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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에서의 문화프로그램의 위상에 대해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 책은, 문화나 교양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유용하지만 특히 방송계에서 일하기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그리 두껍지는 않은 책이지만, 처음에는 이 책이 프랑스 텔레비전에 문화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것과 관련된 평가와 분석, 제안에 관해 저자가 문화커뮤니케이션부 장관에게 제출한 보고서를 엮은 것이기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거나 자칫 한국의 정서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부록 뒤에 프랑스 텔레비전 문화의 이해를 돕는 해설이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언론의 엄격성과 지성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금상첨화! 프랑스의 언론에 대해서는 『프랑스 언론-신문,텔레비전, 라디오의 현황과 전망』(김문환,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책의 내용과 문체는 생각보다 쉽고 그러면서도 정열적이었다.
책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인상에 남는다. 안그래도 얼마전 수업 시간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 대해 배웠던 참이었다.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부르주아의 문화가 부르주아 아닌 사람들에게는 전혀 접근하지 못하게 스스로를 구별짓는 다는 이론이다. 이를 들어 공영방송은 말한다. 수준미달의 문화 프로그램이 오히려 더 민주적이고, 더 개방적이며 덜 엘리트주의적이라고! 그러나 책은 공영방송이 너무 천박한 양적 공리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지적하는 것 같다. 저자는 '오늘날이 텔레비전 한복판은 쾌락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공영방송 문화 프로그램의 질, 양, 특히 편성시간대를 분석하여 문화 프로그램이 경쟁력에 치여 밤과 여름 시간에 넣어졌음을 고발한다. 그래서 제목 역시 '밤과 여름'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제적인 경쟁력 때문에 문화 프로그램의 양과 질이 위기에 놓인 것이 비단 프랑스뿐이랴!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과도 오버랩되는 듯 했다.
프랑스 하면 소위 패션의 나라, 문화의 나라로 떠올린다. 문화나 지성의 역할을 중시하는 프랑스마저 시청률이라는 이유 때문에 문화 프로그램이 주시청시간대와는 거리가 먼 밤과 여름 시간대로 내몰린다는 것은 퍽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냥 방송도 아니고 이익보다는 국민의 복지에 더 신경을 써야하는 공영방송에서조차 문화 프로그램이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인에도 관심이 많은 내게 이 책은 언론인으로서의 양심과 역할에 대해 일깨워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지성으로서의 언론의 역할,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 점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책을 읽고 아래와 같은 내 나름대로의 언론과 그 역할에 대해, 문화 프로그램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었다.
문화 프로그램의 양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점은 문화 프로그램의 질에 있어서이다. 문화 프로그램이라고 편성된 것들조차 대개 스포츠나 오락물인 경우가 많다는 것! 물론 스포츠나 오락물도 문화 프로그램의 일부분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책에도 언급된 것처럼 공영방송 측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변명으로, 무용이나 연극 등의 고급한 문화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은 오히려 문화 엘리트주의이며, 엘리트가 아닌 다수의 국민에 대해서 평등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 텔레비전은 매우 중요한 매체이다. 물론 21세기 젊은이들은 컴퓨터를 가장 가까이 할 수도 있겠지만. 나 또한 리모컨을 놓지 않고 사는 세대이니깐. 텔레비전을 통해 개개인의 취향과 욕구가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 우리에게는 고급한 문화를 접하고, 그러한 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권리가 있다! 또 낮은 시청률일지라도 그 문화프로그램에 대한 열렬한 시청자에게, 시청률을 핑계로 자꾸 밤과 여름 시간대로 문화 프로그램을 내모는 것, 또 스포츠, 오락이나 경박하고 가벼운 프로만 내보내는 것은 커다란 기만이 아닐까.
한국의 TV를 봐도, 진지하고도 유용한 다큐멘터리, 지적인 교양 프로, 연극, 뮤지컬, 무용을 다루는 문화 프로그램은 황금시간대는 물론이고 주시청시간대에 보기가 힘들다. 보고 싶어도 눈이 빨~개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새벽에 잠깐 졸면 볼 수가 없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을 일깨우고 꼬집어 준다. 물론 어려운 문체가 아니라 쉽고도 시적이고 낭만적인 문체로써. 그리고 특히 저자의 문화 프로그램을 경시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경계하는데 있어서의 치열한 지성인으로서 정열이 마음에 드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