이한 점은, 역대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 중에서 가장 단기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맨부커상은 대중적인 인기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대중적으로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한 수상작들이 더 많다. 그러한 점에서 『울프 홀』은 남다른 면이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와 인간적이며 서정적인 문체 등은 여타 역사소설들에 비해 월등하며 문학적이다. 특히, 진지한 사유의 작품임에도, 결코 무겁지 않다. 서정적이며 위트가 넘치는 표현들과 치밀한 긴장감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긴 분량의 작품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읽힌다. 그야말로 작가의 문학적인 역량을 빈틈없이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울프 홀』은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소설이지만, 인물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하는 작품은 아니다. 물론, 연대기적인 구성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합적으로 묘사하는데 중심을 둔다. 주인공의 외면에서는 실제적인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있다. 특히, 그러한 내면의 묘사는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한편으로는, 후반부의 중심을 차지하는 토머스 모어와의 대립도 흥미롭다. 모어와 크롬웰의 대립은 중세와 근대간의 불일치를 보여준다. 『유토피아』등의 저서로 중세적인 이상향을 꿈꾼 모어의 가치관은 로마 가톨릭과의 결별을 꾀한 현실적인 크롬웰과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두 사람의 대립에 선과 악이라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담아낸다. 즉,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저자는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통하여, 인간의 권력과 본성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울프 홀』은 그러한 본질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다. 토머스 크롬웰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시점에서 결말을 지은 힐러리 맨틀은 후속 작품을 예고하고 있다. 권력과 인간의 길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작가가 후속 작품에서는 과연 어떠한 사유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
|
작년에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이 2009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 책을 만나리라고는 생각못했다. 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할 정도로 전 세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 내 손에 안겼을때는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앞섰다고나 할까? 장편소설이라지만 그 두께가 만만치 않았고, 첫장을 펼쳤을때 네페이지에 걸친 등장인물의 소개는 방대한 역사의 대서사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영국의 역사에서 헨리 8세만큼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남긴 왕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장희빈이 사극 드라마의 단골이야기이처럼 등장하듯 외국에서도 드라마, 영화,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인물이 헨리 8세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그 시절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파란만장한 변화가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관심을 끌고 있는거라고 생각되어 진다.
울프 홀 또한 헨리 8세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은 헨리 8세의 최측근으로 정치, 종교 개혁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토마스 크롬엘이 중심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아버지의 습관적인 무차별 폭력에 항변 한 번 못하고 뭇매를 맞는 톰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결국 톰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가고 살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 어린 톰이 헨리 8세 곁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토머스 크롬웰일 줄이야~
어린시절의 토머스 크롬웰에서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20년후의 토머스 크롬웰로 반전되면서 1000페이지에 걸친 토머스 크롬웰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덕분에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총애를 받게 되면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토머스 크롬웰의 사랑하는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와 더불어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몰락과 함께 헨리 8세의 신임을 얻고 최측근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인생이 대 서사시로 그려지고 있다. 어린시절 아버지로 학대받은 기억때문인지 토머스 크롬웰의 가족 사랑이야기는 애잔한 감동을 선사하며 마음까지 다스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토머스 크롬웰의 시각으로 전개되며, 정치적 권력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온갖 모함과 비방으로 얻어진 권력이 영원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그토록 치열한 암투를 벌여야 하는 것일까? 개혁이란 미명하에 기존의 틀을 다 바꾸면서까지 토머스 크롬웰은 결국 왕의 신임을 얻고 권력의 최고봉에 올라선 부분에서 울프 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 그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오래전에 보았던 '천일의 앤' 영화가 떠 오르면서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대작이 나오지 않을가란 생각을 가져 본다. 수 많은 인물의 등장으로 수시로 첫페이지로 돌아가 등장인물을 확인해 가는 불편함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토머스 크롬웰과 그 시대의 정치, 종교,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곳에서 받은 화려한 수상 경력이 증명하 듯 번뇌하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을 섬세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어 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토머스 크롬웰의 잔상이 남아있는 책이었다. |
|
대학교에 다닐 때 세계사를 공부했는데 교수님을 통해서 헨리 8세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지금도 기억난다. 헨리 8세(1491~1547)는 여성편력이 화려했으며, 교황청과 대립했으며,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직 자임 등을 통해 영국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왕이었다. 튜더 왕가 출신으로 1509년 영국 왕위에 등극했다. 17세 때 맏형 아서(불치병으로 사망)의 정혼자였던 아라곤의 캐서린과 석연찮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녀와의 사이에 오랫동안 아들이 없자 왕위 계승권자에 대한 조바심을 냈다. 그러던 차에 캐서린 왕비의 젊은 시녀이자 자신의 정부(情婦)였던 메리 볼린의 동생 앤 볼린에게 눈독을 들였다. 앤 또한 요부다운 처신으로 왕의 권력욕과 왕위계승에 대한 조급증을 자극했다. 하지만 앤도 딸 엘리자베스 이외 여러 차례에 걸쳐 왕자 생산에 실패했고 그 사이에 그녀의 근친상간, 간통이 들통나면서 헨리 8세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결국 앤은 처형됐고 그는 다시 앤의 시녀와 결혼하는 등 생전에 여섯 번 결혼하는 군주가 됐다.
