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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신문의 기사만 봐도 'feel'이 오는건가 보다. 이 책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기대했던 것 보다 더 깊고, 치열하고, 신랄했으며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 정부와 흡사한 영국정부의 맹점을 날카롭게 들춰내고 있었다. 나는 경제방면에 관한 책을 거의 읽지 않은 편이라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경제사정은 물론이거니와 영국 노동자들이 어떠한 분배를 받고 어느 수준으로 살고 있는지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많은 면에서 영국미국식 자유 시장제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영.미도 최하위 노동자들에 대해 정부가 취하는 정책과 제스추어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비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영국의 빈민층, 계약직 일용직 노동자 계층의 비참한 삶을 숫자와 통계자료를 적절히 제시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출판한 개마고원측에서 영국의 자료가 제시될 때마다 그 곁에 한국의 수치도 함께 대비해주고 있어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도 쉽게 첨가할 수 있어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나라는 숫자상으로 대략 영국 일용직 노동자들보다 10배 정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위대한 여자총리로만 알고 있었던 대처 여사도 완전히 부자와 주류계층의 이해만을 대변했던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처음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유럽이라 해도 독일과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와 영국은 부의 분배와 그에 따른 국민 전체의 고른 복지라는 면에서 천지차이라는 것. 비약하자면 영국은 부자에게 너그럽고 빈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왜 북유럽 국가들(노르웨이, 스웨덴...)이 복지국가로 불리우는지도.
만나게 되는 책 중 인생에 커다란 전기가 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내게 약자, 빈자,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처음으로 시선을 던지게 해준 책이다. 오늘도 택시를 타고 가다가 내리는데 공사장에서 인부하나가 뛰어와서 내가 탔던 택시 기사를 붙잡고 사정했다. '저기 다친 사람이 있는데 좀 실어다 줄 수 있어요?' 종로2가, 아마 청계천 고가 관련 공사장이었던 듯한데 그 근처로 다가가 보니 어떤 아저씨 하나가 한쪽발은 맨발로 앉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피가 보였다. 아, 공사하다가 다쳤구나. 얼만큼 다쳤을까? 회사에서 보상은 제대로 해줄까? 나는 물끄러미 그 아저씨를 바라보다가 얼마후 내 갈 길을 갔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손님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기사 아저씨에게 말을 시키는 인부 아저씨에게 불쾌감을 느끼고 얼른 택시에서 내려가 재빨리 내 갈길을 가버렸을 것이다. 뭐야. 저 아저씨, 예의도 없게? 하고 중얼거리면서...나는 내가 무슨 노동자를 위해 투신할 훌륭한 사회지도자로 성장할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러다가 나는 또 내 한몸의 안위와 영광을 위해 열혈 이기적인 생각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유니폼을 입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관심있게 볼 것이며 적어도 그런 사람들의 생존을 담보로 사회의 주류 저명인사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지금은 우리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라는 노래를 불러댈때 웃기시네, 당신 연봉이나 깍으시지. 하고 엄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상깊은구절]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외형보다는 지위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나는 일반 운반원이고, 나라는 존재는 그 다음이다. 나는 복도나 병실을 지나가면서 예전에 상담했던 의사 몇 사람을 보았다. 그중 한 사람은 아주 잘 아는 사람으로, 나와 딸아이를 진찰했던 의사였다. 아마도 내가 환자였다면 나를 알아봤겠지만, 운반원은 보이지 않는 저 아래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 결코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아는 의사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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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세된 희망
저자 : 폴리 토인비
가격 : 원가 15,000원 ( 구입가 : 0원 )
이유 : 예전에 '블루 골드'라는 책을 읽고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책중에 괜찮은 책이 있나 찾다가 알게 된 책. 이번에 조금 먼 시립도서관에 간 실질적인 이유가 바로 이 책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독서 후 : 작가가 실제로 격으면서 빈곤층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한국에 상황도 도표와 글로써 보여주어서 영국에 관한 이야기지만 충분히 한국의 상황도 알 수 있었다. 책 속의 글 중에서 '노동자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으로 유지되는 중소기업이라면 시장에서 도태외어야 정상이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우리나라도 중소기업의 형편을 생각해서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생각할거리가 많았던 책이었다. |
| 제 2의 IMF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98년보다 훨씬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를 몇몇 정치인들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그런다고 하여 무언가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요즘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100%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의존해 살고 있는 나이기에 풍족하게 모든 것을 누린다고 말할 순 없는 처지이지만 말이다. 적어도 최저 생계비 이하의 삶은 살고 있지 않은 듯싶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난 그 이하의 수입으로 버티는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에야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맙게도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 그 생활을 체험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 저소득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의 시도는 일종의 사치와도 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저자는 저소득층의 삶을 표방(?)