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사진집 소개를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알것이다. 열화당 사진문고에서 나온 책이니, 손바닥 만한 문고책이며 좌측에는 텍스트가 우측에는 사진이 배열되고 맨 끝에 가서는 작가의 간단한 이력이 나와 있는 것임을.... 이 책에서는 한국의 거리를 찍은 사진도 한 장 나온다. 바로 '이태원 뒷골목의 창녀촌, 서울, 한국, 1988' 이라는 작품이다. 흑백사진이며 어떻게 해서 이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를 소개해 보자면 "1980년대말, 반 데르 알스켄은 일본의 한 출판사로부터 한국에 대한 책을 낼 수 있게 작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처음 한국에 다녀온 후 그는 병이 들었고, 더 이상 여행을 할 수 없엇다. 이 사진은 그 마지막 여행 때 서울의 홍등가에서 찍은 것이다....생략" 이렇게 적고 있는데 뭐 별다는 내용은 없다. 흥미있는 사진이라면 '유리 장수, 파리, 1951' 이라는 작품이다. 한 여인에 머리위에에 한개, 양손에 각각 1개씩의 의자를 들고 걷고 있으며 시선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 옆으로 유리를 짊어진 남자의 하반신이 보인다. 배경은 그냥 평범한 길거리다. 설명에 이를길 '이 사진은 전형적인 사진 사냥의 결과다. 그는 구호를 외치면서 길거리를 걷고 있는 이 유리 장수를 꽤 오랫동안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 남자가 의자를 짊어지고 가는 여자를 지나칠 때 비로소 셔터를 눌렀다' 라고 적고 있다. 흠 그렇구만 관찰자로서의 열정이 느껴진다.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재즈 연주자인 쳇 베이커를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이다. 제목이 '콘세르트헤보의 심야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쳇 베이커, 암스테르담, 1955' 사실 필자는 베이커의 음울한 재즈선율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젊었을때, 알콜 중독에 빠지기 전의 수려한 외모를 볼 수 있다. 아뭏든 힘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작가는 이때까지만 해도 재즈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쳇 베이커와의 만남을 통해 뭔가를 느꼈고 이후 재즈 연주자들을 많이 남기게 된다. 루이 암스트로, 엘라 피츠제랄드, 소니 롤린드 등등. |
|
에드 반 데르 엘스켄이 세계적인 사진가가 된 것은 ‘Love on the Left Bank ‘(참고 http://www.guardian.co.uk/artanddesign/2011/feb/10/van-der-elsken-left-bank ) 사진집 때문이엇다. 이 사진집은 20세기 최고의 사진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사진집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가깝다. 이 사진집의 스토리는 앤이란 인물이 이국적인 댄서가 되고 술 마시고, 추파를 던지고, 싸우고, 자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환멸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실제를 찍은 것이 아니라 연출된 것으로 사진 소설(photo novel)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 사진 소설의 스토리는 앤을 연기한 밸리 마이어스(Vali Myers)의 실제에 가깝다. 전설적인 보헤미안인 그녀는 콕토, 즈네와 친구였고 2차대전 후 파리로 도피한 보헤미언들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집이 다루는 것은 엘스켄 자신이 속해있던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세계였다. "온갖 나라에서 모여든 그들은 이러저라한 이유로 전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바, 카레, 식당을 떠돌며 술과 마약에 취해 있었고 깊은 상처로 절망에 빠져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엇다. 반 데르 엘스켄은 이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에 매료되어 사진을 찎었다. 간혹 그들이 내켜 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 섞여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찍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는데 인공조명, 연기, 반사 등이 분위기를 지배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열광적으로 춤추고 논쟁하고 식사하는 모습을 찎었고 덧없음 혹은 절망을 드러내는 듯 서로 껴안은 채 잠에 빠져 있는 모습도 찎었다." 자의든 타의든 주류에서 밀려난 주변부의 문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엘스켄은 낸 골딘(낸 골딘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전 리뷰 참고)과 자주 비교된다. 실제 "낸 골딘은 엘스켄의 작품을 대단히 좋아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기록하는 세대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낸 골딘과 엘스켄의 작업은 다르다. 낸 골딘의 작업은 자신의 대상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따듯함이 있다. 엘스켄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그렸고 그 공동체를 그리는 것은 자신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선 따뜻함이,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엘스켄의 사진을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진을 찍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인식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에 나오는 인물과 상황은 항상 그의 감정을 반영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이라기보다 자기비하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엘스켄은 진정성을 추구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카메라에서 자신을 찾았고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을 찍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강렬하다. "그의 사진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시선이다. 초기 작품 속의 인물들은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젊은 사진가는 꿈과 외로움,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를 관찰한다. 그들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오로지 '당신 자신을 보여 달라'고 하는 감독의 지시를 받는 배우가 된다." 엘스켄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와의 수동적인 만남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진 찍는 방법이 사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멀리 있는 사냥감-인상적이고 아름다운, 혹은 기이한 사람들-을 점찍은 후, 망원 렌즈나 줌 렌즈로 천천히 따라가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마지막에 광각으로 포착한다고 했다. 렌즈를 교체하는 일을 포함해서, 이 방법은 영화적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는 간간이 영화를 실험하고 있었고 영화는 그의 두번째 표현매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를 관음증 환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자신의 사냥감에게 언제나 '당신 자신을 보여달라'고 강요한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관찰자로 머물 수 없었고 무대를 지배하는 감독이 되어야 햇다. 그의 이름을 알린 첫번째 사진집이 영화에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