그래서 헨리 8세의 이야기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영화로도, 책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헨리8세와 그의 여인들, 천일의 앤과 엘리자베스 등의 영화는 모두가 왕이나 왕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 책에는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 중 하나인 토마스 크롬웰이 주인공으로 기록되고 있다.
저자 힐러리 맨틀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이민자이자 직물공장 노동자인 부모님과 공장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한 살 때 아버지의 실종을 경험하고 그를 둘러싼 불가해한 현실을 접하며 인간 사회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독특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로 근무했으며,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는 이 책으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생존해 있는 최고의 영국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위해 많은 고민을 했었고, 책을 쓰기까지는 5년 정도가 걸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상당한 깊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화려한 튜더 왕조의 커텐에 가려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권력과 인간에 대한 격조 높은 통찰을 담아내면서 특히 헨리8세가 다스리던 시대에 모든 권력의 중심 역할을 했던 울지 추기경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 뒤를 토마스 크롬웰이 어떻게 하여 헨리 8세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책 서두에 나오는 등장인물만도 4페이지나 되어 너무 많은 이름과 튜더 왕조의 가계도 2페이가 되어 책을 읽는데 많은 혼란을 가져오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아니하면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크롬웰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끝나려는가 생각 했더니 이 책은 앤불린과 관련된 초반활동까지만 그려지고 있다. 현재 <울프 홀>의 후속 작품에 해당하는 <거울과 빛>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에 그를 다시 만나야 되겠다. |
|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이야기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권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이 책을 표현한 문장처럼 "먼저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하는" 소용돌이 속이며 이 권력의 핵심까지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머스 크롬웰이 어린 시절 아버지 월터에게 맞아 죽을 뻔한 위기를 겪으면서 퍼트니를 떠나 낯선 세상속으로 들어갈 때만해도 그가 후에 이렇게 입지전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전쟁터에 들어가는 것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며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하나만 생각하며 떠나온 토머스 크롬웰은 27년 후 울지 추기경의 측근에서 변호사 일을 하는 권력지향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독자들로서는 갑자기 세월이 흘러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작가로서는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이야기에 빠져서는 안되는 핵심 인물인 토머스의 이야기에 굳이 어린 시절을 들려주며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간혹 토머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들려주고 있어 시간의 간극을 그다지 크게 느낄 수 없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보이지만 미천한 어린 시절을 뛰어 넘어 갑자기 변호사로 등장하는 토머스의 모습은 역시 전혀 다른 사람인 듯 느껴져 이야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울지 추기경과 토머스 크롬웰이 만나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화 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그다지 빠르지 않게, 조금은 지루하게 천천히 토머스가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기까지의 일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이나 다른 책들을 통해 헨리 8세의 이야기라면 자주 들어왔고 즐겨 읽는 이야기 중의 하나지만 이 시대를 함께 살다 간 토머스 크롬웰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에 [울프홀]을 읽으며 새삼 놀랐는데 토머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도 꽤 괜찮았다. 가진 것이 없었던 그가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이루어 가는지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해, 그 시대의 모습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작가 힐러리 맨틀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분주하게 만든다.
절대권력의 자리인 헨리 8세의 자리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을, 미천한 출신의 토머스가 위를 향해 걸어가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이야기에 토머스가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인물인바 그의 일생에 이 이야기를 빼 놓고 논할 거리가 없긴 하지만 토머스가 최고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는 길은 솔직히 자신에게는 피와 살이 튀는 전쟁과 다를바 없게 여겨진다 해도 독자들에게는 그저 한 사람이 태어나 살다 죽는 우리네들의 그런 이야기들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 그 동안에 벌어진 권력싸움은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토머스 크롬웰,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알지 못했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은 해갈이 되었으나 작가가 완벽하게 재구성된 삶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여전히 목마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월터가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구타하는 토머스의 모습을 먼저 보고나니 그의 외로움에 대해,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작가의 손에 그려진 토머스의 모습이라고 해도 말이다. 새로운 세상을 나아가는데는 분명 어떤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토머스에게 월터가 바로 그런 계기가 되어 주었으나 퍼트니를 떠나 벌어지는 모든 일은 토머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한가지 궁금한 것은, 역사가 그를 어떻게 기억해줄지 살아가는 동안 궁금해 했을까.