하긴 했지만 그들이 처해있는 희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고된 삶의 일부만을 경험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권의 책은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비록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펼쳐봄으로써 나와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영국의 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국은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많은 비용을 사회복지에 지출하고 있는 국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영국 모두 미국적인 무언가를 표방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복지에 있어서의 효율성, 생산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처 집권기에 영국 사회는 사회적 안전망을 모두 잃었다. 대처 정권은 공적 영역에 속한 것들을 민간으로 넘겼으며, 그 과정에서 서비스의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실제로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복지의 영역 밖으로 추방해버리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성공적인 개혁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결코 사회복지에 지출하는 금액을 줄이지 못했으면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빈곤층을 양산해냈다. 예전과 같은 금액 혹은 그 이상의 금액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고 있는 것일까. 결국 복지는 본래 복지의 기능을 상실한 체 오히려 돈 많은 이들을 위한 혜택으로 둔갑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노동당 정권은 대처의 많은 오류들을 그대로 짊어지고 가고 있다. 아동에 대해 보다 많은 투자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굳히는 등 대처 정권에서와는 조금은 다른 정책들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노선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오죽했으면 보수적인 모 신문에서 ‘블레어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최고의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했겠는가. 저자의 생활은 참으로 고달프게 보였다. 그녀는 집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곳에 거처를 잡았다. 그것도 그나마 국가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기금을 이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어찌나 형편 없던지 직장을 잡는 그 순간 지원은 끊어지고 만다. 월급을 받기까지 몇 주간은 돈 한 푼 없이 버팅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첫 시작부터 빚더미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많은 종류의 일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복지가 사람들에게서 노동의 동기를 앗아가기 때문에 백해무익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나락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 직장 대부분은 최저 임금보다도 낮은 임금을 지급하며, 근무 조건 역시도 열악하다. 그나마 낮은 임금도 중간에 있는 인력회사 등에서 착복하기 일쑤이다. 서로 다른 곳을 통해 이중 삼중으로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 일할지라도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마련이고, 노조는 대처 시대에 이미 그 힘을 잃은지 오래다. 개다가 언론 등에서는 이러한 실체에 대해선 침묵을 넘어서 환상적인 이미지만을 쏘아댄다. 절대적인 액수만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삶은 엄청난 진보를 거듭해온듯 싶다. 하지만 실질적인 금액을 따져보면 그것은 엄청난 퇴보에 불과하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동네, 허름한 집에 살면서 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관두고 싶어하는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들이 일을 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통제권 밖에 놓인 아이들은 지금의 빈곤을 고대로 답습하는 방법에 눈을 뜰 뿐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계급이란 존재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분명 빈곤은 세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빈곤은 비(非) 백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지난 날 노조는 이들을 저 임금의 영역으로 몰아넣으면서 백인 남성 노동자들의 이권을 챙기는 이중적인 작태를 보였다. Zero-sum 이론에 입각한 자본의 흐름 속에서 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 위해선 다른 한 사람을 짓눌러야 하기 때문에, 노조는 백인 남성들의 부를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았다. 영국 정부는 복지 개혁을 통해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켰노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한, 이미 충분히 부유한 사람들의 부를 키움으로써 가능한 결과였다. 이것이 사회의 진보이고 발전이라고 말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소수의 부자들이 떵떵 거리며 지금이 좋다고 말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그 끔찍함은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을 개발하고 싶어도 지금의 노동이 너무 고되고 자기 개발을 위한 시간과 자본을 허락하지 않기에 저소득층은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개인의 게으름, 나태로 인식하는 것을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미 오래전 사형선고를 받은 마르크시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계급은 환상이나 이미지가 아닌 실제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생각이 생각을 부르는 밤이다… |
