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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과 악마성, 치밀어오르는 욕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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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사진을 - 72dpi의 이미지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 잘 봐야 한다. 체조 선수를 데려다 찍은 누드처럼 보이는 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트킨에 대한 몇 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엑스타시에 이른 것처럼 몸을 활처럼 뒤로 굽혀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여자는 손에 든 막대로 다리사이에 놓인 성모상의 치마를 들추고 있다. 여자의 옆얼굴은 미로의 비너스를 닮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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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사진을 - 72dpi의 이미지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 잘 봐야 한다. 체조 선수를 데려다 찍은 누드처럼 보이는 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트킨에 대한 몇 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엑스타시에 이른 것처럼 몸을 활처럼 뒤로 굽혀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여자는 손에 든 막대로 다리사이에 놓인 성모상의 치마를 들추고 있다. 여자의 옆얼굴은 미로의 비너스를 닮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미로의 비너스의 눈을 인쇄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여자의 치골에는 음모가 굽이치며 흐르는데, 그 바로 위쪽, 그러니까 아랫배에는 딱딱해 보이는 검은 색의 조형물이 서있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게 페니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쪽에는 활짝 편 새의 날개가 - 몸통은 없다 - 받침대 위에 서 있다. 검고 딱딱한 남자의 성기. 음모를 드러낸 채 다리를 벌리고 몸을 젖힌 비너스. 올라가는 성모의 치마. 붙잡힌 날개. 위트킨의 작품을 본 사람은 그를 잊을 수 없다. 위트킨의 사진을 본 사람은 그의 사진을 다른 작가의 사진과 헷갈릴 수 없다. 하이힐을 신은, 요염한 엉덩이를 가진 게이 예수. 돌리 파튼의 판지 사진에 다리를 걸치고 자위하는 남자. 가면을 쓴 악마적인 성모자. 해골과 원숭이, 가면, 개구기를 동원해 만든 예수 그리스도. 가짜 가슴을 달고 개에게 항문을 내주는 남자. 루벤스의 아내처럼 모피를 두른 채 페니스를 내보이는 성전환자. 구루병에 걸린 포르노 배우가 연기하는 레다. 다리 잘린 마술사. 이빨을 뽑힌 채 피 흘리는 양의 머리. 노(能)의 가면이 바라보는, 모형 해골 위에 올려진 박제된 페니스. 페니스를 높이 든 채 젖을 짜 원숭이 시체에게 먹이는 악마가면의 여인. 베개 위에 앉은, 사람의 머리를 한 개. 다리 사이에 놓인 거대한 죽은 말의 성기를 권태롭게 만지는 여인.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사진들. 그의 경악스러운 작품은 우선 욕지기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사진들은 신체를 꿰뚫고 들어오며 고정적이고 편안한 관념들을 모두 헤집어놓아 삶을 최소한이라도 경건하게 만들었던 관습들을 파괴한다. 그 때문에 그의 사진 속에서는 살아있는 몸과 시체가, 동물과 사람이, 남자와 여자가, 아이와 어른, 천사와 악마가 한 데 뒤섞인다. 어떤 사진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시체처럼 보이고 다른 사진에서는 시체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가면을 쓴 인간은 괴물처럼 보이고 가면을 쓴 해골은 인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멀미와 현기증을 참고난 뒤 잠시 뒤 밀려드는 것은 어떤 종류의 황홀감이다. 그의 사진은 고통과 공포를 강요하는데, 이게 종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그의 사진에서 신성모독과 동시에 성스러움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끔은 회화를 공공연히 차용하고 - 루벤스, 고야, 벨라스케스를 -, 그보다 더 자주 기독교의 도상들을 차용하고 - 예수 대신 십자가에 매달린 말처럼 -, 그리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그리스 신화를 - 표지에 실린 비너스처럼 - 원용한다. 말하자면 그의 사진은 늘 신화적이다. 거기에는 신성이 가지는 이율배반이 증폭된 채 혼재해 있다. 공포, 쾌락, 환희, 고통, 죽음, 영원, 지복, 생명. 즉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선사하는, 환희와 고통, 허무와 쾌락이 버무려진 지복을 영원토록 약속하는, 그와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을 강조하며 끝없는 공포를 선사하는. 하지만 그의 신화는 늘 선정적이고, 어느 정도는 경박해 보인다. 그건 그가 거대하고 천박한 신화 밖에는 갖지 못한 미국 출신의 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힘은 자랑할 수 있지만 내세울 전통은 없고, 신은 있지만 신에 대한 기억은 없는 나라. 너무 거대해서 광막하고, 속에서부터 망가지고 멍든 나라. 그래서 난 위트킨의 작품에 슬쩍 미국적이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다. 그의 사진에 드러나는 히브리즘과 헬레니즘, 혹은 남미의 전통이나 오리엔탈리즘의 풍경은 소재에 그치고 만다. 그 저변에 흐르는 것은 뿌리 없는 욕망과 공포이고, 그것을 부풀리는 것은 신성과 악마성이고, 그것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도착된 신체의 이미지들이다. 그래서 마이어로위츠가 그리는 것이 미국이 사랑하는 거리의 풍경이라면 위트킨이 그리는 것은 미국이 감추고 싶어 하는 마음속의 밤 풍경이다. 하지만 미국의 문화가 곧 세계의 문화라는 점에서 - 이 불쾌한 실언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 그것은 동시에 세계의 풍경이고, 또 우리의 풍경이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그의 작품을 계속 봐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r****a 2006.04.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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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피터 위트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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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을 감상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사진집이야 말로 불타는 이미지의 세계! 그 뜨거운 세계를 느껴라! 차가운 렌즈로 그들은 타오르는 세상을 찍는거다. 가장 감상적인 감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난 감수성 따윈 개나 줘버린 메마른 녀석이니까 일단 마구잡이로 가자.   조엘 피터 위트킨. 이름부터가 솔직히 맘에 듭니다. 저 위트킨이라는 단어. 딱 맘에 들어요. 적당한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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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을 감상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사진집이야 말로 불타는 이미지의 세계! 그 뜨거운 세계를 느껴라! 차가운 렌즈로 그들은 타오르는 세상을 찍는거다. 가장 감상적인 감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난 감수성 따윈 개나 줘버린 메마른 녀석이니까 일단 마구잡이로 가자.