|
|
내가 토머스 크롬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세계사 시절 아들이 낳지 못한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불린과 결혼하려 하지만 로마 교황이 이를 반대하자 가톨릭 교회와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한 바람둥이 왕 헨리 8세의 충복으로 왕의 이혼문제를 전면에 나서 해결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 이 결혼이 파탄이 나면서 단두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권력가이자 정치가라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가 남겼다는 “정치가는 아무도 모르게 왕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최고 권력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는 권력의 하수인들의 생리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다 - 뒤에 밝히겠지만 사실 나는 토머스 크롬웰과 철권통치로 유명한 올리버 크롬웰이 같은 인물로 혼동했었다 - . 워낙 이 헨리 8세의 이야기가 기가 막히고 드라마틱한 탓인지 이 시대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들 중 내가 들어본 것만도 여러 편들인데,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케이블 TV에서 방송할 때도 별로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다만 크롬웰과 반대의 삶을 살았던 그 당시의 정치가이자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박원순 변호사의 세기의 재판 이야기인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한겨레 신문사/1999년 19월)>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를 본격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소설이나 영상물을 막론하고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2009년 맨부커상을 수상작품이라는 힐러리 맨틀의 <울프홀(원제 Wolf Hall/도서출판 올/ 2010년 10월)>이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책은 서기 1500년 난폭한 아버지의 폭력으로 초주검이 되어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어가던 소년 크롬웰이 그런 아버지를 떠나 달아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로부터 27년 후 핸리 8세의 고문이자 절대 권력자였던 또 다른 토머스 - 이 시기에는 세 명의 토머스가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크롬웰, 앞에서 언급한 토머스 모어, 그리고 크롬웰을 거둔 추기영 토머스 울지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세사람 모두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았지만 최후는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 울지 추기경의 충직한 수하로 두각을 나타낸다. 보잘것 없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생일조차 모르던 비천한 신분의 크롬웰은 천재적인 두뇌와 각고의 노력으로 법률가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과 교역에 능통한 경제 전문가로, 그 당시 외교 언어였던 프랑스어나 이태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각종 언어에도 능통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여 울지 추기경의 단단한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1530년 20년 동안 헨리 8세의 총신으로 군림했던 자신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울지 추기경이 왕의 애인인 앤 불린의 미움을 사고 실권하게 되고 그런 추기경의 복권을 위해 크롬웰은 동분서주해 보지만 결국 추기경은 반역죄까지 뒤집어 쓰고 병사하고야 만다. 울지 추기경도 해결해내지 못한 왕의 이혼문제에 전면으로 나선 크롬웰에게 비천한 출신이라고 비웃는 권력자들의 멸시와 질시 속에서도 갈수록 왕의 총애가 더해지고 결국 크롬웰은 수도원의 해산과 재산 몰수를 통한 교회 권력의 악화를 주도하고 마침내 1534년 국왕이 영국국교회의 <유일 최고의 수장(the only Supreme Head)>이라고 규정하는 법령인 수장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캐서린 왕비의 이혼과 앤 블린과의 결혼을 합법화시킨다. 그러나 국왕의 절친한 친우이자 총신으로 전대법관이었던 또 다른 토머스인 “토머스 모어”는 왕의 이혼에 끝내 동의하지 않고, 1534년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혔다가 1535년 그가 단두대에 올라 처형되는 장면에서 책은 끝을 맺는다.
사실 헨리8세 시대의 영국 역사에 대해 띄엄띄엄 단편적인 지식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청교도 혁명으로 공화정을 수립한 혁명가이자 철권통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또 다른 크롬웰이자 후대 인물인 “올리버 크롬웰(1599~1658)”과 동일인물로 착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고, 책 페이지가 계속 더해가면서야 결국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그 시대의 역사적 상식이 부족하다보니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들 때문에 몇 번을 앞 페이지를 펼쳐봐야 했고 1권 첫머리에 등장하는 가계도를 들여다 보는 등 책 진도를 나가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결국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 당시 역사를 검색해본 후에야 비로소 읽히기 시작했고 2권 크롬웰이 권력을 잡아나가는 장면부터는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1권 472 쪽, 2권 620 쪽 총 1,000 쪽이 넘는 분량을 다 읽어내는 데는 꽤나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었다. 그동안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이 벌이는 스캔들이 주였던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비천한 신분에서 일약 최고 권력자로 성장한 크롬웰의 시각에서 그 당시의 역사를 그려낸 이 작품은 음험한 모략가 정도로만 알고 있던 크롬웰의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를 담아내 크롬웰에 대한 재해석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그 당시의 궁정은 주인공이 인용하는 “호모 호미니 루푸스(Homo homini lupus),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라는 말 - 사실 이 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집 <인간(열린책들/2009년 8월>에서 처음 들었었다 - 처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온갖 모략과 권모술수가 점철되어 있는 “늑대들의 소굴(Wolf Hall)"이 그 자체일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크롬웰은 결국 자신이 성사시켰던 헨리8세와 앤 블린의 결혼이 결국 파경을 맞으면서 몰락 - 헨리 8세가 앤 불린과 결혼하는데 성공하기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법을 바꾸고 종교를 개혁하면서까지 기를 쓰고 한 그 결혼 생활은 결국 3년 만에 헨리 8세는 앤 불린을 근친상간의 누명을 씌워 참수시키면서 끝나게 된다. 결혼 생활 기간이 1,000일 남짓 되었기에 “천일의 앤”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 하기 시작하고 결국 결혼을 반대했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토머스 모어처럼 1540년에 결국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만다고 하니 서로에게 늑대일 수 밖에 없는 정치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그런 삶을 살다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읽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잘 씌여진(Well-Made) 역사 소설을 읽었다. 힐러리 맨틀의 약력에는 현재 이 작품의 후속작품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번에는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읽어 책의 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헨리 8세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를 챙겨본 후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는 나에게 크롬웰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