| 검게 때묻은 목장갑 한 짝이 눈길을 끌었다. 거세된 희망...이라. 우리 나라의 복지제도나 정책은 많은 부분 영국의 것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TV나 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들의 보도를 통해 우리는 복지정책에 있어 유럽의 국가들이 우리보다 앞서있다고 알고 있으며 정치인, 경제학자들도 유럽의 정책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대부분 유럽의 정책들에 호의적인 내용들, 그러나 사실 언론매체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며 편집자의 기획 의도에 맞춰진 것이다. 그들은 보여주고 싶은 밝은 부분만을 보여주며 그것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곳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질지 모른다. 유럽이나 선진국으로 가면 살기 좋을 것이라는 이민 열풍에 아마 이런 이유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밝은 부분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스스로 어두운 면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 아예 어두운 부분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유럽의 복지정책과 또 그것을 따르려는 우리 나라의 정책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영국의 한 언론인이 직접 영국의 빈민촌으로 가서 빌딩청소원, 병원 잡역, 빵공장 노동자, 텔레마케터, 간병인으로 살아가며 '빈곤'이라는 것을 '이론'이 아닌 빈곤한 자로서의 '현실'로 풀어낸 글이다. 필자가 경험한 노동의 형태는 대부분 파견근로다. 일하는 곳에서 직접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게 되는 곳에 파견근로를 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이들 파견근로자들의 시급은 하루 8시간을 일해도 생활을 꾸려가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때문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없으며 대부분 빈민가의 사람들은 두 가지씩 일을 하며 심지어는 새벽부터 밤까지 세 가지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기도 한다. 그렇게 일을 많이 해도 그들의 삶은 나아질 수 없었다. 그들의 시간당 임금은 70년대에 비해 금액으로는 높아졌지만 실제로 물가의 증가율에 비하면 오히려 떨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파견근로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정부와 기업은 왜 파견근로와 비정규 고용형태를 만들어냈을까? 이런 형태의 노동은 장기적으로 볼때 생산성이 낮으며 능력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싹을 잘라버린다. 저비용이 반드시 고효율을 낳는 것은 아닌데, 정부와 기업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들의 심리를 악용하는 것인지... 파견근로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우리나라에도 합법화된 이후로 현재 우리 나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50%를 넘어섰다. 이들의 한달 급여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에 반도 못 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업은 용역업체에 정규직 노동자의 급여보다 적은 임금을 주고 그 적은 임금으로 용역업체와 노동자가 나누어야 하니 실제 노동자는 두 번 착취를 당하는 셈이 된다. 더구나 파견근로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각종 보험에서도 제외되므로 노동을 하면서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방송에서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구조와 문제점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방송을 만든 사람들 역시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파견근로직이라 하니, 웃지 못할 노릇이다. 파견근로와 비정규직은 2년 이상 채용하게 될 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곳들도 많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1235호) 방송사들의 비정규직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한 달 전에 해고를 통보한다고 한다. 그러면 또다시 다른 방송사로 전전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저임금,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더 나아질 길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제도에서 무엇을 기대하며, 어떻게 더 나아질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저자는 빈민가의 체험을 마치고 다시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가난을 광법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바로 '제외'라는 말이리라. 평범한 즐거움에는 하나같이 '출입금지' 표지판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 이걸 사라, 저걸 사라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번쩍번쩍 빛나는 상점은 총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움만 더해갔다.... 오늘날의 저임금 노동자는 30년 전보다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정치인이 국민 앞에 알린다면, 공정한 최저생계임금을 놓고 국가적인 토론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기만족과 자부심으로, 그리고 기어코 쟁취하고 말겠다는 오기로 버티지만 마음이 흔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파견근로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과 환경에 비해 아주 조금, 쥐꼬리만큼 더 받는다고 그래도 난 저 사람들 보다 나아..라는 안도가 아니라 내가 잘 살고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살 수 있기 위해 관심가지고 노력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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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소위 좌파 신문이라 하는 영국 인디펜던트지 등 유수의 언론들을 거쳐온 성공한 칼럼니스트가 휴가를 이용해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빈민의 생활을 실제 '살아 본' 체험기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단순 통계자료를 한 번 보라. 그 자료들의 실제 주인공이 하루하루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느낌을 가지며 살아가는 지 알 수 없다. 고맙게도 저자는 이를 정말 체험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며 우리의 마음속부터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체험기를 마친 저자의 소감이 어땠을까?