 

조엘 피터 위트킨. 이름부터가 솔직히 맘에 듭니다. 저 위트킨이라는 단어. 딱 맘에 들어요. 적당한 유머러스, 그리고 있어보이는 강세, 거기다가 로스케나 도이체 사람들 같은 절제된 느낌까지. 단지 이름이 맘에 든다는 것으로 이 책은 평가에서 +2를 받습니다. 뭐, 이 분이 뭐하는 분인지는 딱히 몰라도 됩니다.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사진가입니다. 그것도 괴기스러운 사진을 찍는 사진가죠.

 

팔 다리가 없는 사람이 매우 수치스러운 옷과 매우 부끄러운 자세로 사진기 앞에 서 있습니다. 말은 커다란 성기를 드러내고 그 앞에는 눈이 가려지고 온 몸이 묶인 발가벗은 여자가 쓰러져 있습니다. 곧이라도 강간당할 것 같은 그 한 컷. 잘려진 머리와 열려진 두개골, 그리고 그 머리에 담겨진 과일과 가려진 눈. 팔이 없는 통통한 남자를 그는 판으로 만듭니다. 털이 북슬북슬한 말굽 발과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 그는 공허한 눈길로 평야를 바라봅니다. 잘려진 팔다리는 의자 위에 메달리고, 열린 가슴은, 뜯겨진 몸통은 바닥을 뒹굽니다. 말라버린 육신은 성기를 그대로 축 늘어뜨린 채 비참한 삶 속에서 예수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끝없이 괴기롭고, 잔혹하며, 또한 시체애호적인 그의 사진에서 전 오히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낍니다. 그는 사회적 소외자와 약자와 그리고 제도권의 밖에 있는 사람들을 찍습니다. 팔이 하나 없지만, 그는 그 속에 숨겨진 불꽃같은 예술을 찾아냅니다. 죽어버린 머리에서도, 잘려버린 다리에서도, 멀어버린 눈 속에 일렁이는 혼을 바라보는 그는 사진기를 듭니다. 시체에 과일을 담고, 허공에 시체를 걸어두는 그는 인간이지만, View-Fider를 통해 차갑게 쏘아지는 그의 눈은 신의 눈입니다. 모든 인간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냉혹한 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을 그는 찍어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너무나도 웃기고, 괴롭고, 슬프고, 잔혹하고, 아름다우며, 따뜻합니다.

 

조엘 피터 위트킨의 사진은 미성년자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단순한 시체애호나 가학적 이상성욕, 소아성애 같은 변태성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그 사진에서 사람을 보았고, 그들의 혼을 느꼈습니다. 전 자신있게 말하건데 위트킨은 대단한 작가이며 또한 만물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n*********t 2009.11.05.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