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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세 번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네. 전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문장의 끝에 오는 ‘습니다’ 등은 읽지도 않은 채, 그저 내용 전개와 결말을 알고 싶어하는 궁금심리를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두 번째는 문장의 끝부분은 물론, 때로는 한 줄 두 줄 건너뛴 탓으로 잘못 이해하고 넘어갔던 상황을 바로 이해합니다. 세 번째에야 비로소 그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표현을 알아차립니다. 마치 3D 책을 읽는 것처럼 그 단어가, 그 문장이 두둥 떠서 나에게 다가옵니다. 고전이라고 해서, 수상작이라고 해서, 몇 십만 부 팔린 책이라고 해서, 일부러 골라서 그 책을 읽었더니 별거 없더라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곁눈질로 스윽 읽지는 않았는지요.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면 나에게만 반짝이는 단어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다 읽고 난 뒤,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이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파도를 기다리다]는 일본에서 시인으로 더 유명한 ‘코이께 마사요’가 쓴 소설입니다. 33회 카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도 수상했고요. 시인이 쓴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역시나 여러 번 곱씹게 됩니다. 한 번 읽고 책꽂이에 꽂아두기에는 너무나 아깝습니다. 이 소설을 번역한 사람은 또 얼마나 우리말을 고르고 골라서 옮겼을까요? 단어 하나로 시의 전체가 바뀐다고 하지요. 하물며 시인이 쓴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 찬 소설을 번역하느라 얼마나 고심이 컸을까요? 여기까지 생각하니 딱 한 번만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읽고, 또 집에 와서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볼 때도 읽었습니다. 서태지가 은퇴할 때 그랬죠. 창작은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고통이라고요. 우리는 작가가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고통 속에서 써낸 글을 너무 쉽게 한 번만 눈으로 훑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읽는 것으로 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 그리고 그 작가가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아름다운 문장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이미 가을이 지나간 지는 오래고, 따뜻한 방구들에서 귤 까먹으며 TV를 보는 겨울입니다. 잠시 TV는 꺼두고, 귤 까던 노오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겨 보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 다시 그 책을 꺼냈을 때 귤 냄새가 배어있다면, 그때 책 읽기에 집중하던 나를 향긋한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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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기다리다」는 파도타기의 즐거움에 빠진 남편이 써핑하러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바닷가에서 아이와 함께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의 이야기다. 줄거리보다는 문장이 빚어내는 광채에 놀라게 된다. 2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와 각각의 이성친구, 네명의 남녀가 비닷가 별장에 모인다. 따끈거리는 해초를 줍고 시디신 여름귤을 따먹으며 모처럼 나른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네사람 사이에는 내내 어렴풋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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