저자는 빈곤지대 체험을 마치고 다시 예전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그 절망지대를 벗어났다는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고 한다. 그것이 굳이, 잘나가는 일간지의 잘나가는 저널리스트인 저자여서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생각해보자. 아주 잠깐 공활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도 있고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도 있다. 이게 내 진짜 인생이라면? 움찔할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빈곤층은 노동당 블레어 총리의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노동당은 이른바 '일하는 자들을 위한 복지'를 표방하고 있는데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좋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이가 없다. 복지정책은 이들의 생활을 조금도 나아가게 하지 못하며, 극악한 중간 착취는 살인적인 노동에도 가볍디 가벼운 급여봉투만을 안겨줄 뿐이다.
우선 이들 빈곤층은 취직을 하고 자기 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빚을 져야 한다! 이를테면 실직상태에서 구직자 수당을 받다가 취직을 하게 되면 그 순간 수당은 끊긴다. 게다가 임금은 늘 훨씬 뒤에나 지급이 된다. 그러면 임금이 나오는 기간까지 꼼짝없이 무일푼이 되는 것이다. 이제 막 빚더미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이번에는 고리대금의 사슬이 목을 조여온다. 황당한 사실 하나. 빈민들은 우리보다 많게는 50%도 넘게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사야만 한다. 왜냐하면 전체 금액이 아무리 비싸도 물건이 필요하다면 어쨌든 당장에 내야 할 금액이 작은 것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종 저금리의 할부혜택이니 금융혜택들도 결국은 부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셈이다.
이제는 노동현장에서의 착취 차례이다.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거의 모두 비정규직이며, 보통은 이중삼중으로 파견업체의 중간착취가 이루어진다. 파견업체는 인건비로 11파운드를 받아 실제 노동자에겐 4파운드만을 지급한다. 일은 15분 간격으로 감시받으며, 하루종일 쉬는 시간이 식사시간까지 합해도 30분을 넘지 못한다. 이쯤되면 충분히 끔찍하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이들 가난에 지치고 일에 지친 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은 차라리 일을 하지 않고 빚이 없는 '기생 복지 생활자'로 돌아선다. 복지가 나아지면 너도 나도 무임승차를 하게 된다는 따위의 말은 정말 x같은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요즘 비정규직이 다시 한 번 사회이슈로 떠올랐었다. 실행될지 장담할 수 없는 정책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아니나다를까. 벌써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얼마 전 한국금융연구원은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85%까지 오르면 기업은 1년에 20조를 추가 부담해야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웃기는 노릇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끔찍한 착취 없이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기업경영이 썩었다는 실토가 아닌가? 아마도 이면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업이 위험하면 너희 일자리도 위험해지니 찍소리말고 가만 있어라'는 협박도 내포돼 있을 것이다.
영국에도 한참 뒤쳐지는 우리의 복지현실. 정말로 영국의 노동자가 한숨을 내쉴 때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정규노동자, 빈민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의 미래, 아니 보이지 않는 더극심하고 참담한 현실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리고 나는 그나마 잘 사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참담한 마음에 한숨을 쉬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그만두겠다는 말은 많이 했지만 실제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하다못해 불만을 하소연할 기운도 없었다. 일은 사람을 강제하는 힘이 있었다. 사용자를 증오할 때조차 그랬다. 혹독한 육체노동의 리듬에 익숙해질수록, 주방을 깨끗하고 정돈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에 익숙해질수록, 고된 노동은 오히려 이들을 그 자리에 묶어두는 고약한 성질이 있었다. .... 기업은 이런 감정을 가차없이 이용했다. |
| 책을 사게된 동기는 "저자가 최저임금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체험했다"는 책소개에 이끌려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과연 우리나라도 최저 임금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호기심도 있었다. 책 내용을 체험기로 되어있었는데, 뒤로 가면서 약간 산파적으로 빠진다는 느낌만을 빼면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책을 읽어가면서, 머리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재벌 중심의 수출은 사상 최고이며, 그 사업장에 속한 노조들은 그 열매를 같이 나누어가지자고 하는데, 반대로 내수로 최악인 상황이 유지되면서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은 현상황이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